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백두산 천지에서 물구나무 서다
박원신 우강면 송산리
올해로 89세가 됐다. 하지만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열심히 살며 여생을 즐기고 싶다. 또한 천주교 신자로서 욕심 없이 건강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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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아버지(故 박용원) 회갑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 아버지는 면사무소 농업기수로 근무하다, 1945년 8월15일 해방 후 읍면단위 지방자치제가 실시됐던 당시 면의원에 당선됐다. 아버지는 교육열이 높으셨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합덕읍 창정리, 도곡리, 묵성리, 재호지리 등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위해 합도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이를 기념하고자 합도초 입구에는 부친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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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진은 혼례를 올리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1957년 봄, 군 휴가 때 어머니께서 여자 사진 2장을 보여주셨다. 당시 나는 제대한 뒤에 천천히 장가를 가겠다고 이야기하고 복귀를 했는데, 어느 날 갑작스레 내가 결혼을 한다고 전보가 왔다. 당사자인 나도 모르는 결혼이라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부대 동료들이 축하해줬다. 결국 휴가를 내서 집에 와보니 청첩장도 이미 발송됐고 결혼 준비도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배우자가 될 사람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도 못하고, 말 한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결혼하게 됐다. 친구들과 가족들의 성대한 축하 속에서 전통혼례로 예식을 올렸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좀 더 낭만적인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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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사진은 당진군 위민실장과 당진군의회 전문위원으로 일했을 당시의 사진이다. 나는 1963년 합덕읍사무소(당시 합덕면)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우강면, 순성면, 신평면 등에서 부면장을 거쳐 1986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위민실장으로 일했다. 위민실은 군청에서 처음 생긴 부서로 김종호 내무부장관의 정책부서였다. 나는 민원인의 고충을 해결하는 업무를 맡아 일했다. 1991년 7월에는 당진군의회 전문위원으로 발령받았다. 당시 당진군의회의 첫 전문위원으로 업무를 맡으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책을 보면서 공부했고, 모르는 것은 국회 전문위원에게 문의해 처리하곤 했다. 그렇게 32년 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1994년 명예퇴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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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은 백두산 천지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내 모습이다. 나는 80세까지만 해도 물구나무를 설 수 있었다. 중학생 때 우리 집 앞에 10m 길이의 하천이 있었는데, 학교 등하교할 때 양말과 신발을 벗고 하천을 건너기 싫어서 물구나무를 서기 시작했다. 또한 고등학생 때 기계체조 부장을 맡았고 역도로 충남체전에서 2위를 하는 등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40대에 들어서서는 테니스를 시작했고 탁구, 등산도 즐겨했다.
>>박원신 씨는 - 1934년 합덕읍 소소리 출생(현 89세) - 합덕초, 합덕중, 합덕농고 졸업 - 32년 간 공직생활(당진군 위민실장, 당진군의회 전문위원 역임) - 전 대한노인회 우강면분회장
앨범에서 더 꺼낸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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