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 타임라인
우리 집 이야기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에 실린 이야기 가운데 ‘가족 이야기’ 장면만 모아 세월 순서로 엮었습니다. 장마다 그 사진을 꺼내 준 주민의 말을 그대로 옮겼고, 아래 링크로 그 사람의 앨범 전체를 펼쳐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114명 — 이름을 누르면 그 사람의 첫 장면으로
- 박원신
- 이철환
- 정덕영2
- 김동헌2
- 구현회
- 김병빈
- 박인규3
- 홍종옥3
- 채수향
- 박권옥
- 이희양2
- 이한복
- 김향곤
- 최병부
- 양영진2
- 박권병
- 임광혁
- 김용관3
- 김인상2
- 이승호2
- 박기원
- 류기환
- 이호천
- 강운선2
- 편명희
- 강우영
- 홍천표
- 신창재
- 최대성
- 조규자
- 김봉규
- 이금돈
- 황정옥2
- 정제훈
- 김진선2
- 김복수
- 권찬호2
- 오영환
- 김동관
- 박미자
- 김미자
- 남준우
- 박용길
- 김재각
- 이진섭
- 이광휘
- 서용석
- 송영우
- 김낙찬
- 강규희2
- 조병갑
- 김영애2
- 이범욱4
- 양기철
- 오명숙
- 염윤상2
- 조재웅2
- 한득선
- 조완성
- 박용출3
- 이숙경2
- 송민수
- 최영자2
- 강인경
- 최순용
- 최연례
- 김종범
- 한만우
- 최명수2
- 김동기2
- 김용균2
- 이근주
- 고미경3
- 홍종원
- 채규흥2
- 하완철
- 서정길2
- 김정환
- 최연우2
- 강근묵
- 이계영
- 이웅배2
- 이인자
- 이유호
- 박성민
- 안명수
- 정상일
- 김덕성2
- 김평자·김기원
- 장택순
- 최주묵
- 최덕기2
- 김응태2
- 강근식2
- 김기정
- 조주익
- 정행화
- 안광모2
- 김용대
- 김영자
- 한익상
- 김순섭
- 김무기
- 권영산
- 편종만
- 박성두2
- 송정애
- 김종일
- 김병길
- 유광자2
- 황규찬
- 이충수
- 조만형4
- 하상우·이환숙
1945년
박원신우강면 송산리
백두산 천지에서 물구나무 서다
첫 번째 사진은 아버지(故 박용원) 회갑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 아버지는 면사무소 농업기수로 근무하다, 1945년 8월15일 해방 후 읍면단위 지방자치제가 실시됐던 당시 면의원에 당선됐다. 아버지는 교육열이 높으셨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합덕읍 창정리, 도곡리, 묵성리, 재호지리 등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위해 합도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이를 기념하고자 합도초 입구에는 부친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1953년
이철환당진군수
첫번째 사진은
첫번째 사진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당시인 1953년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8년 전 나의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당진에서 제법 컸던 현대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당시 아버지(이재안)께서는 당진우체국 체신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셨으며 우체국 체신공무원으로 정년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셔서 집에 카메라도 있었고 나에게도 사진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난다. 사진에는 세살터울의 큰동생(계숙)과 작은 동생(향숙)만 있지만 그 뒤로 동생들이 태어나 우리는 모두 7형제가 됐다.
1962년
정덕영당진향교 전교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소중한 자녀들
첫 번째 사진은 막내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막내아들이 생기기 전이기 때문에, 사진 속에는 막내아들이 없다. 나는 1962년 2월24일 22세의 나이에 정미면 매방리 출신의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는 나보다 3살 연상이었다. 당시 나는 일찍 결혼한 거였는데, 그때 할아버지의 소원이 내가 결혼해 손주를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한 지 10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간절히 원해서 그런지, 임신이 잘 되지 않았다. 어렵게 우리는 큰딸 정숙이를 낳고, 5년 후 큰아들 상용이를, 또 5년 후 막내아들 상범이를 낳았다. 현재 큰딸은 강원도 철원에 살고 있고 두 아들은 당진에서 생활하고 있다.
1964년
김동헌당진군체육회 부회장
“아버지 이어 이장 활동 뿌듯”
첫번째 사진은 1964년도 창경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부모님(부 김택제, 모 최순예)과 누나(김동예)와 함께 처음으로 서울 구경을 했다.
아버님은 6.25때 이장으로 활동하셨고 나도 세월이 흘러 이장을 맡게 됐다. 마을회관에는 아버지와 내 사진이 나란히 역대 이장으로 걸려 있어 뿌듯하다. 성장한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사꾼이 됐고 누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다.
1967년
구현회당진1동 읍내7통 노인회장
"빛바랜 흑백사진 속 추억"
세 번째 사진은 1967년도 경에 가족들과 봉화산으로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2남1녀를 낳았다. 이 사진에는 딸과 작은 아들만 찍혔다. 현재 큰아들은 천안에, 딸은 청주에서 살고 있다. 작은아들은 5년 전 뇌출혈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옛날에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작은아들이 많이 보고싶다.
1969년
김병빈공익재단법인 지속가능상생재단 사무국장
첫번째 사진은
첫번째 사진은 내 생애 첫 사진이다. 5살때인 1969년으로 기억된다. 사진에서 윗줄 오른쪽이 나다. 당시 이웃집에 신혼부부가 이사왔다. 마을에서 제일 젊은 세대로 자주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그 집에는 신혼집답게 TV도 있었고 카메라도 가지고 있었다. 이 사진도 그 신혼부부가 찍어준 거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동생 병주다. 또 바로 옆의 아이가 나보다 3일 빨리 태어난 조카(현지)이며 그 옆이 작은 조카 상혁이다. 큰조카 현지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쌍둥이처럼 지내왔다.
1969년
“남은 인생, 감사하며 살게요”
첫 번째 사진은 1969년 아버지 회갑날, 8남매가 모여 찍은 기념사진이다.
나는 1969년 12월1일 결혼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2일은 아버지(손낙성)의 회갑날이었다. 그래서 결혼식 피로연과 아버지 회갑잔치를 같이 진행했다. 나는 2남6녀 중 다섯 째로 태어난 4대 장손이다. 현재 나는 당진, 서산, 예산, 경기도 부천을 아우르는 밀양손씨 명천공파 회장을 맡고 있다.
8남매 중 장남이라고 하면,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 같지만, 아버지가 당시 장남이라고 더 엄하게 키우셨다.
1970년
박인규전 우강면개발위원장
여전히 그리운 내 동생
우강에서 일평생을 살았지만, 태어난 곳은 송악읍 도원리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70년도에 우강면 세류리로 이사왔다. 다니던 송악중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1년 동안은 큰아버지 댁에서 살면서 통학했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당시 이사 왔던 바로 그 터다. 이 사진은 이사 직후 6남매(명규·인규·명숙·천규·명자·정규)가 함께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내 바로 아래 동생인 명숙은 사고로 일찍 운명을 달리했다. 아직도 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이 사진을 자주 보지 못한다. 막내 정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동생이 대학생이었던 시절 아내(이재연)가 도시락도 싸주고 뒷바라지를 많이 했다. 현재 대전시청 서기관으로 근무하는데, 최근에 대통령 포장까지 받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두 번째 추억사진>
1970년
“청춘 바친 경찰 인생 33년”
마지막 사진은 태국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은 아내와 처형 그리고 두 딸과 외손녀다. 나는 가족들과 태국을 비롯해 호주, 중국 등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퇴직하기 전에는 일이 바빠서 가족여행을 가지 못했다. 심지어 1970년에 결혼하고서도 신혼여행을 1988년에 다녀왔을 정도다.
1972년
“남은 인생, 감사하며 살게요”
두 번째 사진은 1972년 큰 아들 광열이를 안고 옛날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당진읍내 출신의 아내(김준옥)를 중매로 만났다. 아내는 나보다 8살 어리며, 진달래회 등 사회단체에서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성격이 쾌활한 아내는 발지압부터 피부관리사, 웃음치료사,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종류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는 식품관리에 관한 교육을 받으러 다닌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삼형제를 낳아 길렀다. 사진 속 큰 아들 광열이는 현재 경기도 동탄에서 살고 있다.
1975년
“추억의 샘에 빠진 하루”
세 번째 사진의 윗 줄 왼쪽부터 나, 아버지, 함께 근무한 교장 선생님이자 사돈어르신, 아랫줄 왼쪽부터 어머니, 나, 현재 교감으로 활동 중인 막내 동생 형진이, 사부인어른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만 하면 난 언제든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도 1975년경엔 꽤 날씬했었다. 세 분 어른은 모두 돌아가셨고, 다행히 어머니는 꽤 건강한 편이며 지금도 예쁘시다.
1978년
홍종옥보라세탁소
전라도 출신의 자상한 남편
세 번째 사진은 친정 부모님 환갑잔치 이후, 가족들과 태안으로 나들이 가서 찍은 사진이다. 옆에는 남편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만나 결혼했다. 전남 여수 출신인 남편은 나보다 한 살 연상으로, 서울에서 양복기술자로 일했다. 나도 19세에 상경해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이 23세에 남편을 만나 일 년 정도 연애 후 결혼했다. 우리가 만나게 된 계기는 남편이 친구 집에 갔다가 이웃인 내게 반했다고 한다.
한편 나는 1978년 다시 고향인 당진을 찾았다. 상경해 있을 때 당진에 계신 부모님과 연락이 잘 되지 않자, 작은할머니가 나에게 남자가 생긴 것 같다며, 당장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나를 좋아했던 남편도 함께 내려와 부모님께 결혼 승락을 구했다. 나와 남편의 지역이 달라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나는 남편의 따뜻한 마음과 다정한 성격을 좋아했기에 끝까지 인연을 맺었다. 지금도 나는 남편의 성격이 너무 좋다.
1983년
채수향한국자유총연맹 당진군지부 전 여성회장
“불혹의 나이를 바친 자유총연맹 여성회”
첫 번째 사진은 신평면 남산리 내가 태어난 고향집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1983년도에 촬영한 이 사진 속에서 보이는 초가지붕의 집이 바로 고향집이다. 지금은 집이 헐리고 사라졌지만 사진 속에선 당시 모습 그대로 생생히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집터 뒤에 부모님의 산소만 자리하고 있다.
1986년
박권옥대한노인회 우강면분회장
단체여행 다니던 그 시절 그리워
세 번째 사진은 1986년 내경성결교회에서 장로로 장립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날 나는 장로로, 아내는 권사로 취임했다. 44세의 나이에 일찍이 장로가 됐다. 나는 군대에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그때는 교회에 가려면 시내로 가야했기때문에 놀러나가는 맛으로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믿음이 점점 커지면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1987년
“여성 이장에서 시의원 되기까지”
첫 번째 사진은 1987년 소년가장세대와 양어머니 결연 당시 찍은 사진이다. 어머니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온 어려운 형편에 처한 아동들과 양어머니가 결연을 맺는 뜻 깊은 행사였다.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전해 아이들이 보다 나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을 전했던 기억이다.
1988년
홍종옥보라세탁소
전라도 출신의 자상한 남편
두 번째 사진은 1988년 친정 부모님 환갑잔치 때 찍은 사진이다. 난 6남매 중 맏딸이었고, 이 사진은 형제들이 서로 돌아가며 찍어준 사진이다.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다. 어느덧 사진 속 부모님보다 지금 내 나이가 더 많아졌다.
1989년
이희양송산면 유곡리
“친구야, 저기 한 번 봐라”
세 번째 사진은 1989년도 아내와 친구 커플과 함께 지리산 정상까지 올라가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아내를 번쩍 안았는데, 친구는 여자친구를 안지 못해 하산하는 내내 친구의 여자친구가 서운해 했다. 그 둘 역시 지금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1990년
아내 사랑 산(山) 사랑
두 번째 사진 은 1990년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이모·이모부를 모시고 수덕사로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이라, 사진 속에 나는 없다. 당시 나와 아내는 이모와 이모부 6명을 모시고 수덕사를 찾았다. 맛있는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수덕사를 둘러봤는데 너무 좋아하셔서 아내와 뿌듯해 했던 기억이 난다. 사진 속 이모와 이모부 중 살아계신 분은 딱 한 분이시다.
1993년
“남은 인생, 감사하며 살게요”
세 번째 사진은 1993년 1월 29일 둘째아들 창열이 생일에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아내, 둘째아들 창열이, 막내아들 대열이, 첫째아들 광열이, 그리고 나다. 이날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촛불을 불었다. 둘째아들 창열이는 세종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얼굴과 성격, 직업까지 나를 많이 닮았다. 막내아들 대열이는 현재 동부제철에서 근무하고 있다.
1993년
이한복공간목련아파트 관리소장
가족과의 추억
난 25세 때 아내 김천순 씨와 결혼했다. 당시 (구)송악농협이 종합청사를 신축해 2층 회의실을 예식장으로 겸해서 썼는데, 우리 부부가 이 예식장에서 처음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이영웅 전 농협중앙회 당진군지부장이 맡아줬으며 웨딩카는 이 전 군지부장의 관용차로 대신했다. 한편 나는 1993년에 1년간 인천광역시 구월동 농산물직판장에서 파견 근무했다. 당시 첫 파견근무자였다. 그 때 가족과 떨어져서 살았는데 주말에 아들 상원이, 강원이가 나를 찾아와 함께 월미도를 갔을 때 찍은 사진(4-2)이다. 두 아들들은 잘 자라줬다. 한편 우리 처가에 식구가 많다. 지난 2015년에는 처가 7남매와 장모님과 서해안 일주를 한 적이 있었다. 올해 또 한 번 가보고 싶다.
김성준 인턴기자 rlatjdwns02@naver.com
>> 이한복 관리소장은
·1959년 송악읍 중흥리 출생
·송악초·송악중·당진상업고등학교 졸업
·전 송악로타리클럽 회장
·전 송악·송산·당진·합덕·신평농협 근무
·현 신평면 공간아파트 관리소장 근무
1994년
“잘 자라준 6남매 보면 뿌듯”
세 번째 사진은 1994년 경 시곡동에 있는 무봉리순대국집 앞에서 아내와 큰딸 수아를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배경은 현재 4차선 도로로 개발됐다. 지금은 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가끔 당진이 개발되기 전 사진을 보게 되면 그 당시가 생각나면서, 그때의 추억도 같이 떠오른다.
1999년
김향곤송산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장
“8남매 중 일곱째, 그래도 장남”
1999년 아버지(故 김용일)의 고희연 때 남매 모두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나는 8남매 중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는 모두 누나들이라 내가 장남이다. 옛날 방 두 칸짜리 초가집에서 가족들이 복작거리며 살던 기억이 난다. 그땐 울타리 안에 외양간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컸나 싶다. 학교 끝나면 산과 밭에 가서 놀고, 배고프면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따서 먹곤 했다. 아버지는 지난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되도록 함께 하자며 가능한 설과 추석엔 만나고 있다.
2000년
최병부당진시행정동우회 감사
"잊지 못할 ‘당진’의 추억"
네 번째 사진은 2000년 어머니 고희연 때 6남매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현재 어머니는 태안에 살고 계신데, 88세의 연세로 아주 정정하시다. 나는 6남매 중 3번째다. 아들로는 2번째다. 어릴 적 나는 죽다 살아날 정도로 홍역을 심하게 앓았다. 다 커서는 결핵을 앓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던 터라 어머니가 항상 노심초사하셨다.
나는 6남매 중 아래 남동생과 가장 친하다. 나랑 5살 차이가 나는데 잘 지낸다. 현재 우리 남매들은 서산, 태안, 서울, 대전, 천안 등 각기 다른 곳에서 살고 있지만 김장할 때나 명절 때 꼭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
2001년
양영진팀장
낚시·등산·여행 등 즐거운 취미생활
두 번째 사진은 2001년도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큰 딸이 방학숙제로 현장체험학습을 해야 한다길래 온가족이 경주 불국사를 다녀왔다. 그 시절에는 도로체계가 지금처럼 잘 구축돼있지 않아 일을 마치고 출발했더니 새벽에야 경주에 도착했다. 이때 식당을 운영할 때라 애들에게 많이 관심을 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방학숙제 덕분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2002년
“시끌벅적 활기찬 우리 가족”
세 번째 사진은 농협신문에서 발행한 ‘전원생활’에 게재된 우리집 가족 사진이다. 2002도에 우리 가족은 ‘여섯아이 낳아 키우는 박노규·김상돈 씨 부부’로 전원생활에 소개된 바 있다. 당시 우리 가족의 주민등록등본은 가족사항 열 줄이 가득 찼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부모님(부 박용준·모 한선동)을 포함해 나와 아내 그리고 여섯 아이가 시끌벅적 활기차게 살았고 그 화목한 분위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04년
박권병당진군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장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 보내야겠다”
네 번째 사진은 우리 가족 사진. 2004년쯤 제주도에서 찍었다. 아내(황수자)와 큰딸 수현(21), 둘째 세리(18), 막내 경민(14)이다. 살던 집에 화재가 나서 옛 사진들을 많이 잊어버렸었는데 그나마 가지고 있는 옛 사진이다. 사진들을 보니 참 뿌듯하다. 앞으로도 가족들과 사진을 자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다.
2004년 이야기
임광혁석문면 장고항리
나의 추억이자 역사인 사진들 - 임광혁(석문면 장고항리)
두번째 사진은 나의 군 시절이다. 미군 정문에서 찍은 군기가 빠짝 든(?) 공군 헌병 일등병의 모습. 어줍잖은 영어로 미군들과 대화를 조금씩 하고 미군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던 때의 추억이 남은 사진이다. 우리보다 훨씬 자유로운 군생활을 하던 미군들이 부러웠었지.
세번째, 얼굴엔 하회탈 주름을 하고 V를 그리며 승리를 기원하고 있는 이곳은 월드컵 독일전이 벌어지기 전 응원을 벌이고 있는 광화문 네거리이다. 목이 쉬어라 “대한민국 빠밤빠밤빠”를 외치며 붉은 파도 속에서 응원을 했었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끝나고 나서 쓰레기를 모두 주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 민족의 저력을 가슴으로 느낀 하루였다.
사진을 고르면서 바쁜 일상 때문에 잊고 있었던 추억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의 추억이자 역사인 소중한 사진들을 한번쯤 꺼내어 보시길...
임 광 혁 (33) / 석문면 장고항리
한국방송통신대(법학과) 재학생
2005년
합덕읍 발전, 나의 바람이자 소망
첫 번째 사진은 연호라이온스클럽 회장을 이임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나는 예산 출신의 아내를 소개로 만나 43세에 결혼했다. 다소 늦게 간 장가로 딸과 아들을 늦게 낳았다. 현재 딸은 16세, 아들은 13세다. 주위 친구들 중에는 벌써 자녀가 군 입대를 했거나 결혼을 해 손자까지 본 친구가 절반 이상이다. 처음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린 자녀들로 인해 내가 동심에 빠져들 때가 있어 좋다. 지역 일과 개인 사업으로 바빠 자녀들과 같이 제대로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해 아쉽다. 재작년 쯤 연호라이온스클럽에서 대만으로 해외봉사 갔을 때 가족들과 함께 다녀온 것이 가족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한편 나는 2005년 김명선 도의원의 추천으로 연호라인온스클럽에 가입했다. 그리곤 2013년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연호라이온스클럽은 형편이 어려운 지역민의 가정을 방문해 전기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생필품 전달했으며, 지역 내 환경정화활동을 비롯한 해외봉사, 지역민과 함께하는 콘서트 등을 실시했다. 연호라이온스클럽은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라이온스클럽 356-F지구대회에서 종합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두, 세 번째 사진은 국제라이온스협회 356-F지구 부총재단 이·취임식 때 찍은 사진이다.
356-F지구에는 16개의 시·군이 소속돼 있는데, 내가 당진시 내 9개 라이온스클럽, 회원 350여 명을 이끌어 가는 부총재를 맡았다. 당시 나는 당진지역에 어떤 봉사를 해야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을지 회원들과 논의하고, 활동했다.
2005년
김용관회장
처음 땅 샀을 때 태어난 막내
이때는 아내와 함께 부산에 갔을 때의 모습이다. 뒤에는 2005년 APEC 회의가 개최됐던 동백섬의 누리마루다. 당시에 아이들과 함께 갔다. 우리는 3남2녀를 낳고 키웠다. 아들은 행곤, 성곤, 흥기이며 딸은 매곤과 해곤이다. 곤자 돌림인데 막내만 흥기인 이유는 흥기가 태어났던 해에 처음으로 땅을 구입해 ‘일 흥’(興), ‘일어날 기’(起)로 지었다. 덕분인지 그 후로도 일이 잘 풀렸다.
2005년
문화예술과 함께한 나의 삶
네 번째 사진은 아버지학교에서 스탭(노래팀장)으로 섬기며 전병구 충서아버지학교 지부장님 등 스탭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사진이다.
나는 2005년에 당진시가 주최하고 당진감리교회 행복한가정학교가 주관한 제1회 당진열린아버지학교를 수료하고 지금까지 수 십여 회의 아버지학교 노래팀장으로 섬기며, 이 시대 아버지들의 사명과, 영향력 등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아버지의 문제라는 인식 위에 올바른 아버지상을 추구하며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에 아버지를 되돌려 보내자는 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버지학교이다.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에 참여하실 독자를 기다립니다. 전화:355-5440 / 010-9401-8410
2007년
김인상순성면 봉소2리 이장
인심 좋은 우리 동네 ‘봉소2리’
두 번째 사진은 2007년 가족들과 중국 상하이로 여행 갔을 때, 윤봉길 의사가 의거한 홍커우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중국 상하이는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떠난 첫 해외여행지다. 그동안은 시간이 맞지 않아 가족여행을 다녀오기가 어려웠다. 당시에도 아들이 군 제대 후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다녀온 것이다.
2007년
이승호원 커뮤니케이션 대표
“아내를 위한 황토집을 짓다”
세 번째 사진은 2007년에 처갓집 식구들과 경주 2박3일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경주 외에도 제주도, 중국 등 처갓집 식구들과 여행을 다니며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이 여행은 처가 부모님과 형님네, 처제네 그리고 나와 아내가 모두 함께한 뜻 깊은 여행이었다. 평소 처가 부모님과 일주일에 두 세 번은 함께 식사도 하고 여행을 하는 등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
2008년
김인상순성면 봉소2리 이장
인심 좋은 우리 동네 ‘봉소2리’
세 번째 사진은 전남의 백양사에서 찍은 사진이다.
백양사는 백암산에 위치한 사찰인데, 단풍이 유명하다. 이 사진은 2008년 10월 경에 직은 사진인데, 이날 아침에 나들이 가자고 해서 아내와 백암산 인근을 찾았고, 풍경이 멋져 사진을 찍게 됐다. 나는 2007년 흉부 종양 수술을 받았다. 이때가 회복기라 틈만 나면 등산을 가곤 했다. 사진 속 아내는 나를 간호하느라 많이 야윈 모습이다.
한편 아내와 나는 대학생 때 만났다. 독서토론 등 활동을 하는 학생모임에서 만났고,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됐다.
2009년 이야기
박기원동서식품 대리점 골드상사/밝은사회 당진클럽 회장
"막내딸에겐 미안한 사진첩"
두 번째 사진은 30대 초반에 찍은 사진으로 회사에서근무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성상사라는 회사에서 5년 간 근무하다가 인수해 지금의 동서식품을 차리게 됐다. 지금은 사업이 번창해 홍성, 예산 등 대리점을 넓혀갔다. 대리점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세월이 정신없이 빨리 지나갔음을 새삼 느낀다.
세 번째는 많이 보고 싶은 군대 동기들의 사진이다.(왼쪽 두번째가 나다)
깡통막사라고 불리는 내무반에서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전방에서 근무를 했는데 전방은 암석을 뚫고 내무반을 설치해 공간 자체가 둥글다. 그래서 내무반을 깡통막사라고 부른다. 군대 동기들이 다들 전국에 흩어져 살아서 얼굴 본 지가 아주 오래됐다. 같이 많은 고생을 해서 지금도 보고 싶은 사람들 중 하나가 군대동기들이다.
10년 전
류기환전 합덕청년연합회장/합덕프라자 대표
[류기환 전 합덕청년연합회장/합덕프라자 대표] 7자매의 첫째였던 아내
두 번째 사진은 내 아내와 처제들과 찍은 사진이다. 합덕읍에서 유명한 7공주의 장녀였던 아내(김미란)는 내 바로 뒤에 서 있고 막내 2명의 처제는 이 사진에 없다. 6명의 처제 모두 지금은 서울 등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 시집을 가지 않는 처제도 있다. 7자매의 맏사위로 최선을 다했는데 부족한 점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처제들이 오히려 부족한 매부를 많이 믿고 따라줘서 고맙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진은 우리 가족들과 찍은 것이다. 세 번째 사진은 10년 전 찍은 건데 뒤에 있는 딸(지은)이 어느새 장성해 듬직한 숙녀가 되었다. 네 번째 사진의 아들(관무)녀석은 가끔 개구쟁이 같지만 합덕초등학교에서 야구부 선수 생활을 하고 합덕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전교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제 몫을 다해내고 있다.
2011년 이야기
이호천송악고등학교 교사
“가방 안에서 김치국물 흐르던 시절”
두 번째 사진은 1981년 단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할 당시다. 중3 때 처음 만난 아내와 지금은 곁에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과 찍은 사진이다. 아내가 옛날부터 운동을 참 잘했다. 투포환을 하는데 남학생처럼 멀리 던졌고 남학생끼리 하는 배구 시합도 함께 할 정도였다. 아들이 엄마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회사에 입사해서 야구부를 만들 정도로 운동을 잘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강운선당진시 읍내동
“35년간의 당진 공무원 생활”
두 번째 사진은 가족들과 태안 신진도에 여행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곧잘 가족여행을 떠나곤 했다. 주말이면 도비도, 만리포, 학암포 등 여러 곳을 다녔다. 세 아이 모두 호서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큰 딸(희경)과 둘째(민정)는 시집 가서 타지에 나가있고 아들(태헌)은 당진에서 일을 하고 있다.
2011년 이야기
편명희당진군의회 의원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
‘이웃에 봉사하는 마음’
세 번째 사진은 큰애와 작은애의 소풍때 사진이다. 당시 큰애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으며 작은애가 1학년이었을 때다. 당시 큰애가 엄마와 떨어져 소풍가는 것이 싫어 크게 울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1학년과 2학년이 같은 곳으로 소풍을 갔다. 두 살이 채 안된 막내와 셋째를 안고 소풍을 가 찍은 사진이다. 빨간 내복을 입고 품에 안겨 있던 막내가 이제는 34살의 결혼한 주부가 됐다.
2011년 이야기
강우영바르게살기운동 당진군협의회장
“사진은 사람의 인생을 반영한다”
세 번째 사진은 부여 백마강의 고수부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고수부지 부근에는 유채꽃이 가득 피어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 왼쪽 끝에서부터 나와 내 아내(김성례), 주영권씨의 부인, 바르게살기당진읍 이기용 위원장의 부인, 주영권씨, 이기용 위원장이다.
사진의 하단 부분에 기록된 ‘만난 날보다 만날 날이 길기를 기대하며 추억하고 싶은 날들...’이라고 쓰여진 문구도 인상적이다.
2011년 이야기
홍천표전 당진군농업기술센터 소장
“월남전 파병의 기억”
세 번째 사진은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내(이숙영)와 두 딸(지원, 지혜)과 함께 찍은 것을 보니 가족들과 나들이를 갔던 것 같다. 큰 딸은 지금 결혼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과장으로 일하고 둘째딸은 대호지면사무소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1년 이야기
신창재당진우리신협 이사장
“날 구제해 준 고마운 아내와의 결혼식”
네 번째 사진은 부모님 생전에 5형제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모두 8남매인데 내가 5형제 중 셋째다. 붕어빵처럼 닮은 얼굴도 그렇고 키도 모두 고만고만한 것이 영락없는 형제다. 어렸을 적에는 어려운 살림에 8남매를 키우느라 부모님이 고생하셨는데 지금은 모두 잘 자라 제몫을 하고 산다. 형제가 많으니 살면서도 힘이 되고 즐거운 일이 많다. 천안과 서울, 당진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은 매년 조부모님과 부모님 기제사 때마다 모인다.
2011년 이야기
최대성석문농협 조합장
“농협과 함께했던 젊은 날”
세 번째 사진은 가족들과 서울대공원에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큰 딸(최희준)은 현재 전라도에서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고, 큰 아들(최창현)은 송산농협에서 근무 하고 있다. 둘째 아들(최종현)은 서울의 씨티은행에 다닌다. 특히 큰 딸의 이름은 당시 ‘하숙생’, ‘인생은 나그네길’ 등의 히트곡을 남겼던 가수 이름과 같다. 당시 복스럽게 생긴 외모가 닮아 일부러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진 속 내 머리가 긴편인데 당시 비틀즈의 모습에 반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장발이 유행이었다.
둘째 딸이 박사학위를 받은 날
강운선당진시 읍내동
“35년간의 당진 공무원 생활”
세 번째 사진은 둘째 딸이 박사학위를 받은 날 찍은 사진이다. 동국대에서 석사까지 마친 딸 아이가 시집 간 후에도 계속 공부를 해 결국 컴퓨터공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겨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고생한 딸이 무척 대견스러운 날이었다. 우리 부부 옆에 딸과 사위, 손녀가 함께했다.
어머님의 회갑 잔치 때
김동헌당진군체육회 부회장
“아버지 이어 이장 활동 뿌듯”
마지막 사진은 어머님의 회갑 잔치 때 세 살난 아들 덕환(왼쪽)이와 네 살난 딸 명환(오른쪽)이를 찍은 사진이다. 지금 우리 딸이 43세, 아들이 42세니 약 40년 전 사진이다. 지금 명환이는 서산으로 시집갔고 덕환이는 신평면 거산리에 거주하며 나를 도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두 아들 딸이 이제는 장성해 내게 손자와 손녀를 안겨줬다.
2011년 이야기
조규자순성면 새마을부녀회장
[조규자 순성면 새마을부녀회장] 하키선수 시절을 그리며
네 번째 사진은 우리 가족 사진이랍니다. 이 사진도 7년이나 됐네요. 두 남매(보라/22, 종성/19) 모두 잘 자라주어 고맙다는 마음 뿐이고 어려운 시절도 많았는데 모두 이겨내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남편도 고맙네요.
2011년 이야기
김봉규당진고구마연구회장
"만수예식장서 결혼하던 32년 전 그날"
네 번째 사진은 사랑하는 우리 가족 사진이다. 아들이 12살, 딸이 10살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만해도 3남매 이상은 기본이었는데 내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다(웃음). 장소는 지금은 사라진 관학농장이다. 합덕 묵성리에 있던 관학농장에서는 지역 사람들이 야외결혼식도 했었다. 꽃도 많고 잔디도 좋아 나들이를 자주 갔었다.
2011년 이야기
이금돈한국민속예술협회 당진지회장
“농악에 내 인생을 걸었다”
네 번째 사진은 두 아이와 함께 합덕수리박물관에 놀러 갔을 때 모습이다. 결혼이 늦어 아이들도 늦게 낳은 편이다. 빨리 결혼한 친구 중에는 손자를 본 경우도 있다. 큰 아들(승찬, 8살)과 둘째(정훈, 6살) 모두 합도초를 다니고 있다. 농악에 몰두하느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 미안한 마음이다.
2012년
황정옥대한적십자사 당진2동 봉사회 회장
"며느리와 함께한 첫 여행"
첫 번째 사진은 지난 2012년 여름,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전남 담양으로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항상 남편과 둘이 여행하다 며느리를 맞이하고 처음으로 넷이 갔던 여행이라 더욱 뜻 깊었다. 아들이 직접 짠 여행코스대로 돌아다니는데 뿌듯하고 대견했다. 내가 보살펴야 했던 아들이 이젠 나와 남편을 보살필 정도로 컸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며느리도 성격이 좋아 딸이 하나 생긴 기분이었다. 이후에도 동해안, 전북 순창 등 가족여행을 자주간다.
2012년
정제훈전 정미면 수당리 이장
"아내와 함께한 여행"
마지막 사진은 2012년 순천으로 가족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가족은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다. 올 해 명절에는 3박4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엔 자녀들이 내 나이 70세를 기념에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14살이 된 쌍둥이 손녀들과 삼남매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여느 여행보다 더욱 의미가 있었다. 가족여행을 통해 가족 간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시간을 보냈다.
>> 정제훈 전 정미면 수당리 이장은
·1947년 정미면 수당리 출생(만 69세)
·운산초 졸업
·전 정미면 수당리 이장
·전 전국이통장연합회 당진시지회 부회장
·전 정미면이장단협의회장
·현 정미농협 이사
2012년 이야기
김진선전 시곡초등학교 교장
"사진이 없던 시절, 화가가 그린 그림"
첫 번째 사진은 조부모 회갑 때 화가가 직접 방문해 그린 그림이다. 얼핏 보기에는 꼭 오래된 사진 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이다. 당시에는 사진기도 없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사진을 찍을 상황에서는 화가들이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비록 내 추억이 담긴 사진은 아니지만 세월이 흘러 간편하게 사진을 촬영하는 지금 시대에서는 생각지 못할 일이라 소개하고자 한다.
2012년 이야기
김복수수복회관 대표
“여행은 내 삶의 즐거움”
첫 번째 사진은 가족들과 덕산 리조트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아이들은 탑동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손자와 1학년 손녀다. 큰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한다. 얼마 전 탑동초등학교 축구부가 당진에서 우승을 해 다음경기를 치르러 서산에 갔다. 경기 시작 전 큰 아이가 아빠랑 약속을 한가지 했는데 “축구에서 이기면 축구만 하고, 축구에서 지면 공부만 해”라고 했단다. 작은 아이는 새침떼기다. 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동네 또래들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더니 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가 많아졌다. 어떻게 친구를 사귀는 건지 궁금할 정도다. 둘 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사진은 나와 남편(조만석)의 환갑을 기념해 제주도로 여행 갔던 사진이다. 남편은 한살 연하로 내 환갑 때도 제주도, 이듬해에도 제주도에 다녀왔다. 두 번째 사진 속 교복은 예전 교복이랑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다시 입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남편과 나는 중매로 만났다. 남편의 진실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고 그 모습이 지금까지 쭉 지속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지금 삶에 만족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2년 이야기
권찬호채운동
“과거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
첫 번째 사진은 고향집에 살았던 당시 큰아들(권병서)와 함께 석문방조제에서 찍은 사진이다. 석문방조제가 생기기 이전에는 굴이며 낙지, 실치 등 다양한 수산물을 직접 접할 수 있는 당진의 명소였다.
2012년 이야기
“지나간 추억을 감사히 여기며”
첫 번째 사진은 딸(강정아)과 함께 석문면 장고항 부근에서 찍은 사진으로 기억된다. 벌써 딸 아이도 성장해 40대에 들어섰다.
사진의 모습은 장고항과 용무치항이 개발되기 전의 모습이다. 당시만해도 단순히 넓은 바닷가라는 이미지가 강해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2012년 이야기
오영환순성면개발위원회 위원장
“고된 농사일 끝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두번째 사진은 큰아들(오세정)이 4살 때 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렇게나 어렸던 아들이 이제는 세월이 흘러 서울 세중나무여행사에서 근무 중이며 가정을 이루고 5살의 손주까지 안겨 줬다.
2012년 이야기
김동관석문면 장고항리 유미자 부부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두 번째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장모님의 조언과 도움으로 용무치에서 멍텅구리배를 운영하면서 아내와의 혼담이 오고 갔고 결국 결혼해 한 가정을 이뤘다. 큰아들 김정훈(사진 우측), 둘째 김정호(사진 좌측), 막내 딸 김론정(사진 중앙)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성인이 된 두 아들은 필리핀에서 골프연습장 사업을 진행 중이며 막내딸은 대전의 한 백화점에서 의류코너를 운영 중에 있다. 막내딸이 태어나고 면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할 당시 혜정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를 표기해 서류를 제출했지만 착오가 생겨 론정으로 이름이 바뀌게 됐다.
10여 년 전
박미자고대면엄마순찰대 대장
“자식 향한 부모 마음은 누구나 같다”
두 번째 사진은 10여 년 전 늦둥이인 막내 태은이의 백일 사진이다. 태은이의 출산을 앞두고 어깨를 크게 다쳐 수술을 해야만 했다.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다 노산이라 힘든 과정도 겪어야 했기 때문에 담당 의사와 주변인들로부터 출산을 다시 한 번 고려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지 않을까? 주변인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출산을 강행했고 지금은 막내 태은이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2012년 이야기
김미자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사무국장
“세월 흘러 인물도 교정도 변화해”
두 번째 사진은 친정 가족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큰 언니(김윤자, 세 번째 줄 우측 끝)가 신혼여행을 다녀와 가족들과 함께 찍었던 기억이다. 구 당진2청사 뒤편에 위치해 있던 집 마당에서 얼마나 급하게 사진을 찍었는지 양말도 신지 못하고 허둥지둥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현재 큰 언니는 인천에서 생활하고 있다. 1남5녀의 형제자매 중 다섯째 (김남호)는 신평파출소에 근무 중이며 막내(김미정)는 원당동에 살고 있다. 나머지 자매들은 당진이 아닌 타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2012년 이야기
김진선전 시곡초등학교 교장
"사진이 없던 시절, 화가가 그린 그림"
두 번째 사진은 아들(서울·김훈기)이 어릴적에 함께 찍은 사진이다. 키가 내 허리에도 미치지 못하게 작고 귀여웠던 아이가 벌써 환갑이라니 세월 참 빠르다.
지금 아들은 서울에 거주 중이며 대성산업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다.
2012년 이야기
남준우당진산업가스 대표
“오토바이의 매력에 빠져 있던 젊은 시절”
세 번째 사진은 어머니(맹대희, 사진 왼쪽), 누나(남현자, 사진 중앙)와 함께 내장산 등산을 하며 찍은 사진이다. 가을철 날씨가 제법 매서웠지만 아름다운 경치가 몸과 마음을 달래줬다. 어머니, 누나와 함께 산도 오르고 케이블카도 타면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즉석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다.
약 10여 년 전
박용길충남모범운전자연합회 당진시지회장
“당진 시가지를 달리던 택시 행렬”
세 번째 사진은 안면도 꽃박람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약 10여 년 전에 찍은 사진인데 벌써 큰아들(박철수)이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사진 속의 아내(유재복)는 나와 함께 희노애락을 느끼며 세월을 보내 지금은 어엿한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아내 앞의 어린 아이는 막내 딸(박보람)이다.
2012년 이야기
김재각전 고대면발전협의회장
“술취한 사진사 때문에 결혼식 사진 없어”
세 번째 사진은 여동생의 결혼식 사진이다. 이 당시는 전통혼례를 치루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결혼식은 신부집에서 진행하고 첫날밤 이후 신랑집에서 잔치를 열었다. 예전의 결혼식은 지금보다 훨씬 번거로웠다. 음식도 직접 준비해야 하고 술에 취해 떠드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결혼식 사진이 없다. 당시의 사진사가 술에 취해 사진의 초점을 맞추지 못한 채 촬영을 했기 때문이다. 처가댁이 예산이었는데 예산 술이 독했나보다.
2012년 이야기
김종성 전 고대면농업경영인회 회장영주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절
세 번째 사진은 대호방조제를 막은 후 논을 개간하기 전 딸아이와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다. 이 때 아내는 괌에 있었다. 아내는 자녀초청으로 영주권을 얻기 위해 우리는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딸아이의 호적을 등록하러 갔을 때 호적계장이 엄마이름을 말하라고 했으나 어떤 여자와 연애를 했지만 아이만 내게 오고 누가 엄마인지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다.
2012년 이야기
권찬호채운동
“과거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
네 번재 사진은 SBS라디오 DJ 철이의 ‘아자아자1035’라는 프로그램 방청 시 찍은 사진이다. 친구로 지내던 DJ 철이의 초청을 받아 라디오 방송국을 방문했다. 아들과 함께 방문해 방송국 구경도 하고 라디오 프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생생히 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구도 만나고 아들에게도 뜻 깊은 시간을 만들어 줄수 있어서 좋았다.
정리 김창연 기자
회갑잔치
이진섭석문면 교로2리
“바다는 삶의 터전”
세 번째 사진은 회갑잔치를 맞아 일가 친척들과 함께 모여 찍은 사진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가족들이 항상 큰 힘이 되어줬다. 내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들이 있기에 지금의 나도 있다고 생각한다.
2012년 이야기
고대 옥현리 고향집에서의 추억
세번재 사진은 아버님의 환갑 때 고대면 옥현리 고향집에서 찍은 사진이다.
내 품에 안겨 있는 작은 꼬마아이가 현재 동부제철에 근무 중인 아들 희상이다. 사진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둘째 딸 혜진이는 현재 당진시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느 덧 두 아이가 장성해 사회인으로서 활동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2012년 이야기
“친구·모임·가족, 삶을 살아가는 행복”
세 번째 사진과 네 번째 사진은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어느덧 귀여운 두 딸(첫째 지선, 둘째 지희)이 자라 예전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아직도 내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딸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반쪽인 아내(박수희).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만들어 주고 다듬어 준 그녀가 있음에 감사한다.
2012년 이야기
이광휘당진시재향군인회 신평면 회장
“부모사랑은 말이나 글로 표현 안돼”
네 번째 사진과 다섯 번째 사진은 둘째 아들(이규환)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둘째 아들이 점차 성장하는 모습과 시간이 지나 성장한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 주는 사진이 아
닌가 싶다. 부모로서 자식을 키우는 마음이야 모두가 마찬가지다. 애지중지 키우면서도 자립심 있는 강한 성인으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말로나 글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다. 항상 건강히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길 아버지로서 멀리서 지켜 볼 뿐이다.
어린 시절
서용석합덕읍 신촌리
“소소한 추억처럼 전통문화 잊혀질지 몰라”
네 번째 사진은 사랑하는 쌍둥이 아들(서도원, 서용원) 사진이다. 얼마 전 쌍둥이 중 한 명인 아들 서용원이 사제 서품을 받아 합덕성당에서 첫 미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큰아들(서기원) 사진에 함께 나오지 않아 아쉽지만 장성한 모습이 담긴 사진보다는 어린 시절의 모습이 감회가 새로워 이 사진을 소개하게 됐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도 겪으며 인내하고 성장하는 일도, 웃고 즐기며 행복해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가장 가깝고 기본적인 구성원이 바로 가족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가족 모두의 행복을 바란다고 전하고 싶다.
2012년 이야기
송영우당진유리 대표
“옛 당진 시가지, 지금은 상상도 못해”
네번째 사진은 어머님과 단 둘이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온양의 현충사에 가는 길이었다. 당시에는 차가 귀해서 아는 지인에게 임대료를 지불하고 차를 빌려 다녀온 기억이다.
지금은 온양까지 곧게 뻗은 도로로 금방 갈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오랜시간 달려야만 도착할 수 있었다.
13년 전 개업식 때
김낙찬대우광고산업 대표
“광고와 함께한 30여 년의 세월”
네 번째 사진은 아버지와 함께 13년 전 개업식 때 찍은 사진이다. 지난해 사업장을 행정리로 이전해 수목간판을 만드는데 매진하고 있다. 수목간판은 나무를 깎아 만든 간판으로 친환경적인데다 도시미관을 해치지 않는 장점을 갖고 있다.
최근 아버지께서 몸이 많이 편찮으셔 마음이 아프다. 조금 더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항상 마음만 앞선다.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께서 건강을 되찾으시길 바란다.
정리 김창연 기자
2012년 이야기
김종성 전 고대면농업경영인회 회장영주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절
네 번째 사진은 괌에서 지낼 때 딸아이와 찍은 사진이다. 괌은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5년 정도 지내다보니 고향생각이 났다. 그래서 아내와 나, 딸은 영주귀국을 결정했고 영주권 포기신청을 하러 영사관에 갔는데 포기신청양식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사관 직원은 딸아이의 영주권이라도 남겨놓으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것 같다. 만약 딸아이가 미국으로 다시 간다면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게 됐을테니 말이다.
정리 서보람 인턴기자
2012년 이야기
“지나간 추억을 감사히 여기며”
네 번째 사진은 아내와 딸, 사위(성낙청)와 함께 신성대학교 캠퍼스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나는 지역사회 지도자과정을 신성대에서 이수했다. 늦바람에 시작한 공부로 나는 비로소 학사모를 쓸 수 있었다.
2013년
강규희읍내동 여성의류 전문점 입는 기쁨 대표
“해처럼 별처럼 살자”
세 번째 사진은 2013년 당진문화예술학교 벨리반 발표회 때 딸들과 찍은 사진이다. 큰딸 지유가 벨리댄스를 배운 지 4년이 됐다. 자신감이 부족한 지유에게 자신감을 키워주고자 당진문화예술학교 벨리반에 등록했다. 이후 지유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이를 계기로 지유는 지금까지 벨리댄스를 배우고 있으며,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고 공연이나 행사에서 벨리댄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공부하랴 춤추랴 24시간이 모자라지만 열심히 하는 딸을 보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지유가 지금처럼 자신의 꿈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주길 바란다.
2013년 이야기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한 시간
첫 번째 사진은 부모님(부 한춘수, 모 강은수)과 8남매들의 사진이다. 용현리가 고향인 나는(사진 오른쪽 가운데) 군청 산림과에 근무 하던 아버지 밑에서 8남매와 함께 자라났다. 당시에는 흑백사진기도 귀해 일반 가정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산림과에 근무하며 벌목이 진행된 곳을 자료로 남기기 위해 사진기를 갖고 있던 아버지는 자주 우리 가족을 사진에 담아 내곤 하셨다.
2013년 이야기
“적십자 가족과 함께한 세월”
첫 번째 사진은 조카의 결혼식을 치른후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서울 숲 공원에서 딸들과 사위들, 손자, 손녀들이 한자리에 모여 촬영했다. 남편(이홍근)은 촬영하느라 사진에 나오지 못했다.
2013년 이야기
조병갑당진행정동우회 사무국장
“아름다웠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첫 번째 사진은 아들 찬형의 대학원 졸업식 사진이다. 아내가 두살박이 손녀딸을 안고 며느리는 사진을 찍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아들은 직장에 다녀가며 졸업증을 땄다. 항상 노력하며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룬 아들이 자랑스럽다.
30여 년 전
김영애행정리 푸드뱅크 대표
“어머니에서 할머니가 되던 날”
첫 번째 사진은 결혼하고 아이들과 찍은 가족사진이다. 시누이와 시어머니도 함께 찍었는데 벌써 30여 년 전이다. 당시 7살이던 큰 아들 운주는 지금 43살이다.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났다.
결혼 후 남편과 새마을 청소년 학교를 운영했다. 당시에는 중·고등학교를 못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한 글자라도 더 가르치고 싶어 학교를 열었다. 학교운영을 그만 둔 후에는 유치원 원장을 했다.
2013년 이야기
이범욱읍내동
"자식 커가는 재미에 흠뻑”
첫 번째 사진은 도비도 연수원으로 가족끼리 야유회를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유난히 가족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딸인 은선이는 당시 10살이었고, 아들인 현종이가 8살이었다. 어디론가 놀러갈 때마다 유난히 좋아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 3학년 때
양기철신성대학교 학사지원부 음악 교수
“문화예술에 바친 한평생”
첫 번째 사진은 중학교 3학년 때 조모(권재영)의 고희연을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구룡리 757번지에 위치한 본가 마당에서 가족들과 조모의 고희를 축하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쉽게도 중학교 당시 찍은 사진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다. 나는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2대 독자로 집안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특히 조모의 관심을 듬뿍 받았다.
2013년 이야기
“봉사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두 번째 사진은 밝은사회당진클럽 회장 취임식 날 은사님(이창구) 그리고 내 딸(송보경, 25)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딸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 많은 경연대회에서 입상하고 경기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려서부터 객지서 홀로 공부한 딸인데도, 사춘기라는 것을 모르고 속 썩인 일 한번 없이 착하게 자랐다. 취임식 날에도 바이올린 연주로 취임을 축하해줬다.
이창구 선생님은 학창시절부터 나를 매우 예뻐해 주셨다. 제대 후 당진에 터를 잡게 되었을 때부터 명절 때마다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있다. 사진에는 없지만 호서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이완상 선생님도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셨다.
2013년 이야기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두 번째 사진은 사랑하는 두 딸(큰 딸 강도윤, 막내 강경빈)의 사진이다.
솔뫼성지에서 진행된 메뚜기 축제에 참여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업체운영과 사회활동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두 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딸 선하를 임신하고 있던 시기
“가족과 함께한 시간들”
두 번째 사진은 어버이날을 맞아 친정 어머니(고 이철희)를 모시고 남편과 함께 시댁에서 찍은 사진이다. 가슴에 카네이션도 달고 흡족해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 나는 딸 선하를 임신하고 있던 시기였다. 시부모님께 배가 불러오는 모습을 보이기 부끄러워 호서고에 다니던 시누이의 체육복을 빌려 입고 살다시피 했다. 대문에 살짝 모습을 비친 분이 바로 시아버지(고 차상연)다.
2013년 이야기
오명숙읍내동 민속떡집 대표
“남편과 함께한 행복한 나날”
두 번째 사진은 용인자연농원으로 놀러갔을 때 사진이다. 가족들이 모두 함께 갔던 나들이였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나와 남편의 형제, 자매와 그 가족들이 모두 갔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대규모 인원에 다른 사람들도 놀라긴 놀랐을 것 같다.
2013년 이야기
이범욱읍내동
"자식 커가는 재미에 흠뻑”
두 번째 사진은 변산반도 채석강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사진이다. 아이들의 겨울방학 때 2박 3일간 떠났는데 저때는 겨울의 찬 바닷바람을 맞아도 가족끼리 꼭 붙어있어 추운 줄도 몰랐다.
2013년 이야기
쌍둥이 딸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날
두 번째 사진은 사랑스러운 딸(앞좌석 언니 단비, 뒷좌석 동생 은비)들의 모습이다. 쌍둥이 두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다닐 때면 “아들이냐”는 질문을 어찌나 들었던지. 아이들이 머리카락이 자라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기 전까지 많은 오해를 받았다.
대학생 시절
“시인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한 가족들”
두 번째 사진은 대학생 시절, 100세의 연세에 고인이 되신 외할머니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외할머니는 딸 일곱을 내리 낳고 아들 셋을 마지막으로 낳으셨다. 유교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안동에서 살면서 가슴앓이를 많이 하셨다. 외할머니는 이 한을 노래로 직접 지어 부르셨는데 그 노래가 고루 퍼져 안동 내방가사(조선 시대에 주로 양반가의 부녀자들이 지은 문학의 한 형태로 규방가사, 규중가도로도 불림) 보급의 일인자가 되셨다.
사진에서는 셋째 이모 넷째 이모,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늘 글을 잘 쓰는 나를 칭찬해 줬던 기억이 벌써 25년 전 일이 됐다.
학자셨던 외할아버지를 통해서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 선생의 한시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안동소주에 얼큰하게 취하신 날이면 시조를 읊어 주셨는데 안타깝게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다. 어려서부터 내가 글을 쓰면 일기장과 작은 편지까지 모아 두셨던 어머니의 정성과, 내가 쓴 시를 낭송하게 하셨던 아버지의 사랑, 친가·외가의 환경이 오늘날까지 글을 쓰게 만든 계기가 된 것 같다.
2013년 이야기
염윤상당진시임업후계자영농종합법인 대표
“빠른 세월에 야속함 느껴”
세 번째 사진은 처가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장인(박계훈, 사진 앞줄 맨 왼쪽)과 큰처남(박동주)이 세상을 떠나 논이 되어 버린 곳이다. 아내(박동월, 사진 앞줄 가운데)의 추억이 가득 담긴 집이 이제는 사라져 많이도 아쉬워 했다. 사진속에는 지금은 성인이된 두 아들과 둘째 처남(박동석, 사진 뒷줄 맨 왼쪽), 넷째 처남(박동진, 사진 뒷줄 가운데)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에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셋째 처남(박동열)은 당진에서 법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이야기
진흙탕 등굣길도 기쁘던 시절
세 번째 사진은 큰 딸 은수와 둘째 딸 지수의 어린 시절 사진이다. 평소 차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나를 쏙 닮아 자동차라면 울음도 그치던 아이들이었다.
이런 아이들 때문인지 자동차에 빠진 나 때문인지 지금까지 수십대의 차량을 바꿔왔다. 3년 이상을 탄 차량은 단 두대 뿐일 정도니 말이다. 아마 차만 자주 바꾸지 않았어도 많은 돈을 벌었을지 모른다.(웃음)
딸 선하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한 시간들”
세 번째 사진은 딸 선하의 어린 시절이다. 그 뒤로는 멍석 위에 고추며 콩 등을 널어 건조시키는 모습과 송아지, 지게의 모습이 농가 풍경 그대로를 잘 보여 주는 사진이다. 농촌에서는 큰 놀이감을 구할 수 없었다. 자연이 친구이자 놀이감이었다. 딱히 장난감이 없었지만 맨드라미를 꺾어 마당에 앉아 놀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이후 막내 재왕이가 태어났고 둘은 때로는 남매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우애 깊게 자라줬다.
2013년 이야기
염윤상당진시임업후계자영농종합법인 대표
“행복과 영광의 발자취”
세 번째 사진은 큰 딸 호진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이다. 뒤로는 계성초등학교의 당시 모습이 찍혀 있다. 딸들이 한 명 씩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넷이나 되는 딸들이 모두 졸업했지만 큰 딸의 졸업식은 처음이니 만큼 가장 기억에 남아 있다.
2013년 이야기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한 지난 날”
세 번째 사진은 작은 딸 소영의 돌사진이다. 아내와 같이 앉아 있는 건 큰 아들 상윤인데 지금은 옥천공고에서 배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딸 소영이는 지금 면천중학교 2학년인데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단다.(웃음) 바르게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다. 앞으로도 꿈을 키워나가길 아빠로서 당부하고 싶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조재웅시곡동 더부러 주 대표
"오징어 가면 쓰고 함 팔던 시절"
세 번째 사진은 결혼하고나서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찍은 사진이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 수진이와 찍었는데 딸아이는 어느덧 훌쩍 자라서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이 됐다. 아내는 서울에서 동창의 소개로 처음 만났는데 결혼할 때 장인, 장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아무래도 당진이 시골이었다 보니 딸이 농촌으로 시집가 고생할까 걱정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결혼 승낙을 받아 지금은 이렇게 잘 살고 있다.
2013년 이야기
이범욱읍내동
"자식 커가는 재미에 흠뻑”
세 번째 사진은 춘천 남이섬을 도는 유람선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이들도 자라 각각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이 됐을 때다.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사진이다. 어디서 찍었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나다가 뒤에 섬들을 보고 떠올릴 수 있었다.(웃음)
2013년 이야기
쌍둥이 딸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날
세 번째 사진은 단비와 은비의 유치원 재롱잔치 사진이다. 내 손으로 직접 화장도 하고 머리도 꾸며준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머리스타일이며 옷, 신발까지 똑같이 꾸며줬다. 3학년이 되면서부터 각자의 취향에 맞게 머리도, 옷도 꾸미고 다녔다. 내 눈에는 닮았어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똑같이 옷을 입혔던 것 같다.
2013년 이야기
“어머니이자 아내로 고생한 아내”
세 번째 사진은 둘째딸과 셋째딸이 우리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큰딸과 막내아들은 사진에 나오지 못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큰딸과 둘째딸은 출가하고 두 아이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이제 명절이나 부모의 생일이 아니고서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수다 떨기란 쉽지 않다.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다.
남편의 칠순잔치 때
한득선채운동
“당진전통시장에서 보낸 50년”
세 번째 사진은 남편의 칠순잔치 때다. 남편은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폐질환이 생겨 많이 아팠다. 몸에 좋다는 약도 백방에서 구해보고 별별 방법을 다 써봤는데도 낫지 않았다. 남편을 병수발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던지 예산보건소장의 소개로 서울중앙 의료원에서 수술을 받고 다행히 건강이 회복됐다.
4년 전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
네 번째 사진은 4년 전 친구 내외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다. 오래간만의 가족 여행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산일출봉에서 아내(남기순), 딸(이서영), 아들(이태민)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이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사진을 보며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정리 전수진 인턴기자 jsj1510@gmail.com
20년 전 남편의 환갑 때
“나보다 이쁜 남편 모습 아직도 생생”
네 번재 사진은 20년 전 남편의 환갑 때 찍은 사진이다. 우리 부부의 손에 이끌려 사진을 찍고 있는 아이가 장손(김영래)이다. 호서고를 졸업해 고려대 법대에 진학한 장한 내 손자다. 벌써 23세가 되어 당진등기소에서 군복무를 하고있다. 장한 손자 생각만 하면 언제든 신이 난다.
2013년 이야기
진흙탕 등굣길도 기쁘던 시절
네 번째 사진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큰 딸 은수의 졸업식을 기념해 함께 찍은 사진이다.(사진 왼쪽부터 나, 둘째 딸 지수, 막내 승민, 큰 딸 은수, 아내 김은선)
지금 은수는 연세대를 졸업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북부 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둘째 딸 지수는 중학교 때부터 대학졸업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한국항공대학교를 올해 졸업했다. 의대를 보낼 생각이었는데 한국항공대에 지원할 때는 속도 상했지만 지금은 자랑스럽기만 하다. 막내 승민이는 중학교 올해 2학년에 올라갔다. 앞으로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 주길 바란다.
2013년 이야기
“가족과 함께한 시간들”
네 번째 사진은 가족들과 함께 난지도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남편은 비록 사진을 찍느라 함께 나오지는 못했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추억 중 하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두 팔을 벌려 행복해하는 나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해맑다.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에 참여하실 독자를 기다립니다. 전화:355-5440 / 010-9401-8410
2013년 이야기
조재웅시곡동 더부러 주 대표
"오징어 가면 쓰고 함 팔던 시절"
네 번째 사진은 설에 식구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다. 9남매와 그 가족들이 모두 모이면 성묘 갈 때도 버스 한 대가 꽉 찰 정도다. 당시에는 명절 내내 식구들이 모여 정겹게 시간을 보냈었는데 요즘은 명절 당일만 보내고 다들 흩어져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 사진속으로 추억속으로에 참여하실 독자를 기다립니다. 전화 : 355-5440 / 010-2911-2271
손자의 돌잔치 때
김영애행정리 푸드뱅크 대표
“어머니에서 할머니가 되던 날”
네 번째 사진은 손자의 돌잔치 때 사진이다. 둘째 아들인 봉주가 나와 남편에게 첫 손자를 안겨 주었는데, 어머니, 아버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을 때의 기쁨과 설렘이 녹아있는 사진이다. 첫 손주라 그런지 항상 보고 싶고, 볼 때마다 두근두근했다.
※ 사진속으로 추억속으로에 참여하실 독자를 기다립니다. 전화 : 355-5440 / 010-2911-2271
2013년 이야기
이범욱읍내동
"자식 커가는 재미에 흠뻑”
네 번째 사진은 아들 현종이가 군대가기 전 가족끼리 단풍여행 갔을 때 사진이다. 딸도 아들도 어느 덧 자라 성인이 됐다. 아들이 입대하던 날 아내는 펑펑 울었다. 나는 남자라면 한번은 가야 할 군대라 생각해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속으론 아들의 빈 자리가 매우 아쉬웠다. 나에게 가족이란 전부다. 얼마 후면 딸이 결혼을 한다. 잘 자라준 자녀들에게 고맙기만 하다.
※ 사진속으로 추억속으로에 참여하실 독자를 기다립니다. 전화 : 355-5440
2013년 이야기
쌍둥이 딸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날
네 번째 사진은 남편(한상영)과 시어머니, 두 딸과 함께 참여한 상록문화제에서 찍은 사진이다. 해마다 행사에 참여하며 부스에서 가족사진을 찍었고 축제도 즐기며 가족애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쌍둥이 딸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날일부러 감춰두기라도 한 것처럼 꽁꽁 숨겨 있던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 이런저런 사진들을 뒤적이는 동안 두 딸들이 달려와 “엄마 뭐해?”라고 묻는다.
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진 속 추억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오랜만에 뒤돌아 본 과거는 딸들과 내게 행복한 시간을 하나 더 남겨 줬다.
2014년
흥겨운 칠순잔치 날
이 사진은 2014년 칠순잔치 때 찍은 사진이다. 자식(미화·미현·성일·성훈)들이 삼삼오오 돈을 걷어서 준비한 잔치다. 생각해 보면 자식들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잘 챙겼다. 가족사진 뿐만 아니라 환갑·칠순잔치도 자녀들이 마련해줬다. 또 여수에서 엑스포가 열렸을 때는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함께 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잘 자라줘 고맙다.
2014년
조완성전 당진서부새마을금고 이사
"마을사람들이 열어준 결혼 축하식"
다섯 번째 사진은 2014년 나의 70세 생일을 기념해 옷을 맞춰 입고 찍은 가족사진이다. 이 사진은 우리집 거실 벽에 걸려있다. 우리 가족은 똘똘 뭉쳐 잘 지낸다. 나와 아내는 2남1녀를 낳아 키웠고, 현재 손주들이 8명이나 있다. 특히 손주들 중에 이번에 대학교에 입학한 큰 외손자 용범이가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전화해 우리의 안부를 묻는다. 용범이가 4학년이 될 때까지 우리 손에 자라서 그런지 손자가 안부 전화를 할 때면 너무나 반갑다.
>> 조완성 전 당진서부새마을금고 이사는
·석문면 교로1리 출생
·1992년부터 당진서부새마을금고 이사 활동
·현 전도그리스도교회 장로
2014년 이야기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
첫 번째 사진은 제1회 전국다문화가정합창대회에 나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우리 일본인 며느리에게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알려주고 싶어 참여를 결심했다. 대회에 아들, 손자, 그리고 나 우리가족 3대가 다 같이 나가서 아리랑과 농악 공연을 펼쳤다. 3대가 같이 나와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강력한 1등 후보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려상을 탔다. 그래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웠던 기억이다.
2014년 이야기
박용출합덕읍 창정리 전 이장
“아들, 딸 가릴 것 없어유~”
첫 번째 사진은 막내아들(박철순)의 돌잔치에서 찍은 사진이다. 막내아들이라 귀하게 길렀지만 여태까지 속 한번 썩이지 않은 착한 아들이다. 지금은 현대제철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옛날에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아들을 낳았을 때 마을잔치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다 기르고 보니 아들, 딸 할 것 없이 모두 소중하다.
약 6년 전
이숙경민화작가
“우리는 붕어빵 가족”
첫 번째 사진은 약 6년 전 아이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족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어 사진을 촬영했다. 급하게 아이들이 모여 사진을 찍었는데 남편 빼고 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어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가족끼리 모두 닮았다고 신기하다며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송민수석문청년연합회 전 회장
“지렁이 잡아 용돈 벌던 시절”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들과 노적봉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맨 왼쪽에 서있고 그 옆에 동생(송현수), 어머니(김기순), 아버지(송대석)가 계신다. 그 뒤로 보이는 곳이 갯벌인데, 당시에 동생과 함께 열심히 갯지렁이를 캤던 게 생각난다. 지렁이를 캐서 낚시꾼들에게 갖다 주면 용돈을 주곤 했는데, 적은 용돈이라도 받으려고 동생과 갯벌 속에서 열심히 지렁이를 찾아 헤매곤 했다.
그 뒤로 말뚝이 보이는 곳은 김 양식장이다. 그 당시 김 양식장은 많은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었다. 하지만 당진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이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주민들이 환경 피해를 입고 생활터전을 빼앗겨 안타깝기만 하다.
어린 시절
최영자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 당진지부 지부장
“가족이라는 따뜻한 이름”
첫 번째 사진은 친정 가족들과 어린 시절 찍은 사진이다.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사진 가장 앞 왼쪽) 큰 오빠와 큰 언니의 자녀로 오해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 것도 이유였지만 형제자매 간 생김새가 많이 닮아 오해를 받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각자 가정을 이루고 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잊혀졌던 이 사진은 몇 해 전 명절을 맞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명절에 가족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사진을 인원 수에 맞게 복사해 전해줬던 기억이 난다.
칠순 잔치 때
사진속으로추억속으로
두 번째 사진은 내 칠순 잔치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서 사람들이 입고 있는 한복은 내가 형제들과 매제들에게 맞춰준 것이다. 다른 식구들도 있는데 함께 찍은 사진을 찾지 못해 아쉽다. 크게 잔치를 벌이진 않았고 온 식구들이 모여 소소하게 칠순 잔치를 치뤘다.
어머니 환갑 때
"강아지 안내로 구경한 선유도”
두 번째 사진은 어머니 환갑때 대호지에서 찍은 사진으로 기억한다. 사진의 배경으로 볼 때 논인 것 같은데 왜 논에서 찍었는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전에는 대가족 사회였던 만큼 사진 속에 가족들이 많다. 우리 남편은 11남매 중 장남이었다. 요즘 같으면 아마 장가가기도 참 어려웠을 거다.
2014년 이야기
강인경당진시 여성단체협의회 전 회장
두 번째 사진은
우리 막내 손자인 용민이의 돌잔치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 가운데 남편이 안고 있는 아이가 용민이고 오른쪽 하늘색 옷을 입은 사람이 막내 며느리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이 우리 아들인데 아들이 처음 며느리를 소개하면서 대한항공 승무원이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요즘은 다들 바빠 이렇게 모여서 가족사진을 찍는 것이 힘들어 아쉽다.
어렸을 적
“바둑 두다 날샌 적 많았지”
두 번째 사진은 서산 국악협회 회원들이 공연할 때 찍은 사진이다. 어렸을 적 부모님 모두 국악을 참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순성에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모내기를 하실 때면 노동요를 부르곤 하셨다. 그 소리를 듣고 동네사람들이 함께 따라 부르면서 마을사람들 사이가 자연스레 가까워지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국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부모님의 국악 사랑에서 비롯된 던 것 같다.
국악을 하다보면 국악의 가사 속에 인생이 있고 철학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당진시민들이 직접 깨달았으면 좋겠다.
회갑때
최순용교로1리 여성 노인회장
“찍는 게 남는 거여~”
세 번째 사진은 회갑때 가족들과 모여 찍은 사진이다. 핑크색 한복을 입은 것이 나다. 회갑 때 찍은 사진이니 약 20년정도 지난 사진이다. 대전, 인천, 서울에 있는 가족들이 모여 복작복작하게 지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2014년 이야기
최연례당진시 부녀회장
부자 중에 부자는 ‘자식부자’
세 번째 사진은 집 앞에서 온 가족이 모여 찍은 사진이다. 우리부부는 ‘부자 중에 부자’라는 자식부자다. 남편(정태선)이 독자라서 아들 셋, 딸 넷으로 자식을 많이 낳았다. 이때는 입이 많아서 가족들이 하루에 김밥 50줄 정도는 거뜬히 먹어치울 정도였다. 자식을 키울 때는 힘들지만 다 키워 잘 사는 모습을 보니 힘든 기억은 날아가 버렸다. 아이들은 SBS 작가, 일어통역관, 당진농협 상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아버지 회갑 때
김종범나루문학회 회장
“40년 만에 졸업한 초등학교”
세 번째 사진은 아버지 회갑 때 아내와 아이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다. 어느새 30여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아버지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게 됐다. 우리 아이들은 오남매로 우리가 젊었을 때 평균 출산률보다 높은 편이다. 아들을 낳으려고 하다 보니 막내아들까지 오남매가 됐다. 그래도 식구가 많아 항상 즐겁게 지내곤 했다.
환갑잔치
박용출합덕읍 창정리 전 이장
“아들, 딸 가릴 것 없어유~”
세 번째 사진은 합덕 석천가든에서 환갑잔치를 하던 모습이다. 아들, 딸, 손녀, 사위가 모두 함께 한자리에 모였다. 내 왼쪽 옆에 있는 사람이 막내아들인데 어느새 나는 환갑이 됐고, 아들은 다 커서 장정이 됐다. 전에는 내가 가장이고 아이들의 버팀목이 였는데 이제는 가족들이 서로의 버팀목인 것 같다.
2014년 이야기
"커플룩 맞춰 입던 멋쟁이 부부"
네 번째 사진은 막내아들(이종원)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막내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니 자식들을 다 키웠다는 생각이 들어 앞서 참석했던 딸들의 졸업식보다는 기분이 남달랐다. 아들의 졸업식 후 가족들과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다. 훌쩍 성장한 자식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늘 뿌듯함을 느낀다.
4년 전쯤
박용출합덕읍 창정리 전 이장
“아들, 딸 가릴 것 없어유~”
네 번째 사진은 가족이 모두 함께 안면도 꽃박람회를 다녀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아마 4년 전쯤 찍은 사진으로 기억한다. 휴가철이 되면 4남매가 모두 휴가일정을 맞춰 같이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름에도 가족들과 다함께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대학생이었던 아이들을 키울 땐 정말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키우고 보니 아이들을 많이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014년 이야기
이숙경민화작가
“우리는 붕어빵 가족”
네 번째 사진은 딸(이미지)과 아들(이병상)의 어릴 적 모습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어 얼굴을 자주 못 봐 아쉽다. 딸은 현재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나중에 내가 그린 민화로 딸이 옷을 만들어 줄 날을 고대하고 있다.
2014년 이야기
최영자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 당진지부 지부장
“가족이라는 따뜻한 이름”
네 번째 사진은 남편과 함께 사랑하는 큰딸(혜정)과 막내아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딸과 군복무에 한창인 막내아들이 우리 부부와 함께 중국 심천을 방문했다.
48kg의 몸무게로 입대한 막내 아들 때문에 우리 부부는 걱정이 많다. 혹시 힘든 군생활에 몸이 아프지 않을까, 다치진 않았을까 항상 노심초사다.
2015년 이야기
이희양송산면 유곡리
“친구야, 저기 한 번 봐라”
첫 번째 사진은 우리 네 가족사진이다. 우린 딸과 아들을 어렵게 만났다. 딸(윤희)을 낳으려고 분만실에 들어갔는데 아이뿐만 아니라 산모의 목숨도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술실 앞에서 출산포기각서도 썼다. 다행히 나는 무사히 아내와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아들도 어렵게 만났다. 나에게 아내와 어렵게 만난 딸 그리고 아들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2015년 이야기
한만우LG컴퓨터/21세기 컴퓨터 대표
“부모님 설득해준 은사님 못 잊어”
첫 번째 사진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옥수숫대로 담을 짓고 흙이나 돌을 쌓아 벽체를 만든 토담집에 살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중학교도 못 다닐 정도로 가난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직접 부모님을 찾아와 반드시 나를 중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설득해주셨다. 그 은사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 그 시절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직도 은사님께 안부인사를 전하고 있다.
2015년 이야기
최명수전국이통장연합회 당진시지회장
"누나들 틈에서‘금이야 옥이야’"
첫 번째 사진은 내가 돌 때 부모님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7남매 중 독자다. 위로 6명의 누님들이 있고 나는 막내아들이다. 당시 어머니 나이 40세에 나를 낳으셨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온 가족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큰 누님과 나는 무려 17살 차이가 났다. 여섯 누님들은 나를 금이야 옥이야 보살펴줬다. 그래서 누님들한테 미안할 정도다. 누님들은 어려운 형편에도 나에게 쌀밥을 양보했다.
둘째 영동이 돌 때
김동기전주명품 콩나물 국밥 대표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첫 번째 사진은 둘째 영동이 돌 때 찍은 사진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 마음이는 원래 ‘바다샘마음’이었다. 바다처럼 넓고 샘처럼 깊은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둘째 영동이는 원래 ‘으뜸’이라는 이름으로 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이름 모두 아버님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아버지로서 자식의 이름 하나 마음대로 지어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한살 무렵
김용균파파밴드 리더
“기타는 내 애인”
첫 번째 사진은 내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어릴 적 사진이다. 그렇기에 이 사진은 내 보물이다. 지금도 지갑 속에 보관하고 있다. 이 사진은 내가 한살 무렵 때 기념으로 엄마와 큰고모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는 동네에 사진관이 없었다. 더구나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석문면 교로리에는 사진관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엄마와 큰 고모는 나를 업고 10km 거리의 사진관을 찾아갔다.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엄마와 두 명의 고모 손에서 옥이야 금이야 길러졌다. 학창시절에는 고모가 등·하교 때마다 날 데려다주고 수업이 마칠 때까지 운동장에서 날 기다렸다 다시 집에 데려가곤 했다. 두 고모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줬다. 엄마 같은 고모들이다. 현재 두 고모는 대전과 장흥에 살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낸다.
2015년 이야기
이근주차브민 레스토랑 대표
“환경 위해 발로 뛴 그 시절"
두 번째 사진은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다. 청양신문사, 대전 시민환경연구소, 청양부군수, 청양군의회 등 담당자들과 똘강 살리기 운동을 친환경적으로 잘 실천하고 있는 일본 오이타현을 방문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똘에 쌓던 콘크리트나 돌을 해체해 자연스럽게 똘을 살리고 있었다. 똘은 미생물들이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물도 정수하는 역할도 한다. 똘강 살리기 운동을 나라에서 뿐 아니라 민간 단체들이 모두 참여해 실시하고 있었던 사실이 놀라웠다.
세 번째, 네 번째 사진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공동의장, 정책국장과 함께 일본 동경 야생조류 공원을 탐방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철새에 관심이 많다. 인위적으로 철새를 관찰하는 건물도 짓지만 이것은 자연 경관을 훼손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본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 관리하고 있었다. 새들도 잠깐 공원에 와서 쉬기도하고 서식도 한다. 우리나라와 관리 방식이 대조적이라고 느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사진은 일본, 미국, 홍콩에 나가 있는 가족들이 당진에 모두 함께 모여 찍은 사진이다. NGO활동에 푹 빠져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소홀히 했기 때문에 다시 생각하면 너무나도 미안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 사진에 있는 가족들 중에는 무려 20여 년 만에 만난 식구도 있다. 함께한 이날을 잊지 못한다.
2015년 이야기
고미경송악읍
"비행기 놓친 신혼여행 첫날밤"
두 번째 사진은 아들 재희가 돌 지나 찍은 사진이다. 저 곰돌이 인형은 재희가 가장 좋아했던 인형이다. 엄마, 아빠보다 더 좋아했다. 사진을 보면 재희가 나이에 비해 많이 크다. 3.87kg으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했다. 지금도 키가 크다.
첫째 순권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홍종원신평요양센터 대표
“온 가족이 노인 사랑”
두 번째 사진은 첫째 순권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살았던 신평면 거산리에 위치한 집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왼쪽이 첫째 순권(34)이 오른쪽이 둘째 순호(30)다. 가정적이었던 나는 아내만큼이나 자식들에게 신경을 많이 썼다. 순호는 어릴 적 공부를 잘해 두 번이나 교육감상을 받았다. 서른 살이 넘는 두 자녀는 이 곳 신평요양센터에서 우리 부부와 함께 복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영동이가 태어난 지 5일 째 되던 날
김동기전주명품 콩나물 국밥 대표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두 번째 사진은 영동이가 태어난 지 5일 째 되던 날 찍은 사진이다. 사진이 예쁘게 나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두 아이 모두 활동적이고 영어와 수학 각각 100점, 95점을 맞을 정도로 공부를 잘해 나무랄 데가 없다. 다만 조금씩 커가면서 가족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조금은 서운하다. 특별히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없지만, 내가 살아온 것처럼 아이들도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5년 이야기
채규흥해나루시민학교 중등부 교사
"학창시절을 함께한 홍선이"
두 번째 사진은 장남인 중석이와 차남인 진석이와 찍은 사진이다. 중석이의 중학교 졸업앨범을 두 아들과 함께 보고 있다가 찍힌 사진이다. 첫째 중석이는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해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고, 둘째 진석이는 동국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해 서울에서 제약회사를 다니고 있다. 아버지로서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했지만 잘 자라줬다. 우리 가족은 주말가족이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당시 천안시 성환에서 살았고 나는 대관령 근처가 근무지여서 혼자 살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두 아들의 사춘기를 아내 혼자 견뎌야 했다. 착한 두 아들이었지만 고집이 센 성격 때문에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2015년 이야기
김용균파파밴드 리더
“기타는 내 애인”
두 번째 사진은 전라남도 담양군에 위치한 죽녹원으로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아내, 딸, 사위와 함께 1박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딸과 사위가 휴가를 맞춰 함께 놀러가자고 제안해 다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다. 지난 6월 딸을 시집 보냈다. 결혼식 당일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식장에서 나의 웃는 모습에 딸이 “아빠는 서운한 거 같지 않다”며 말하더라. 매일을 함께 해서 그런지 체감이 덜했다. 심지어 딸과 사위는 주말마다 우리집에 놀러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간다.
2015년 이야기
하완철우리식품 대표
"아들 대야에 앉혀 놓고 일해"
세 번째 사진은 나와 가족들이다. 나와 아내는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낳았다. 아들을 원해 계속 아이를 낳다보니 4명까지 낳았다. 아이들이 많아 키울 땐 형편이 어려웠다. 큰 고무대야에 아들을 앉혀 놓고 장사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힘든 시절이었지만 다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보람 있다. 어느새 금쪽같은 손자도 생겼다.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다.
2015년 이야기
고미경송악읍
"비행기 놓친 신혼여행 첫날밤"
세 번째 사진은 아들 재희와 딸 은지가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이다. 현재 아들 재희는 25살이고 은지는 22살이다. 은지는 서울에 살면서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있고 재희는 당진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진 속 재희는 8살이었고 은지는 5살이었다. 은지는 재희를 참 잘 따랐다. 오빠라면 사족을 못 썼다. 오빠가 하는 거면 다 따라했고 인형을 가지고 놀기보다는 오빠따라 총이나 칼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졸졸졸 오빠를 따라다닌 은지는 정말 ‘오빠바보’였다. 지금도 둘을 보고 남들이 애인사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가깝고 서로를 잘 챙겨준다. 엄마로서 굉장히 뿌듯하다.
두 아들이 대학생 시절
채규흥해나루시민학교 중등부 교사
"학창시절을 함께한 홍선이"
세 번째 사진은 연년생 두 아들이 대학생 시절 수원시 화성에서 찍은 사진이다. 거의 유일한 여행사진이다. 나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여행간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한가로울 쯤에는 아들들이 바빴다.
2015년 이야기
최명수전국이통장연합회 당진시지회장
"누나들 틈에서‘금이야 옥이야’"
네 번째 사진은 일곱 남매 중에 넷째 누님 부부만 사정이 있어 참석 못하고 나머지 형제들과 부부동반으로 같이 제주도로 여행가서 찍은 사진이다. 참 즐거웠었다. 가족과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고 누님들도 정말 좋아했다. 요즘 사람들은 가족과 형제들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 안타깝다.
2015년 이야기
서정길송악읍 가교1리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네 번째 사진은 아내와 친손주들과 찍은 사진이다. 케익을 자르고 있는 아이가 손녀 현미다. 옆에 앉아있는 아이는 손자 태원이다. 이 두 손주는 큰 아들 천석이의 자녀들이다. 이날은 현미의 생일을 기념해 사진을 찍었다. 현미는 미국으로 유학 가서 5년 만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경기도 안양시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다. 태원이는 큰 아들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2015년 이야기
김정환한화손해보험 신성대리점·서산지점 대표
“남는 것은 사진뿐”
다섯 번째 사진은 37년 전 나의 아버지, 어머니, 고모, 숙모 등이 모여 어머니 회갑 때 찍은 대가족 사진이다. 나는 4남3녀 즉,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단합이 잘 돼 자주 만나는 편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가족들과 함께 전주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지난 5월 1일 어머니 기일 때는 총 29명이 모였다.
사진에 보이는 집은 내가 자란 고향집이다. 현재는 이곳에 새로 집을 지어 삼봉어린이집을 세웠다.
2015년 이야기
고미경송악읍
"비행기 놓친 신혼여행 첫날밤"
다섯 번째 사진은 재희가 7살, 은지가 4살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당진에 오기 바로 전에 운산에서 살았다. 이곳이 운산에 있는 유명한 목장인데 구제역이 터지고 나서는 목장을 이용할 수 없었다. 이 목장은 벚꽃길이 참 예뻤다. 우리가족 뿐만 아니라 여느 가족들도 여행을 와서 벚꽃 길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곤 했다.
고희연 잔치
서정길송악읍 가교1리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다섯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의 고희연 잔치 때 찍은 사진이다. 벌써 9년 전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4형제를 낳았다.
아들과 며느리들이 아내와 나의 고희연 잔치를 준비해줬다. 이때를 기념해 영상을 제작해 비디오로도 갖고 있다. 나는 자식 복이 많은 것 같다. 특히 며느리 복이 많다. 큰 며느리는 항상 나와 내 아내를 1순위로 생각한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달려온다. 낳아준 부모처럼부 우릴 챙기고 제발 건강하게 오래 살아 달라고 말하는 큰 며느리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2015년 이야기
이승호원 커뮤니케이션 대표
“아내를 위한 황토집을 짓다”
다섯 번째 사진은 송악읍 반촌리에 자리한 아내와 나의 보금자리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진톨게이트를 지나다보면 언덕에 예쁘장한 2층 황토집이 있다. 내가 아내를 위해 지은 황토집이다.
나는 결혼 전 아내에게 예쁜 전원주택을 지어주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진에 8년 전 집을 지었다. 푸른 잔디에 그림 같은 통나무 황토집에 사니 정말로 행복하다.
올해 설
"며느리에게 직접 만든 감사패 전달"
다섯 번째 사진은 올해 설에 우리 가족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다. 이날 나와 아내는 며느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없는 가정에 시집와 아들들을 교육하며 성장시킨 것도 대견한데, 적은 수입을 알뜰 살뜰 모아 아파트를 마련한 며느리의 살림솜씨를 보고 감탄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줬다. 이날 며느리는 감동을 받아 엉엉 울었다.
>>손성 씨는
·고대면 진관리 출신
·서울 드라이클리닝 공장인 스타크리닝상사 2년
·서울서 채소 판매 5년
·당진시그라운드골프연합회원
·고대면 진관리 당미경로당 회장
3살 때
"딸 같은 둘째 아들 종희"
첫 번째 사진은 유일하게 보관하고 있는 어렸을 적 사진이다. 당시엔 카메라가 귀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사가 집을 방문했을 때 기록을 남겼다. 이 사진도 사진사가 찍어준 사진이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셨다. 3살 때 찍은 사진이기 때문에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진 속 호랑이는 진짜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저 호랑이와 기념사진을 찍는 친구들도 많았다.
키가 크고 머리숱이 많은 사람이 두 살 차이나는 우리 형이다. 형과 어렸을 때 불깡통놀이, 자치기를 하고 논 기억이 난다.
남편이 죽고 난 뒤
최연우대호지면 장정리
"아들들과 찍은 가족사진"
첫 번째 사진은 아들들과 찍은 사진이다. 정미면 대조리 출신인 나와 대호지면 장정리 출신의 한 살 연하 남편과는 중매로 만나, 20세 때 결혼했다. 이후 4명의 아들을 낳았고, 남편은 내 나이 28살 때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죽고난 뒤 아들들과 천의장터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눈물 흘러가며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액자에 넣어 간직하고 있다. 당시 마음을 굳게먹고 사진을 찍었다. 사는 것이 너무 막막했고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 아들 네 명을 길러냈다. 아들을 공부시키려고 서울에서 튀김장사를 하기도 했다. 덕분에 아들들은 잘 자라줬다. 이후 나는 20년 가까이 서울에서 일하다 다시 고향 당진으로 왔다.
태어난 지 100일 됐을 때
강근묵고대면 당진포 2리
고참이 서리한 꿀맛 사과
첫 번째 사진은 내가 태어난 지 100일 됐을 때 부모님과 찍은 기념 사진이다.
난 6.25전쟁이 일어나기 한 달 전에 태어났다. 당시에는 질병 등으로 태어난지 얼마 안돼 죽는 아기들이 많았다. 외아들로 태어난 나는 당시 100일을 넘긴 것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었고, 이후 이 사진을 잘 보관해오고 있다. 아버지가 어릴 적 내 모습을 많이 찍어준 만큼, 나도 내 자녀들의 어릴 적 모습을 많이 찍어주곤 했다.
2016년 이야기
이계영정미면 천의1리 경로당 노인회장
"마을 곳곳을 누비던 집배원"
두 번째 사진은 첫 번째 사진과 같이 둘째 딸 대학교 졸업식에서 함께 축하해주러 갔던 첫째 딸과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이날 함께 축하하러 간 자리에서 기념으로 남겼다.
2016년 이야기
이웅배전도그리스도의교회 장로
이정례 전도그리스도의교회 권사 부부 "5년 연애 끝에 결혼 골인"
두 번째 사진은 태안에 위치한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둘째 동서와 모래찜질을 하고 있는 사진이다. 외가 식구들과 함께 했는데, 지금도 가까이 살면서 꽃 구경을 같이 다니곤 한다.
2016년 이야기
강규희읍내동 여성의류 전문점 입는 기쁨 대표
“해처럼 별처럼 살자”
두 번째 사진은 막내 소율이가 돌일때 찍은 가족 사진이다. 우리 가족은 참 화목하다. 남편은 배드민턴, 딸은 벨리댄스와 합창 등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취미도 다르지만 서로 잘 이해해주는 가족이다.
2016년 이야기
이인자송악읍적십자봉사회 회장
도움 받고 봉사 결심
두 번째 사진은 시어머니, 서방님, 동서와 찍은 사진이다.
내 옆에 있는 남자아이는 현재 당진에서 함께 살고 있는 막내아들이다.
이 사진은 동네 경로잔치 열렸을 때 찍은 사진이다. 시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에는 시동생, 시누이와 함께 살았다.
우리가족은 새마을 가족으로 유명했다. 시아버지가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셨고, 남편 또한 새마을지도자 출신이다. 나도 새마을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다.
친정 어머니 팔순잔치 때
황정옥대한적십자사 당진2동 봉사회 회장
"며느리와 함께한 첫 여행"
세 번째 사진은 친정 어머니 팔순잔치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 7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 한복을 선물했다. 어머니는 선물이 마음에 드셨는지 한복을 잡고 놓지를 않으셨다. 온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기분 좋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 날은 부모님 생각과 얼마 전 대장암 수술을 한 남동생 걱정에 온 가족이 눈물을 쏟기도 했다. 아직도 이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하다.
작년 겨울
"딸 같은 둘째 아들 종희"
세 번째 사진은 작년 겨울 삽교호관광지 함상공원 내 테마과학관에서 찍은 유화 효과를 준 사진이다. 방학 때마다 두 아들과 함께 체험을 하러 다닌다. 이날 천안공고에 다니는 첫째 아들 종근이는 같이 하지 못했다. 사진 속 둘째아들 종희는 애교가 많다. 종희가 집에 없을 때는 마치 집이 텅텅 빈 것 같이 허전하다.
2016년 이야기
최연우대호지면 장정리
"아들들과 찍은 가족사진"
세 번째 사진은 당진포리에서 막내아들과 찍은 사진이다. 오래됐기에 당시 상황이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다. 이전에 첫째, 둘째 아들 공부시킨다고 서울서 장사할 때 셋째, 막내아들은 당진에서 시어머니가 키워주셨다.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막내아들이 나무에 올라가 엄마가 언제 오나 그렇게 기다렸다고 한다. 막내아들은 정솔 아빠로 유명하다. 정솔은 내 손녀인데, 인기 웹툰 ‘용이 산다’와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의 작가다. TV에도 몇 번 나왔다.
2016년 이야기
김연곤 고대면 성산1리 노인회장·아내 강영자 씨
네 번째 사진은 셋째, 넷째 아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5남매를 낳아 길렀다. 첫째부터 넷째까지가 아들이고, 막내가 딸이다. 이 사진 속에 있는 아들은 셋째, 넷째 아들로 고려대를 졸업한 수재다. 우연히 두 아들이 함께 졸업하게 돼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와 아내는 5남매를 어렵게 공부시켰다. 남의 집 부모는 자식들에게 학원도 보내주고 하는데, 우리는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2년 동안은 5남매 중 4명이 대학교를 다녔을 때라 등록금을 버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자녀들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에 보태기도 했다.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2016년 이야기
이유호고대면 당진포2리 이장
“오토바이 타고 삽교천 달리던 시절”
네 번째 사진은 집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나는 송산면 출신의 아내를 중매로 만났고, 우리는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현재 둘째 딸을 제외하고선 3남매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 나와 가장 많이 닮은 자녀가 있다. 바로 막내딸이다. 이목구비가 나랑 많이 닮은 것 같다.
나는 아직도 큰 딸이 태어나던 때를 잊지 못한다. 어머니와 내가 아내의 출산을 도왔는데, 혹시나 잘못될까봐 조마조마하고 걱정이 됐다.
올해 설 명절
이웅배전도그리스도의교회 장로
이정례 전도그리스도의교회 권사 부부 "5년 연애 끝에 결혼 골인"
다섯 번째 사진은 올해 설 명절 때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나는 가족들과 사진을 남기고 싶어 타이머를 작동해 가족사진을 찍었다. 다들 건강하게만 살아줬으면 좋겠다.
>>이웅배 전도그리스도의교회 장로는
·1947년 석문면 교로1리 출생
·그리스도 대학(현 KC대학교) 22년 근무
·대전충청지방 그리스도의교회 재직연합회장
·당진지역 연안이씨 종친회장
·한국그리스도의교회 장로협의회 수석부회장
·현 전도그리스도의교회 장로
>>이정례 전도그리스도의교회 권사는
·1949년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 출생
·현 전도그리스도의교회 권사
2016년 이야기
박성민서해윈드오케스트라 단장
어르신들과 함께한 ‘신혼여행’
다섯 번째 사진은 제주도에 위치한 여미지 식물원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나는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 아이들이 재미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특히 어릴 적 아들이 찍힌 사진을 보면 포즈가 남다르다. 덕분에 사진을 볼 때면 재밌다. 현재 아들 재현이는 대학교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있으며, 딸 지연이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 박성민 서해윈드오케스트라 단장은 ·1960년 당진 읍내리 출신
·현 밝은사회 당진지역연합회장
·현 서해윈드오케스트라 단장
·현 당진신협 감사
2016년 이야기
안명수우강면 송산1리 노인회 총무
살벌했던 월남 전쟁의 기억
다섯 번째 사진은 아들 대학교 졸업식 날 찍은 사진이다.
아들은 대전에 위치한 한남대를 졸업했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현재 자녀들은 천안과 대전에 살고 있고, 6명의 귀여운 손녀, 손자들을 안겨줬다. 자녀들을 시집, 장가 보내도 나와 아내에겐 항상 어린아이 같다. 모든 부모들이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항상 건강했으면 한다. 또한 손자, 손녀들도 잘 자라주길 바란다. 특히 외손녀 하원이가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다. 지난번엔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잘 자라줘서 우리나라를 빛내는 멋진 선수가 되길 소망한다.
>>안명수 우강면 송산1리 노인회 총무는
·1947년 우강면 송산1리 출생
·우강초·합덕중 졸업
·합덕농고(현 합덕제철고) 졸업
·대전전파관리소 당진사무소에서 35년간 근무
2016년 이야기
정상일세한대 교수
“학교사랑 음악사랑”
다섯 번째 사진은 비엔나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다. 우리가족은 ‘음악 가족’이다. 모두가 음악을 하고 있다. 아내는 용인 현암고등학교에서 교사로, 큰 딸은 세한대와 명지대 실용음악과에 출강한다. 작은 딸은 현재 전남대 성악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 가족과 음악회를 자주 간다. 우리 가족들은 불편한 남편, 아빠를 위해 잘 도와준다. 가족들이 아껴주고 도와주기에 고마울 따름이다.
어린시절
동창에서 부부가 되기까지
첫 번째 사진은 둘째, 셋째 동생들과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 속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아이가 바로 나다. 나는 여섯 자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맨 왼쪽에 있는 아이가 셋째 동생인데, 딸 밖에 없다보니 부모님은 동생을 아들처럼 꾸며놓곤 하셨다. 이후로도 아들을 원하셨지만 나부터 막내 동생까지 딸만 여섯을 낳았다. 어린시절 나는 골목대장이었다. 지금은 키가 작은 편이지만, 어렸을 때만해도 또래 중에서는 키가 큰 편이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육상선수로 활동하기도 했고 남자친구들하고 구슬치기, 축구, 태권도를 하면서 자랐다. 남자친구들이 여자친구들을 괴롭히면 내가 달려가서 혼내줬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 교복치마를 입자, 남자친구들이 선머슴이 치마를 입었다고 놀리기도 했다.
30대 때
홍종옥보라세탁소
전라도 출신의 자상한 남편
첫 번째 사진은 30대 때 찍은 사진이다. 다들 젊었을 때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맏딸이 나를 많이 닮았는데, 딸의 얼굴에서 나의 얼굴이 보이곤 한다.
결혼 후
묵향에 빠진 초락도 섬 소년
두 번째 사진은 결혼 후 처갓집 식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19살 때 인천에서 10년 간 생활했다. 당시 나는 채소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 일을 했다. 그때 이장이었던 첫째 형님(홍덕표)이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편지를 보내 농사 지으러 고향에 내려왔다.
2017년 이야기
김덕성전 운학리 이장
건강했던 두 아들과의 추억
네 번째 사진은 김해김씨 종친회에서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어디서 찍은 것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당진에는 김해김씨가 많은 편 같다. 한 지역에서 살다보니 이들과 자주 만나는 편이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나다. 사진을 보니, 서열대로 서서 찍은 듯하다. 가장 오른쪽이 아저씨이고 그리고 나, 조카, 손주 순이다.
손자 돌 때
김평자·김기원송악읍 기지시리 부부
인생 풍파, 아내 때문에 견뎌
두 번째 사진은 손자 돌 때 찍은 자녀들의 사진이다.
우리는 슬하에 1남3녀를 낳았다. (왼쪽·아래)큰 딸, 아들, 며느리, (왼쪽·위) 둘째 딸, 막내딸이다. 사진 속 가운데 있는 손자는 현재 17세로 서울에서 살고 있다. 또 옆에 외손녀도 17세로, 두 손주는 몇 개월 차이를 두고 태어났다. 자식 중 나와 가장 많이 닮은 아이는 큰 딸이다. 성격이 활발하다. 반면 아들은 아내를 닮아 차분하고 순하다.
2017년 이야기
장택순채운9통장
모래사장 무대 삼아 연극
세 번째 사진은 성묘하고 나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내가 어깨동무하고 있는 여성들이 둘째 딸과 막내 딸이다. 나는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현재 자녀들은 안양, 부천, 인천 등에서 살고 있다. 특히 막내 딸은 외모와 성격이 나를 똑 닮았다.
나는 딸들 때문에 담배도 끊었다. 딸들과의 약속으로 금연을 한 지 30년 정도가 됐다.
2017년 이야기
동창에서 부부가 되기까지
세 번째 사진은 우리가족 사진이다.
나와 남편은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아들은 이 가족사진을 찍고 군대에 갔다. 현재 딸은 결혼해서 충북 진천에 살고 있고, 아들은 서울에서 요리연구가로 활동 중이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열심히 살고 있다.
2017년 이야기
김덕성전 운학리 이장
건강했던 두 아들과의 추억
마지막 사진은 두 아들이 초등학생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 나와 아내 사이에 있는 녀석이 둘째 아들 한수이고, 위에 서 있는 녀석이 큰 아들 면수다.
한수는 결혼한 지 10년 쯤 됐다. 내게는 딸이 없지만, 며느리가 딸이다. 우리 부부에게 너무 잘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수원에서 대학을 다니던 면수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면수는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마비됐다. 그 이후로 아내와 나는 면수를 돌보며 살고 있다.
아들을 요양원에 보내면 혹시나 빨리 저 세상으로 갈까봐 아내와 내가 교대로 아들을 돌보았다. 한 명이 안방에서 자면, 다른 한 명은 아들이 불편한 곳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이렇게 살다보니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관심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장애 아이를 둔 가족들 모두 같은 상황일 것이다. 당진시민들이,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2017년 이야기
최주묵고대면 슬항2리 전 이장
보고싶은 은사님
세 번째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가족사진이 없었는데 마침 기회가 돼 사진을 찍었다. 나는 아들 하나에 딸 셋을 낳았는데 모두 자수성가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잘 자라준 자식들을 보면 뿌듯하다. 손자들도 둘씩 낳아 모두 8명이나 된다. 하지만 모두 손자들이라 애교 많은 손녀가 없어 아쉽기도 하다.
다들 4남매 키우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이들 키우는 것이 어려운 줄 몰랐다. 하루가 다르게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힘이 들기 보다는 오히려 행복하고 재미있었다.
2017년 이야기
최덕기송산면 매곡리
“군 생활이 가장 그리워”
세 번째 사진은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다. 위에서 왼쪽이 아내와 나이고, 옆에는 내종사촌 형수와 형님이다. 그리고 아래 왼쪽이 나의 막내여동생이고, 그 옆이 우리 어머니다. 어머니 옆에는 둘째 여동생 부부다. 이날 둘째 여동생 약혼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이다. 현재 어머니는 98세이고 막내여동생은 면천면 송학리에 살고 있다.
2017년 이야기
“운동은 내 인생”
네 번째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왼쪽부터 며느리, 나, 손자, 손녀, 남편, 딸, 아들이다. 손주들을 자주 보곤 하는데 너무 예쁘다. 우리가족은 모두 운동을 좋아한다.
2017년 이야기
김응태우강면 창리
배움은 나의 즐거움
네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 어머니, 큰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다.
집안 행사가 있었을 때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 속 갓난아기가 손자 보겸이다.
2017년 이야기
강근식김계익 부부
“학생들 가르칠 때가 그리워”
네 번째 사진은 아내가 큰 딸인 은경이를 임신했을 때,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첫째 은경이와 막내 희나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장남인 희일이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일경이는 지역 문화예술행사에 사회를 보는 등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특히 희일이는 내가 꿈꿨던 법조인의 꿈을 대신 이루고자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2017년 이야기
최덕기송산면 매곡리
“군 생활이 가장 그리워”
네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 두 딸과 찍은 사진이다. 우리는 슬하에 3남매를 뒀다. 딸 두 명과 아들 한 명을 낳아 길렀다. 아마 이 사진은 아들이 찍어준 사진인 것 같다. 현재 자녀들은 대전과 세종에서 살고 있으며 손주 7명을 우리에게 안겨줬다. 아내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자녀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했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젊었을 때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그때마다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다고 말한다.
지난해
동창에서 부부가 되기까지
다섯 번째 사진은 딸 승희와 손주인 수지, 주영이와 찍은 사진이다.
딸 승희가 수지와 주영이를 낳아, 내게 할머니라는 단어를 듣게 해줬다. 내가 낳고 키운 내 자식들보다 손자들이 더 예쁘다.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다 용서가 되는 손주들이다. 이 사진은 지난해 해미읍성에서 찍은 사진으로 우리는 종종 인근 지역으로 여행을 가곤 한다.
소은희
채운동 코아루아파트부녀회장>>소은희 회장은
·1962년 서울 출생
·2011년 당진으로 이사
·당진2동 적십자봉사회 회원
·당진2동 주민자치위원회 간사
·채운동 코아루아파트 부녀회장
시어머니 팔순잔치 때
친구 많은 멋쟁이 소녀
다섯 번째 사진은 시어머니 팔순잔치 때 찍은 사진이다. 이날 동네이웃들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마당에서 시어머니와 이웃분들 춤추는 사진도 간직하고 있다. 시어머니 팔순 기념으로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와 남편은 슬하에 3남 1녀를 낳아 길렀고, 자녀들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손주도 6명이다. 또 2명의 손주가 곧 태어난다.
이순애
송산면 송석리
>> 이순애 씨는
·1952년 전북 부안군 출생
·전 송산농협 농가주부모임 회장
·전 송산면 가곡리 부녀회장
·전 가동초·송산중 자모회장
·현 송산면 생활개선회 대위원
·현 송산농협 농가주부모임 감사
·현 송산면 개발위원회 감사
2017년 이야기
김기정송악읍 기지시리 이장
6.25 참전용사 자랑스러운 ‘아버지’
다섯 번째 사진은 제67주년 6.25전쟁 기념식에서 아버지(김성환)를 대신해 수상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아버지는 6.25참전용사이신데, 내 나이 10살 때 돌아가셨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60년이 지난 뒤 나라에서 유공자를 찾아 상을 줬다.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하셨을 때 나이가 20대 초반이라고 들었다. 아버지와 다른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정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일찌기 돌아가셨지만,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김기정 송악읍 기지시리 이장은... ·1963년 송악읍 기지시리 출생 ·기지초·송악중·예산고 졸업 ·인천 E1에너지에서 8년 간 직장생활 ·만리향 중화식당 19년 간 운영 ·현 기지시리 이장 ·현 기지시감리교회 장로
2017년 이야기
조주익대호지면 장정리 새마을지도자
장발에 나팔바지 “멋 좀 부렸지~”
다섯 번째 사진은 제주도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올해도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를 가려고 했는데, 아들이 운동하다 다친 바람에 여행이 무산됐다. 아들은 본인 때문에 가족 여행이 무산됐다며 미안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다음에 가면 되니 괜찮다.
>>조주익 대호지면 장정리 새마을지도자는
·1956년 대호지면 장정리 출생(현 62세)
·조금초 졸업 ·약 20년 간 서울, 인천에서 타지 생활
·현 대호지면 장정리새마을지도자(6년 간)
2017년 이야기
김응태우강면 창리
배움은 나의 즐거움
마지막 사진은 손자 보겸이가 어릴 적 유치원에서 놀러갔을 때 따라가서 찍은 사진이다.
맨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아이가 손자 보겸이다. 이때 학부모가 아이와 함께 가는 소풍이었는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손주를 아내와 내가 키웠다. 당시 맞벌이하는 큰 아들 내외는 직장에 가고, 대신해서 아내와 내가 대신 다녀왔다. 내게는 소희와 보겸이라는 손주 두 명이 있다. 소희는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진학해 얼마 전 미국 유학을 갔다 귀국했다. 보겸이는 올 11월 군 제대를 앞두고 있다. 아내가 손주를 정성들여 키웠다. 아이들도 우리를 좋아한다. 지금도 안부 전화를 자주 하곤 한다. 어릴 적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서인지 서로가 특별하다.
얼마 전에는 ‘소희의 귀국을 축하한다’는 플랜카드를 만들어 거실에 걸었다. 작은 이벤트였지만 소희가 너무 좋아해 기뻤다. 곧 전역할 보겸이를 위해서도 이벤트를 준비할 계획이다.
김응태 (오른쪽)
우강면 창리>> 김응태 씨는
·1937년 합덕읍 합덕리 출생
(현 81세)
·현 우강면 창리 거주
·현 당진시 전통민요보존회 회원
2017년 이야기
강근식김계익 부부
“학생들 가르칠 때가 그리워”
마지막 사진은 막내 딸 희나를 업고 찍은 사진이다.
희나는 막내이지만 언니, 누나같았다. 속이 깊었다. 부모로서 4남매가 잘 자라줘서 고맙다. 우리 자녀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는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
>>강근식 씨는
·1933년 정미면 천의리 출생
·면천면 성상리에서도 거주
·현재 원당동 거주
·천의초·면천중·당진농고 졸업
·석문중에서 수학교사로 재직
·당진군청에서 30년 간 근무
·현 당진감리교회 장로
>>김계익 씨는
·1936년 서산면 운산리 출생
·순성면 성북리와 면천면 성상리에서도 거주
·현 당진감리교회 권사
2017년 이야기
합덕읍 교동식당 채금남 대표
여섯 번째 사진은 수덕사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남편과 나는 1남1녀를 낳아 길렀다. 현재 아들은 전남 광주에, 딸은 대전에 살고 있다. 함께 살고 있지는 않지만 자녀들이 자주 오곤 한다.
>>채금남 대표는 ·1956년 경기도 양주 출신 ·시사문단 시(2013), 수필(2014) 등단 ·합덕읍 교동식당 운영 ·연호시문학회 회원
2018년
양영진팀장
낚시·등산·여행 등 즐거운 취미생활
다섯 번째 사진은 2018년도에 가족들과 강원도로 미식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속초에서는 물회와 백촌막국수를 맛보고, 미시령 옛고개를 넘어 인재의 황태요리 잘 하는 집을 찾아가던 중 쉬어가며 추억사진을 남겼다. 나는 앞으로도 건강하게 낚시, 산행 등 취미생활을 하며 하고 있는 보험일을 80세까지 하고싶다. 또한 넓은 마음으로 취미생활을 할 수 있게 이해해주고 배려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6~7살 때
정행화송악읍 기지시리
20대, 꽃처럼 예뻤던 시절
첫 번째 사진은 6~7살 때 집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은 아버지는 가전제품에 관심이 많으셨다. 부서진 TV, 고장 난 라디오, 못 쓰는 시계와 카메라 등을 얻어와, 고치곤 했다.
첫 돌
“개구쟁이 꼬마가 결혼을 하다니…”
첫 번째 사진은 진호가 첫 돌을 맞아 찍은 기념사진이다.
이 사진은 최영근 사진작가가 찍어줬다. 방긋방긋 잘 웃는 진호의 모습에 최 작가는 카메라 셔터를 여러 번 눌렀다. 진호는 낯가림이 없고 사람을 좋아했다. 특히 큰 목소리로 동네사람들에게 인사를 잘하곤 했는데,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로 부터 칭찬을 많이 받곤 했다.
진호는 큰 아들 규호를 낳고, 3년 뒤에 낳은 둘째 아들이다. 진호의 태몽은 아직도 생생하다. 남편이 반듯하게 파 놓은 골망에 내가 탐스럽고 커다란 양파를 가져다 심는 꿈이었다.
한편 진호는 갓 태어났을 때, 황달이 심해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나보다 일주일 늦게 퇴원했다. 당시 아이의 머리에 주사바늘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고 구석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눈이 시릴 정도다. 그 이후 진호는 다행히도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컸다.
2018년 이야기
“내 딸 영일·영이·영삼”
첫 번째 사진은 영이가 6살, 영일이가 5살, 영삼이가 2살 때, 아내(허신회)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에요. 첫째 영이와 둘째 영일이는 한 살 터울이에요. 영일이는 태어날 때까지 남자 아이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영일’이라고 남자아이 이름을 미리 지어 놨는데, 딸이었네요. 둘째랑 셋째는 나이 터울이 좀 나요. 셋째라서 영삼인데, 지금 보니 이름이 좀 짓궂은 것 같아요.
두 번째 사진은 아이들이 커서 찍은 사진이에요. 딸들도 나처럼 모두 교사가 됐어요. 이제는 모두 결혼해서 아이가 둘 씩 있어요. 아내와 나만 있을 땐 집이 큰 것 같은데, 14명 가족이 한 번에 모이면 자리가 비좁다고 느껴져요.
2018년 이야기
정덕영당진향교 전교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소중한 자녀들
세 번째 사진은 두 아들과 여행가서 찍은 사진이다. 현재 아내가 몸이 불편해, 큰아들 상용이가 집에 와서 식사를 챙겨주는 등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나는 늘 자녀들을 보면 고맙다. 앞으로도 본인들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잘 살아줬으면 한다.
2018년 이야기
“평생 뒷바라지한 아내, 늘 고마워”
세 번째 사진은 손자 준모의 돌잔치 때 찍은 사진이다.
막내아들 본삼이의 장남 준모는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다. 지금도 보면 귀엽지만 어렸을 땐 더 귀여웠다. 손주들은 총12명으로 손자 9명, 손녀 3명이다. 명절 때 아이들이 모이면 시끌벅적하다.
10년이 더 지난
안광모우강면 송산1리 아래말경로당 회장
한궁으로 건강한 노후생활을!
네 번째 사진은 스튜어디스였던 막내 딸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다.
손자가 올해 9살이 됐으니, 10년이 더 지난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큰 아들을 낳고, 아들 한 명을 더 낳자했는데 줄줄이 딸이 태어났다.
막내 딸은 합덕초·서야중·서야고를 졸업해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운항과에 입학했다. 성격이 참 활발했던 막내딸은 현재 tvN 과장으로 있는 사위와 결혼해 오순도순 잘 살고 있다.
2018년 이야기
김용대새마을지도자 합덕읍협의회장
지현아, 동진아! 보고싶다!
네 번째 사진은 어머니와 부산의 해동용궁사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많이 다녀왔다. 부모님을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으로, 좋은 곳은 함께 보자며 여행을 다녔다. 이에 국내여행은 다 가본 것 같다. 쑥스럽지만 효행상도 3번이나 받았다. 아버지(故 김경식)는 10년 전에 작고하셨지만 어머니(우영순)는 생존해 계신다.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제주도다. 당시 차를 빌리는 것이 너무 비싼 터라 배에 차를 싣고 제주도로 향했다.
2018년 이야기
김영자송악읍엄마순찰대장
짝사랑 때문에 시작한 육상
네 번째 사진은 남편과 두 아들과 찍은 사진이다. 큰 아들은 올해 25세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계성초등학교 축구부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축구공을 항상 갖고 다녔다. 가족여행 사진에도 축구공이 나올 정도다. 막내아들은 22세로, 현재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2018년 이야기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추억”
네 번째 사진은 딸과 손주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서른의 나이에 결혼했다. 장손이었는데 동생과 사촌들이 모두 결혼한 후에 나도 식을 올렸다. 나는 가정에 충실하자는 철학으로 살아왔다.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가족이 있기에 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아내는 1남3녀를 뒀다. 다들 잘 커서 타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 일손이 부족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도와준다. 엊그제에도 자녀들과 손주들이 찾아 양파를 캐고, 모 심는 것을 도왔다. 건강하고 바르게 잘 커서 고맙다.
칠순기념
안광모우강면 송산1리 아래말경로당 회장
한궁으로 건강한 노후생활을!
마지막 사진은 내 칠순모임 때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매제, 큰 형, 나, 동생, 매제 순이다. 같은 한복을 맞춰 입고 기념 삼아 사진을 찍었다. 입고 있는 한복은 내가 칠순기념으로 가족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나는 7남매(3남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7남매 중 4명이 우강에 살고 있으며, 다른 형제들은 합덕과 신평, 인천광역시에 살고 있다.
>>안광모 회장은
·1940년 우강면 송산1리 출생
·순응안씨 승사랑은골대종회 회장
·우강면 송산1리 아래말경로당 회장
·(사)대한노인회 우강면분회 한궁 선수
2019년 이야기
한익상당진2동 용연2통 노인회장
그리운 나의 어머니
사진 속 여성은 내 어머니다. 어머니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옛날사진을 현대식으로 인화해 거실에 걸어놓았다.
우두리 출신인 어머니의 故 이학보 여사는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내 나이는 21살로, 동두천에서 의무병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당시 큰형에게서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때는 지금처럼 병원이 없어 사망 이유도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다리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도 다리몸살이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가진 것 없이 다섯 남매를 가르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
2019년 이야기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나는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27세에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중매로 아내 김유환 씨를 만났다. 큰 딸 장엽이와 두 아들(강동·목동)을 낳고 키웠다. 하지만 아들 강동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돈을 벌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떠날 때 어린 아이들과 아내만 두고 가려니 마음이 아팠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도 매일을 눈물로 지새웠다. 그래도 그 때 아내가 아이들 사진을 보내줘 많은 힘이 됐다. 나도 내 얼굴 사진을 가족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 사진은 그때 아내가 보내 준 두 아들의 모습이다. 내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혹여 내가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돼 내 손부터 봤다고 한다. 다행히도 무사히 한국에 왔고 그 후에 가족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다. 한편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 아들 운동회에 갔다. 나는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아빠와 함께 달리기 하는 시간이여서 아들이 애타게 날 찾았는데 가지 못했다. 하루 종일 퉁퉁 불어 삐쳐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2-1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강동이가 그 주인공이다.
2019년 이야기
국일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
아내(강사남)와 결혼하고 우리는 두 딸과 두 아들을 낳았다. 이 사진은 막내아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찍은 사진이다. 그 때도 가족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했었는데, 인천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잠시 당진에 온 딸이 제안해서 국일사진관에서 가족 사진을 찍었다. 국일사진관은 신평에 위치한 오래된 사진관이다.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지만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드라마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이 사진에서 가장 어린 막내아들이 벌써 43살이 됐다.
내 나이 서른 살 무렵
아버지 환갑잔치 내 나이 서른 살 무렵,
아버지 환갑잔치 당시에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을 온전히 보관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군데군데가 찢어져서 아쉽다. 맨 오른쪽이 나의 아내(김길려)고, 가운데 앉은 아이가 아들, 그 아내 옆 아이가 내 딸이다. 아버지는 환갑을 치르고 63세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81세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신평면 신당리에서 태어나 신평초(35회), 합덕중(15회)을 졸업하고 인천공고를 졸업했다.
2019년 이야기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우리 손자와 손녀들 사진이다. 딸과 아들들은 매우 착하게 잘 커줬다. 자녀 모두 고대초와 고대중을 졸업했다. 딸은 당진여고를, 아들은 각각 대전 둔산고와 호서고를 다녔다. 지금은 모두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이 손자들을 데리고 집에 올 때마다 반갑고 좋다.
2019년 이야기
김용관회장
100일이었던 증손주가 벌써 29세
이 사진은 큰손자 진환이가 태어난 지 100일을 맞아 축하하면서 촬영한 가족사진이다. 가운데가 큰 아들의 아들인 손자 진환이다. 이 아이가 자라 벌써 29살이 됐다. 내 옆에는 왼쪽 큰딸(매곤), 오른 쪽 작은딸(해곤)이 있다. 그 아래 손녀 가해와 하나가 있다. 가해는 큰 딸의 딸이고 하나는 작은딸의 딸이다. 사진 뒤로 보이는 병풍은 사진의 맨 왼쪽에 자리한 아내(이태희)가 직접 수를 놓아 만든 것이다. 아내는 손재주가 참 좋다. 할머니를 닮았는지 가해는 현재 애니메이션 제작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얼마 전엔 아이를 낳아 증손주까지 안겨줬다. 지난 설에 아들·딸과 손자·손녀들이 모두 모였는데 집안이 꽉 찼다.
2019년 이야기
카세트 들고 전국 다녔던 그 시절
서해대교 개통을 앞두고 두 아들(강민, 강욱)과 함께 다리를 걸었을 때의 모습이다. 풍물단인 아내는 농악공연 때문에 사진을 같이 찍지 못했다. 주탑까지의 길이 생각보다 너무 멀어 아이들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2019년 이야기
지금은 볼 수 없는 장례식
지금은 장례식장이 있지만 옛날엔 집에서 상을 치렀다. 이 사진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모습이다. 상주인 나는 베옷을 입고 미루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짚은 채 손님이 올 때마다 옆에서 곡소리를 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2019년 이야기
김순섭전 석문노인대학장
교회를 기록하며
이 사진은 삼화교회 90년사에 담긴 사진이다. 기독교가 모태신앙인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교회의 기록을 책으로 담고 싶었다. 그래서 발간위원장을 맡아 교회의 역사를 찾아 다녔다. 발간사에는 교회초창기에 장로였던 나의 큰아버지 심상욱 장로와 김준호 장로의 기록도 있고, 교회를 만든 선교사의 기록도 있다. 또 직접 작사한 교회가도 수록돼 있다. 발간 첫 장에는 옛 삼화교회 모습도 담겨 있다. 그 당시 발간작업이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면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이다.
2019년 이야기
김용관회장
우애 있게 잘 살길
이 사진은 아내가 칠순을 맞이하며 아들·딸들과 함께 설악산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이다. 숙소를 얻어 아들·딸들과 강원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때가 4월 20일 경이었는데 벚꽃이 만발했다. 우리 아이들이 모두 건강하고, 형제 간에 우애 있게 잘 살았으면 한다.
>>김용관 회장
- 송산면 유곡리 출생
- 당진시게이트볼동호회
송산면분회장
- 전 당진시게이트볼동호회장
2019년 이야기
정미집에서 먹은 자장면
첫째 딸(진경)을 데리고 시내로 나와 중화요리 식당이었던 정미집을 갔을 때 모습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정미집은 중화요리를 먹기 위해 당진 사람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시장오거리 새마을금고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5. 깨끗했던 하천, 지금은….
성당마을 바로 앞에는 역천이 흐른다. 옛날에는 물이 얼마나 맑았는지 여름만 되면 당진 사람들이 다 이곳에 모여 물고기 잡아 어죽을 끓여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놀곤 했다. 우리 집은 바로 앞이어서 역천에 자주 나가 놀곤 했다.
첫 번째 사진은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 그때 정말 재밌었다. 두 번째 사진은 아이들(진경·선숙·민석)이 놀고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땐 정말 물이 맑았는데 주변에 공장들이 들어선 후로 물이 오염돼 너무 안타깝다.
>> 백종대 성당건축설비 대표는?
- 성당건축설비 대표
- 전 성당초등학교 총동문회장
- 밀레산악회 회장
2019년 이야기
먼저 떠난 그리운 아내
시간 흘러 첫째 딸이 환갑 회갑연을 한 지도 22년이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올해 첫째 딸이 회갑을 맞았다. 나는 아들 둘과 딸 넷을 낳고 키웠다. 지금은 손자가 13명이고 증손자도 있다. 벌써 큰손자가 40세를 넘었다.
2019년 이야기
승마장에서 손자와
동물농장을 한창 운영할 때 놀러온 손자(최어진)와 승마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찍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 아이가 대학생이 됐다. 당시 우리 동물농장에는 말과 작은 승마장이 있어 오는 누구나 승마체험을 할 수 있었다.
2019년 이야기
시아버지와 함께 연수에서
사진 속 가운데 있는 분은 시아버지(김수만)다. 적십자 임원 교육이 경기도 화성에서 있었는데, 당진군청을 퇴직하고 집에 계신 시아버지만 두고 며칠 간 집을 비울 수 없었다. 당시 직원이었던 홍신춘 씨가 함께 오라고 권유해 함께 교육을 수강했다. 처음엔 “그곳에 내가 왜 가냐”고 했던 시아버지는 가서 급식소에서 스스로 밥도 먹으며 즐겁게 교육을 수강했다. 교육까지 받은 아버님은 후에 문해교육 강사로 나섰지만 3일 만에 “스승은 따로 있나보다”며 그만두셨다.
아버지 생전
김무기국방전우신문 충남지사 회장
일찍 떠나보낸 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1983년도, 내 나이 40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이 사진은 아버지 생전에 서울의 남산을 갔을 때 찍어 둔 사진이다. 아내와 나는 두 딸(미옥·민정)과 아들 하나(경민)를 두었다. 세월이 흘러 벌써 큰딸 나이가 벌써 52세다.
2019년 이야기
권영산한국화가
아버지 책 출간하고파 나의 아버지다. 추억을 되짚어보면 늘
아버지가 있듯이 나에게 아버지는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아버지는 서울을 비롯해 대구, 안양, 제주도, 전주, 의정부 교도소에서 근무하며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일기를 쓰셨다. 나에게 새 일기장을 사 오라고 하셨고, 그 일기장에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본인의 책을 쓰고 싶어 하셨다. 직접 쓰시기도 했지만 끝내 출판하지 못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를 기억하며 쓴 책을 출간하고 싶다.
2019년 이야기
편종만당진외국인교회 담임목사
아내의 희생
나는 신학대학교 4년, 대학원 2년으로 총 6년을 공부했다. 내가 공부할 때 아내는 옷 수선을 해가며 나와 두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그리고 저녁이면 내가 쓴 리포트를 다시 바른 글씨로 정서해줬다. 아내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 졸업사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없는 지금 이 사진이 나에게 너무 소중하다.
20년 전 쯤
마지막
사진은 어머니다. 20년 전 쯤 어머니를 모시고 당진 곳곳을 구경할 때 면천초 은행나무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어머니는 건강한 모습이지만, 지금은 98세로 몸이 많이 불편하다. 어머니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55년 전
<첫 번째 추억사진-최장옥>
무려 55년 전 사진이다. 고대면 슬항리에 위치한 옛 고향집 앞에서 가족들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 맨 아래 꼬마녀석은 셋째동생(최장선 평택고용복지플러스센터 소장)이다. 어머니가 막내동생은 안아주고, 자신은 안아주지 않는다며 토라져서는 저렇게 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보면 웃음이 나는 사진이다.
5~6살쯤
친정어머니(1번 사진)
내(김영혜)가 5~6살쯤이었을 때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8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겼다. 당시 아버지가 공무원이어서 큰 어려움 없이 자라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가세가 기울었다. 어머니는 결혼하기 전까지 글 읽고 수만 놓으며 살다, 결혼 후 해본 적 없는 농사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딸도 시집 가서 농사를 몰라 고생할까봐 어렸을 때부터 밭일을 시키셨다. 지금은 엄마보다 더 늙은 노인이 됐지만, 여전히 엄마가 그립다.
세 살배기 적
3살 때 찍은 사진
첫 번째 사진은 내가 세 살배기 적 찍은 사진이다. 나는 가운데 있는 아이로 할아버지 옆에 할머니가 날 안고 있다. 할머니 품에 안겨 사진 찍던 세 살 꼬마는 어느덧 나이 일흔의 할아버지가 됐다. 벌써 60여 년 전의 사진으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연애하던 시절
박성두 송산면 명산리
처갓집에 일손 돕던 매형
이 사진은 둘째 매형의 사진이다. 매형이 누나(박영자)와 연애하던 시절 처가집인 우리 집에 잘보이기 위해 찾아와 일손을 도왔던 날이다. 누나는 송악중학교와 당진여고 배구부 주장으로 활동하며 육상 충청남도 대표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또 공부도 잘해 서울은행에 취직해 사회활동을 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족(5~6번 사진)
5남매(하숙·병하·경하·기숙·혜숙)를 낳았다. 5명 중에 3명이 교직에 있다. 다들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고, 큰 말썽 없이 바르고 착하게 자랐다. 그게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다. 남편은 바깥일하느라 바빠 아이들 교육은 내 몫이었다. 어느 날 큰아들이 “엄마가 우리를 참 잘 가르쳤지”라고 했는데, 그 말이 그렇게 고맙더라. 며느리들도 잘 얻었고, 손주들까지 잘 커서 모두 어른이 됐다. 흑백사진 속 아이는 큰아들로 초등학교 1학년 때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남편 환갑 때 온 가족이 한복을 맞춰 입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여름날
송정애 읍내동
직접 미역 따서 끓어준 생일 미역국
이 사진은 여름에 가족들과 강릉으로 피서 갔을 때 찍었다. 이때 남편(정익환)의 생일이어서 급한 대로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따서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냄비 대신 양동이, 뚜껑 대신 방석을 사용했지만 맛이 기가 막혔다. 어느 날 라디오를 듣다가 ‘여름날의 추억’이라는 주제로 사연을 받길래 이 이야기를 써서 보냈더니 라디오에 우리 가족의 이야기나 흘러나와 무척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2020년 이야기
김종일삼꽃색소폰선교단장
아내와 아들(김춘수)과 함께 난지섬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 생명이 위독했다. 출혈이 심해 25년 경력의 의사조차 “나는 못 한다. 하느님이 살려도 난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 손 쓸 수 없다는 의사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리고 수술 중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각서까지 쓰면서 수술을 감행했고, 다행히 아내와 아들은 살았다. 현재 아들은 강원도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는 전도사로 일하는데, 내년에 목사 안수를 받을 예정이다.
아내가 시집 온 뒤
박인규전 우강면개발위원장
옛집 앞에서 가족들과
아내가 시집 온 뒤 당시 살았던 옛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렀는지, 오랜만에 사진을 찾으면서 새삼 옛 생각에 잠겼다. 20년 전에 같은 자리에 지금의 집을 지어 살고 있다.
<다섯번째 추억사진>
가화포도 며느리 ‘진’
옛날엔 순성 가화포도가 유명한 지역의 특산물이었다. 당시엔 매년 포도축제를 했었는데 아내가 가화포도 며느리 선발대회에 나가 ‘진’으로 선발됐다. 당시 20~30대 많은 여성들이 출전했지만, 키도 크고 훤칠한 아내는 무려 47살의 최고령(?) 나이로 진이 됐다. 결혼 때 신부화장도 못했던 아내가 처음으로 예쁘게 화장을 했는데, 나는 그냥 시골 아저씨 차림으로 가서 사회자가 놀렸던 기억이 난다. 늙어서도 아내와 마트에서 같이 카트 끌고 다니면서 장 보는 게 내 소망이다.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아내와 함께 하고 싶다.
<여섯 번째 추억사진>
2020년 이야기
박성두 송산면 명산리
명산리 종가의 종손
이 사진은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은 지도 벌써 수십 년이 훌쩍 흘렀다. 세월이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야속하기만 하다. 송산면 명산리가 고향인 나는 7대째 종가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아직도 고향집을 지키며 종가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태어난 지 100일이 채 안됐을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
마지막 사진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손녀다. 태어난 지 100일이 채 안됐을 때다. 손녀가 생긴 후 어머니의 사랑과 할머니의 사랑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책임감을 함께 지는 부모의 사랑과는 다른 그야말로 온전한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손는 아직도 할머니인 나를 잘 따른다.
2020년 이야기
박인규전 우강면개발위원장
‘불호랑이’ 같은 아버지
6.25 참전용사인 아버지가 올해 91세를 맞으셨다. 온 가족이 고향이나 다름 없는 우강면 세류리 집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버지는 ‘불호랑이’ 같았다. 강직하고, 남을 속일 줄 모르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6남매 모두 바르고 착실하게 컸다. 여전히 형제들은 모두 우애가 좋고, 부모님 또한 건강하셔서 행복하다.
어릴 적
김병길당진원시가지 상가번영회장
음악에 푹 빠졌던 학창시절
첫 번째 사진은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원당동에서 태어난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특히 할아버지는 장손인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모두 시켜주셨고, 응원해주셨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할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던 내게 드럼 세트를 사주시기도 하셨다. 당시 드럼 세트가 너무 비싸 당진에서는 드럼 세트를 갖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돌
유광자순성면 중방2리
멋쟁이 아가씨’ 찬란했던 나의 20대
첫 번째 사진은 돌에 찍은 사진이다. 올해로 82세가 된 나는 서울 노량진에서 나고 자랐다. 유복한 가정에서 8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에도 난 참 쾌활했다. 리더십도 있어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10대 시절 사진은 6.25전쟁 때문에 많이 없어졌다. 그래도 돌 사진은 고이 잘 간직하고 있어 다행이다.
2021년 이야기
황규찬당진3동주민자치 회장
함께 하는 즐거움 ‘여행의 이유’
두 번째 사진은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첫째 누나, 둘째 누나와 찍은 사진이다. 홍성에서 태어난 나는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장남이었기 때문에 특히 할머니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형제들은 주로 서울과 경기도에 많이 살고 있다. 명절이나 생일 등에는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홍성집에서 곧잘 만나기도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다 함께 모일 수가 없어 굉장히 아쉬웠다.
2021년 이야기
이충수상궁원리 이장
유명 패션 브랜드 본부장에서 벼농사 짓는 농부가 되다!
두 번째 사진은 가족과 찍은 사진이다.
아내(권대순)와 나는 부모님의 소개로 만났다. 합덕읍 궁리 출신의 장모님(심세근)과 합덕읍 상궁원리 출신의 아버지(이광식)는 합덕중학교 동창이었다. 양가 부모님 소개로 만난 아내와 나는 교제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다.
귀농한 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다. 우리 가족들에게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2021년 이야기
뚜렷한 이목구비에 인기 많던 소년
마지막 사진은 설악산 백담사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우리 부부는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아 길렀다. 사진 속 딸의 나이는 약 14세, 아들의 나이는 12살로 기억한다. 우리는 가족여행을 자주 다녔다. 여행을 좋아해 전국 곳곳을 다녔다. 옛날에는 네비게이션이 없어 지도를 보고 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가곤 했다.
현재 두 자녀 모두 경기도 오산에 살고 있다. 자녀들은 우리가 당진에 온 것이 좋다고 한다. 오산에서 당진까지 1시간 정도 걸리곤 한다. 자녀들과 사는 곳의 거리가 멀지 않아 좋다. 자녀들도 당진을 자주 찾는다. 어린 자녀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놀러 가지 못하니 우리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팔순
유광자순성면 중방2리
멋쟁이 아가씨’ 찬란했던 나의 20대
마지막 사진은 내 팔순을 기념하며 찍은 가족사진이다. 4남매 모두 장성해 각각 2명 씩 자녀를 낳았다. 그래서 손주가 모두 8명이다. 딸과 아들 모두 효자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속썩는 일이 크게 없었다. 요즘엔 하루에 3번씩 전화해 안부를 묻는다. 자녀들이 모두 잘 살고 있기 때문에 남부러울 게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모두 건강하게 살면서, 하고 있는 일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
김예나 기자 yena0808@hanmail.net
결혼 후
“교복 입은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다섯 번째 사진은 당진감리교회 다닐 적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이 나고, 안고 있는 아이는 큰아들 정식이다. 나는 결혼 후 대덕리에 거주하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당진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아버지 환갑잔치 날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아버지 환갑잔치 날 찍은 사진이다. 아버지 환갑을 맞아 가족들과 교회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아버지는 2018년 88세의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치매를 앓고 있던 아버지가 주간보호센터에서 먹기 싫은 약을 억지로 드셨는데,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죄송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쏟아진다. 나는 6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다. 없는 살림에 아들을 공부시키겠다고 부모님이 고생이 많으셨는데, 나는 그만큼 부모님께 잘해드리지 못한 거 같아 죄송스럽기만하다.
>> 박성길회장은
-1955년 고대면 대촌리 출생
-고산초·호서중·당진상고·동남보건대학 졸업
-당진재가장기요양센터 대표
-새마을지도자 당진1동협의회장
2021년 이야기
“교복 입은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마지막 사진은 시할아버지와 손주가 감자를 캐면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손주는 벌써 서른이 넘었다. 우리 부부의 사진은 아니지만, 증조할아버지와 증손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라 가장 아끼는 사진이다.
20대 때
조만형면천면 성상1리 노인회장
트롯가수 장민호 닮은 그리운 큰아들
첫 번째 사진은 아내와 나의 20대 때의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은 군 복무 중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복무기간이 18개월이지만 내가 군생활을 했을 때에는 무려 54개월이었다. 지금은 백발의 할아버지이지만 소싯적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해 인기가 있었다. 왼쪽 사진은 23세이었던 아내(박계순)의 모습이다. 아내는 합덕읍 재호지리 출신으로 꽃다운 21살 나이에 나와 결혼을 했다.
2022년 이야기
9년 간 지고지순한 연애 끝에 결혼
첫 번째 사진 은 친오빠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9남매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 3명, 언니 1명이 있었다. 이 사진은 군 복무중이었던 큰오빠가 휴가 나왔을 때로, 당시 언니는 결혼했을 때라 사진에 없다. 이 사진은 면천면에 있었던 현대 사진관에서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는 사진관에 가면 옷을 빌려줬다. 내가 입은 옷도 빌려 입은 세일러복이다.
3년 전쯤
하상우·이환숙고대면 진관리 부부
운동하며 보내는 즐거운 노년
두 번째 사진은 3년 전쯤 석문국가산업단지 내 조성된 유채꽃단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아들(하진구)은 지금 서울에 살고 딸(하정아)은 광주에 살고 있는데 두 남매 모두 결혼했다. 아들딸은 부모 속 썩이지 않고 남매간 정을 쌓으며 각자 가정을 꾸려 잘 살아가고 있다. 아들딸이 각각 두 명씩 자녀(손주)를 낳아 온 가족이 모두 모이면 열 식구가 된다. 아이들이 화목하게 살고 있어 감사하다.
2022년 이야기
조만형면천면 성상1리 노인회장
트롯가수 장민호 닮은 그리운 큰아들
세 번째 사진은 서울에서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나는 6살 차이가 나는데 중매로 만나 결혼해서 삼형제를 낳아 길렀다.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적 있지만 막내아들이 딸처럼 살가워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막내아들은 매일같이 우리의 안부를 묻고 살뜰히 챙긴다.
2022년 이야기
9년 간 지고지순한 연애 끝에 결혼
세 번째 사진 은 창경원에서 엄마와 찍은 사진이다. 우리 엄마는 참 순한 사람이었다. 활발했던 나와 달리 엄마는 얌전하셨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한대우·최기자 부부 (면천면 죽동2리)
네 번째 사진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 찍은 가족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결혼해서 아들 셋을 낳아 길렀다. 첫째 아들은 서울에, 둘째 아들은 당진에, 셋째 아들은 인천에 살고 있다. 세 명의 아들 중 나를 가장 많이 닮은 아들은 큰아들이다. 장성한 아들들의 어릴 적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2022년 이야기
조만형면천면 성상1리 노인회장
트롯가수 장민호 닮은 그리운 큰아들
네 번째 사진은 형님과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배경은 형님(故 조일형)이 살던 서울 흑석동이다. 형은 나보다 4살이 많았는데, 사이가 좋았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이때 다정하게 손도 잡고 찍었더라. 형과 찍은 사진이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찾은 것은 이 사진 뿐이다.
환갑잔치
조만형면천면 성상1리 노인회장
트롯가수 장민호 닮은 그리운 큰아들
마지막 사진은 당진 신성회관에서 환갑잔치를 하며 찍은 가족사진이다. 벌써 30년 가까이 흘렀다. 나는 올해 89세를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청력도 좋고 건강에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 앞으로도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사진 속에 있는 세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의 모습이 보니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큰손주가 올해 37살이 됐다. 마냥 어렸던 손주들은 어느덧 훌쩍 자라 지금은 나보다 키가 크다.
한편 10년 전 교통사고로 맏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나를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이었다. 요즘 TV에 나오는 트롯가수 장민호와 비슷하게 생겼었는데, 오랜만에 사진을 보니 큰아들 생각이 난다. 우리 자손들 모두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2022년 이야기
9년 간 지고지순한 연애 끝에 결혼
마지막 사진 은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다. 우리 부부는 삼형제를 길렀다. 이중 큰아들(호선기)은 현재 새마을지도자 면천면협의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같이 살고 있다. 아들 셋 모두 현재까지 사고 쳐서 부모 속을 썩이는 일이 없었다. 앞으로도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라고, 남편과 나 역시 자손들이 부담 갖지 않도록 건강하게 여생을 살고 싶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장면의 테마와 연도는 기사 글을 읽어 자동으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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