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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그리운 아내
지금의 모습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먼저 떠난 그리운 아내

순성면 · 2019년 5월 당진시대 게재

나는 순성면 성북2리에서 나고 자랐다. 성북2리는 참 좋은 동네다. 뒤로는 아미산이 있고 앞으로는 함박산이 있다. 함박산은 동네 앞산인데 생각보다 꽤 높다. 내가 유동국민학교(현재 아미미술관)를 졸업했을 당시와 지금 성북2리는 큰 변화가 없다. 나는 3년 전 집을 새롭게 지었다. 타지에서 나가서 살고 있는 자녀들이 내가 없더라도 언제나 고향에 와서 쉬고 놀 수 있도록 집을 지었다. 혼자 있을 땐 집이 크게 느껴지지만 가족들이 오면 집이 가득 채워진다. 지금은 노인회장직을 내려놓고 노인대학도 다니고 귀촌한 셋째 딸과 사위에게 농사를 가르쳐주며 살고 있다.

22살 앳된 내 모습 23세 때 내 모습이다.

#1 22살 앳된 내 모습 23세 때 내 모습이다.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대했다. 논산훈련소를 거쳐 카투사로 복무했다. 당시 순성에서 27명이 같이 입대했는데 카투사는 나뿐이었다. 카투사로 복무했던 것이 좋긴 했지만, 항상 가족들의 걱정이 컸다.

병명도 모른 채 아팠을

#2 병명도 모른 채 아팠을

당시 옛날 집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마 내 나이가 47세쯤이었을 것이다. 지금과 달리 홀쭉한 모습에 얼굴도 거무튀튀했다. 당시에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헛배가 부르고 소화도 잘 안 됐다. 몸무게가 60kg도 안 될 정도였다. 병원에 가도 아무런 병이 없다는 말만 했다. 그때부터 술과 담배를 끊고 성북감리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때부터 몸이 좋아져서 크게 앓은 적 없이 살고 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장례식

#3 지금은 볼 수 없는 장례식

지금은 장례식장이 있지만 옛날엔 집에서 상을 치렀다. 이 사진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모습이다. 상주인 나는 베옷을 입고 미루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짚은 채 손님이 올 때마다 옆에서 곡소리를 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먼저 떠난 그리운 아내 — 사진 4

#4

시간 흘러 첫째 딸이 환갑 회갑연을 한 지도 22년이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올해 첫째 딸이 회갑을 맞았다. 나는 아들 둘과 딸 넷을 낳고 키웠다. 지금은 손자가 13명이고 증손자도 있다. 벌써 큰손자가 40세를 넘었다.

먼저 떠난 그리운 아내 — 사진 5

#5

미국에서 가장 큰 나무 미국에서 살고 있는 둘째 딸네 집에 갔을 때, 딸이 미국에서 가장 큰 나무라며 나를 데리고 가서 보여줬을 때 찍은 사진이다. 8년 전에 딸을 만나러 미국에 혼자 갔다. 아내는 힘들다고 가지 않았다. 딸이 미국에 살고 있어 자주 보진 못한다. 지금도 나보고 놀러 오라고 하는데 갈 새가 없어 아쉽다.

떠난 아내 그리워 나와 아내(故 안문자)가 함께 했던 모습들이다. 아내와

#6 떠난 아내 그리워 나와 아내(故 안문자)가 함께 했던 모습들이다. 아내와

나는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연애결혼을 했다. 같은 동네에서 살았는데, 친정에서는 결혼을 반대했다. 아내는 “남편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우린 결혼에 성공했다. 아내는 4년 전 암으로 7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팔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뼈까지 암이 전이된 상황이라고 했다. 3월에 암 진단을 받고 해를 넘기지 못한 채 12월에 곁을 떠났다. 아내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다퉈보질 않았다. 나이 들고는 늦은 나이에 취득한 운전면허 덕분에 함께 드라이브도 하고, 노인대학도 다녔다. 지금도 아내 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도 집 바로 옆에 산소가 있어 마치 아내가 함께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수시로 들려 산소를 정리하고 꽃을 심고 있다.

앨범에서 더 꺼낸 사진들

먼저 떠난 그리운 아내 — 사진 1
먼저 떠난 그리운 아내 — 사진 2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