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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 타임라인

당진의 혼례

주민 161명의 앨범에서 고른 182장 · 1957 — 2008년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에 실린 이야기 가운데 ‘혼례와 부부’ 장면만 모아 세월 순서로 엮었습니다. 장마다 그 사진을 꺼내 준 주민의 말을 그대로 옮겼고, 아래 링크로 그 사람의 앨범 전체를 펼쳐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117명 — 이름을 누르면 그 사람의 첫 장면으로
  1. 1957년

    박시양송악읍선거위원장

    아내와 함께 산 60년

    아내와 함께 산 60년

    두 번째 사진은 1957년에 찍은 결혼사진이다.

    나는 19세에 한 살 연상인 아내 이연호 씨와 결혼했다. 올해가 결혼 60주년으로, 3남3녀를 두고 있다. 올해 큰딸은 57세다. 나는 아내와 60년을 살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막말을 한 적도 없고, 싸울 이유조차 없었다. 늘 고맙고 미안하다. 우리 내외는 열심히 건강하게 살고 있다. 농사지어 각지에서 생활하는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먹거리를 대고 있는데, 요즘 아내의 무릎이 아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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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957년

    박원신우강면 송산리

    백두산 천지에서 물구나무 서다

    백두산 천지에서 물구나무 서다

    두 번째 사진은 혼례를 올리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1957년 봄, 군 휴가 때 어머니께서 여자 사진 2장을 보여주셨다. 당시 나는 제대한 뒤에 천천히 장가를 가겠다고 이야기하고 복귀를 했는데, 어느 날 갑작스레 내가 결혼을 한다고 전보가 왔다. 당사자인 나도 모르는 결혼이라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부대 동료들이 축하해줬다. 결국 휴가를 내서 집에 와보니 청첩장도 이미 발송됐고 결혼 준비도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배우자가 될 사람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도 못하고, 말 한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결혼하게 됐다. 친구들과 가족들의 성대한 축하 속에서 전통혼례로 예식을 올렸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좀 더 낭만적인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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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961년

    이병직고대노인대학 학장

    “즐겁게 살며 베푸는 생활”

    “즐겁게 살며 베푸는 생활”

    첫 번째 사진은 보덕사에서 아내와 신혼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는 보덕사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그곳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아내 노일남은 고대면 성산1리가 고향으로 나와는 어릴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 아내는 나의 막내 여동생과 고산감리교회를 함께 다니던 사이다. 아내를 소개로 만나 1961년 27살의 나이에 결혼했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3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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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962년

    장용희고구마연구회장

    ‘사과’가 맺어준 인연

    ‘사과’가 맺어준 인연

    세 번째 사진은 결혼식 날 찍은 사진이다. 우리는 1962년 12월에 결혼했고, 군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에서도 보이다시피, 우리는 새마을예식장 1기생이다. 벌써 아내와 결혼한 지 55년이나 됐다. 아내는 말이 없다. 내가 사회활동을 열심히 했을 때도 뒷바라지를 많이 해줬다. 아내가 없었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가 잔소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크게 다툴 일도 없었다. 아내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고생은 안하고 살았을텐데…. 앞으로 남은 여생을 아내와 함께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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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1966년

    박권옥대한노인회 우강면분회장

    단체여행 다니던 그 시절 그리워

    단체여행 다니던 그 시절 그리워

    두 번째 사진은 1966년 결혼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내 나이는 24살이다. 합덕 원앙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올해로 결혼한 지 56년 째를 맞았다. 나는 우강면 소반리에서 태어나 내경리로 이사 온 아내(김영희)와 군 제대 후 결혼했다. 당시 연애결혼은 흔치 않았는데 우리는 2년 정도 연애한 후 결혼했다. 아내와 나는 아들 넷(진규·진우·진이·진철)을 낳아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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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1967년

    마을성극에 참여한 60년 전 막내시절

    마을성극에 참여한 60년 전 막내시절

    세 번째 사진은 1967년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고대면 슬항1리 출신의 아내 김홍옥과 슬항감리교회에서 식을 올렸다. 세 살 연하의 아내는 중매를 통해 만났다. 이때 결혼식 풍습은 신부의 교회에서 식을 진행하고, 신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이었다. 주례는 슬항감리교회 담임목사였던 한정석 목사님이 맡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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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968년

    이철환당진군수

    마지막 사진은

    마지막 사진은

    마지막 사진은 결혼 2주년 기념으로 아산 현충사를 갔을 때의 사진이다. 당진읍사무소에서 근무할 때다. 당시만 해도 아산 온양 온천여행은 남들이 부러움을 샀었는데 1968년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다녀왔던 곳이기도 하다. 결혼 1주년에는 수덕사를 다녀왔다.

    사진 속 장소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현충사 앞 정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곳에 앉아 미래를 그리며 서로 잘 살아보자고 약속했던 기억이 난다.

    「“꽃다운 시절의 추억”」 앨범 펼치기 →

  8. 1968년

    김무기국방전우신문 충남지사 회장

    아내와의 결혼

    아내와의 결혼

    1968년도 아내(김계자)와 결혼할 때 모습이다. 결혼식을 앞두고 5일 전 어머니가 입원할 정도로 몸이 아팠다. 결혼식을 치를 때까지 식을 중단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식장에 들어가서도 정신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다.

    「내 별명은‘핵무기’」 앨범 펼치기 →

  9. 1969년

    “한평생 함께 한 아내”

    “한평생 함께 한 아내”

    아내(김순애) 모습으로, 내가 찍어 준 사진이다. 군 제대를 하고 1969년 직장에서 아내를 만나 연애 후 결혼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듯 맞춰가며 한평생을 함께하고 있다. 지금은 아내와 둘이서 살면서 작은 텃밭에 먹을 것들을 심고 키워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아내와 처음 행정2통에 왔을 땐 이웃들과 서먹했다. 하지만 함께 소통해 오고, 또 이웃들이 나를 잘 따라줘 고맙다. 지금은 행정2통 노인회장을 맡아 내건너경로당에서 봉사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전우들을 찾습니다”」 앨범 펼치기 →

  10. 1970년

    묵향에 빠진 초락도 섬 소년

    묵향에 빠진 초락도 섬 소년

    첫 번째 사진은 1970년대 초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다.

    석문면 초락도 출신의 나는 순성면 봉소리 출신의 두 살 연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아내를 중매로 만났는데, 당시엔 차가 없어 아내를 만나려고 당진에서 순성면 봉소리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내와의 두 번째 만남은 당진 시내에서 이뤄졌는데, 한 번은 내가 아내에게 멀리 떨어져 걸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곤 아내가 상처를 받았는지 지금도 당시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묵향에 빠진 초락도 섬 소년」 앨범 펼치기 →

  11. 1971년

    최순용교로1리 여성 노인회장

    “찍는 게 남는 거여~”

    “찍는 게 남는 거여~”

    첫 번째 사진은 1971년 3월 첫째 딸이 시집갈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예산군 오가면 신원리 출신으로 16살에 3살 연상인 남편(김장희)을 만나 당진으로 오게 됐다. 이후 73년 동안 교로1리에서 살면서 딸 넷과 아들 둘을 낳아 길렀다. 지금은 자식들이 결혼하고 인천, 서울, 삼길포 등에 각각 가정을 이뤄 살고 있다. 식구들이 많아 증손자를 포함하면 손주들이 25명 정도가 될 만큼 식구들이 많다. 명절이 되면 서로에게 용돈을 주고 받는게 쏠쏠하다.

    「“찍는 게 남는 거여~”」 앨범 펼치기 →

  12. 1971년

    이완선순성농혐 조합장

    “헬기 타고 날아온 감사 서한문”

    “헬기 타고 날아온 감사 서한문”

    첫 번째 사진은 1971년 결혼식에서 아내에게 반지를 끼워줄 때 찍은 사진이다. 결혼식 상차림이나 주변 풍경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본다면 생소할수도 있을 것 같다. 이때만 해도 결혼할 때 양복보다는 한복을 입었다. 결혼 당시 맞춘 한복은 명주 바지와 저고리로 그 당시 명주한복은 최고급 한복이었다. 좋은 옷을 입고 결혼 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 지금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헬기 타고 날아온 감사 서한문”」 앨범 펼치기 →

  13. 1972년

    조완성전 당진서부새마을금고 이사

    "마을사람들이 열어준 결혼 축하식"

    "마을사람들이 열어준 결혼 축하식"

    첫 번째 사진은 1972년 음력 10월 24일 결혼식 할 때 찍은 사진이다. 결혼식은 현재 다니고 있는 전도그리스도교회에서 열었다. 아내와 나는 1971년 만났다. 1968년부터 1971년 4월까지 군복무를 한 나는 동기들과 대난지도로 놀러갔다가 아내를 만났다. 아내에게 반한 나는 대난지도감리교회 박용수 장로를 통해 아내를 향한 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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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1974년

    김옥현전 당진군의원

    “나를 두 번이나 구한 내 아내”

    “나를 두 번이나 구한 내 아내”

    두 번째 사진은 지난 1974년 결혼식 당시 사진이다. 한 살 차이였던 아내와 나의 결혼할 당시 나이는 24살, 23살이었다. 문봉리 소나무 아래에서 아내에게 결혼해달라고 ‘점잖게’ 제안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내가 받아들여줬다.(웃음) 결혼 후에도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당시의 맹세를 잘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럼에도 큰 다툼없이 지금까지 지내올 수 있게 해준 아내가 너무나 고맙다. 살아오면서 늘 ‘아내 말을 들으면 손해볼 일 없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만큼 나보다 더 현명하고 고마운 아내다.

    「“나를 두 번이나 구한 내 아내”」 앨범 펼치기 →

  15. 1974년

    편종만당진외국인교회 담임목사

    함께 미국 여행 하고 싶었는데…

    함께 미국 여행 하고 싶었는데…

    1974년 4월 5일 아내(故 백인숙)와 결혼식을 마치고 가족과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진하던 모습이다. 아내는 석문면 통정리 출신이다. 내 나이 27세에 만나 43년을 함께 살았다. 아내는 지난 2년 전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아내와 함께했던 시간이 꿈만 같다. 은퇴하고 아내와 미국 여행을 함께 가고 싶었는데 은퇴하기 8개월 전 아내는 나를 남겨 놓고 먼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아내와 함께한 꿈만 같았던 43년」 앨범 펼치기 →

  16. 1975년

    강운선당진시 읍내동

    “35년간의 당진 공무원 생활”

    “35년간의 당진 공무원 생활”

    첫 번째 사진은 결혼식 다음날 찍은 사진이다. 나의 왼쪽에 서 있는 분이 어머님이고 아내와 나 사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 계신다. 사진을 찍은 날이 1975년 11월23일인데 그날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 오면 잘 산다고 하는데 그래서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세 아이를 잘 키워 준 아내에게는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어버지를 3살 때 여의고 어머니와 조부모님이 나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다. 아버지 역할을 대신해 준 할아버지의 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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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1975년

    최경숙고대 슬항2리

    “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첫 번째 사진은 1975년도 남편(슬항2리 김장식 이장)과 약혼식을 올릴 때 사진이다. 함께 교회를 다니던 친구이자 육촌언니인 최경옥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얼굴 한 번 본적이 없다. 당시에는 도로 포장도 되지 않았던 시기였고 한 동네에 살면서도 지금처럼 쉽게 오고가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남녀가 자유롭게 교제하거나 친분을 쌓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앨범 펼치기 →

  18. 1975년

    한용우송악읍 반촌2리 이장

    지금과 다른 반촌2리의 옛 모습

    지금과 다른 반촌2리의 옛 모습

    두 번째 사진은 1975년 10월24일 결혼식 날 찍은 사진이다.

    결혼식은 아산시 인주면에 위치한 아내의 집에서 열렸다. 동갑인 아내와는 아산에서 만났다. 나는 아산 인주우체국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우체국장이 장인어른이었다. 우리는 2년 정도 연애한 뒤 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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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1976년

    김홍수정미면 수당리 부녀회장·정재능 이장 부부

    “물난리에서 건진 소중한 사진”

    “물난리에서 건진 소중한 사진”

    첫 번째 사진은 1976년 2월, 나와 남편이 약혼식을 할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나는 25살, 남편은 29살이었다. 사진을 보니 ‘나도 이렇게 고왔을 때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혼식을 했다. 우리는 약혼 사진을 찍은지 1년 만에 결혼했다. 남편의 첫인상이 썩 좋진 않았지만 같이 살아보니 성실하고 착해 여태까지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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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1977년

    "커플룩 맞춰 입던 멋쟁이 부부"

    "커플룩 맞춰 입던 멋쟁이 부부"

    두 번째 사진은 아내(전정식)와 결혼 할 때 사진이다. 당시에는 연애결혼보다 중매결혼이 많았다. 우리부부 역시 부인의 작은 어머니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나는 아내의 예쁜 외모에 반했고, 만남을 이어가면서 나를 배려하는 모습과 가정적인 모습에 두 번 반했다. 이후 달콤하고 즐거운 연애생활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1977년 결혼해 지금까지 서로 의지하며 잘 살고 있다.

    「"커플룩 맞춰 입던 멋쟁이 부부"」 앨범 펼치기 →

  21. 1977년

    백종국정미면 대조리 새마을지도자

    "연애편지 몰래 읽던 군 시절"

    "연애편지 몰래 읽던 군 시절"

    두 번째 사진은 1977년 4월 19일 약혼할 때 찍은 사진이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사진이다. 난 막내고모의 소개로 대산읍 운산리 출신의 아내(김순일)를 만나 한달만에 결혼했다. 당시 나는 28살, 아내는 25살이었다. 4월 1일에 아내를 처음 만났고, 4월 19일에 약혼을, 4월 28일에 결혼을 했다. 모두 같은 해다.  4월은 내게 특별한 달이다. 큰 아들도 4월에 얻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다.

    나는 지금도 결혼기념일이나 아내 생일을 꼭 챙긴다. 기념일에는 무조건 내가 밥을 산다. 기념일 챙기는 재미로 살고 있다.

    「"연애편지 몰래 읽던 군 시절"」 앨범 펼치기 →

  22. 1978년

    김순섭전 석문노인대학장

    아내와의 결혼

    아내와의 결혼

    이 사진은 1978년 면천감리교회에서 아내(조순형)와 결혼할 당시 찍은 사진이다. 그 때 내 나이가 23세였다. 결혼하고 우리 부부는 2남3녀를 낳아 키웠다. 자식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손주들까지 낳으니 다복한 집안이 됐다. 두번째 사진은 내 생일 때 가족들이 집에 모여 케이크를 불던 모습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국민훈장」 앨범 펼치기 →

  23. 1978년

    박인규전 우강면개발위원장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아내를 처음 봤을 때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걸 아신 아버지는 당장 부대로 쫒아와 호되게 혼을 내셨다. 한 번 두 번 만나다 보니 볼수록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978년 12월 5일, 제대한 뒤 6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요즘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전통적인 결혼방식은 남편이 아내의 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고 아내를 시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혼례 당일 너무 일찍 서둘렀던 것인지, 순성면 광천리에 위치한 처가에 아침 8시에 도착하는 바람에 아내가 신부화장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러 혼례를 치렀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내를 어찌나 마음에 들어했던지, 아내를 데리고 집에 오니 저 사진처럼 상다리가 부러지게 상을 차려놓으셨다. 한 이웃은 뜨거운 방에서 상에 올릴 잣을 괴다 화상을 입었다고 지금까지 이야기 하실 정도다.

    <네 번째 추억사진>

    「어느 집 추녀 밑에서 선 본 사연」 앨범 펼치기 →

  24. 1979년

    김종범나루문학회 회장

    “40년 만에 졸업한 초등학교”

    “40년 만에 졸업한 초등학교”

    첫 번째 사진은 1979년도 당진예식장에서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다. 아내(강복순)는 고대면 출신으로 우리는 1년의 교제기간을 가진 후 결혼했다. 이때 당시 내 나이가 28살이었으니 늦은 장가를 간 셈이다. 지금은 아내와 동갑내기 모임에도 가입해 제주도 등지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 오남매를 낳고 키우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40년 만에 졸업한 초등학교”」 앨범 펼치기 →

  25. 1979년

    김근화SK텔레콤 당진중앙대리점 대표

    “봉사를 기쁨으로 여겨”

    “봉사를 기쁨으로 여겨”

    첫 번째 사진은 1979년도 결혼식 때다. 당시 당진사진사협회 회원들이 결혼을 축하하며 건배하는 모습이다. 나는 당진 토박이고 아내는 서울 여자였다. 아내가 마음에 들어 결혼까지 이어졌다. 결혼식 날은 내 일생일대의 가장 기쁜 날이다.

    「“봉사를 기쁨으로 여겨”」 앨범 펼치기 →

  26. 1979년

    <여섯 번째 추억사진-약혼·결혼>

    <여섯 번째 추억사진-약혼·결혼>

    1979년 2월 처갓집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예물을 교환하는데 동네 사람들과 꼬마들이 와서 구경하는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결혼은 같은 해 11월에 했다. 당시 26살, 23살이었던 우리는 당진에 두 번째로 생긴 행복예식장에서 결혼했다.

    남편(최장옥)은 보덕사 옆 어선통제소에서 방위로 군복무를 했었는데, 교회에 다니던 청년을 통해 소개받았다. 첫 만남을 약속했던 날, 청자다방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갑자기 가기 싫어져서 바람맞혔다. 이후 미안한 마음에 편지를 썼고, 그렇게 펜팔을 이어가다가 정이 들었다.

    우리집 이웃에 살던 남편의 당숙모가 내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당시 결혼할 생각은 없었는데 시댁 어른이 남편에게 “복희 선 본단다, 잘못하면 다른 놈에게 빼앗긴다”고 하며 다리를 놔주셨다. 남편과 자전거 타고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남편 집에서 키우던 복숭아와 자두를 서리하다가 논두렁에 굴러떨어지기도 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최장옥 석문우체국장 / 원복희 전 석문면부녀회장」 앨범 펼치기 →

  27. 1981년

    강신용당진시OB축구회 회장

    “여보, 영원히 함께하자”

    “여보, 영원히 함께하자”

    첫 번째 사진은 1981년에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청양 출신인 나와 아내는 한 마을의 이웃이었다. 나의 큰 형과 아내의 큰 오빠가 친구였고, 우연한 기회로 서로를 알게 됐다. 홀아버지를 모시는 효녀이기도 했다. 그렇게 만난 아내와 나는 1년 정도 연애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이 사진은 ‘영원히 사랑하자’는 의미로 청양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여보, 영원히 함께하자”」 앨범 펼치기 →

  28. 1981년

    하완철우리식품 대표

    "아들 대야에 앉혀 놓고 일해"

    "아들 대야에 앉혀 놓고 일해"

    두 번째 사진은 1981년도 나와 내 아내의 결혼식 때의 모습이다. 당시 당진엔 신혼예식장 밖에 없었다. 이 때 예식이 끝나면 동네잔치를 2~3일 동안 벌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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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1981년

    편영범고대면농촌지도자회장

    "한껏 멋 내던 젊은 시절"

    "한껏 멋 내던 젊은 시절"

    네 번째 사진은 아내와의 결혼사진이다. 조일사진관 옆 2층에 문화예식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식을 올렸다. 당시 나는 27세, 아내는 22세였다. 나는 고대면 항곡리 출신의 아내와 만나 3년 간 연애를 한 후 결혼에 골인했다. 나는 19살의 아내를 면사무소에서 처음 만났다. 아내는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나는 군 제대 후 주민등록증을 갱신하기 위해 면사무소를 찾았다. 그 때 만난 것이 인연이 돼 3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쌓았고 1981년 1월 1일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백년가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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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1982년

    “가족과 함께한 시간들”

    “가족과 함께한 시간들”

    첫 번째 사진은 남편(차은영)과의 약혼식 자리다. 1982년에 친정에서 진행된 약혼식에 상다리가 부러질 듯 많은 음식들이 보인다. 당시 귀했던 병에 든 퀸사이다와 환타도 눈에 띈다. 우리는 곧 결혼식을 올렸고 행복예식장에서 식을 치렀다. 우리가 결혼한 후 행복예식장은 없어졌고 그 맞은편에 수협이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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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1982년

    김진선전 시곡초등학교 교장

    "사진이 없던 시절, 화가가 그린 그림"

    "사진이 없던 시절, 화가가 그린 그림"

    네 번재 사진은 1982년에 아내(전 당진시여성단체협의회 이해자 회장)와 함께 집 앞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신식으로 새롭게 집을 지어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집터는 그대로지만 우리와 자식들의 손 때가 묻은 당시의 집 구석구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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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1984년

    동창에서 부부가 되기까지

    동창에서 부부가 되기까지

    두 번째 사진은 1984년 9월 22일 결혼식 날 찍은 사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성가대도 하고, 주일학교 교사도 했던 금성교회에서 결혼식을 진행해 더욱 의미 있었다. 남편(김도현)과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남편이 고등학생 때부터 나를 좋아해 쫓아 다녔다. 자상하면서 우리 가족들에게 잘하는 남편이 좋아, 24세, 조금은 이른 나이에 식을 올렸다.

    동생들은 내 남편을 보고 “도현오빠가 아닌 형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와 남편은 학창시절  반말을 사용했지만, 결혼을 하고나서는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다. 시부모님과 함께 지냈기에 말을 높여서 하는 것이 습관이 됐고, 존댓말을 함으로써 서로 존중한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남편은 내게 ‘망구’라는 애칭을 쓴다. 자신의 할망구(?)라는 의미란다. 금슬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우리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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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1985년

    오성학필 색소폰클럽 원장

    "못말리는 색소폰 사랑"

    "못말리는 색소폰 사랑"

    첫 번째 사진은 1985년 신혼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2박3일 다녀왔다. 당시에는 신랑은 양복, 신부는 한복을 입고 신혼여행을 갔다. 사진을 다시 보니 촌스럽기도 하다.

    나와 아내는 동갑내기로, 26살에 만났다. 숫기가 없었던 나는 아내를 중매로 만났다. 만난 지 1년 정도 돼서 결혼에 골인했다. 아내는 내가 키가 크고 술을 마시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단다. 나는 아내의 절약정신에 반했다. 신혼 때는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는 형편이 어려웠다. 부모님 사업이 잘 안 됐을 때라 그동안 모아둔 전 재산인 600만 원을 반으로 쪼개 집 전세를 얻고 신혼 준비를 했다. 어렵게 시작한 신혼이라 그 때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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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1985년

    이임영전 당진군유도회장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마지막 사진은 아내와 함께 1985년 공주 무령왕릉에서 찍은 사진으로 알고 있다.

    1985년에 결혼한 우리는 당시 깨가 쏟아지던 신혼 시절이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인근 지역에 아내와 함께 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려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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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1986년

    “시끌벅적 활기찬 우리 가족”

    “시끌벅적 활기찬 우리 가족”

    두 번째 사진은 1986년도 아내(김상돈)와의 약혼식 날의 모습이다. 아산에 처가를 두고 있는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뒤에 아내와 결혼 했다. 벌써 아내와 결혼한 지도 28년이 되어간다. 시부모를 모시고 여섯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불평불만 없이 가족들을 위해 언제나 환하게 웃어준 사랑스러운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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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1989년

    박성민서해윈드오케스트라 단장

    어르신들과 함께한 ‘신혼여행’

    어르신들과 함께한 ‘신혼여행’

    첫 번째 사진은 1989년 신혼여행 때 홍콩 점보식당에서 찍은 기념 사진이다. 이때 홍콩, 대만, 싱가포르, 태국까지 총 4개국을 열흘 간 다녀왔다. 우리가 결혼할 당시 ‘신혼여행’이 없었다.

    특히 해외여행을 가려면 절차가 복잡했기에 다들 해외여행을 가지 않았고, 만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효도관광으로 해외여행을 가시곤 했다. 우리가 신혼여행을 갔을 때에도 나와 아내만 빼고 60~70대 어르신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르신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드리곤 했다. 이에 아내는 “어르신들의 짐은 들어드리면서 정작 우리 부부의 짐은 들지 않았다”고 푸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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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1990년

    고미경송악읍

    "비행기 놓친 신혼여행 첫날밤"

    "비행기 놓친 신혼여행 첫날밤"

    첫 번째 사진은 1990년도에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출발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김포공항 근처 여인숙에서 잠을 청했다. 이날 비행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버스 한 대에 다 들어갈 만큼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와 같은 신혼부부였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남편은 혼자 그 많은 커플들의 가이드를 자처했다. 그 때 친해진 부부들과도 한동안 연락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 그날 이야기로만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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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1990년

    조규자순성면 새마을부녀회장

    [조규자 순성면 새마을부녀회장] 하키선수 시절을 그리며

    [조규자 순성면 새마을부녀회장] 하키선수 시절을 그리며

    두 번째 사진은 남편(유문규, 49)과 1990년 약혼식을 할 때에요. 결혼식은 4년 뒤인 1994년 올렸는데 함께 산 건 1991년부터네요. 남편과는 직장 동료의 소개로 만났는데 7남매 중 막내였던 남편의 부모님 덕분에 저는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남편과 함께 지냈어요. 어느 날 시부모님께 인사를 갔었는데 제 손을 잡고 놓아주시지 않는 거에요. 연로하신 분들이 막내아들이 얼른 자리를 잡기를 원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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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1990년

    문화예술과 함께한 나의 삶

    문화예술과 함께한 나의 삶

    두 번째 사진은 아내(한미경 당진소년소녀합창단지휘자)와 1990년 군대 제대를 하고 복학해(CAVA:중앙보컬뮤직아카데미)동아리를 만들어 오페라 ‘휘가로의 결혼’을 공연한 후 기념촬영한 사진이다. 졸업 후 5년간의 연애 끝에 1995년 3월에 우린 결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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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1991년

    “잘 자라준 6남매 보면 뿌듯”

    “잘 자라준 6남매 보면 뿌듯”

    첫 번째 사진은 아내(임영옥)와 연애하면서 강원도로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여행을 함께 간 친구 커플이 찍어줬다. 이 커플도 결혼해 아주 잘 살고 있다.

    1991년 서울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청주 출신의 아내를 만났다. 나는 아내의 순수하고 맑은 모습에 반했다. 2살 연하인 아내와 1년 동안 연애하다 결혼에 성공했고, 신혼생활 1년 만에 내 고향 당진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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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1991년

    최성복서정리 이장

    "설탕물 마시며 자란 어린 시절"

    "설탕물 마시며 자란 어린 시절"

    세 번째 사진은 아내(이명화)와 찍은 웨딩 사진이다. 이때는 중매결혼이 많았는데 나는 친구의 소개를 통해 아내를 만났고 결혼에 골인했다. 첫 번째 만남 이후 서로 연락하지 않고 지내다가 우연히 버스에서 다시 만나 남산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마음이 너무 잘 맞았고 그 다음날 박카스 한박스를 사들고 장인어른댁으로 곧장 향했다. 그렇게 우리는 1991년 20살의 나이에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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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1991년

    북경에서 만난 태극기에 가슴 벅차

    북경에서 만난 태극기에 가슴 벅차

    네 번째 사진은 1991년도에 아내와 태국으로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예전에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서 당시 찍은 사진이 꽤 있을 텐데, 사진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당시 아내와 즐거웠던 추억이 담긴 사진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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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1992년

    정한영충남동물병원 원장

    “소중했던 학창 시절”

    “소중했던 학창 시절”

    첫 번째 사진은 대학 후배로 만난 아내(최윤경)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RCY 적십자 서클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 갔다. 이후 우리는 1992년도에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의 배경은 충남대학교 내 백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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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1992년

    “잘 자라준 6남매 보면 뿌듯”

    “잘 자라준 6남매 보면 뿌듯”

    두 번째 사진은 결혼식 날 찍은 사진이다. 1992년 12월 우리는 당진 현대예식장에서 결혼했다. 우리는 6남매(수아·명현·수민·명선·수희·수인)를 낳아 길렀다. 첫째 수아는 26살이고, 막내 수인이는 11살이다. 형제들 간 서로 의지하면서 힘이 돼주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요즘 세상에 6남매를 낳는 집이 흔치 않은데, 아이들을 보면 6남매를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부모로서 더 잘해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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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1992년

    김기정송악읍 기지시리 이장

    6.25 참전용사 자랑스러운 ‘아버지’

    6.25 참전용사 자랑스러운 ‘아버지’

    네 번째 사진은 1992년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다. 천지연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세심한 아내가 커플티까지 준비해왔더라. 사진 속 포즈는 우리를 가이드 해주던 택시기사님이 요청하신 포즈다.

    아내는 내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친구가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결혼해 골인했다. 결혼 성사의 가장 큰 공인이다. 결혼 전 오다가다 몇 번 봤는데, 날씬하고 예뻤다. 아내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다. 기지시감리교회 출신 선후배 모임인 밀알회 활동을 하면서 아내와 정이 들었다. 결혼할 때 아내에게 고생은 하나도 안시키겠다고 했는데, 고생을 많이 시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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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1993년

    박상념새마을지도자 당진2동 협의회장

    “돈으로 살 수 없는 나눔의 기쁨”

    “돈으로 살 수 없는 나눔의 기쁨”

    첫 번째 사진은  1993년도에 제주도 용두암에서 찍은 사진이다. 친구의 신혼여행이었는데 친한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함께 갔다. 이때 우리 부부는 결혼 10년차였는데 친구는 이제 막 결혼한 신혼이었다. 사진을 보니 이때의 젊음이 가장 행복했었다. 젊은 내 모습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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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1996년

    최병부당진시행정동우회 감사

    "잊지 못할 ‘당진’의 추억"

    "잊지 못할 ‘당진’의 추억"

    세 번째 사진은 1996년 3월 아내와 제주도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29세의 나이에 4살 연하인 아내 김정희를 만났다. 1980년 크리스마스에 아내와 약혼을 했고, 1년 동안 연애한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대전 대흥동 출신의 아내를 만나 데이트는 항상 대전에서 했다. 아내와의 첫 데이트는 대전 만수원(수목원)에서 했다. 이날 나는 아내의 걸음걸이를 보려고 일부러 만수원을 장소로 택했다. 이날 나는 요조숙녀처럼 예쁘게 걷던 아내에게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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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1996년

    손범승호서중학교 교사

    “호서중 원빈쌤…아이들과 함께 해 행복합니다”

    “호서중 원빈쌤…아이들과 함께 해 행복합니다”

    나의 아내 박은숙 씨다. 이 사진은 1996년도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서 찍은 것이다. 우리는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대학교 4학년 때 당진정보고로 한 달 간 교생 실습을 나갔다. 체육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때 만났던 것은 절대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한 뒤 당진에 자리 잡고 8년 후, 아내를 다시 만났다. 그때 서산의 한 장애인복지시설로 봉사를 갔을 때 우연히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다. 아내와 난 인연이었나 싶다. 우리 부부는 여행을 많이 다닌다. 이제 아내 박은숙 씨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자 늘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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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1997년

    구본환면천감리교회 목사

    “충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

    “충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

    세 번째 사진은 내가 광주제일교회에서 목회하던 시절 찍은 사진이다. 1997년 쯤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교회 입구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뒤편에 꽃들이 많이 보이는데 아내가 꽃을 가꾸는 것을 좋아해 지금도 집안에 꽃이 가득하다.

    「“충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 앨범 펼치기 →

  50. 1997년

    최명수전국이통장연합회 당진시지회장

    "누나들 틈에서‘금이야 옥이야’"

    "누나들 틈에서‘금이야 옥이야’"

    세 번째 사진은 1997년 11월 6일 결혼 할 때의 모습이다. 내 나이 21세, 아내 나이 20세였다. 우리는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서양식 결혼문화도 있었지만 우리는 전통혼례로 진행했다. 아내는 어느 누구보다 편하고 내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엄마 같은 아내다. 자식들도 잘 키워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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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1998년

    김동헌당진군체육회 부회장

    “아버지 이어 이장 활동 뿌듯”

    “아버지 이어 이장 활동 뿌듯”

    두번째 사진은 1998년도 아내(김사영)를 처음 만나 찍은 약혼 사진이다. 당시의 아내와 나는 양가 부모님에 이끌려 선을 봤다. 서로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부모님들은 결혼을 결정하셨고 무작정 찍고 보라는 사진이 결국에는 약혼사진이 되었다. 그해 겨울 아내와 나는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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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1998년

    “남은 인생, 감사하며 살게요”

    “남은 인생, 감사하며 살게요”

    네 번째 사진은 1998년 당진 시내에 위치한 웨딩의전당 가원에서 큰 아들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다. 웨딩의전당 가원 대표의 배려로 우리 부부도 전통혼례복을 입고 기념촬영을 했다. 약 30년 전 당진성당에서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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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1999년

    김평자·김기원송악읍 기지시리 부부

    인생 풍파, 아내 때문에 견뎌

    인생 풍파, 아내 때문에 견뎌

    첫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의 결혼사진이다.

    내 나이 26세, 아내 나이 22세에 결혼했다. 우린 서산에 위치한 평화예식장에서 식을 올렸다. 이때만 해도 다들 한복을 입었지만, 우리는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요즘의 웨딩드레스와는 디자인이 너무 다르다. 이때는 웨딩드레스에 어떤 무늬도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서산시 인지면 출신의 아내를 만났다. 우리는 3년 간 연애한 뒤 결혼했다. 당시 비포장 도로였기에 기지시리에서 서산까지 가려면 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중간에서 만나거나, 서산에서 만남을 이어갔다.

    함께 산지 50년이 되어가는 동안 풍파도 있었다. 나는 1999년에 대장암에 걸렸고, 2006년 암이 폐로 전이됐다. 두 번의 수술을 통해 현재는 완치됐지만 당시 너무 힘들어 항암치료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운동하면서 견디니 암을 이겨낼 수 있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체중이 17kg이나 줄었다. 암 투병하는 동안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아내는 어떻게든 나를 살려보겠다며 내 수발을 들었고,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 때문에 아내도 척추협착증으로 허리수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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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2003년

    한익상당진2동 용연2통 노인회장

    동갑내기 아내 이정애

    동갑내기 아내 이정애

    이 사진은 2003년 고희를 맞아 가족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다.

    고희연은 정미면 천의장터에 위치한 당진축협 관광농원에서 열렸다. 이곳은 당진축협이 운영한 연회장이었으며, 현재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나와 동갑이라 고희연을 함께 한 아내 이정애는 고대면 대촌리 출신이다. 우리는 20살에 만났다. 부모님끼리 날을 정해 아내를 우리집으로 데려왔다. 아내가 대촌리에서 가마를 타고 우리집에 처음 온 날을 잊지 못한다.

    나와 아내는 4남1녀를 낳고 키웠다. 하지만 둘째아들이 5년 전 백혈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인물도, 머리도 좋았던 자식이다. 아들이 먼저 떠나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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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신혼여행

    김영숙당진읍새마을부녀회장

    작은 딸과 나는 국화빵 - 김영숙(당진읍새마을부녀회장)

    작은 딸과 나는 국화빵 - 김영숙(당진읍새마을부녀회장)

    마지막 사진은 김인순, 양춘자, 손영자, 이명자씨 등 당진읍 새마을부녀회 가족들과 함께 전북 진안에 있는 마이산에 올랐을 때 찍은 사진이다. 신비하게 솟은 두 개의 바위산과 돌탑들은 아직도 생생한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가끔 현실보다 더 생생한 꿈을 꾸게 되는데 이러한 꿈들은 잊혀지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 사진 속에 있는 기억들도 마찬가지다. 신혼여행, 나를 꼭 닮은 딸, 가족같은 사람들과 함께 한 신비한 마이산 여행, 모두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살아서 나와 함께하고 있다.

    김영숙 / 당진읍 북문2리, 당진읍새마을부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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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2003년 이야기

    김창환송악면 기지시리

    해수욕장에서 생긴 일 - 김창환(송악면 기지시리)

    해수욕장에서 생긴 일 - 김창환(송악면 기지시리)

    세 번째 사진은 20년 전, 진안에 있는 계곡으로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다. 모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놀러 간 계곡에서 봉변을 당했다. 엉덩이에 붙은 껌을 떼느라 한동안 내 엉덩이는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김 창 환 / 송악면 기지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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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2004년

    임종국전 충청남도당진교육장

    "당진 학생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다"

    "당진 학생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다"

    다섯 번째 사진은 2004년 6월 백두산에서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나는 교직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여행을 자주 갔다. 하지만 내 아내는 여행을 갈 시간이 주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퇴임하고 나서 그동안 내가 다녀온 여행지를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국내를 비롯해 유럽, 동남아시아 등 여행을 다녔다. 그 중에서도 난 백두산에 다녀온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날이 좋아도 천지를 보기 어렵다는데 마침 우리가 올라간 날은 하늘과 군청색의 천지연이 또렷했다. 행운이었다. 아내도 무척 좋아했다.

    >> 임종국 전 충청남도당진교육장은

    순성면 양유리 출신·면천초, 면천중, 공주사대부고, 공주교대 졸업 ·1961년부터 당진 내 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충청남도당진교육청 전 교육장  (2001년 9월~2003년 8월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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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2005년 이야기

    이봉휘가나종합기계 대표

    “부모님이 사오신 오엽송 한그루”

    “부모님이 사오신 오엽송 한그루”

    마지막 사진은 가족이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이미 변했다. 특히 쑤욱 커버린 아이들과 사진을 통해 보는 어린시절 아이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함께 할 때면 그야말로 ‘세월이 지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봉휘(51, 대호지면 송전리)씨는 농기계 판매 및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인 김영자씨(46)와 1남2녀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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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2008년

    이승호원 커뮤니케이션 대표

    “아내를 위한 황토집을 짓다”

    “아내를 위한 황토집을 짓다”

    네 번째 사진은 아내와 함께 2008년 발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결혼 전에 아내와 14가지 약속을 했다. 그 중 하나가 아내와 마흔 전에 10개국을 목표로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나는 그 약속을 지켜 아내와 괌, 일본, 중국, 필리핀, 베트남, 태국, 발리, 캄보디아 등을 다녀왔다. 10개국 약속은 지켰지만 이후에도 2년에 한 번 정도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다. 지금도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한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결혼 6년차 때 다녀온 필리핀 여행이다. 가이드 몰래 원주민들과 어울리기도 했고 경비행기를 타고 필리핀 경치를 구경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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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2010년 이야기

    “결혼식 다음날 내린 다복스런 눈”

    “결혼식 다음날 내린 다복스런 눈”

    첫 번째 사진은 아내(유옥분, 56)와 결혼한 후 다음날 다복하게 내린 눈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순성 갈산리가 본가인 나는 아들 둘을 낳고 지금은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다. 결혼기념일이 지난 6일이었는데 어느새 30년이 넘었다.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기념삼아 외식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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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2010년 이야기

    김옥현전 당진군의원

    “나를 두 번이나 구한 내 아내”

    “나를 두 번이나 구한 내 아내”

    첫 번째 사진은 내 결혼식날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김효식, 홍승수, 나, 김동수, 조성헌이다. 모두 면천 친구들이었는데 함을 지고 내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너무 오래된 사진인데 사진첩을 뒤지다보니 나온 소중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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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27세

    남기호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 유족회장 전 당진군의원

    “결혼사진 대신인 소중한 사진”

    “결혼사진 대신인 소중한 사진”

    두 번째 사진은 아내(한등자, 74)와 함께 찍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진이다. 뒤에 보이는 것이 장정리 마을회관 앞의 보리밭인데 이제는 보리를 더 이상 심지 않는다. 정미면 사관리에 살던 아내와 27세에 결혼했는데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 결혼사진이 없다. 처가도, 나도 사진 찍는 것을 준비하지 못했었다. 참 아쉽다. 그래서 아내와 찍은 이 사진이 무척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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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서른살이던 당시

    최규범대호지면 개발위원장

    "미호고등국민학교 시절 법주사에서…"

    "미호고등국민학교 시절 법주사에서…"

    세 번째 사진은 아내(김교춘, 56)와 함께 15년만에 다시 방문한 속리산 법주사에서 찍은 사진이다. 서른살이던 당시 5살 아래인 아내와 결혼해 방문했었다. 중학교 재학시 다녀온 후로 처음 가보는 것이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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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23살 때

    박선영송악읍 고대어촌계장

    “23살의 나와 아내의 모습”

    “23살의 나와 아내의 모습”

    첫 번째 사진은 아내(윤란식, 61)와 23살 때 만나 찍은 사진이다. 벌써 40여년이 흘렀다. 아내와 이 사진을 찍고 얼마 후에 결혼했으니 약혼사진이라고 봐도 되겠다. 내도리 토박이인 우리는 흔히 말하는 ‘눈이 맞아’ 연애 후 결혼했다. 아내와는 몇 년간 연애를 했는데 이젠 아내도 나도 환갑을 넘어선 나이가 되었다. 아내와 나의 젊었을 적 모습이 흑백사진으로나마 남아있으니 옛 생각도 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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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40여 년 전

    이길조면천농협 조합장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첫 번째 사진은 40여 년 전 약혼사진이다. 면천 송학리가 고향이었던 나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중 부모님 소개로 면천 자개리에 사는 아내를 만났다. 아들만 셋을 낳아 키우면서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날 만나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면 늘 고맙고 미안하다. 참, 이 사진은 면천에 있던 사진관에서 찍었는데 옛날 그 사진관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러고 보니 면천도 참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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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결혼식 날

    신창재당진우리신협 이사장

    “날 구제해 준 고마운 아내와의 결혼식”

    “날 구제해 준 고마운 아내와의 결혼식”

    첫 번째 사진은 나의 결혼식날 사진이다. 요즘에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전통혼례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진은 전통혼례의식 중 하나인 초례를 하던 날 풍경이다. 보통 ‘혼례를 치른다’는 것이 이 초례 과정을 말하는데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만나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것이다. 내 얼굴에 묻은 검댕은 이웃들이 잘 살라는 의미로 묻힌 것 같은데 이를 피하려고 비닐봉지를 뒤집어썼었다(두번째 사진). 그런데도 다 피하지 못하고 결국 새신랑인 내 얼굴이 거뭇거뭇해졌다. 그래도 마냥 좋았던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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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2011년 이야기

    이성태제13기 민주평통당진군협의회 회장

    “인생을 증명하는 삶의 흔적”

    “인생을 증명하는 삶의 흔적”

    두 번째 사진은 70년대 초 공군사관학교 성당에서 천주교신자 후배 생도들과 함께 혼배미사 후 촬영한 것이다.

    청년기에 내 인생을 공군과 인연을 맺게 한 명예의전당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현장에서 4년간 교제한 아내(민명희)와 약혼링 세레모니를 한 후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혼배미사를 성스럽게 올렸다.

    힘든 여건에서 두 아들을 바람직하게 키우고 내 위상을 잘 챙겨준 아내에게 늘 고마움을 느낀다. 바로 아래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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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2011년 이야기

    이병훈전 우강면이장단협의회장

    [이병훈 전 우강면이장단협의회장] 마을을 위해 봉사했던 지난날의 시간들

    [이병훈 전 우강면이장단협의회장] 마을을 위해 봉사했던 지난날의 시간들

    두 번째 사진은 아내(정해숙)와 함께 찍은 사진 중 잘 나온 것을 골라 보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아내는 최근 문인화를 배우러 다니고 있는데 무척 재밌어 하는 것 같다. 아내와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들 모두 몸 건강히 지금까지 함께해준 것이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새마을지도자 4년, 공포리장 10년을 지냈고 지난 2년간은 이장단협의회장도 맡았는데 마을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보다 더 열심히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올해 초 이장과 이장단협의회장을 사임했다. 그동안 마을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내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왔다. 마을이장이 무슨 권력을 가진 자리는 아니다. 마을을 위해 서로 조금씩 봉사를 한다면 마을이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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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2011년 이야기

    정덕순송악로타리클럽 회장

    [정덕순 송악로타리클럽 회장] 4-H와 송악로타리클럽 활동

    [정덕순 송악로타리클럽 회장] 4-H와 송악로타리클럽 활동

    두 번째 사진은 아내(홍연휘)와 함께 등산을 하면서 찍은 사진. 부부 동반으로 간 것인데 이런 사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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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2011년 이야기

    신창재당진우리신협 이사장

    “날 구제해 준 고마운 아내와의 결혼식”

    “날 구제해 준 고마운 아내와의 결혼식”

    세 번째 사진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아내가 웃고 있는 이유는 나의 키 때문이다.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내 작은 키 때문에 돌을 가져다 놓고 올라가 찍었는데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웃고 있다. 아내에게 첫눈에 반한 나는 아내를 보려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프로포즈를 했는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시집오는 것을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러던 중에 박종범 목사님께서 나를 만나보고 ‘두말도 없이 결혼하라’고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 주신 덕분에 결혼에 성공했다. 없이 살았어도 행복했던 이유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위로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남자를 구제해 준 아내에게 늘 감사하다. 우리 옆에 있는 여자 아이가 바로 사랑하는 딸 효정(33)이다. 우리 부부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딸 옆에 서있는 남자아이는 효정이의 동네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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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2011년 이야기

    최대성석문농협 조합장

    “농협과 함께했던 젊은 날”

    “농협과 함께했던 젊은 날”

    두 번째 사진은 약혼식을 기념해 찍은 사진이다. 약혼식 몇 달 전부터 혼담이 오가다 아내(안재향, 61)를 처음 만난 날 약혼을 하고 약혼식을 기념해 사진을 찍었다. 조일사진관에서 찍었는데 그 당시 사진관에는 사진에서처럼 배경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2살 아래의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는 나를 대신해 농사일과 집안 대소사를 챙기느라 고생이 많았다. 지게를 지는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가정을 이끈 아내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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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29살

    강홍준자연보호 당진군협의회장

    “자연보호가 내 삶의 큰 기둥이었다”

    “자연보호가 내 삶의 큰 기둥이었다”

    세 번째 사진은 아내와의 결혼식 사진이다. 나와 6살 차이인 아내와는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당시에는 어른들이 원하는대로 결혼해 아이들 낳고 잘 살았다. 내가 29살에 결혼했으니 남들보다는 좀 늦은 결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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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2011년 이야기

    김봉규당진고구마연구회장

    "만수예식장서 결혼하던 32년 전 그날"

    "만수예식장서 결혼하던 32년 전 그날"

    세 번째 사진은 나의 결혼식 사진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친척들과 함께 부소산에 놀러갔다가 친구들과 함께 놀러온 아내를 처음 만났다.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는 핑계로 아내 주소를 알아냈다. 그 후로 몇 차례 편지를 써서 마음을 얻었고 3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만수예식장(현 행복예식장)에서 당시 합덕교회 임병성 목사님 주례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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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2011년 이야기

    문정숙당진군생활체육협의회 여성위원장

    “테니스 코트 누비던 학창 시절”

    “테니스 코트 누비던 학창 시절”

    네 번째 사진은 사랑하는 남편(김완수)과 함께 설악산 권금성에서 찍은 사진이다. 동네와 교회에서 잉꼬부부로 소문난 우리는 주말이면 항상 함께 등산을 다닌다. 매주 등산을 함께 하다보니 전국의 산이라는 산은 안다녀본 산이 없을 정도다.

    봉사활동이다 테니스 강의다 남편보다 바쁘다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를 위해 남편은 매니저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침이면 나도 챙기지 못하는 일정을 챙겨 준다. 항상 힘이 되어 주는 남편이 감사하고 고맙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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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20년 전

    김병빈공익재단법인 지속가능상생재단 사무국장

    다섯번째 사진은

    다섯번째 사진은

    다섯번째 사진은 20년전 서울의 한 성당에서 올린 결혼사진이다. 당시 대부분은 웨딩드레스에 연미복을 입고 결혼하던 것과는 반대로 우리는 전통 한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2년만에 큰 딸 보담이가 태어났고 결혼 후 출판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는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당진으로 내려올 결심을 하게 됐다. 학생 운동하는 나로 인해 맘고생 하신 부모님에게 무언가 보답하고 싶었다.

    「“내 삶의 토양이 된 신앙생활”」 앨범 펼치기 →

  76. 연애시절

    남준우당진산업가스 대표

    “오토바이의 매력에 빠져 있던 젊은 시절”

    “오토바이의 매력에 빠져 있던 젊은 시절”

    첫 번째 사진은 아내(윤정현)와 연애시절 용인으로 데이트를 가서 찍은 사진이다. 젊은 시절 오토바이를 즐겨 탔던 나는 아내와 함께 교외로 자주 데이트를 다녔다. 당시는 지금처럼 잘 닦여진 포장도로가 아닌 비포장길이 많았다. 울퉁불퉁하고 먼지 날리는 비포장길을 달리면서 하루에도 두 번씩 서울을 왕복할 정도로 오토바이에 푹 빠져 있던 때였다.

    「“오토바이의 매력에 빠져 있던 젊은 시절”」 앨범 펼치기 →

  77. 2012년 이야기

    오영환순성면개발위원회 위원장

    “고된 농사일 끝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고된 농사일 끝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첫번째 사진은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던 사진이다. 당시 예산군 신양에 위치한 처가에서 찍은 사진으로 정통혼례를 마친 후 찍은 사진이다. 처가에서 혼례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본가로 돌아와 예식잔치를 벌였다.

    지금의 예식문화와 비교한다면 조촐하게 치러진 결혼식이지만 우리는 주변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고된 농사일 끝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앨범 펼치기 →

  78. 결혼을 약속하고

    김동관석문면 장고항리 유미자 부부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첫 번째 사진은 용무치항에서 만난 아내(유미자)와 결혼을 약속하고 찍은 사진이다. 용무치항 부근 해안부대에서 복역 중이던 나는 매일 아침이면 마을에 있는 우물물을 길어 날랐다. 당시에는 수도설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아 부대 내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마을 우물물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 우물은 우연스럽게도 처가댁 내에 위치해 있어 종종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진행 중이던 월남전에 파병될 병사로 차출됐고 아내와 용무치를 뒤로한 채 월남으로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친 나는 고국에 돌아와 멍텅구리배(실치배) 운영을 하기로 마음먹고 평소 우물물을 길어 나르던 용무치항 아내의 집을 다시 찾았다. 당시에는 아내보다 장모님과 친분을 더 쌓아두고 있던 터라 처가에 머물며 밥도 얻어먹고 멍텅구리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도비도에서 가두리 우럭양식장과 재덕수산낚시타운을 함께 운영 중에 있다.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앨범 펼치기 →

  79. 2012년 이야기

    박미자고대면엄마순찰대 대장

    “자식 향한 부모 마음은 누구나 같다”

    “자식 향한 부모 마음은 누구나 같다”

    첫 번재 사진은 남편(김장환)과 결혼식을 마치고 찍은 사진이다. 당진이 고향이었던 나는 결혼 이후 남편을 따라 천안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초 남편이 예상치 못했던 교통사고를 겪어 요양차 친정인 당진에 내려와 지금까지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 일년 정도 요양을 마치고 우리 부부는 텃밭을 일궈 인삼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지금은 인삼농사에 이어  서산인삼농협 직매점인 천해원 당진점을  원당동에 개업해 운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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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20세의 꽃다운 나이

    황순희새마을운동 당진시지회 우강면 부녀회 회장

    “가족 같은 우강 창리 주민들”

    “가족 같은 우강 창리 주민들”

    첫 번째 사진은 남편(이응학)과 결혼식에 앞서 약혼을 맺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남편의 고향인 우강면에 정착해 반평생을 넘게 살아온 나는 지금에서야 당시의 젊은 나이를 조금 더 즐겼어야 했다는 아쉬운 생각을 갖는다. 지금 같은 세상에 20대 초반에 중매를 통해 결혼을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결혼은 다시 생각해 볼 이야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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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결혼 후 11주년

    윤기순사 대한노인회 합덕읍분회 분회장

    “45년간 보람됐던 교직생활”

    “45년간 보람됐던 교직생활”

    첫 번째 사진은 아내와 결혼 후 11주년을 기념해 찍은 사진이다. 1959년에 결혼한 우리는 합덕초등학교 동문으로 서로 첫 부임한 우강초등학교에서 만났다. 당시 교내에서 교사들 간의 연예가 인정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1년 후 나는 신평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야만 했다. 합덕이 고향이었던 나는 당시 신평까지 이어진 비포장길을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교육에 전념했다. 그 후에도 많은 학교로 발령을 받았지만 아내와 집이 있는 합덕 및 우강 지역으로는 쉽게 발령 받지 못해 많은 고생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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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2012년 이야기

    김은하신평면 상오리 전 부녀회장

    “기억은 흐릿하지만 추억은 생생해”

    “기억은 흐릿하지만 추억은 생생해”

    첫 번째 사진은 결혼식을 마치고 친정인 서천에 처음 방문해 두 오빠와 두 여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는 장항선을 타고 몇 시간을 달려야 고향인 서천을 방문할 수 있었다. 지금은 KTX다 고속도로다 이동수단이 편리해져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친정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큰마음을 먹고 시간을 내야만 했던 시기였다.

    중매로 남편(김수현, 사진 두 번째 줄 좌측)을 만나 결혼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중매로 만났지만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며 연애를 시작했고 지금의 가정을 이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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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2012년 이야기

    김병수고대농협조합장

    “우리 아내가 제일 예뻐”

    “우리 아내가 제일 예뻐”

    첫 번째 사진은 결혼사진이다. 아내(윤주숙)와는 중매를 통해 만났다. 첫 만남에서 아내가  너무 예뻐 “나한테 시집와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취미가 무엇이냐, 학교는 어디 다녔냐 등의 일반적인 질문이 아닌 지금까지 살아왔던 이야기, 앞으로 삶의 계획 등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나와 결혼해주면 친구도 자유롭게 만나고, 친정도 자주 갈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며 ‘결혼 공약’을 내세웠다. 나의 진실성이 아내에게 호감을 줘 결혼하게 됐다. 그 당시 나는 32살, 아내는 31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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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젊은 시절

    서용석합덕읍 신촌리

    “소소한 추억처럼 전통문화 잊혀질지 몰라”

    “소소한 추억처럼 전통문화 잊혀질지 몰라”

    두 번째 사진은 나의 결혼식 사진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젊은 시절의 내게 시집와 지금까지 고생하며 살아준 아내(김영숙)에게 감사한다. 함께 천주교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우리는 다른 부부들 못지 않게 행복하게 살아 가고 있지만 아무리 많은 사랑을 전해도 부족하기만 한 세상에 하나뿐인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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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2012년 이야기

    남준우당진산업가스 대표

    “오토바이의 매력에 빠져 있던 젊은 시절”

    “오토바이의 매력에 빠져 있던 젊은 시절”

    두 번째 사진은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가기 전 안성 대림동산에서 친구들과 잠시 자리를 함께할 때 찍은 사진이다. 우리 부부의 인생에서 결혼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출발점이었고 주변의 지인들은 더 없이 우리를 축복해 줬다.

    사진 속의 아내는 27세라는 꽃 보다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지금도 내게는 친구 같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더 없는 아름다움으로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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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결혼 생활 10주년

    김병수고대농협조합장

    “우리 아내가 제일 예뻐”

    “우리 아내가 제일 예뻐”

    두 번째 사진은 결혼 생활 10주년 되던 해에 제주도에서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당시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가는 추세였고 우리도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었다. 어렸을 때는 먹고 살기 바빴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일하기 바빠 여행을 잘 다니지 못 했다. 이 사진이 우리 부부의 유일한 여행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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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결혼 전

    김종성 전 고대면농업경영인회 회장영주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절

    김종성 전 고대면농업경영인회 회장영주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절

    두 번째 사진은 결혼 전, 아내와 임진각에서 데이트하며 찍은 사진이다. 누나가 파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아내가 누나와 언니, 동생으로 지내는 사이였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고 그때부터 아내를 알고 지내다 계속된 구애 끝에 결혼하게 됐다.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물품들은 지금 우리에게 없다. 이민을 가기위해 영주권이 필요했는데 난 배우자초청으로 영주권을 얻으려했다. 영사관에서는 아내와 내가 결혼한 사이임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 전화통화 내역, 편지 등 모든 것을 내라고 했고 돌려받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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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결혼 초

    이광휘당진시재향군인회 신평면 회장

    “부모사랑은 말이나 글로 표현 안돼”

    “부모사랑은 말이나 글로 표현 안돼”

    세 번째 사진은 아내(안상예)와 함께 결혼 초 집 근처에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다. 요즘 시대 부부들은 서로 애정표현도 자주해 익숙하다지만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는 보여주는 법도 몰랐던 때다. 나를 만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생만 시키고 사랑하는 마음을 제대로 한 번 표현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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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2012년 이야기

    홍승란읍내동 옹기촌 대표

    “5년간 비밀스러운 연애 끝에 결혼”

    “5년간 비밀스러운 연애 끝에 결혼”

    세 번째 사진은 남편(조승현)의 대학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이 사진을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사진이 발각되어 집안 식구들에게 남편의 존재를 들켜버렸다. 집안이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이었고 남편을 우리집에 소개해야만 했다. 그렇게 5년간 비밀스러운 연애를 끝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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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2012년 이야기

    송진섭아날도바시니 당진점 대표

    “학교에서 제식훈련, 지금은 상상 못해”

    “학교에서 제식훈련, 지금은 상상 못해”

    세 번째 사진은 약혼식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일가 친척들과 친구들 앞에서 결혼을 앞두고 좋은 덕담도 듣고 농담도 들었다.

    요즘에는 약혼식이라 하면 결혼식처럼 거창한 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집안에서 조촐하게 치러지는 행사 중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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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2012년 이야기

    신현국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당진3동 위원장

    “평생을 함께한 시곡동 선·후배들”

    “평생을 함께한 시곡동 선·후배들”

    세 번재 사진은 아내(이정숙)와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는 약혼식과 결혼식은 물론이고 집에서 치러지는 축하식도 진행됐다. 동네 청년들이 기념품을 갖고 우리집을 방문해 결혼을 축하해 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우리 부부의 목에 걸린 꽃다발도 마을 처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꽃가루도 뿌려주며 성대히 맞이해 준 기억이다.

    축하식이 끝나고 마을 청년들의 짖궂은 권유에 노래를 부르며 장기자랑도 해야만 했다.

    지금은 농촌마을에서 젊은 사람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지만 당시에는 마을에 처녀·총각들이 많았다. 마을에서 만나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고 인근마을에서 선을봐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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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서른이 되던 해

    군에서 보낸 지난 청춘을 꺼내어보다

    군에서 보낸 지난 청춘을 꺼내어보다

    세 번째 사진이다. 서른이 되던 해에 운명처럼 한 여자를 만났다. 순수하고 명랑한 여자였다. 중매에서 결혼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첫 만남에 아내는 정복차림의 내게 물었다. “그 ‘007가방’ 안에 뭘 넣고 다녀요?” “뭐긴, 세면도구 들었지.” 그렇게 만나 무등산에서 데이트하고 바로 결혼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주도 신혼여행 때 입었던 사진 속 노란 커플티, 지금 다시 봐도 ‘센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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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2012년 이야기

    김윤각당진종합광고 대표

    “친구들과의 우정 가득한 사진첩”

    “친구들과의 우정 가득한 사진첩”

    네 번째 사진은 사랑하는 아내(안영자)와 신혼여행지인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는 결혼식을 뒤늦게 치렀다. 없는 살림에 무작정 신혼 방부터 차려 어렵게 살아왔다. 수원에서 작은 구두매장을 운영하기도 했고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게임 사격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고생 끝에 고향인 당진에 내려와 정착하기 시작했고 “더 늦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자”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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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2013년 이야기

    “나보다 이쁜 남편 모습 아직도 생생”

    “나보다 이쁜 남편 모습 아직도 생생”

    첫 번째 사진은 남편(김순기)과 결혼을 15일 앞두고 첫 만남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의 결혼은 양 가 어른들에 의해 정해진 상태였고 서로에 대해 아는 바도 없이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 남편의 나이 24세, 내 나이가 22세였다.

    당시 군인이었던 남편과 첫 만남 자리에서 자장면으로 식사를 하는데 한 젓가락도 쉽게 먹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여자가 남부끄럽게”라는 이유로 자장면이 입가에 묻지 않게 조심히 식사를 해야 했고 입도 크게 벌리지도 못했다. 이런 속사정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남편은 직접 자장면도 비벼주고 자신의 것도 내게 덜어줬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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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결혼식 때

    오명숙읍내동 민속떡집 대표

    “남편과 함께한 행복한 나날”

    “남편과 함께한 행복한 나날”

    첫 번째 사진은 남편과의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다.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남편은 항상 성실한 사람이다. 나도 그런 남편의 모습에 끌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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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결혼식

    “나보다 이쁜 남편 모습 아직도 생생”

    “나보다 이쁜 남편 모습 아직도 생생”

    두 번째 사진은 남편과의 두 번째 만남인 결혼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는 당진에 예식장이 없어 집에서 초례를 지냈다. 석문면 교로리가 고향인 나는 남편의 본가인 시곡동으로 시집와 한평생을 같이 했다.

    초례를 지내기 전 꽃단장을 마치고 방안에서 식이 진행되기를 기다리는데 문틈 사이로 남편이 두루마기를 입고 들어오는 모습이 얼마나 이뻤는지 모른다. 남편은 결혼해 살며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든 나와 함께 했다. 비록 17년 전에 나를 두고 하늘로 먼저 떠나버렸지만 지금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마움과 사랑, 그리움에 가슴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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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군대 전역 후

    근검절약 몸에 밴 지난 세월

    근검절약 몸에 밴 지난 세월

    두 번째 사진은 아내(윤희)와 결혼해 공주 마곡사를 관광하며 찍은 사진이다. 군대 전역 후 곧바로 결혼한 뒤 아버지(인무환)가 돌아가셨다. 나는 1982년도 35세의 젊은 나이에 이장 일을 보기 시작했다.

    이장 일을 보면서 특작물에 눈을 돌렸다. 담배, 꽈리고추 등을 지으며 수입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면천의 특산물이 꽈리고추일 정도로 우리집 농사 역시 점차 활기를 찾아갔다. 어려운 농사일이지만 어려웠던 시기를 뒤돌아보고 마음을 다잡으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 일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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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연애시절

    진흙탕 등굣길도 기쁘던 시절

    진흙탕 등굣길도 기쁘던 시절

    두 번째 사진은 아내(김은선)와 연애시절 찍은 사진이다. 처음 집안 어른들에게 평택이 고향인 아내를 소개 하고 한진 바닷가에 들러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진 앞바다를 넘어 평택 화력발전소의 모습이 보인다. 20대 때  자동차 정비전공을 살려 경기도 평택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기에 아내를 만났다. 함께 산을 다니며 취미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호감을 사랑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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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신혼 때

    염윤상당진시임업후계자영농종합법인 총괄이사

    “행복과 영광의 발자취”

    “행복과 영광의 발자취”

    두 번째 사진은 신혼 때 아내와 셋방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여행도 많이 다녔다. 당시 포니Ⅰ이란 차종이 처음 나왔는데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팔고 돈을 보태 그 차를 샀다. 아내와 전국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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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결혼식 날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한 지난 날”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한 지난 날”

    두 번째 사진은 결혼식 날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결혼식 장소는 면천농협이었는데 당시엔 농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아내는 서산에서 직장동료로 처음 만났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결같이 시부모님을 잘 모시는 아내에게 언제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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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2013년 이야기

    조재웅시곡동 더부러 주 대표

    "오징어 가면 쓰고 함 팔던 시절"

    "오징어 가면 쓰고 함 팔던 시절"

    두 번째 사진은 내 결혼식 날 친구가 함을 팔아주던 사진이다. 요새는 결혼식 때 함을 들이는 문화가 줄어 들어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친구의 결혼식 때는 내가 오징어 가면을 쓰고 함을 팔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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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결혼식 당일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세 번째 사진은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장민희)와 결혼식 당일 찍은 사진이다.

    결혼식을 제대로 올리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컷다. 이렇게 저렇게 결혼식을 미루다 보니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많은 지인들이 찾아와 결혼식을 축하해줘 행복한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긴 시간동안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은 오래도록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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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젊은 시절

    “헌신해 준 아내여 사랑하오”

    “헌신해 준 아내여 사랑하오”

    세 번째 사진은 아내(김재숙)와 함께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젊은 시절부터 고생을 많이 시켰던 터라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가진 것 없었던 내게 시집와 시부모를 모시며 고생도 많았다. 워낙 시부모에게 잘했기에 효부로 소문이나 당진시 효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식된 도리로 시부모를 모시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아내는 끝내 효부상을 거절했고 내가 대신 시상식에 참석해 효부상을 수상했던 기억이다.

    이런 착한 마음을 갖고 일평생 나와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준 아내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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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2013년 이야기

    한득선채운동

    “당진전통시장에서 보낸 50년”

    “당진전통시장에서 보낸 50년”

    네 번째 사진은 남편과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옛날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남편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둘이서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올해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지났지만 가끔씩 추억이 떠오를 때면 남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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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결혼식 때

    신태운고대면 개발위원회 위원장

    "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네번째 사진은 결혼식 때 제일예식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1층에 위치한 제일다방은 아직도 남아있다.

    외숙모의 중매로 순성 중방리가 고향인 아내(송채춘)를 만나 결혼했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은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 동기고 어머니와 장모님은 동창이어서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결혼했다. 아마 중매에 어떤 내막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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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신혼여행 시절

    22년만 다시 찾은 신혼여행지

    22년만 다시 찾은 신혼여행지

    첫 번째 사진들은 88년도에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과 22년 후에 같은 곳에서 다시 찍은 사진이다. 신혼여행 시절 묵었던 호텔에 숙박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같은 방에서 묵지는 못했다. 20년 후에는 남편과 딸들 그리고 손주들과 함께 다시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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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2014년 이야기

    지운기안섬풍어당굿 예능보유자

    늦은 나이에 입은 턱시도와 드레스

    늦은 나이에 입은 턱시도와 드레스

    첫 번째 사진은 아내(구병회)와 함께 제주도로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우리부부는 마을에서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뒷집에서 싸우는 소리 한 번 들리지 않는다며 신기해 할 정도다. 아내는 23살에 시집와 24살에 첫째를 낳았다. 지금보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것이지만 그때는 늦은 시집이었다. 시간이 훌쩍지나 벌써 첫째가 50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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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2014년 이야기

    이해성기지초등학교 운영위원장

    “18년 만에 올린 웨딩마치”

    “18년 만에 올린 웨딩마치”

    첫 번째 사진은 지난 4월 5일 우리 부부가 결혼한지 18년 만에 결혼식을 올린 사진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제대로 결혼식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송악농협에서 이벤트 결혼식을 올렸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아내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나도 결혼식을 위해 4kg 정도 감량했다. 결혼식에서 아내가 직접 편지를 써서 읽었는데 눈시울을 붉히던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가 겪었던 세월들이 벌써 18년이 지났다는 게 조금은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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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약혼식 때

    "강아지 안내로 구경한 선유도”

    "강아지 안내로 구경한 선유도”

    첫 번째 사진은 나와 남편의 약혼식 때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남편을 21살에 만나 연애를 하다 결혼했다. 그게 벌써 30~40년 전의 일이니 시간이 참 빠르다. 결혼 후 열 두 식구의 밥을 차리기 위해 아궁이 앞에 내내 앉아 있다가 한복치마가 다 우그러진 적이 있다. 속상한 마음에 혼자 울고 있었는데 남편이 와서 직접 치마를 덧대줬다. 살면서 남편과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이제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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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결혼할 때

    “전신주에 올라 걸었던 현수막”

    “전신주에 올라 걸었던 현수막”

    첫 번째 사진은 약 35년 전 나와 아내(지옥순)가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공고의 인기가 높아서 나도 인천 부천공고로 진학했다. 그때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지금도 예쁘지만 그때는 더 예뻤다. 알콩달콩 연애 끝에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생수 한 사발 떠놓고 식을 간소하게 진행해 이 사진을 보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의 꿈은 하얀 면사포를 써보는 것이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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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결혼식 때

    지춘우송악읍 중흥리 부녀회장

    “변함 없는 우리 부부의 사랑”

    “변함 없는 우리 부부의 사랑”

    첫 번째 사진은 결혼식 때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우리 모두 앳된 모습에 ‘이런 시절도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당진에는 유림예식장과 현대예식장에서 많은 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렸다. 설악웨딩타운이나 웨딩의전당 가원 등에서 멋지게 결혼식을 올리는 지금과 비교하면 촌스럽겠지만 당시에는 남부럽지 않은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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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환갑잔치 때

    “삼봉에서 당진까지 걸어다녀”

    “삼봉에서 당진까지 걸어다녀”

    첫 번째 사진은 환갑잔치 때 찍은 사진이다. 당진으로 시집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80세의 할머니가 됐다.

    당진장에 나가려면 새벽 첫닭이 울 때 걸어 나가 볼일을 봐야했다. 돌아오면 이미 하늘은 어둑해졌다. 하지만 그땐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누군가 예전과 같이 생활하라고 한다면 사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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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결혼 후

    "커플룩 맞춰 입던 멋쟁이 부부"

    "커플룩 맞춰 입던 멋쟁이 부부"

    세 번째 사진은 결혼 후 아내와 여행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나와 아내는 둘다 빨간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다. 커플룩으로 차려 입은 우리 모습이 참 다정해 보인다. 지금은 커플룩을 입으라고 하면 못 입을 것 같다. 사진 속 장소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배경으로 봤을 때 산 속에 있는 사찰에 방문했던 걸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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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결혼할 때

    차청남상록수교회 원로목사

    “종교 간의 화합 이룬 자리”

    “종교 간의 화합 이룬 자리”

    세 번째 사진은 아내와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나는 교인들의 소개로 만났다. 나는 대호지면 적서리가 고향이고 아내는 석문면 삼화리가 고향이다.  나와 아내는 몇 년을 같이 살았는지 까마득할 정도로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금슬 좋아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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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 10년 전

    "강아지 안내로 구경한 선유도”

    "강아지 안내로 구경한 선유도”

    세 번째 사진은 10년 전, 아들 결혼식 때 남편과 함께 찍은 웨딩사진이다. 우리가 결혼할 땐 결혼식 개념도 명확치 않았고 웨딩드레스는 더더욱 흔치 않았다. 그런 우리에게 당시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웨딩사진을 찍자고 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엄하게 키웠는데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줘서 고맙다. 우리 막내아들은 며느리가 아이를 낳은 뒤 100일 동안 아내에게 직접 밥을 지어줄 정도로 자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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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결혼식 때

    최성복서정리 이장

    "설탕물 마시며 자란 어린 시절"

    "설탕물 마시며 자란 어린 시절"

    네 번째 사진은 내 결혼식때 친구들이 함을 팔고 있는 모습이다. 이때 친구들은 장가가는 나를 굉장히 부러워했다. 군입대를 하기도 전이니 지금으로 보면 굉장히 빨리 결혼을 한 셈이다. 부인은 부산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잠시 휴가를 받아 당진에 왔을 때 나를 만났다. 아마 이런 걸 보고 인연이라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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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 2014년 이야기

    한천희한국무용지도자협회 당진시지부 지부장

    "춤 출 때마다 생각나는 아버지"

    "춤 출 때마다 생각나는 아버지"

    네 번째 사진은 젊은시절 남편(홍기흥)과 연애할 때 찍은 사진이다. 연애시절 당시 모범공무원 산업 시찰하는 곳에 함께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남편은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전에는 문화와 관련된 부서에서 일했다. 문화관련 일을 하면서 열정 넘치던 남편의 모습이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남편은 지금 수도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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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2014년 이야기

    지운기안섬풍어당굿 예능보유자

    늦은 나이에 입은 턱시도와 드레스

    늦은 나이에 입은 턱시도와 드레스

    네 번째 사진은 아내와 내가 설악웨딩타운에서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리마인드 결혼식을 한 사진이다. 당시 KBS에서 촬영한다고 해서 몇몇 사람들이 합동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가 젊었을 땐 전통혼례를 치르는 게 정석이었다. 뒤늦게나마 아내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 줄 기회가 생겨 좋았다.

    박초롱 기자 long9109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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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2015년 이야기

    서정길송악읍 가교1리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두 번째 사진은 서울 남산공원에서 아내와 데이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나는 서울 개봉동에 위치한 한일공업이라는 면도날 제조회사에서 일했다. 아내와 간만에 단둘이 데이트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이후 우리 가족은 8년 만에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나는 14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 보냈다. 농사일도 마을 어르신들에게 배웠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후로 난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을 자식들에게 보내주고 있다. 내가 보낸 것들을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 자식들을 보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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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결혼식 날

    이승호원 커뮤니케이션 대표

    “아내를 위한 황토집을 짓다”

    “아내를 위한 황토집을 짓다”

    두 번째 사진은 결혼식 날 아내를 위해 준비한 예도 이벤트 사진이다. 뒤에 예도를 멋있게 들고 있는 군인들은 ROTC 후배들이다. 이날 결혼식을 진행하는데 ROTC 후배들의 도움이 컸다. 또한 결혼 이벤트로 기념부채를 제작해 하객들에게 나눠줬다. 기념부채에는 잘 살겠다는 문구를 넣었다. 이날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받은 아내는 나에게 감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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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 내 나이 28세, 아내 나이 22세 때

    양재노고대노인대학 총학생회장

    ‘총기사건’ 아찔한 군 생활의 추억

    ‘총기사건’ 아찔한 군 생활의 추억

    세 번째 사진은 결혼식 날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안양 출신의 나와 내 아내 이진숙은 동네 아주머니의 중매로 만났다. 내 나이 28세, 아내 나이 22세 때 결혼했다. 우리가 결혼할 때에는 신혼여행이라는 것이 없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당일치기로 안양에 있는 공원을 도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 부부는 영등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친구들과 안양에 위치한 호수공원을 돌았다. 이 사진은 친구들이 기념으로 찍어줬다. 이날 공원을 돌고 집에 가는 길에 택시가 웅덩이에 빠져 택시에 타고 있던 친구들이 모두 내려 택시를 밀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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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올해 콩나물국밥집 진해 용원점을 오픈하고 올라오면서

    김동기전주명품 콩나물 국밥 대표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네 번째 사진은 올해 콩나물국밥집 진해 용원점을 오픈하고 올라오면서 경남 함양군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둘만의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 때 1박2일로 여행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앨범 펼치기 →

  123. 결혼한 지 20년 만에

    채규흥해나루시민학교 중등부 교사

    "학창시절을 함께한 홍선이"

    "학창시절을 함께한 홍선이"

    네 번째 사진은 결혼한 지 20년 만에 아내와 단 둘이서 3박4일 제주도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그동안 아내와는 제대로 된 여행을 가지 못했다. 신혼여행으로 온양온천에 잠시 다녀왔던 것이 전부였을 정도다. 아내 덕분에 우리 부부는 지난 40년 동안 사소한 싸움 없이, 그리고 누구 하나 아픈 일 없이 무탈하게 잘 살아왔다.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에 지금은 일주일에 3~4번은 아내와 저녁식사 후 근처 공원을 산책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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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2015년 이야기

    한만우LG컴퓨터/21세기 컴퓨터 대표

    “부모님 설득해준 은사님 못 잊어”

    “부모님 설득해준 은사님 못 잊어”

    다섯 번째 사진은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다. 커플룩을 입고 다녔는데 그 당시에는이런게 부끄러웠다. 그래도 아내가 직접 준비한 거라 좋다며 흔쾌히 입었다. 내 나이 36세 때 장가를 갔는데 결혼이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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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2016년 이야기

    김석우삼환운수 주 대표

    “포기하지 않으면 꿈 이룰 수 있어”

    “포기하지 않으면 꿈 이룰 수 있어”

    첫 번째 사진은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 쬐는 여름날 찍은 사진이다. 이 날은 아내를 부모님께 소개시켜 드리던 날이었는데, 아내를 집에 데려가니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셨다. 하지만 장인, 장모님께서는 결혼을 반대하셨다. 그래서 나는 “겉모습만 보지 말고 속을 헤아려 봐 달라”며 “아내를 금 방석에는 앉히지는 못해도 삼시세끼 굶지 않게 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15일 후 결혼 승낙을 받고 곧바로 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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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2016년 이야기

    이웅배전도그리스도의교회 장로

    이정례 전도그리스도의교회 권사 부부 "5년 연애 끝에 결혼 골인"

    이정례 전도그리스도의교회 권사 부부 "5년 연애 끝에 결혼 골인"

    첫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 이정례 권사의 약혼 사진이다. 2살 터울의 우리는 5년간 애틋한 연애 끝에 약혼했다. 이후 결혼까지 성사됐는데 그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 출신의 아내를  한 눈에 반해 쫓아다녔다. 석문면 교로1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우리 마을로 시집을 오게 된 처형의 집에서 아내를 처음 보게 됐다. 예쁜 아내의 모습에 “아! 이 여자구나”했다. 처형에게 아내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주변의 도움으로 아내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아내의 이름도 이정숙으로 전해 받아 한동안은 잘못된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때 아내는 엄한 부모님 때문에 몰래 편지를 쓰고, 조카를 통해 편지를 부치기도 했다. 당시 아내에게 받은 편지와 내가 쓴 편지를 모아 ‘흘러간 서신들’이라는 모음집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가끔 읽으면 당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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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 결혼했을 때

    강규희읍내동 여성의류 전문점 입는 기쁨 대표

    “해처럼 별처럼 살자”

    “해처럼 별처럼 살자”

    첫 번째 사진은 결혼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남편을 20세 때 만났다. 일명 대학교 CC(캠퍼스 커플, 같은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맺어진 커플)였다. 행정학을 공부했던 남편과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던 나는 우연한 계기로 만났고, 이후 6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하자마자 큰딸인 지유를 가졌고, 이어 태욱이, 소율이를 낳았다. 우리 아이들은 13살, 10살, 8살로 당진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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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20대 중반 무렵

    김연곤 고대면 성산1리 노인회장·아내 강영자 씨

    김연곤 고대면 성산1리 노인회장·아내 강영자 씨

    첫 번째 사진은 20대 중반 무렵에 찍은 사진이다. 이때만 해도 머리카락 숱도 많고 주름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살도 많이 빠지고 주름도 많아졌다. 내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사진은 우리 집 거실 벽에 걸어 놓은 가족사진 액자에 살짝 걸쳐 놓았다.  손주며느리가 이 사진을 보고 “할아버지, 너무 잘생기셨어요”라고 말하더라. 실제로도 젊은 시절에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는데, 손주며느리에게 이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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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2016년 이야기

    이인자송악읍적십자봉사회 회장

    도움 받고 봉사 결심

    도움 받고 봉사 결심

    첫 번째 사진은 예식이 끝나고 시댁에서 폐백식을 하면서 찍힌 사진이다.

    나는 시집 오자마자 시부모님을 모셨다. 6남매 중 셋째 며느리로 결혼생활을 했는데, 당시에는 남편의 두 동생 내외도 함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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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2016년 이야기

    류재일석문농협 전무

    "한때는 석문의 달리기 선수!"

    "한때는 석문의 달리기 선수!"

    두 번째 사진은 중국 만리장성에서 아내(최월봉)와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는 우연한 인연으로 만났다. 나는 석문농협에서 설악산으로 야유회 가던 때였고, 아내는 친구들과 놀러가던 때였다. 아내는 예산 사람인데도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게 돼 지금까지 부부의 연을 맺고 있다. 우리는 2년 이상 연애했다. 하지만 아내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 연애하면서 서너 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장인어른이 우리 집을 찾아와 아버지와 함께 결혼을 추진했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서로 강제 결혼이라며 농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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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2016년 이야기

    "딸 같은 둘째 아들 종희"

    "딸 같은 둘째 아들 종희"

    두 번째 사진은 21년 전 아내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나는 1년 연애한 뒤 결혼에 골인했다. 아내를 처음 본 곳은 서천의 한 식당이다. 처갓집이 식당을 운영했는데 그 곳에서 부모님 일을 돕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반해, 눈을 떼지 못했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아내가 보고 싶어 하루에 3~4번씩 찾아가곤 했다.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었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하지만 처갓집에 일이 있을 때마다 가서 도와드리고, 자주 찾아봬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마음을 돌렸다. 사실 아내는 10살 연하다.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세대차이가 전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지금은 다정하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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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2016년 이야기

    조완성전 당진서부새마을금고 이사

    "마을사람들이 열어준 결혼 축하식"

    "마을사람들이 열어준 결혼 축하식"

    두 번째 사진은 결혼식이 끝나고, 마을 청년들이 축하식을 열어줬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 시기만 해도 지금처럼 신혼여행은 없던 때다. 축하식은 우리 집에서 열렸고 전기가 없었을 때라 호야불(아래쪽이 평평하고 위쪽은 둥그런 석유등불)을 켜 놓고 식을 진행했다.

    사진을 보면 지역 동생이 축하선물을 증정하고 있고, 아내와 나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손수 제작한 색종이로 접은 꽃 목걸이를 걸고 있다. 축하식은 마을사람들의 잔치였다. 현재는 사라져가는 문화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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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결혼사진

    구현회당진1동 읍내7통 노인회장

    "빛바랜 흑백사진 속 추억"

    "빛바랜 흑백사진 속 추억"

    두 번째 사진은 아내와 찍은 결혼사진이다. 내 나이 27살, 아내 나이 23살에 결혼했다. 우린 서로 중매로 만났다. 아내에 대한 첫 인상은 순박한 여자였다. 지금도 그렇다. 서산 출신의 아내는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내의 집안에선 교사인 나를 마음에 들어하셨다. 우리는 무사천리로 결혼했다. 나는 가정이 생겼으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올해로 결혼한 지 56년 째다.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착실하게 지금껏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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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 내 나이 26세, 아내 나이 24세

    안명수우강면 송산1리 노인회 총무

    살벌했던 월남 전쟁의 기억

    살벌했던 월남 전쟁의 기억

    두 번째 사진은 합덕에 있는 행복예식장에서 결혼식 날 찍은 기념사진이다.

    내 나이 26세, 아내 나이 24세였다. 난 송악읍 기지시리 출신의 아내를 중매로 만났다. 아내의 참한 모습에 첫눈에 반했다. 결혼해서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나는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내가 가장이었다. 아버지 역할을 했던 나와 같이 아내는 어머니의 역할을 도맡았다. 4명의 동생들을 대학을 보냈고, 동생들이 교단에 설 수 있도록 아내가 뒷바라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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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결혼 전

    이유호고대면 당진포2리 이장

    “오토바이 타고 삽교천 달리던 시절”

    “오토바이 타고 삽교천 달리던 시절”

    두 번째 사진은 신랑 친구들이 결혼 전에 납폐함(혼수함)을 갖고 예비신부의 집을 방문했던 전통혼례 관습의 모습이다.

    현재는 전통혼례의 관습이 사라지고 서구의 결혼식이 보편화됐지만 당시에만 해도 납폐함 관습은 동네의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이날 내 친구들은 “함 사시오!”를 외치며 아내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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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2016년 이야기

    주영남전 고대면 장항1리 이장

    의지를 불태우며 삭발

    의지를 불태우며 삭발

    세 번째 사진은 신혼여행을 갔다가 처갓집에 방문할 때 찍힌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온양온천에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합덕읍 성동에 위치한 처갓집으로 향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성당이 합덕성당으로 기억한다.

    나는 25세의 나이에 동갑인 아내를 만났다. 처형의 중매로 만난 아내는 합덕 성동 출신으로, 현재 50년을 나와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결혼할 때 아내의 집안에서는 아내를 도시로 시집을 보낼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인천에 머물렀던 나를 보고 장인어른이 도시에서 생활할 것이라는 생각에 시집을 보냈다. 하지만 난 당진으로 귀농했고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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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2016년 이야기

    이유호고대면 당진포2리 이장

    “오토바이 타고 삽교천 달리던 시절”

    “오토바이 타고 삽교천 달리던 시절”

    세 번째 사진은 결혼 축하식 때 찍은 사진이다. 우리 때는 결혼식 후 축하식이 있었다. 지금으로 보면 피로연과 비슷한 행사다. 축하식은 주로 집에서 이뤄졌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친구들이 결혼 축하 선물로 풍경화를 선물해 주곤 했다. 찾아보면 그 때 받은 풍경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짓궂은 친구들은 첫날밤을 잘 보내라며 속옷을 선물하기도 했다.

    나와 아내는 결혼식을 전통혼례로 했다. 아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 했지만 전통혼례로 식을 올리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연지곤지를 찍고 전통혼례로 혼사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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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약혼했을 때

    강근묵고대면 당진포 2리

    고참이 서리한 꿀맛 사과

    고참이 서리한 꿀맛 사과

    네 번째 사진은 약혼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1975년에 군대 제대를 하고, 1977년에 중매로 만난 고대면 항곡리 출신 아내와 결혼했다. 아직도 아내의 가족들을 만난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맞선은 다방과 빵집에서 주로 보곤 했는데, 장인과 처남이 아내와 함께 나왔왔다. 장인과 처남의 키가 컸는데, 내눈엔 마치 전봇대 같았다. 그 자리에서 장인어른은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시집보내면 딸이 고생할 것 같다나. 그래서 나는 결혼시켜주지 않으실까봐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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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2016년 이야기

    편영범고대면농촌지도자회장

    "한껏 멋 내던 젊은 시절"

    "한껏 멋 내던 젊은 시절"

    다섯 번째 사진은 결혼 후 신혼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결혼하고 1년 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당시 다른 부부들은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갔으나, 우리는 1년 동안 여행자금을 모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사진은 용두암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지금도 아내와 함께 여행을 자주가곤 한다.

    >>편영범 고대면농업인단체협의회장은

    ·1954년 고대면 슬항1리 출생

    ·고대초·호서중 졸업

    ·전 고대면 슬항1리 이장

    「"한껏 멋 내던 젊은 시절"」 앨범 펼치기 →

  140. 2017년 이야기

    김응태우강면 창리

    배움은 나의 즐거움

    배움은 나의 즐거움

    첫 번째 사진은 아내 곽호분과 경남 김해시에 위치한 김수로 왕릉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내의 고향은 아산시 선장면으로, 중매로 만나 군 제대 후 내 나이 26세에 결혼했다. 아내는 내가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편이라고 한다. 가끔은 밥도 해놓곤 한다. 손녀 소희가 전화해선 할머니를 많이 도와달라고 늘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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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19살 때

    장택순채운9통장

    모래사장 무대 삼아 연극

    모래사장 무대 삼아 연극

    두 번째 사진은 19살 때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정미면 모평리 출신의 아내는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됐다. 그 친구는 아내의 조카이기도 하다. 우리는 5년 연애 끝에 24살 나이에 결혼했다. 아내는 지금도, 옛날에도 참 좋은 사람이다. 가정에 충실하고 나와 자녀들에게 늘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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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2017년 이야기

    강신용당진시OB축구회 회장

    “여보, 영원히 함께하자”

    “여보, 영원히 함께하자”

    두 번째 사진은 대천해수욕장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아내는 나의 첫사랑이다. 나는 오로지 아내밖에 몰랐다. 수줍음이 많은 청년이라, 연애에 미숙했는데 형수님이 용기를 주셔서 아내와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아내는 가난한 나를 만나 고생을 많이 했다. 나는 조치원에서는 가구점 직원으로, 대전에서는 택시기사로, 당진서는 버스기사로 일했다. 또한 당진에서 동생과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대전에 있을 때만해도 가진 것이라고는 옷장과 이불장 2개가 전부였다. 그 당시 방 한 칸을 겨우 얻어 살았다. 상황이 점점 좋아지면서 지금까지 22번 이사를 했다. 되돌아보면 참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고생이 많았던 아내에게 고맙다고, 앞으로도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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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2017년 이야기

    한백흥대한노인회 당진3동 회장

    "건강하게 부지런히 살자!"

    "건강하게 부지런히 살자!"

    두 번째 사진은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아내 박숙준은 당진여고 출신으로, 평택에서 중매로 만났다. 나는 31살의 나이에 결혼해 딸 셋을 낳아 길렀다. 그리고 40세 때 아들을 낳았다. 나의 인생 좌우명은 ‘부지런히 살자’다. 지금까지 부지런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부지런히, 건강을 유지하며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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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 결혼 전

    장용희고구마연구회장

    ‘사과’가 맺어준 인연

    ‘사과’가 맺어준 인연

    두 번째 사진은 결혼 전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내가 스무살이었을 때 4살 연하인 아내 이순자를 만났다. 당시 나는 이용원을 운영했는데, 아내가 사과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더라.

    예쁜 아내의 모습에 반한 나는 사과 하나를 달라고 했고, 아내는 흔쾌히 사과를 내게 줬다. 이렇게 우리는 ‘사과’로 만났다. 알고 보니 그때 아내는 인천에서 일하고, 고향집을 오가는 길이었단다. 인천에서 일하던 아내는 당진에 자주 오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1년에 5번 정도 만나 데이트를 했다.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좋았고, 그렇게 5년 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다. 2년 간 아내를 만났는데 내가 경기도 양평으로 군 입대를 하게 됐다. 심지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그때 아내는 월남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내 마음대로 떠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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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약혼하고 나서

    최주묵고대면 슬항2리 전 이장

    보고싶은 은사님

    보고싶은 은사님

    두 번째 사진은 아내와 약혼하고 나서 찍은 사진이다. 석문면 통정리 출신의 아내는 마을 사람들에게 집안도 괜찮고 얼굴과 마음씨가 고운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나는 봄에 제대해서 중매를 통해 아내를 만나, 가을에 결혼했다.  나는 아내에게 첫 눈에 반했고 현재도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함없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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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 2017년 이야기

    최덕기송산면 매곡리

    “군 생활이 가장 그리워”

    “군 생활이 가장 그리워”

    두 번째 사진은 아내 손순옥과 찍은 사진이다. 아내는 고대면 대촌리 출신으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만나 약 3년 정도 연애하다 결혼했다. 아내는 나보다 10살이 어리다. 아내를 만났을 때는 이렇게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줄은 몰랐다. 총각 때 입버릇처럼 고대 아가씨를 만나야겠다고 했는데, 진짜로 고대 아가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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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2017년 이야기

    강근식김계익 부부

    “학생들 가르칠 때가 그리워”

    “학생들 가르칠 때가 그리워”

    세 번째 사진은 아내와 수덕사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중매로 만났으나 같은 교회에 다녔다. 면천감리교회에 다녔던 나는 교회 권사이던 장모에게 잘 보여, 아내를 소개받았다. 당시 아내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회사가 부도나 외가가 있는 당진을 찾았었다. 아내는 당시 잘생겼고 목소리가 좋았다며 나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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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22살 결혼할 때

    친구 많은 멋쟁이 소녀

    친구 많은 멋쟁이 소녀

    네 번째 사진은 22살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목장을 운영하는, 6살 연상의 남편(김성창)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경기도 연천군 출신으로 중매로 만났다. 당시 가을에 선보고, 두어 달 후에 바로 결혼했다. 남편이 착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서울 전릉동에 위치한 행운예식장에서 식을 올렸다. 이날 너무 떨려서 식을 어떻게 올렸는지 모르겠다. 여지껏 남편과 크게 다툰 적이 없다. 40여 년 넘게 같이 살면서 서로를 이해하다보니 싸울 일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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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내 나이 30세

    조주익대호지면 장정리 새마을지도자

    장발에 나팔바지 “멋 좀 부렸지~”

    장발에 나팔바지 “멋 좀 부렸지~”

    네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의 결혼 사진이다.

    내 나이 30세에 23세 서울 아가씨인 아내(양정애)와 결혼했다. 나는 장가를 늦게 간 편이다. 그때 대호지면에만 동갑친구 15명이 있었는데, 내가 친구들 장가를 다 보내고 마지막으로 갔다. 우리는 장모님 중매로 만났다. 부지런히 일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며 장모님이 딸을 소개해줬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 지 한 달 만에 식을 올렸다. 나는 아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고 했을 때 결혼을 결심했다. 아내 또한 20년 간 시어머니와 고부갈등 없이 잘 지냈다고 이야기 한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현재 큰 딸 이슬이는 태안에, 둘째 딸 보람이는 안산에 산다. 막내 아들 건형이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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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 결혼 25주년

    강병수당진사무기 신도리코 당진점 대표

    물난리 때문에 없어진 사진들

    물난리 때문에 없어진 사진들

    네 번째 사진은 결혼 25주년을 맞아 리마인드웨딩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결혼사진도 물난리 때 없어져, 2년 전 결혼 25주년을 기념하면서 두 아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했다. 난 용인 출신의 아내를 친구 소개로 만나 두 아들을 낳아 길렀다. 큰 아들은 미국에서 인턴생활을 하다, 현재는 잠깐 한국에 와있다. 올해 추석에는 큰 아들을 볼 겸 미국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막내 아들은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 강병수 대표는

    ·1957년 시곡리 출생

    ·송악초 졸업

    ·전 송악초 25대 총동문회장 역임

    ·당진로타리클럽 33대 회장 및 당진지역 대표 역임

    ·현 당진사무기 20여 년 운영

    ·현 당진1동주민자치위원회 총무기획분과 위원장

    ·현 당진이안 아파트 1동 동대표

    ·현 당진사무기 대표(읍내동 뚜레주르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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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25세에 결혼

    “가족들의 응원에 힘이 불끈”

    “가족들의 응원에 힘이 불끈”

    첫 번째 사진은 결혼식 날 찍은 사진이다. 20대 초반 지인의 중매로 남편과 만나게 됐다. 외가는 불교를 믿었지만 시가는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남편과 함께 고대면 장항리에 위치한 고산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마침 리모델링을 마치고 아름답게 재탄생한 고산감리교회 2층 예배당에서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25세에 결혼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남편이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줬기에 슬하에 아들 셋을 낳아 잘 살아왔다. 남편도 아들들도 자상한 편이라 늘 행복 속에 살고 있다. 다음 생에도 남편과 결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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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 2018년 이야기

    “평생 뒷바라지한 아내, 늘 고마워”

    “평생 뒷바라지한 아내, 늘 고마워”

    첫 번째 사진은 30~40대 때 찍은 사진이다.

    신평면 거산리 출신의 동갑내기 아내(이명원)와 결혼해 3남2녀를 낳아 길렀다. 22세 동짓달 스무날에 결혼하고 3개월 후에 바로 군대에 입대했다. 신혼인데 남편도 없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내조하느라 아내가 고생 많았다. 젊은 시절부터 집안일보다는 바깥일을 많이 한 나를 늘 이해해주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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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2018년 이야기

    김용대새마을지도자 합덕읍협의회장

    지현아, 동진아! 보고싶다!

    지현아, 동진아! 보고싶다!

    두 번째 사진은 아내(김미자)와 약혼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군대를 전역하기도 전에 아내와 약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한 달 후,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부모님이 합덕에서 그릇가게 ‘인성상회’를 17년 간 운영하셨다. 아내와 장모님이 그릇을 사러 부모님 가게에 들렸다가, 어머니가 아내를 보고 반해 사돈맺자고 하셨단다. 그래서 나보다 한 살 어린 아내와 식을 올리게 됐고, 1남1녀를 낳아 기르며 32년 간 함께하고 있다. 아내와 나는 상신마트를 운영하면서 식사도 교대로 하고, 여행도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미안하다. 앞으로 남은 생은 아내와 여행을 다니며 즐겁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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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 내 나이 28살, 아내 나이 23살

    안광모우강면 송산1리 아래말경로당 회장

    한궁으로 건강한 노후생활을!

    한궁으로 건강한 노후생활을!

    세 번째 사진은 아내(윤병숙)와 집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이은호 전 당진군의원의 중매로 아내를 만났다. 이 전 의원은 나와 의형제다. 그리고 아내는 이 전 의원의 고종사촌으로, 나를 소개해줬다. 내 나이 28살, 아내 나이 23살에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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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 2018년 이야기

    김영자송악읍엄마순찰대장

    짝사랑 때문에 시작한 육상

    짝사랑 때문에 시작한 육상

    세 번째 사진은 당진 현대예식장에서 찍은 결혼사진이다.

    경북 영덕 출신의 나는 송악읍 한진2리 출신의 남편(김진규)을 만나 당진에 오게 됐다. 나는 당진 출신의 남자와 결혼한 고향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게 됐다. 남편과의 연애이야기를 글로 쓰자면, 책 한 권은 나올 것 같다. 경기도 부천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당시 남편은 “노란색의 옷을 입고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는 노란색의 옷을 입은 남성만 자그만치 4명이 있었다. 그러다 제일 마음이 가는 한 명에게 “김진규 씨이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하더라. 나중에 남편에게 이야기 들어보니 남편도 “저 여자가 소개팅하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그 계기로 나는 1년 가까이 남편과 연애 후 결혼했다. 연애기간 중 하루에도 10번 넘게 통화해 가족들에게 혼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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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 2018년 이야기

    정행화송악읍 기지시리

    20대, 꽃처럼 예뻤던 시절

    20대, 꽃처럼 예뻤던 시절

    네 번째 사진은 제주도 신혼여행가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엔 택시기사가 가이드 역할 뿐 아니라 사진작가의 역할도 해줬다. 심지어 우리를 안내 해준 택시기사는 의상 점검까지 해주는 센스 있는 기사였다.

    나는 20대 초반에 남편(신철석)을 만났다. 당진 출신의 남편은 부산 해양대에 다니고 있었다. 남편과 5년 간 연애하면서도 데이트 횟수는 많지 않다.

    나는 데이트 후 남편과 헤어지기 싫어 결혼을 서둘렀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배 타는 사람은 바람을 많이 핀다는(?) 설이 있어서다. 그래서 남편은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배를 타지 않고, 선박회사에 취직했다. 결혼 후, 엄마는 내가 연애할 때, 많이 힘들었다고 토로하셨다. 귀가시간이 늦어진다 싶으면, 아버지는 내가 아닌 엄마에게 행화는 집에 언제 오냐며 괴롭히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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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 2018년 이야기

    “내 딸 영일·영이·영삼”

    “내 딸 영일·영이·영삼”

    마지막으로 아내(허신회)와 함께 찍은 사진이에요. 아내와 저는 연애 후 결혼했어요. 저는 퇴임하기 전부터 고향인 면천면 삼웅2리에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퇴임하자마자 혼자 삼웅리에 컨테이너 하나만 두고 살기도 했죠. 지금은 아내도 내려와서 함께 살고 있어요. 젊어서 학교 일로 가족에많이 신경 못쓴 것 같아 미안해요.

    >> 유원종 이장은

    - 면천면 삼웅리 출신

    - 면천초·배제중·고·중앙대 졸업

    - 송악중·고등학교 교사 재임

    - 서울수도전기공업고 2006년 퇴임

    - 현 면천면 삼웅2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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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 2018년 이야기

    “개구쟁이 꼬마가 결혼을 하다니…”

    “개구쟁이 꼬마가 결혼을 하다니…”

    마지막 사진은 곧 결혼할 진호와 예비며느리(김민숙)의 사진이다.

    진호와 민숙이는 당진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8년 동안 연애하다 다음 달에 결혼한다. 학생 때 연애한다기에 걱정도 됐었는데, 지금은 딸이 없어 그런지 민숙이가 딸처럼 너무 예쁘다.

    나는 아들 부부가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살길 바란다. 아들아! 너 똑 닮은 아들 낳아 키워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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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2018년 이야기

    “평생 뒷바라지한 아내, 늘 고마워”

    “평생 뒷바라지한 아내, 늘 고마워”

    마지막 사진은 막내딸 본자의 결혼식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나는 본정, 본석, 본세, 본자, 본삼 이렇게 5남매를 낳아 길렀다.

    장남인 본석이만 당진에 살고 다른 자녀들은 외지에 있다. 큰딸 본정은 용인, 차남 본세는 수원, 차녀 본자는 광교, 막내 본삼은 동탄에서 산다.

    자녀들이 우애 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면서 기특하다. 나 또한 늘 자식들에게 서로 우애 좋게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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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 2019년 이야기

    아내(구본임)와 결혼할 때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살면서도 결혼식 때

    아내(구본임)와 결혼할 때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살면서도 결혼식 때

    아내가 든 부케만큼 큰 꽃을 본 적이 없다. 지금은 없어진 합덕의 행복예식장에서 식을 올렸다. 당시 나는 예산읍사무소에서, 아내는 송악농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결혼 후 예산에서 출퇴근하며 신혼생활을 했다.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가족을 위해 직장생활을 하며 함께 해 준 아내에게 평생 고맙게 생각한다. 또 속 썩이지 않고 잘 자라준 큰 아들 부부와 대학 졸업을 앞둔 막내아들에게 항상 고맙다.

    「카세트 들고 전국 다녔던 그 시절」 앨범 펼치기 →

  161.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을 무렵

    권영산한국화가

    새벽 담벼락 넘던

    새벽 담벼락 넘던

    그때 외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와 남편(故 천진안)은 6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을 무렵 남편은 제대 후 복학하기 전 군고구마를 팔았다. 단골이었던 아버지는 그 군고구마 청년을 두고 열심히 산다며 칭찬했다. 그 청년이 결국 사위가 됐다. 외도는 남편의 고향이었는데, 연애시절, 함께 놀러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 가겠다고 하면 방에 갇히기 일쑤였다. 그렇게 남편과 서울역 시계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나는 새벽에 탈출을 감행했다. 담벼락을 넘어 택시를 타고 수락산 뒤로 넘고서야 남편을 만났다. 시계탑 아래에서 나를 본 남편은 눈물을 흘렸다.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앨범 펼치기 →

  162. 2019년 이야기

    아내와의 결혼식

    아내와의 결혼식

    아내(추창숙)와 결혼했을 때 모습이다. 나는 나이 16세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장남이었던 나는 어머니와 5명의 동생을 책임지는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해 결혼도 약식으로 진행했다. 결혼식은 석문면 슬항리 처갓집에서 치렀다. 병에 철쭉과 대나무가 꽂혀 있고, 그 안에는 팥과 콩이 담겨 있다. 아마 잡귀를 없애는 의미였을 것이다. 결혼 후 지금의 집으로 와서 동네잔치를 했던 기억이 난다.

    「백종대 성당건축설비 대표」 앨범 펼치기 →

  163. 대학 졸업과 동시에

    권영산한국화가

    산 정상에서 결혼 소식 전해 결혼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산 정상에서 결혼 소식 전해 결혼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첫째 아이를 가지며 결혼했다. 아버지에겐 함께 등산하다 산 꼭대기에서 결혼 소식을 전했다. 게으른 것을 싫어했던 아버지에게 산을 열심히 오르며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줬고, 정상에서 결혼 얘기를 꺼낸 것이다. 나중에 아버지는 혼자 산에 올라 결혼하는 나를 생각하며 펑펑 우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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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 결혼 50주년

    빨간 넥타이 빼앗긴 날

    빨간 넥타이 빼앗긴 날

    이건 올해 촬영한 리마인드 웨딩사진이다. 딸들이 결혼 50주년을 맞이해 깜짝 선물로 준비해준 것이다. 나는 25세에, 아내는 21세에 결혼했다. 당시엔 웨딩사진은커녕 예식장도 귀해서 친정집에서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쓰고 결혼식을 올렸다.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을 생각도 못했는데 자식들이 돈을 걷어서 리마인드 웨딩을 열어줬다. 나는 이때도 촬영장에 빨간 넥타이를 착용하고 갔다. 하지만 큰딸이 오늘만큼은 안 된다며 빨간 넥타이를 빼앗았다.

    「자식들이 선물해 준 리마인드 웨딩」 앨범 펼치기 →

  165. 2019년 이야기

    원종돈용인대학교 당진시동문회장

    군인을 기다려준 고마운 아내

    군인을 기다려준 고마운 아내

    4-1 사진은 군 입대를 앞두고 아내(정안숙)와 3박4일 일정으로 전국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변산, 부산, 청주, 만리포 등을 여행했다. 아내는 내가 전국여행을 마치고 입대를 준비하고 있을 때 사진들을 모아서 앨범을 만들어 깜짝 선물을 줬다. 그 사진들이 군 생활동안 큰 힘이 됐다.

    4-2 사진은 장교전역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을 때 마지막 휴가에서 찍은 사진이다. 수원에서 아내와 데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사진관에서 찍게 됐다. 그 때는 별 의미 없이 찍은 사진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의미가 깊은 사진이다.

    「특별했던 나의 군 생활」 앨범 펼치기 →

  166. 신혼여행

    권영산한국화가

    4-1. 딸 돌 때 세상 떠난

    4-1. 딸 돌 때 세상 떠난

    남편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갔다. 그때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남편은 1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보다도 2년 일찍 내 곁을 떠났다. 막내딸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는 뜻을 담아 ‘세미’라고 이름을 지어주고는 세미 돌 때 세상을 떠났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지금도 가끔은 나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오래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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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 2019년 이야기

    예쁜 나의

    예쁜 나의

    아내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나는 1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아내는 신평면 운정리 출신인데, 우리 동네까지 예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소문을 듣고 나는 운정리로 찾아갔다. 실제로 아내를 보니 너무 예뻐, 아내 집을 찾아가 결혼하겠노라고 밝혔다. 당시 세 명의 처남은 누나가 아직 젊다며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아버지 친구이기도 했던 장모님이 처남들을 설득시킨 덕에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결혼은 옛날 방식으로 아내 집에서 치렀다. 그날 눈이 허벅지 높이까지 쌓일 정도로 폭설이 내렸다. 그래도 결혼하겠다며 신당리에서 운정리까지 걸어갔다. 아내는 지금도 예쁘다. 30여 년 넘게 대아우렁이식당을 운영하면서 많은 일을 했다. 지금은 남들에게 베풀며 봉사하고 있다. 참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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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 2019년 이야기

    김향곤송산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장

    “삼화목장에서 들킨 사내연애”

    “삼화목장에서 들킨 사내연애”

    우리 가족사진이다. 아내(최재학)와는 사내연애로 결혼했다. 직원들 몰래 사귀느라 늘 당진 밖에서 데이트를 했다. 5년을 열심히 숨겼는데 봄날 벚꽃 구경하러 삼화목장에 갔다가 동료와 마주치는 바람에 들켰다. 마침 결혼 얘기가 오가던 때라 다행이었다. 결혼 후 다영이와 종범이를 낳아 키웠다. 나는 송산중을 졸업했다. 딸과 아들의 중학교 학구는 원당중이었지만 일부러 송산중에 보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이라 생각했고,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 지금 고2인 다영이는 사춘기가 언제 왔었나 싶을 정도로 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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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2019년 이야기

    원종돈용인대학교 당진시동문회장

    한 가정의 가장이 되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다

    내 나이 22살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살의 아내를 만났다. 그때부터 연애를 시작해 전역할 때까지 연애했다. 오랜 연애기간 때문에 양가에서도 당연히 결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연애 기간이 길어서인지 아직도 아내가 친구 같이 느껴진다. 결혼하고 우린 두 딸 하늘(서일고2)와 서연(원당중2)이를 낳아 키웠다. 가족은 나에게 안식처다. 지금은 아이들 학교와 가까운 시내에서 살고 있지만 나중에는 고향인 석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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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 4년 전

    떠난 아내 그리워 나와 아내(故 안문자)가 함께 했던 모습들이다. 아내와

    떠난 아내 그리워 나와 아내(故 안문자)가 함께 했던 모습들이다. 아내와

    나는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연애결혼을 했다. 같은 동네에서 살았는데, 친정에서는 결혼을 반대했다. 아내는 “남편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우린 결혼에 성공했다. 아내는 4년 전 암으로 7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팔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뼈까지 암이 전이된 상황이라고 했다. 3월에 암 진단을 받고 해를 넘기지 못한 채 12월에 곁을 떠났다. 아내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다퉈보질 않았다. 나이 들고는 늦은 나이에 취득한 운전면허 덕분에 함께 드라이브도 하고, 노인대학도 다녔다. 지금도 아내 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도 집 바로 옆에 산소가 있어 마치 아내가 함께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수시로 들려 산소를 정리하고 꽃을 심고 있다.

    「먼저 떠난 그리운 아내」 앨범 펼치기 →

  171. 젊은 시절

    결혼(2~4번 사진)

    결혼(2~4번 사진)

    친정어머니가 중매를 서서 남편(이건양)을 만났다. 당시 남편은 25살, 나는 20살이었다. 엄마가 사위를 직접 고른 만큼 참 예뻐하셨다. 젊은 시절 동네사람들과 아산 신정호에 놀러갔을 때 둘이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결혼 65주년이었던 작년에는 당진시여성단체협의회가 주최한 행복금혼식에 참여했다.

    「아흔에 돌아본 꽃다웠던 청춘」 앨범 펼치기 →

  172. 결혼식

    김종일삼꽃색소폰선교단장

    아내(이경복)와 결혼할 때 모습이다.

    아내(이경복)와 결혼할 때 모습이다.

    나는 석문면 삼화리, 아내는 삼봉리 출신이다. 휴가 왔을 때 석문우체국에서 일하던 아내에게 반해 우리는 연애 끝에 결혼했다. 당시 일 끝나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삼화리에서 삼봉리까지 8km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곤 했다. 사진 속 당시 결혼식은 제일예식장에서 올렸다.

    「“남산에서 고고댄스 추던 시절”」 앨범 펼치기 →

  173. 스무 살 무렵

    네 번째 추억사진

    네 번째 추억사진

    대호지면 4-H구락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스무 살 무렵, 누군가의 권유가 아닌 내 스스로 4-H 선배들을 찾아가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완전히 4-H에 미쳐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참여했다. 과제활동을 해서 당진군 콩증산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4-H를 시작으로 다양한 사회활동에 나설 수 있었다. 기동순찰대(현 자율방범대), 새마을운동, 농업경영인회, 주민자치위원회 등에 참여해왔다. 지금은 대호지면전담의용소방대장이자 당진시의용소방대연합회장, 충남의용소방연합회 재난지원분과위원장을 함께 맡고 있다.

    다섯 번째 추억사진(5~7번)

    내 나이 25살, 24살이었던 아내(김명희)를 만나 결혼했다. 우리 이웃에 사는 오남숙 씨가 자신의 동창인 아내와, 이웃인 나를 이어줬다. 오남숙 씨가 어느 날 장정리에 사는 아내 집에 놀러갔다가, 저녁에 집에 가야 하는데 혼자 가기 무섭다면서 아내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래서 오남숙 씨를 데려다 주고 그집에서 하루 묵게 된 아내를 그 다음 날 만났다. 나는 미리 언질을 들었는데, 아내는 나를 만날 줄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 나는 4-H 활동을 하면서 장정리에서 열린 척사대회에 인사를 갔다가 아내를 본 적이 있었다. 전 부치고 막걸리 나르는 새침떼기 아가씨였는데 마음에 들었다. 아내를 소개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목련이 하얗게 흐드러지던 4월에 결혼을 약속했다. 해마다 목련꽃이 피면 약혼했던 그 날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행복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옛날엔 동네 사람들이 사과, 배, 잣, 곶감, 떡 등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큰상’을 차려주셨다. ‘큰상’은 일생에 환갑과 결혼 때 딱 두 번 받는 상이었고, 잔치가 끝나면 다같이 나눠먹었다. 아내 옆에는 큰처남인 김성신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 선열유족회장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내와 함께 산지 40년이 됐다. 딸 다섯(인숙·지연·유리·주연·지윤)에 아들 하나(관웅)를 낳아 기르고, 시부모를 모시면서 사회활동 하는 나까지 뒷바라지 하느라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목련꽃 하얗게 흐드러지던 날 아내와 약혼」 앨범 펼치기 →

  174. 결혼할 때

    뚜렷한 이목구비에 인기 많던 소년

    뚜렷한 이목구비에 인기 많던 소년

    세 번째 사진은 청주예식장에서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다.

    아내 박순원은 현 세종시 자리에서 나고 자랐다. 고종사촌의 중매로 만난 우리는 27세, 22세의 나이에 결혼했다. 당시 고종사촌이 집에 놀러오라고 해서 갔는데 처갓집에 나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해 8월에 상견례를 하고 12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인기 많던 소년」 앨범 펼치기 →

  175. 27세 쯤

    주옥순새마을 합덕읍 부녀회장

    앞머리에 넥타이까지…유행에 민감했던 소녀

    앞머리에 넥타이까지…유행에 민감했던 소녀

    네 번째 사진은 시댁 앞 목련나무에서 찍은 사진이다.

    27세 쯤 합덕읍 궁리 출신의 신랑(신은호)을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이 사진은 결혼하고 시댁 앞 목련나무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결혼하면서 합덕으로 내려와 남편과 10여 년 동안 사과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쪽파 농사를 주로 지으며 수박 농사, 벼농사를 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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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 결혼한 지 50주년

    천의초에 자리한 나무 미끄럼틀

    천의초에 자리한 나무 미끄럼틀

    네 번째 사진은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나는 25살 때 정미면 봉성리 출신의 아내 김정열을 만나 결혼했다. 장모님의 소개로 아내와 만났고, 올해로 우리가 결혼한 지 50주년이 됐다. 우리가 50년 이라는 시간동안 부부로 살 수 있었던 이유로 아내는 ‘대화’를 꼽는다.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하는 부부다. 오늘 하루를 누구와 어떻게 보냈는지 자세히 이야기 나눈다.

    한편 나는 아코디언, 아내는 색소폰 연주하는 것이 취미다. 우리는 종종 함께 연주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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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 25살 되던 해

    유광자순성면 중방2리

    멋쟁이 아가씨’ 찬란했던 나의 20대

    멋쟁이 아가씨’ 찬란했던 나의 20대

    네 번째 사진은 25살 되던 해 결혼식 날 찍은 사진이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남편(故 송영일)을 처음 만났다. 이후 1년 동안 연애하다 결혼했다. 남편의 인자한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9남매 중 장남이라는 이야기에 내가 맏며느리 자격이 될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결혼해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4남매(3남1녀)를 낳아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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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 결혼했을 때

    “교복 입은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교복 입은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네 번째 사진은 결혼했을 때 찍은 기념사진이다.

    남편 나이 25살, 내 나이 20살에 결혼했다. 남편의 외당숙모의 중매로 만나 결혼해, 3남1녀(정식, 현식, 미식, 준식)를 낳았다. 특히 딸 미식이는 상록아가씨대회에서 ‘미’를 수상했을 정도로 예쁘다. 현재 미식이는 진도에서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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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 2021년 이야기

    주옥순새마을 합덕읍 부녀회장

    앞머리에 넥타이까지…유행에 민감했던 소녀

    앞머리에 넥타이까지…유행에 민감했던 소녀

    마지막 사진은 온양 현충사로 신혼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30여 년 전 결혼하면서 합덕에 정착했을 때는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농사도 처음이었고 서울에 비해 즐길거리가 없어 침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합덕에서 부딪쳐 보자며 살다보니 여지껏 잘 지내고 있다. 이제 농사도 배테랑이다.

    지금은 새마을 합덕읍 부녀회장으로 활동도 하고 있다. 40세에 접어들면서 궁리 부녀회 총무를 9년 동안 맡아왔다. 이후 궁리 부녀회장을 거쳐 합덕읍 부녀회장까지 됐다. 농사 지으랴, 집안 일하랴, 봉사하랴 너무 바쁘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된다. 이제는 저절로 새벽 3시가 되면 눈이 떠진다. 70세부터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캠핑카 타고 여행하면서 더욱 멋지게 살고 싶다.

    >>주옥순 회장은

    - 전남 여수 출생

    - 전 합덕읍 궁리 부녀회장

    - 현 새마을 합덕읍 부녀회장

    -

    김예나 기자 yena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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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 2022년 이야기

    한대우·최기자 부부 (면천면 죽동2리)

    한대우·최기자 부부 (면천면 죽동2리)

    세 번째 사진은 약혼식 때 찍은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6살 차이가 난다. 사진 속 나는 25세, 아내는 19세였다. 올해 내가 86세, 아내 80세이니 같이 산 지 60년 정도 됐다. 우리는 아내의 이모가 중매해 결혼했다. 이날 사진은 두 번째 만났을 때 당진 구터미널 인근에 있는 사진관에서 찍은 것이다. 당시 아내는 부끄러워서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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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 2022년 이야기

    9년 간 지고지순한 연애 끝에 결혼

    9년 간 지고지순한 연애 끝에 결혼

    네 번째 사진 은 남편(호병덕)과 찍은 결혼 사진이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는 한복을 입고 식을 올렸는데, 어느 사진관에서 양복과 드레스로 합성을 해줬다. 나는 남편과 9년 동안 연애하고 결혼했다. 오빠가 3명이었던 탓에 우리집 사랑방에 오빠 친구들이 자주 놀러왔다. 남편 역시 오빠의 친구로, 우리 집에서 함께 윷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날마다 만나서 그런지 마음이 끌렸다. 남편이 월남전에 나갔을 때도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연애를 이어왔고, 나중에 결혼해서 보니 남편은 내가 쓴 편지를 모두 모아놓았더라. 연애했을 때 남편이 자신의 집에서 포도 몇 송이를 따서 우리 엄마와 나에게 주고 수줍어 도망갔던 적이 있다. 나름의 애정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연애하는 것을 아버지께 들켜서 많이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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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 올봄

    하상우·이환숙고대면 진관리 부부

    운동하며 보내는 즐거운 노년

    운동하며 보내는 즐거운 노년

    마지막 사진은 올봄 벚꽃이 흐드러지던 날 당진종합운동장으로 산책을 가면서 찍은 사진이다. 서울살이를 하고 고향에 다시 돌아온 우리는 동네를 거닐 때면 꼭 손을 잡고 다녀서 동네에서 금슬이 좋은 부부라고 소문났다. 남은 생은 우리 부부 아프지 말고 이곳저곳 다니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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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장면의 테마와 연도는 기사 글을 읽어 자동으로 분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