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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지금의 모습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김동기 전주명품 콩나물 국밥 대표

2015년 8월 당진시대 게재

나는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웨이터 일을 시작했다. 이후 1990년에는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서울로 향하기도 했다. 주변의 권유로 탤런트 시험을 준비한 적도 있었다. 이 외에도 군고구마 장사도 해봤고 한 때는 다단계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아내와 결혼하고 처갓집이 있는 당진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 결혼 후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 때도 있었지만 옆에서 힘이 돼 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지금은 콩나물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지만 험한 일을 많이 해본 지라 어떤 일이든 이겨나갈 수 있다. 오랜만에 사진을 꺼내보니 새롭다. 오래된 사진은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신 경남 마산에서 15년 전에 찍은 사진도 있더라.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 사진 1

#1

첫 번째 사진은 둘째 영동이 돌 때 찍은 사진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 마음이는 원래 ‘바다샘마음’이었다. 바다처럼 넓고 샘처럼 깊은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둘째 영동이는 원래 ‘으뜸’이라는 이름으로 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이름 모두 아버님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아버지로서 자식의 이름 하나 마음대로 지어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 사진 2

#2

두 번째 사진은 영동이가 태어난 지 5일 째 되던 날 찍은 사진이다. 사진이 예쁘게 나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두 아이 모두 활동적이고 영어와 수학 각각 100점, 95점을 맞을 정도로 공부를 잘해 나무랄 데가 없다. 다만 조금씩 커가면서 가족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조금은 서운하다. 특별히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없지만, 내가 살아온 것처럼 아이들도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 사진 3

#3

세 번째 사진은 2013년 아산으로 레일바이크를 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일치기로 갔는데 바쁜 삶 속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즐긴다. 무계획으로 떠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숙박할 곳을 정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모텔에서 잠을 잘 때가 많은데 아이들도 적응이 됐는지 모텔 이름을 기억할 정도다.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 사진 4

#4

네 번째 사진은 올해 콩나물국밥집 진해 용원점을 오픈하고 올라오면서 경남 함양군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둘만의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 때 1박2일로 여행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 사진 5

#5

다섯 번째 사진은 며칠 전 가게 앞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3900원짜리 국밥으로는 기름값도 못 건진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리다매 원칙을 가슴에 새기며 여덟 테이블의 작은 가게를 개업하게 됐다. 현재 8개의 점포를 냈으며, 내년까지 25개까지 점포를 늘릴 계획이다. 여리고 부지런한 아내는 힘든 내색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 아내가 주방에서 땀 흘리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이다. 항상 건강하게 웃으며 사는 우리 가족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