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지렁이 잡아 용돈 벌던 시절”
송민수 석문청년연합회 전 회장
지난 1988년부터 부모님이 운영하던 용왕횟집을 물려받아 지금은 내가 운영하고 있다. 횟집이 처음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당시 장고항에서 유일한 횟집이 바로 우리집이었다. 장고항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인근에 횟집이 하나 둘씩 개업했고, 어머니가 주민들에게 회 뜨는 법을 알려주시곤 했다. 서로 서로 도우며 지냈기에 장고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들과 노적봉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맨 왼쪽에 서있고 그 옆에 동생(송현수), 어머니(김기순), 아버지(송대석)가 계신다. 그 뒤로 보이는 곳이 갯벌인데, 당시에 동생과 함께 열심히 갯지렁이를 캤던 게 생각난다. 지렁이를 캐서 낚시꾼들에게 갖다 주면 용돈을 주곤 했는데, 적은 용돈이라도 받으려고 동생과 갯벌 속에서 열심히 지렁이를 찾아 헤매곤 했다.
그 뒤로 말뚝이 보이는 곳은 김 양식장이다. 그 당시 김 양식장은 많은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었다. 하지만 당진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이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주민들이 환경 피해를 입고 생활터전을 빼앗겨 안타깝기만 하다.

#2
두 번째 사진은 1991년 충주에서 경찰학교를 다니던 시절 가족들이 면회 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지금도 꽃게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부모님이 각종 해산물을 한가득 싸들고 면회를 오셨다. 그때는 그물 구멍이 커도 꽃게가 한가득 잡힐 만큼 꽃게가 많았는데 지금은 촘촘한 그물망을 써도 잘 잡히지 않아 아쉽다.

#3
세 번째 사진은 2002년에 5년간 일하던 수협을 떠나 처음으로 ‘영진호’의 선장이 되던 날 찍은 기념사진이다. 첫 뱃일을 시작하게 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깔끔하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었던 생각이 난다.
‘영진호’는 원래 아버지가 몰던 배였다. 아버지는 소유하고 있던 땅을 처분해 목선 ‘영진호’를 구입하셨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배를 물려받게 되면서 2대 ‘영진호’ 선장으로 지금까지 장고항 앞바다를 누비고 있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