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 타임라인
그 시절 우리 학교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에 실린 이야기 가운데 ‘학창 시절’ 장면만 모아 세월 순서로 엮었습니다. 장마다 그 사진을 꺼내 준 주민의 말을 그대로 옮겼고, 아래 링크로 그 사람의 앨범 전체를 펼쳐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108명 — 이름을 누르면 그 사람의 첫 장면으로
- 임종국2
- 채규흥
- 송정애
- 최규범
- 이호천2
- 이철환
- 최대성
- 김향곤2
- 김영자
- 한용우
- 서정길
- 이완선
- 이길조
- 유병기
- 이미연
- 이숙경
- 김인수
- 최근석
- 편명희2
- 문정숙2
- 이성태
- 조규자
- 황선숙
- 김봉규
- 이금돈2
- 김병빈3
- 이임영
- 장용희
- 이광휘
- 신혁균
- 홍승란
- 송진섭2
- 최장룡
- 김미자
- 최재환2
- 김윤각3
- 최재원
- 송영우
- 박용길
- 황순희
- 정한영2
- 서용석
- 김진선
- 최경숙
- 김병수
- 신현국
- 김은하
- 염윤상
- 조재웅
- 신태운
- 김명회3
- 백태현4
- 최성복2
- 이태용2
- 최연례
- 안홍섭
- 김용열
- 김용남
- 최세묵2
- 김종범
- 박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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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자
- 유정숙3
- 이재상
- 이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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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수2
- 김정환
- 오성학
- 최연화
- 이계영
- 한기창2
- 구현회
- 주영남2
- 편영범
- 김칠성4
- 강근묵
- 이웅배
- 최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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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근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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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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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행화2
- 이한복
- 김순섭
- 원종돈
- 권영산
- 김무기3
- 김종일
- 김귀자2
- 박성두
- 김낙출3
- 박권옥
- 황규찬4
- 김병길2
- 유광자
- 하상우·이환숙
1961년
임종국전 충청남도당진교육장
"당진 학생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다"
첫 번째 사진은 1961년 공주사립대학부속고등학교에 다닐 당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외지로 공부하러 가기 어려운 시절에 아버지까지 일찍 여의었지만 어머니와 10살 많은 형님이 지원을 해줬기에 공주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사진속 6명은 한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2인 1실이었던 방에서 서로 번갈아가면서 1년 동안 함께 생활했다. 우리가 하숙했던 곳은 학교와는 조금 먼 공주산성 입구에 있었다. 우리는 공주산성에 가서 역사 이야기도 나누고 방에 농구골대를 만들어 공놀이도 하며 놀았다. 아직도 이 친구들과는 일 년에 한 번씩 서울에서 만남을 가진다.
1966년
채규흥해나루시민학교 중등부 교사
"학창시절을 함께한 홍선이"
첫 번째 사진은 1966년 내가 17살 때 내 룸메이트였던 친구 홍선이와 찍은 사진이다. 서울 대신고 재학 시절, 학교에서 강원도 청평저수지로 소풍을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와 홍선이는 제일 친했다. 나는 17살의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갔다. 홍선이도 나처럼 경기도 오산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 함께 방을 얻어 밥도 해먹고 하루종일 붙어 있었다. 홍선이와 나는 중간에 소식이 끊겼었다 우연히 다시 조우했다. 20여 년이 지난 1986년 경 경제기획원 예산실에서 만났다. 당시 홍선이는 중소기업청 공무원이 돼 있었다.
1966년
송정애 읍내동
양재학원 다니던 시절
1966년 천의양재학원을 다닐 때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시 정미초등학교 옆에 천의양재학원이 위치해 있었다. 제일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옛날에는 요즘처럼 기성복이 많지 않아 옷을 맞춰 입었는데, 양재학원에서 배운 기술로 직접 남편 옷도 지어주고 임신했을 때는 임부복도 직접 만들어 입었다. 사진에서 입고 있는 옷도 내가 만든 옷이다. 저 때는 훌륭한 의상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1967년
최규범대호지면 개발위원장
"미호고등국민학교 시절 법주사에서…"
두 번째 사진이 언제 적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뒤에 세워진 불상은 속리산 법주사의 불상이다. 내 모습을 보니 미호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1967년 정도인 것 같다. 정확히는 미호중학교는 아니고 미호중학교의 전신인 미호고등국민학교다. 내 1년 후배들부터 미호중학교가 되었다. 미호중학교는 안타깝게도 지난 2004년 학생수 부족으로 폐교되고 말았다.
1968년
이호천송악고등학교 교사
“가방 안에서 김치국물 흐르던 시절”
첫 번째 사진은 1968년 중학교 1학년 시절 친구들과 서울 흑석동 국립묘지에서 찍었다. 배경으로 찍힌 탱크가 6.25전쟁 때 북한에서 몰고 내려온 탱크다. 그 당시엔 놀 데가 없어서 집 근처 국립묘지에 가서 놀고 그랬다. 당시엔 모두 저렇게 생긴 가방뿐이었다. 버스에 타면 좌석에 앉아 있는 여학생 무릎 위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가방을 수북히 쌓아놓는 등 짓궂은 행동을 좀 했다. 그런데 가방 안 김치통에서 국물이라도 새어나오면 그것만큼 난감한 상황도 없었다.
1968년
이철환당진군수
두번째 사진은
두번째 사진은 1966년 2월 서라벌대학 방송과 졸업사진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라디오방송의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던 때였다. 내가 진학한 서라벌대학의 방송과도 대학기관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학과였다. 졸업 후 라디오방송국에 입사하기로 확정되었지만 조부님께서 도시생활보다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공무원이 되길 강력히 희망하셨다. 더욱이 농사처가 많았기에 농사일을 하길 바라셨다. 결국 공직자의 길을 걷게 돼며 지금의 당진군수라는 막중한 책무을 맡게 됐다. 당시 공무원이 아닌 방송일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한다.
세번째 사진은 약혼사진이다. 1968년의 사진으로 그해 10월 결혼했다. 당시 조부님께서 장손의 결혼을 보고 싶으셔서 고모님들께 장손 며느리감을 찾으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그때 대호지면에 사는 둘째 고모님께서 지금의 부인을 소개시켜주셨다.
1969년
“추억의 샘에 빠진 하루”
첫 번째 사진은 1969년도 홍성고등학교 3학년 때의 사진이다. 당시 학생들은 충무정신을 이어받아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충남도내 모든 학교의 학생회장이 현충사에 모여 행사를 가졌다. 사진은 홍성군 내 중고등학교 학생회장단 모습이다. 뒷줄 가운데가 홍성고 학생회장으로서 한때 힘깨나 썼던 나이다.
1969년
송악과 함께한 공직생활
네 번째 사진은 제11차 송악중학교 총동문회 동창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종윤을 비롯한 많은 친구들이 보인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군 제대후 바로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 1969년 고향 송악에 첫 발령을 받은 나는 IMF 당시 61세에서 58세로 줄어든 공직자 정년에 의해 퇴직하게 됐다. 그래도 퇴직할 때 까지 고향에서 지역민과 함께 할 수 있어 뿌듯했던 기억이다.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에 참여하실 독자를 기다립니다. 전화:355-5440 / 010-9401-8410
1970년
최대성석문농협 조합장
“농협과 함께했던 젊은 날”
첫 번째 사진은 농협에 재직하기 전 교사 생활 때 찍은 사진이다. 1970년대 초반 고대 재건중학교에서 국어와 사회 등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어려운 형편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학생들이 많던 시절이었지만 학생들의 향학열 만큼은 불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은 아산만 방조제가 처음 생기고 구경을 갔을 때 였던 것 같다.
1976년
합덕읍 교동식당 채금남 대표
두 번째 사진은 친구들과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기찻길에서 찍은 사진이다. 1976년에 찍은 사진인데, 당시 나는 스무 살이었다. 이 사진은 친구 오순자, 홍순식, 정선옥과 함께 찍었다. 이 친구들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지만, 연락이 끊겨 소식을 모른다. 친구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
1978년
f야구와 함게한 지난 세월
첫 번째 사진은 당진초 야구부 시절 사진이다. 지금은 없어진 당진초 야구부. 1978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진 사상 최초로 도내 예선을 통과해 전국대회에 나가게 될 때 기념으로 찍은 거다. 대전공설운동장에서 대흥초등학교를 6대2로 누르고 우승했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맨 윗줄 오른쪽 세 번째가 나)
또 야구사진이다(웃음). 중학교 때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대전 한밭중으로 진학했는데 저 사진은 광주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 경기 후 찍은 사진이다. 당시 저 대회에서 한밭중은 동메달을 차지했다.
생각해보면 아내(류경희, 류경희드림댄스 원장)와 만난지 무척 오래된 것 같다. 세 번째 사진은 아내와 결혼 10주년을 맞아 지난 2005년 찍은 사진이다. 대학 때 야구로 만난 인연, 늘 옆에 있어준 아내에게 고맙다.
당진군내 야구동호회가 어느새 10여개다. 몇 년 전 서너개에 불과했던 동호회 수가 두 배이상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야구를 즐길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 늘 안타깝다. 16개 시군 중 야구장이 없는 시군은 청양과 당진뿐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야구에 대한 애정만으로 연습에 임하고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1980년
“어느새 50대 중반, 세월무상 느껴”
첫 번째 사진은 1980년대 대학시절의 사진이다. 대천수산고등학교 실습선(50톤 규모)을 타고 서해바다 외연도 부근에서 해양생태 조사 작업 현장실습을 하던 때다. 휴식 시간에 배 가장자리에 앉아 찍은 사진인데, 지금 보니 막내아들과 똑같이 생겼다.
1980년
김향곤송산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장
“망둥이와 황게 잡던 추억”
1980년,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어머니(한경우)와 초등학교 소풍으로 현재 현대제철이 된 방조제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뒤로 보이는 저 곳은 모두 바다와 갯벌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망둥이 낚시를 하고 그이 혹은 황게라고 불렸던 논게를 잡으러 다니곤 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공사를 시작해 이후 한보철강이 들어서면서 바다와 산단이 됐다. 당시에는 소풍으로 봉화산과 성구미포구 그리고 시루지라고 불렸던 가곡리의 해안가를 가곤 했다.
1982년
김영자송악읍엄마순찰대장
짝사랑 때문에 시작한 육상
첫 번째 사진은 1982년 육상선수로 활동했던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초·중학생 때 육상선수로 활동했다. 당시 내 키는 163cm로, 육상에 적합한 체형을 갖고 있었다. 육상선수로 이름을 알렸던 내 사진은 ‘우리학교를 빛낸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학교 게시판에 걸리기도 하다. 지금도 나는 송악읍민 체육대회나 당진시어머니생활체육대회에서 달리기 선수로 출전하기도 한다.
한편 나는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육상을 시작했다. 나의 첫사랑이었던 체육선생님의 격려에 더욱 힘을 얻어 달리곤 했다. 졸업 후 자연스레 선생님과 연락이 끊겼다가, 사람찾기 사이트를 통해 선생님을 찾아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힘들 때면 선생님께 전화를 하곤 한다.
1982년
한용우송악읍 반촌2리 이장
지금과 다른 반촌2리의 옛 모습
세 번째 사진은 1982년 경복고등학교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재학 당시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다.
동기들이 농촌 일손을 돕고자 내가 사는 반촌2리를 찾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나는 서른 살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와 비슷한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늦게 입학한 동기들은 나이가 각각 달랐지만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사진 배경 맨 왼쪽은 현재 한빛아파트 자리다. 지금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이다. 세월의 변화가 느껴진다.
1983년
김향곤송산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장
“딱 1년 입었던 교복”
1983년 중학교 1학년 때 엄마와 누나,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아마 대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고 있는 검은색 교복은 일제시대의 잔재로, 1학년 때만 입고 2학년 때 자율복으로 바뀌었다. 동생은 교복을 입지 못했지만 나는 하복에 춘추복까지 모두 입었다. 그래도 자율복이 편하긴 했다.
1987년
친구들과 함께 찾은 석문
나는 구룡리에서 태어나 4살 무렵 사기소동 성당마을로 이사와 평생을 이곳에서 지냈다. 나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성당초를 다녔다. 이 사진은 동네 친구들과 석문면으로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다. 석문방조제가 1987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는데, 이 사진이 1987년 당시의 모습이다. 이 친구들과는 지금도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왕래하며 지내고 있다.
1989년
서정길송악읍 가교1리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세 번째 사진은 1989년, 내 나이 53세 때 기지시초등학교 제9회 동문회에서 부부동반으로 4박5일 제주도 여행가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지금도 동네 친구들과 자주 만나곤 한다. 특히 우리 집 근처에 이계홍이라는 친구가 사는데 자주 만나 시간을 보낸다.
제9회 동문회에는 현재 11명 정도의 동창만 남아있다. 만나면 함께 식사하고 어렸을 적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많은 친구들이 먼저 떠났기에 안타깝다. 친구들과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1991년
문화예술과 함께한 나의 삶
세 번째 사진은 1991년 음대학생회장시절 안성시내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다. 1년 재수를 하고 86학번으로 입학한 나는 음악학도로 음악도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사회구성체로서 한국의 정치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학생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1993년
이완선순성농혐 조합장
“헬기 타고 날아온 감사 서한문”
세 번째 사진은 1993년 천의초등학교 동창들과 봄나들이를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얼마 지난 것 같지 같은데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친구들은 지금 만나도 여전히 그 때 모습이 남아있는 것 같다. 동창들과 단체로 자주 만나기도 하고 몇몇 친구들은 지금도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항상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렇게 옛 추억들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1996년
“카투사 시절의 추억”
두 번째 사진은 1996년도 인천에 살고 있는 호서고등학교 동문들의 모임인 재인천호서동문회 송년의 밤 행사 사진이다.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동문들의 화합을 위해 활동해왔다. 당시에는 고향에 정착하기 이전으로 알리안츠생명 인천지점장으로 활동하던 때다.
1999년
“결혼식 다음날 내린 다복스런 눈”
두 번째 사진은 학창시절 못했던 공부를 마친다는 생각으로 입학했던 공주대학교 고위생활체육지도자과정을 마치며 찍은 사진이다. 저때가 1999년이었다. 체육사를 운영하면서 각종 스포츠를 즐겼던 나는 불의의 사고로 눈을 다친 후 운동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 참 아쉽다.
1999년
임종국전 충청남도당진교육장
"당진 학생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다"
두 번째 사진은 1999년 겨울에 교직에 있을 때 가르쳤던 제자들과 노래를 부르다가 찍힌 사진이다.
1969년도에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스승을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 또 어느 때는 제자들이 몰래 환갑잔치도 해주더라. 갑자기 우리 집으로 와서는 식사하러 가자고 해서 나섰는데 환갑잔치 준비를 해놓았다. 제자들이 항상 나를 기억해주니 고맙다.
1999년
이길조면천농협 조합장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네 번째 사진은 1999년 10월25일 한라상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단국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인데 학생회장을 맡아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한라산에 올랐었다. 지금도 이 사진만 보면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8시간 반 걸렸는데 죽어도 두 번은 안 간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다.
정리 우현선 기자
2003년
유병기대호지농협 차장
"농협에서 보낸 20년을 돌아보며"
두 번째 사진은 2003~4년도쯤으로 기억한다. 면천중학교 39회 친구들과 기수별 체육대회를 마치고 찍은 사진이다.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축구경기 직후에 찍은 사진으로 열심히 경기에 임했지만 우승은 하지 못했다. 현재는 기수제한으로 체육대회에 직접 참여하진 못하지만 대신 현장중계를 통해 화려한 입담을 뽐내고 있다.
2003년 이야기
이미연고대면 용두리
촌스러움의 극치, 귀여움의 극치 - 이미연(고대면 용두리)
두번째 사진은 봄소풍 가는 날(호서고 3학년 때). (왼쪽부터) 경희는 지금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고, 현애는 소식이 끊겨 어떻게 사는지 매우 궁금하다. 그리고 대전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는 내 짝궁 명금이. 항상 끼가 넘쳤던 이 친구 때문에 웃느라고 수업을 제대로 못했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웃다가 선생님한테 걸려 혼난 적도 있다. 지금은 거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친구들이지만 항상 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친구들이다.
노란 유채꽃 바다에 둥실 떠 있는 단란한 우리 가족, 세번째 사진은 얼마전에 가족끼리 안면도로 꽃박람회장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남편과는 좀 일찍 만났다. 고2 때 친구소개로 만나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한 끝에 ‘세상에 이만한 사람 없구나’라는 생각에 97년 4월에 결혼했다. 지금은 신랑(김광득)과 아들 호(6), 딸 수(4)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미연(31) / 고대면 용두리
2004년
이숙경민화작가
“우리는 붕어빵 가족”
세 번째 사진은 2004년도에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을 졸업하며 찍은 사진이다.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다 민화를 그리는 작가들로 지금도 서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민화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더 키우게 됐다. 이날 만큼은 친구들과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2004년 이야기
김인수당진읍 읍내리 고려당 대표
호기심 많던 시절, 그리운 추억들 - 김인수(당진읍 읍내리 고려당 대표)
첫번째 사진은 내가 다섯살때 동네에 돌아다니던 사진사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이다. 당시에는 사진관이 많지도 않았고 사진기조차 귀하던 시절이었다. 옷과 총은 물론 저 배경까지도 사진사 아저씨가 가지고 다니던 소품이다. 울며불며 부모님 졸라 찍은 사진. 그때 기억이 선명하다.
아래사진은 선배들의 졸업식날 친구들과 같이 찾아가 찍은 사진이다. 선배들 앞에서 공연(?)을 펼친 나와 친구들. 당시 유행했던 전영록 안경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둥근 사진은 호서고등학교 축제인 ‘밤절제’ 때 모습이다. 지금의 밤절제와 비교하면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우리들 손으로 만든 우리들의 축제였다.
위에서 두번째 사진은 고교 시절 동기들과 자전거를 타고 보덕사로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기도 시원치 않았을 텐데, 사진이 실물보다 훨씬 잘 나온 것 같다.
김 인 수(34)
당진읍 읍내리 고려당 대표
2007년 이야기
최근석조선일보 당진지국장
"충령사에서 찍은 중학교 시절의 꿈"
첫 번째 사진은 1967년 졸업을 앞두고 당진읍 채운리의 충령사 앞에서 찍은 것이다. 충령사는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매년 현충일마다 추념식을 올리던 곳이다. 지금은 송악면 광명리 나라사랑공원으로 위패를 옮겼지만 우리에게 이곳은 지금까지도 각별한 곳이다. 높은 계단을 올라서 보면 당진읍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고 충령사는 흐트러진 마음을 잠시나마 가다듬을 수 있는 곳이었다. 졸업사진이라고 친구들과 나름대로 멋을 내고 찍었다.
원안의 인물이 당시 졸업을 앞둔 중3의 내 모습이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나는 교사의 꿈을 품고 공주사대부고에 지원했었다. 결과는 낙방이었고 당진정보고로 진학해 교사의 길과는 영 딴 판의 생을 살았지만 그 시절의 순수했던 꿈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다음 사진은 내가 참여했던 영어회화반의 모습이다. 다른 어느 반보다 재미있어 보여 선택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모교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당시는 학교가 당진정보고와 같이 있었는데 교정을 위쪽으로 옮기고 남녀공학으로 바뀌는 등 참 많이도 변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유년시절의 밝은 꿈과 추억일 것이다.
2010년
“나보다 이쁜 남편 모습 아직도 생생”
세 번째 사진은 막내아들(김남정)이 계성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당시의 사진이다. 지금은 예산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37세가 됐다.
2010년에는 내가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았었다. 자식들이 장성했음에도 부모 된 사람으로서 걱정만 앞섰다. 내 인생은 거기서 끝인 줄 알았지만 아직까지 살아가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 이야기
내 인생의 열정을 한데 모은 사진
첫 번째 사진은 참 아는 사람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호서고등학교 밤절제 때 풍물공연을 하고 난 뒤 찍은 사진. 내 친구들과 선후배, 그리고 도와준 분들이 많이 보인다. 다 똑같아 보이지만 상쇠였던 나만 옷이 다르니 찾기 쉽다.(웃음) 이 친구들이 졸업 후 당시 시민단체였던 당진사랑시민모임 산하의 ‘소리나눔’ 모임으로 발전했다. 나와 친구들은 당시 풍물을 배울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 둘 모였고 그 친구들이 다시 여러 친구들을 불러 함께 한 것이 이 모임의 시작이었다.
풍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소리나눔까지. 길지 않은 내 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열정적이라는 말은 저 사진에 나와있는 내 친구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함께 했으니.
2010년 이야기
내 인생의 열정을 한데 모은 사진
두 번째 사진은 날렵했던 당시의 모습. 풍물단에서 상쇠를 맡았던 나는 혼자만 ‘색동옷(?)’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저씨가 되어버렸다.(웃음)
대전여고 1학년
편명희당진군의회 의원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
‘이웃에 봉사하는 마음’
첫 번째 사진은 대전여고 1학년때 전국체전 매스게임에 참가하고 난후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이 나다. 당시 운이 좋아 부상으로 손목시계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2011년 이야기
문정숙당진군생활체육협의회 여성위원장
“테니스 코트 누비던 학창 시절”
첫 번째 사진은 중학교 2학년을 마칠 무렵 충청남도에서 테니스 선수들을 1등에서 6등까지 선출해 공주여중·고에서 육성하던 때다. 당시 공주여중으로 전학을 가게 됐던 나는 공주여고로 진학해 충청남도 여자 테니스 대표선수로 활동하게 됐다. 사진은 공주여중 3학년때로 테니스코트에서 테니스 라켓을 쥐고 모자를 쓰고 있는 소녀가 나다.
2011년 이야기
이성태제13기 민주평통당진군협의회 회장
“인생을 증명하는 삶의 흔적”
첫 번째 사진은 60년대 당진중 3학년 학창시절의 모습으로 전국소년대 창설 시 충남49대 소년대 초대 대장으로 활동하면서 대원들과 함께 촬영한 것이다. 내 옆에는(사진 우측) 이은규 군의원의 모습도 보인다.(두번째 줄 가운데)
당진 초·중·고등학교 재학 시 많은 칭찬과 상장을 주셨던 은사님, 의리를 강조하면서 함께 활개 치던 친구들, 많은 인연을 맺었던 선후배 지인들과의 사연 쌓인 사진도 많건만 유독 소년대 사진이 손에 잡힌 것은 전국규모의 큰 조직과 통일신라 화랑도의 충·효·신을 연상되게 하는 점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조규자순성면 새마을부녀회장
[조규자 순성면 새마을부녀회장] 하키선수 시절을 그리며
첫 번째 사진은 제가 고등학교 때 필드하키 선수로 뛸 때 찍었던 사진이에요. 온양여상에 다녔는데 사진 속의 다섯명이 당시 대학팀에 입학이 결정된 친구들이에요.(한가운데가 나) 저는 경희대 하키팀의 입학이 확정되었었는데 어머니의 반대가 무척 심했어요. 입학을 앞두고 불려내려온 다음날부터는 하키스틱을 더 이상 잡을 수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국가대표로 선발될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는데 경희대 입학이 좌절된 다음에도 다른 학교나 실업팀의 입단 제의가 꾸준히 이어졌지요. 당시 하키 스틱을 놓지 않았으면 TV에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뛰는 제 모습을 보실 수도 있었겠죠.
당진초등학교 5학년 때
“한번 의장대는 영원한 의장대”
첫 번째 사진이 당진초등학교 5학년 때 당진초 야구부원들과 찍은 사진이다. 지금이야 야구 선수가 유망한 직업이 되었지만 저 때는 야구선수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었다. 뒤에서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인데 내 옆에 1년 후배 구본주의 모습도 보인다. 당진초 야구부는 이 사진을 찍고 1년 후에 없어지고 말았다. 야구를 계속하자며 충남중학교 감독님이 우리 집에 찾아오곤 했었다. 당시 아버님(호병옥 전 군의회 의장)이 반대하지 않으셨다면 난 지금쯤 도내 어느 야구팀 감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웃음)
나머지 사진은 육군본부 의장대에서 군 생활을 할 때 모습이다. 군 생활을 거친 사람은 모두 알다시피 의장대는 해병대만큼 군기가 강하기로 유명하다. 대검을 소총에 부착한 상태에서 돌리고 던지고. 잘못해 대검에 찢기고 심하면 귀가 날아가버리는 일도 있다. 자연히 군기가 강할 수밖에. 흑백사진은 다들 아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분향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때가 1988년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에 가려져 서 있는 병사가 나다. 내가 1987년부터 1989년까지 군 생활을 했다. 육본 의장대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내가 앞에 나갔는데 대통령도 기억하시고 말도 자주 걸어주셨다. 이 사진을 보니 재밌는데 TV로 중계되던 모습을 보던 의장대장님이 ‘저 놈, 자세가 뭐야? 얼른 빼’라고 지시하신 기억이 난다. 턱이 들렸다면서.(웃음) 혼나진 않았다. 평소에 워낙 잘해놔서.
해병대원들이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고 하지만 의장대는 해병대 못지 않은 결속력을 자랑한다. 아직도 카페활동과 기수 모임을 갖는다. 내가 의장대를 제대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죽동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
황선숙대한적십자봉사회 당진지구협의회장
[황선숙 대한적십자봉사회 당진지구협의회장] 폐교된 죽동초등학교의 추억
첫 번째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73년 죽동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의 사진이다. 면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죽동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죽동초등학교가 동문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폐교가 결정돼 무척 안타까웠다.
이 사진이 죽동초등학교의 기억을 대변해주는데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이 사진을 가진 사람이 없더라. 신문에 실리면 전화가 많이 올 것 같다.
앞줄에 계신 선생님들, 당시 교장, 교감 선생님들은 돌아가셨지만 인치삼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진은 당진여고 시절 사진이다. 연락을 받고 옛 사진들을 찾아보니 여고 시절 사진이 얼마나 많은지. 친구들과 옥상에 올라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을 정도다.
이 사진 모두 여고 3학년 때 찍은 졸업사진들이다. 당시 3학년 2반의 담임이 유근행 선생님이셨는데 교사 임용되신 지 얼마 안되셨을 때였다.
지금은 정년퇴임하셨다. 여고 시절 참 재밌게 보냈었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깔깔거리며 그 당시 이야기를 한다.
2011년 이야기
김봉규당진고구마연구회장
"만수예식장서 결혼하던 32년 전 그날"
첫 번째 사진은 중학교 졸업사진이다. 나는 합덕중학교 19회 졸업생이다. 학창시절에는 활발하고 꽤 모범적인 학생이었던 것 같다(웃음). 헌데 지각은 밥 먹듯 했다. 학교와 집이 1분 거리라서 매번 학교 종소리를 듣고 등교를 했었다. 원래 집이 가까울수록 지각을 하는 법이지 않은가. 태어나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곳에서 아직도 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금돈한국민속예술협회 당진지회장
“농악에 내 인생을 걸었다”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것으로 추정된다. 신현옥 담임선생님의 지도 아래 우리반 전체 학생이 밴드부 활동을 했다. 당시 나는 피리(리코더) 담당이었다. 사진 속 친구들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병태, 상철이, 호영이, 영남이, 상구, 긍섭이, 영완이, 유경이...모두들 반가운 얼굴이다. 사진 속 남자아이들의 머리가 다들 짧은데 당시에는 이발사가 동네로 찾아와 벼나 보리쌀을 받고 머리를 잘라줬다.
유년 시절
김병빈공익재단법인 지속가능상생재단 사무국장
두 번째 사진은
두 번째 사진은 첫 영성체 기념사진이다. 영성체는 신앙인으로서 처음으로 거룩한 몸(예수님)을 받아 모시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행사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셨던 부모님 덕에 일찍 신앙생활을 해왔다. 사진에서 첫째 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나다. 나는 성당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집안에서 신부님이 되길 바라셨으며 나도 신부님이 되고자 노력했었다.
2011년 이야기
편명희당진군의회 의원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
‘이웃에 봉사하는 마음’
두 번째 사진은 대학교 졸업사진이다. 사진 가운데 계신분이 나의 아버님(편쾌남)이시다. 아버지께서는 6.25때 청년반공단체 부단장과 단장을 맡으시며 빨치산 토벌에 나서시기도 했다. 당시 토벌에 나섰다가 전사한 단원들의 가족을 평생 뒷바라지 해주시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8남매와 큰딸이 성공하길 바라시며 언제나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다. 아버지께서는 예산의 수많은 사회단체장으로 활동도 하셨으며 신협 이사장직도 오래 하셨다. 아마도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2011년 이야기
문정숙당진군생활체육협의회 여성위원장
“테니스 코트 누비던 학창 시절”
두 번째 사진은 당진여중에 재학 중일 때(뒷 줄 오른쪽 두 번째) 사진이다. 당진에서 테니스부가 당진여중과 당진여고에서 처음 창설되면서 함께 운동했던 언니들과 친구들이다.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면서 함께 운동하고 땀 흘리고 힘들어 했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사진 속의 장소를 남산공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2011년 이야기
이임영전 당진군유도회장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두번째 사진은 호서고등학교 유도부원들과 졸업 사진으로 찍은 사진이다(왼쪽 뒤 두번째). 오른쪽 우측끝이 신성대학 유영창 교수, 가운데가 담당체육 선생님이자 유도 담당이셨던 김영석 선생님이다. 또 가장 뒷 줄의 왼쪽 끝에 서있는 학생이 현 당진군 유도회 이재욱 회장이다.
내가 입학하던 해에 호서고에서는 유도부가 창단해 우리가 처음으로 배출된 호서고 유도부 졸업생이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이금돈한국민속예술협회 당진지회장
“농악에 내 인생을 걸었다”
두 번째 사진은 6살 때 친구가 14년만에 고향을 찾아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는 나(맨 오른쪽)와 어머니, 동생들의 모습이 나와 있는데 친구는 사진을 찍어주느라 사진 속에는 없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나팔바지가 유행이었다. 이날 친구 덕분에 아버지에게 난생 처음 막걸리를 얻어 먹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김병빈공익재단법인 지속가능상생재단 사무국장
세번째 사진은
세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졸업후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모두 성당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과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현재는 대부분 당진에 살고 있지 않지만 아직도 한달에 한번 모임을 갖는다. 함께 울고 웃으며 꿈을 나눴던 친구들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뜻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방황의 시기를 보냈던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친구들이다.
대학 때
김병빈공익재단법인 지속가능상생재단 사무국장
네번째 사진은
네번째 사진은 대학때 풍물반 활동당시의 사진이다. 당시 카톨릭 대학생 연합 풍물반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이 사진은 ‘금관의 예수’라는 공연 이후 후배들과 찍은 사진이다. 금관의 예수에서 내가 맡았던 역할은 간신배였다. 사진 가운데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나. 대학생활은 나에게 있어 인생의 전환점이된 시기이기도 하다. 학생운동을 하며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의 소개로 같은 곳에서 활동하던 아내(이경희)를 만나게 됐다.
2011년 이야기
이호천송악고등학교 교사
“가방 안에서 김치국물 흐르던 시절”
네 번째 사진은 영어회화 클럽활동 때 찍었다. 그 시절 졸업식엔 학생들이 감사의 의미로 조금씩 모아 선생님들에게 양복을 한 벌씩 선물해 주곤 했다. 어느 날 장학사가 그 사실을 알고 우리 반 반장을 불러냈다. 그리곤 ‘선생님이 얼마씩 걷어오라고 하니?’라고 물었는데 그 학생이 하는 말이 ‘어떻게 장학사님이 그런 말을 하실 수가 있냐’며 재치 있게 대처했던 기억이 난다.
15살 때
장용희대호지 적서리
“명절 땐 열흘 밤낮 머리 깍아”
첫 번째 사진은 15살 때 우리 마을에 있던 천의사진관에서 졸업을 기념해 찍은 사진이다. 남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14살인데 나는 9살에 학교에 입학해 졸업이 1년 늦었다. 사진에서처럼 당시 사진관에는 그림을 그려 배경으로 사용했다. 사진 속 조그맣던 아이가 지금은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유년시절
이광휘당진시재향군인회 신평면 회장
“부모사랑은 말이나 글로 표현 안돼”
첫 번째 사진은 유년시절 막내고모(이보영)와 나(사진 좌측), 둘째 동생인 이창휘(사진 중앙), 막내 동생인 이승휘(사진 우측)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장남이었던 나는 어린나이였음에도 어린 동생들과도 제법 사이 좋게 지내려 했었다. 사진 속 막내고모와는 5살 차이 밖에 나지 않다 보니 한정초등학교를 함께 다니기도 했다. 당시 막내고모가 6학년이었고 내가 1학년이었다. 당시 울며불며 막내고모만 졸졸 따라다녔다.
2012년 이야기
신혁균합덕읍 영풍영농회사 대표
“변하지 않은 건 마음뿐”
첫번째 사진은 내가 합덕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의 사진이다.(둘째 줄 좌측 두번째) 당시 나는 보이스카웃 단원으로 활동했었다. 사진에 표기된 단기4294년이라는 글귀가 그 시간을 말해 준다. 벌써 5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넘어 버렸다.
대한소년단 종합발대식이라는 이름으로 촬영한 이 단체사진에는 우강면의 최근묵, 백종길 합덕읍의 최재일, 성기훈 등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온양여고 시절
홍승란읍내동 옹기촌 대표
“5년간 비밀스러운 연애 끝에 결혼”
첫 번째 사진은 온양여고 시절 친구들과 수학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다.(우측 두 번째) 우리는 경포대해수욕장에서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당시의 추억과 우정을 사진 속에 담았다. 내 주변에는 항상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평소 사교성이 좋았던 난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역할을 했다.
2012년 이야기
송진섭아날도바시니 당진점 대표
“학교에서 제식훈련, 지금은 상상 못해”
첫 번째 사진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교련시간에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는 교련복을 입고 각종 제식훈련을 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과목이 아닐까 싶다. 교과 과정에 제식훈련이라니. 하지만 당시에는 제식훈련이 당연한 수업의 일환이었다.
17세 때
최장룡신평면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
“선글라스에 장발로 멋 부린 시절”
첫 번째 사진은 양평 부근의 용문산 일대에서 찍은 사진으로 기억된다. 좌측부터 친구인 최희섭, 최성호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현재 희섭이는 서울에서 살고 있고 성호는 이웃사촌으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17세 때 찍은 사진으로 장발에 선글라스를 끼고 멋을 부리고 있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2012년 이야기
김미자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사무국장
“세월 흘러 인물도 교정도 변화해”
첫 번째 사진은 현재 당진병설유치원 교사로 근무 중인 친구(김영진, 사진 우측)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시 당진여고를 다니던 나와 친구는 어버이날 행사 겸 체육대회에서 가장행렬에 참여했다. 행사를 마치고 항상 입어오던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상황을 기념해 찍은 사진이다.
족히 30년이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만큼 사진 속의 인물도 교정도 변화했다. 당진여고는 추후 건물이 증축돼 당진고등학교와 통합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사진 속을 들여다보니 학교 건물에 써 있는 ‘밝은 마음 바른 행동’이라는 문구가 현재 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의 이상과 같아 묘한 감정을 느꼈다.
2012년 이야기
최재환신평면 초대2리 이장
"품앗이하며 이웃 간 정 쌓던 시절"
첫 번째 사진은 당진상업고등학교(현 당진정보고등학교) 재학 당시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것이다. 당진상고 24회 졸업생인 우리는 교내에서도 사총사로 불릴 만큼 친분이 두터웠다. 우측 2번째 줄에 위치한 학생이 바로 나다(우측 끝 앞줄부터 김동해, 양명세, 김남수). 우리는 함께 당진 지역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쉬는 시간 오목을 둬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2012년 이야기
김윤각당진종합광고 대표
“친구들과의 우정 가득한 사진첩”
첫 번째 사진은 당진상업고등학교(현 당진정보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때 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사진 우측) 의자도 방석도 없이 산 중턱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지금은 도시락이 플라스틱 또는 종이박스로 제작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얇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야외에서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는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나무 재질로 만들어진 도시락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최재원원당동 한울인테리어지업사 대표
“지나간 추억을 감사히 여기며”
첫 번째 사진은 유곡초등학교 4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좌측 두번째 꼬마가 바로 나다. 어린 시절과 지금은 너무도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친구들도 어느세 성인이돼 한 가정에 어엿한 가장이 됐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좌측 첫번째 친구는 송재중, 우측 첫번째 친구는 김진영으로 당진에서 장비업체를 운영 중에 있어 자주 함께 만나고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사진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스승에 날을 맞아 진행된 공연 당시 촬영된 사진이다.
당진상고에서 밴드부로 활동했던 나는 졸업 후에도 락페스티벌 등 각종 공연에 참가해 왔다. 25세 무렵에는 상록문화제에 참가해 연주를 하기도 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청소년기 음악을 통해 새로운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서산여고 시절
“내게 학교는 삶이자 교육의 현장”
첫 번째 사진은 서산여고시절 찍은 사진이다. 내게 교육자로서의 꿈을 결정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시절이다. 누구에게나 학창시절은 자신의 꿈을 키우고 미래를 그려나가는 시기다. 학창시절은 성인으로서의 인생을 좌우하는 바탕이다. 또 먼 훗날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보았을 때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2012년 이야기
고마운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첫 번째 사진은 홍성에 소재해 있는 결성국민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의 사진이다.
당시 태권도를 배우던 나는 어려운 형편에 도복을 맞추지 못해 일상 생활에서 입는 옷 그대로 태권도를 배워왔다. 밥도 먹기 쉽지 않아 끼니를 거르던 친구들도 많았지만 자기개발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고자하는 열정은 높았다.
20대 초반
송영우당진유리 대표
“옛 당진 시가지, 지금은 상상도 못해”
두번째 사진은 20대 초반이었던 때로 기억되는 사진이다.
당시 당진시가지에는 벚꽃터널이라고 불리는 벚꽃길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듬성듬성 참 볼품도 없는 길이었는데 당시에는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길 이었다.
2012년 이야기
박용길충남모범운전자연합회 당진시지회장
“당진 시가지를 달리던 택시 행렬”
두 번째 사진은 학교를 졸업하고 부천에서 동신의료기에 근무하던 때 직장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주말을 이용해 스케이트장에 놀러가 줄줄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앞에서 두 번째에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에는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새내기 다운 앳된 모습이 서려 있다.
2012년 이야기
황순희새마을운동 당진시지회 우강면 부녀회 회장
“가족 같은 우강 창리 주민들”
두 번째 사진은 막내아들(이창만, 타자)의 야구경기 모습이다. 합덕초등학교 야구부로 활동했던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부단히도 많은 활동을 했다. 야구부 부모회 총무를 맡아 서울이며 공주며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를 쫓아 학생들과 야구부를 위한 활동에 한참 정신을 쏟을 때였다.
지금은 막내아들도 시간이 흘러 32세라는 나이에 접어들어 귀여운 손녀딸까지 안겨줬다. 이제는 막내아들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을 갖춰나갈 차례다.
2012년 이야기
최재환신평면 초대2리 이장
"품앗이하며 이웃 간 정 쌓던 시절"
두 번째 사진은 당진상고 교정에서 친구 김동해(사진 우측)와 사진을 찍었다. 지금 봐도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함께 쓰고 찍은 사진이다. 학생모를 대신해 털모자를 쓴 모습이 당시 학생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당시 학생들은 획일화된 모습으로 짧은 머리에 똑같은 교복, 모자를 착용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
김윤각당진종합광고 대표
“친구들과의 우정 가득한 사진첩”
두 번째 사진은 어린 시절부터 난 손재주가 좋았다. 한번 본 것은 재료만 착실하다면 곧잘 따라 만들고는 했다. 당시만 해도 놀이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 널려 있는 나뭇잎이며 풀 등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 사진은 두양그린빌라 인근 야산에서 지천에 널려 있는 떡갈나무 잎을 따다가 모자를 만들어 쓰고 찍은 사진이다. 옷깃도 세우고 한껏 멋을 부려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2012년 이야기
정한영충남동물병원 원장
“소중했던 학창 시절”
두 번째 사진은 충남대학교 수의학과 동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사진 우측 두번째)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학창시절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그립기만한 시절이다. 내게 학창시절은 지금의 나를 있게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전공을 살려 충남동물병원을 운영할 수 있었고 평생의 반려자인 사랑하는 아내도 만날 수 있었다.
대학 1학년 시절 여름방학
“어느새 50대 중반, 세월무상 느껴”
두 번째 사진은 대학 1학년 시절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무전여행 중 찍은 것이다. 정방폭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맨 뒤가 나 유재호, 가운데가 정병준, 맨 앞이 박용배다. 친구 정병준은 대전 대덕구청에서 근무 중이고, 박용배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폭포의 모습은 옛날 그대로지만 사진 속 사람들은 이제 50대 중반을 접어드는 중년으로 변해 세월무상을 느끼게 한다.
2012년 이야기
“내게 학교는 삶이자 교육의 현장”
두 번째 사진은 공주교육대학교에서 찍은 사진이다. 대학교 동기, 선배, 교수(은사)님 등과 교사로서 가져야할 마음가짐과 지식 등에 대해 고민했다. 교사로서의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학생들의 인성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교사로서 자질을 키우는게 가장 중요했다. 최근 성적만이 중요시 되는 교육실정에 학생들의 인성은 경쟁 속에 잊혀지고 있고 도심지의 주요 학교들로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편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꿈을 일깨워주고 그 길을 열어 줘야하는 교사로서 안타까움이 크다.
재학 당시
고마운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두 번째 사진은 부여 백화정에서 장재운 담임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담임선생님은 사실 나의 사촌 형으로 학교에서는 친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재학 당시 형으로서 남몰래 도움을 주기도 했고, 담임선생님으로서 많은 부분을 꾸짖기도 했다.
젊은 시절
서용석합덕읍 신촌리
“소소한 추억처럼 전통문화 잊혀질지 몰라”
세 번째 사진은 젊은 시절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지금 합덕에 살고 있는 이희주(좌측)와 나(중앙) 그리고 서야고등학교 이동호 교장(우측)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친구들 이다. 모두 당진에 살고 있지만 각자의 생활이 있다 보니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예전에 비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추억과 앞으로 만들어 갈 미래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다.
기지시초등학교 재직 당시
김진선전 시곡초등학교 교장
"사진이 없던 시절, 화가가 그린 그림"
세 번재 사진은 기지시초등학교 재직 당시 동료 교사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배경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과는 다른 낡고 허름한 건물일지 모르지만 넘치는 교육열과 학생들의 밝고 명랑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사진 속 나는 앞줄 왼쪽 두번째에 있다.
2012년 이야기
최경숙고대 슬항2리
“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세 번째 사진은 교회 중등부 학생들과 몽산포에서 2박3일간의 수련회 동안 찍은 사진이다. 남편은 중등부 교사로 활동할 때였기에 나도 함께 수련회에 참여해 학생들과 시간을 보냈다. 여학생들과 함께 30인분의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큰 솥에 밥도 하고 국도 끓였다. 사진 속에 보이는 취사용 석유화로는 당시에는 귀했던 제품이었지만 지금은 찾아 보기 힘든 골동품이 되어버렸다.
졸업식
김병수고대농협조합장
“우리 아내가 제일 예뻐”
세 번째 사진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졸업식에서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다. 당시 대학에 가는 학생은 동네에서 1명뿐이었고 중·고등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해 늦은 나이임에도 공부를 시작했다. 조합장이 된 지금도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김윤각당진종합광고 대표
“친구들과의 우정 가득한 사진첩”
세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측 끝에는 현재 백제가든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최장열)도 보인다. 내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다. 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친구들에게 많은 신세를 져야만 했다. 인생을 살며 부딪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친구들의 도움은 컸다. 상열이를 비롯해 최원철(안골오리촌), 김태희(현대축산물판매장), 송하종(서정초등학교 교사) 등 일일이 나열하지도 못할만큼 많은 친구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대학 시절
정한영충남동물병원 원장
“소중했던 학창 시절”
세 번째 사진은 대학 시절 농촌의 도로변을 복구하는 봉사활동을 하던 당시의 사진이다. 당시에는 도로포장이 제대로 안된 곳이 대부분 이었다. 한차례 비가 쏟아지고 나면 이런 흙길은 산중턱에서 흐르는 물과 함께 토사가 쉽게 유출되기도 했다. 지금은 손쉽게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하고 토사가 유출되지 않게 복구공사를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학생들의 손길을 빌려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교련시간
고마운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세 번째 사진은 교련시간 학도호국단 대표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교련복을 입고 덕산 윤봉길 생가까지 걸어서 견학을 갔던 우리는 지친 내색도 쉽게 할 수 없었다. 교련시간은 어느 교과시간보다 엄격했기 때문이다. 덕산까지 행렬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제식훈련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2012년 이야기
송진섭아날도바시니 당진점 대표
“학교에서 제식훈련, 지금은 상상 못해”
네 번째 사진은 아내와 함께 대학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 부부는 대학이라는 문턱을 넘어 보지 못해 뒤늦게서야 학사모를 쓸 수 있었다. 서로에게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뜻깊은 일이었다. 어려서나 나이들어서나 배움은 끝 없는 길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2012년 이야기
신현국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당진3동 위원장
“평생을 함께한 시곡동 선·후배들”
네 번재 사진은 처남(이정행)의 중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진중학교를 졸업한 처남은 현재 순성면 성북리에 거주 중이다. 어리기만했던 처남도 이제는 중년이된 모습에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2012년 이야기
김은하신평면 상오리 전 부녀회장
“기억은 흐릿하지만 추억은 생생해”
네 번째 사진은 아들(김태원)의 대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현재 신평 거산리 수치과에서 사무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천대학교 졸업식 날 남편과 내게 그동안 감사하다는 뜻으로 학사모를 씌워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당시의 세세한 기억들은 잊어버렸지만 뿌듯하고 행복했던 마음만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당진중학교 시절
“나의 삶과 함께한 체육”
첫 번째 사진은 유도 단증이다. 당진중학교 시절 유도에 입문해 1단 단증을 취득했다. 지금은 당시의 단증을 보관하고 있는 이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이 높아질 수록 단순히 숫자에 집착해 초심을 잊지는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 볼때가 아닐까?
2013년 이야기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
첫 번째 사진은 고대초등학교 졸업식 날이다. 함께 찍은 친구는 손인호로 작년 터키로 이민을 떠났다. 흙을 밟기 어려운 요즘과 달리 시골길에 더렵혀진 운동화가 정겹다.
다른 사진은 둘째 누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상하게도 졸업식 때마다 부모님께 사정이 생기셔 참석하지 못하셨다. 그럴 때마다 자리를 채워준 고마운 누님이다.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찍은 졸업식 사진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2013년 이야기
“헌신해 준 아내여 사랑하오”
첫 번째 사진은 오후회 회원들과 함께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후회는 합덕중학교 동창 다섯명으로 이뤄진 모임이다. (사진 왼쪽부터) 박용일과 나, 정용해, 이동호, 양병한의 모습이다. 서로가 각 분야에서 선두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지역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뜻에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가장 아끼는 단체이자 지역사회를 위해 기여할 단체기도 하다.
2013년 이야기
“드럼과 음악에 빠진 학창 시절”
첫 번째 사진은 신평중학교에 재학 당시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 하복을 입고 있는게 나다. 사진 너머로 신평중학교의 교정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각종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만 당시에는 운동장과 교실이 학생들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의 전부였다.
시간이 흘러 교정의 모습도 내 모습도, 화단의 묘목들도 모습을 달리했지만 내가 가진 모교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추억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2013년 이야기
“보고 싶다 제자들아”
첫 번째 사진은 호서고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이다.
어느 반을 가르치는 사진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 보니 급훈을 보고서 내가 담임을 맡았던 반인 걸 알게됐다. 나는 항상 급훈을 ‘최고보다는 최선을’로 정했기 때문이다. 내 교육철학이자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했던 부분이다.
2013년 이야기
“새로운 운명 찾아 나서”
첫 번째 사진은 호서고등학교 재학 당시 사진이다. 상록문화제 백일장에 참여해 상록탑을 배경으로 국어 담당 이명숙 선생님과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 조상연 사무국장(사진 오른쪽)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2013년 이야기
진흙탕 등굣길도 기쁘던 시절
첫 번째 사진은 송악고등학교 2회 졸업식에서 친구 고재진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겨울 동안 쌓인 눈이 녹아 비포장 길이 모두 진흙탕으로 변하던 시절이다.
요즘은 당진 지역 어느 학교든 깔끔한 포장도로가 마련돼 비나 눈이 오더라도 편하게 등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진흙탕 길이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당시에는 지금의 졸업식처럼 교복찢기를 비롯한 잘못된 졸업식 문화가 없었다. 얼굴에 밀가루를 묻히거나 구두약을 바르는 정도였다.
예산농고 1학년
염윤상당진시임업후계자영농종합법인 총괄이사
“행복과 영광의 발자취”
첫 번째 사진은 예산농고 1학년 재학시절의 모습이다.(하단 오른쪽에서 두 번째) 흑백사진밖에 없던 시절 아주 오래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진 속 앳된 얼굴의 친구들이 어느 새 중년을 훌쩍 넘겼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는 죽마고우들이다.
2013년 이야기
“추억과 긍지의 흔적”
첫 번째 사진은 당진상고(현 당진정보고) 졸업 사진이다. 함께 자취하며 수학했던 친구(사진 왼쪽)와 같이 찍은 사진으로 당진상고의 초창기 모습을 담고 있다. 그 당시에는 학교가 기와로 되어 있었다. 현재 변화한 모교의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초등학교 때
“다시 돌아가고픈 학창시절”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때 대호방조제로 소풍을 갔을 때의 사진이다. 당시는 대호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이었다. 지금은 방조제만 쪽은 모두 다 논으로 바뀌었다. 그전엔 바다에서 친구들과 수영도 하고 고기도 잡으며 놀았는데 이렇게 사라져버리니 아쉽기만 하다.
2013년 이야기
조재웅시곡동 더부러 주 대표
"오징어 가면 쓰고 함 팔던 시절"
첫 번째 사진은 본당초등학교 졸업식 때 사진이다. 양 쪽에 계신 분은 나의 부모님이다. 내가 9남매의 막내라 부모님과 나이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사진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자칫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같이 찍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지금은 모교가 폐교돼서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초등학교 자리에 실버프리 요양원이 들어서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기쁘다.
어린시절
“시끌벅적 활기찬 우리 가족”
첫 번째 사진은 59회 면천초등학교 동창들과 아미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첫째 줄 우측)를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박인준, 오수동, 박노근, 백용기의 어린시절 모습이 보인다. 용기는 지금도 나와 함께 면천에서 거주 중이지만 다른 세 친구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언제나 그립고 보고 싶은 친구들이다.
2013년 이야기
쌍둥이 딸들과 함께한 아름다운 날
첫 번째 사진은 정미초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 모습이다.(사진 둘째 줄, 우측 두 번째) 가슴에 새겨진 학교 이름이 내 이름인 듯 자랑스럽게 학교 체육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이다.
탁구선수로 활동했던 나는 청양초 탁구부에 스카웃될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중학생 때까지 청양에서 탁구선수로 활동했지만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게 어찌나 어렵던지 탁구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당진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1학년
“시인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한 가족들”
첫 번째 사진은 중학교 1학년 학예 발표회 시간에 찍은 사진이다. 내 예술적인 재능을 알아본 영어 선생님이 무용과 시화전 참가를 권유해 고전무용을 했던 기억이다. 선배들 틈에서 시화전을 준비하며 시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발표회를 마치고 교내 연못에서 명상에 잠기며 시심을 키웠던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2013년 이야기
신태운고대면 개발위원회 위원장
"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첫 번째 사진들은 돌 때 사진과 누나(신화식)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나는 고대면에서 태어나 1970년도에 고산초등학교에 입학했다. 4학년 때 육상부를 했는데 4명의 선수 중 첫 번째 주자로 활동했다. 이때 고산초 육상부는 충남을 재패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호서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육상부 활동을 했는데 중학교 2학년때 육상부가 해체되면서 육상을 그만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힘 나게 하는 따뜻한 추억들”
첫 번째 사진은 내가(왼쪽)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찍은 사진이다. 여수에는 3개의 여고가 있었는데 나는 중앙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이 때 교복자율화가 추진되고 있던 시기여서 1학년 때만 교복을 입었다. 그래서 이 사진은 교복을 입고 찍은 몇 안되는 소중한 사진이다. 그때는 어떤 틀에서 벗어난다는 기분이 들어서 기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기에만 입을 수 있었던 교복을 많이 입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2013년 이야기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
두 번째 사진은 중학교 2학년 때 무창포 해수욕장으로 해양소년단 야영을 갔을 때다. 친구들과 모자를 맞춰 쓰고 같은 포즈로 찍은 것이 재미있다.
가운데 빨간바지를 입으신 분은 박준병 체육선생님이시다. 당시에는 굉장히 커 보였던 선생님께서 지금은 술친구가 되었다니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2013년 이야기
“헌신해 준 아내여 사랑하오”
두 번째 사진은 합덕초등학교 38회 동창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합덕초등학교는 합덕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활동 중인 인재들을 많이 배출한 명문이다.
명문 학교에 다녔다는 뿌듯한 기억도 많지만 사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소소한 기억들이 가득한 추억의 장소다. 세월이 흘러도 서로가 가진 추억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도 반길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항상 삶에 감사한다.
2013년 이야기
“드럼과 음악에 빠진 학창 시절”
두 번째 사진은 신평고등학교 밴드부로 활동하며 찍은 사진이다. 당시 나는 드럼을 담당했고 군에 입대해서도 군악대에 착출될 정도로 능력을 인정 받았다.
밴드부 활동을 하던 때 나는 음악에 빠져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그저 드럼을 치며 리듬에 빠져드는게 즐거웠다.
2013년 이야기
“보고 싶다 제자들아”
두 번째 사진은 체육대회가 끝나고 학생들과 교실에서 뒷풀이를 하며 찍은 사진이다.
학생들의 이름 하나하나 기억이 날듯말듯해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사진 왼쪽 첫 번째 학생은 간호사관학교에 진학해 군인남편을 만나 퇴임 후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진을 하나씩 둘러보니 학생들과 함께한 사진이 무척 많았다. 하나같이 그리운 얼굴들 뿐이니 다시만나 술한자 기울이며 예전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보고 싶다 제자들아.
2013년 이야기
“새로운 운명 찾아 나서”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때 머물던 하숙집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종종 아이와 놀아주며 정이 들었던 기억이다. 당시에는 호서고에서 특별반을 운영할 때다. 15명의 학생을 선출해 이완상 선생님의 지도하에 합숙하며 공부했던 기억이다. 나는 이 합숙을 위해 하숙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3학년 때
“다시 돌아가고픈 학창시절”
두 번째 사진은 3학년 때 교련시간 중 친구들과 찍은 사진(왼쪽)이다. 당시 교과과정 중엔 교련시간이란 게 있었다. 군사기초교육을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모조총을 들고 각개전투나 총검술도 배웠다. 교련수업이 있는 날에는 늘 교련복을 입고 등교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소풍 당시
“힘 나게 하는 따뜻한 추억들”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소풍 당시의 모습이다. 이때는 흰 티셔츠에 디스코바지가 유행이었다. 소풍을 간다고 멋을 한껏 냈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보니 나와 동창들이 가정을 이루고, 어머니가 됐다는 것이 아직 꿈같기도 하다. 예전 사진들 중에 친구들과 한껏 차려입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물에 젖어서 가져오지 못했다.
2013년 이야기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
세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과 함께 만리포 해수욕장에 갔을 때다. 여름이면 열 명의 친구들이 모여 여행을 떠나곤 했다. 사진 속 친구들은 왼쪽부터 최형진, 김기현, 김두섭이다.
교복 자율화 세대였기 때문에 한 번도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깔끔함을 위해서 항상 구두를 신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고등학생들 보다는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키가 항상 컸던 탓인지 더욱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2013년 이야기
“드럼과 음악에 빠진 학창 시절”
세 번째 사진은 신평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오른쪽 첫 번째) 삽교천에서 친구들과 멋을 부리며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친구들 모두 고향을 떠나 타지에 정착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쉽게 만나 고등학교 때 처럼 웃고 떠들 수는 없어 아쉽지만 우리의 우정은 변함없이 그 때 그대로다.
2013년 이야기
“보고 싶다 제자들아”
세번째 사진은 호서고등학교 교사들과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찍은 사진이다.
서해대교 개통을 축하하며 진행된 마라톤 대회라 의미가 더욱 깊다. 서해대교가 개통되면서 당진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지금의 당진시가 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사진 왼쪽 끝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나와 정봉식, 이서호, 이창구, 오진, 허경희, 김준배, 박세몽, 정진용 교사다. 이중에는 아직도 마라톤에 열정을 쏟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현재 나와 이창구 교사,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허정희(김준배 교사의 아내)를 제외하고는 모두 현직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락처:010-3454-1601
2013년 이야기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한 시간
세 번째 사진은 스승의날을 맞아 호서중학교 7회 동창들과 3학년 6반 담임선생님이었던 박현 선생님을 모시고 인천 연안부두를 둘러보고 식사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두 번째 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해숙, 유양희, 신순옥, 나, 박현 선생님, 구영숙 이다. 박 선생님은 당시 엄하시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자하신 분이셨다. 당시 반장이었던 내게 많은 사랑을 보내 주신 고마운 은사님이다.
2013년 이야기
“다시 돌아가고픈 학창시절”
세 번째 사진은 당진상고(현 당진정보고등학교) 3학년 때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사진이다. 당시엔 학생들 대부분이 교복만을 입었기에 수학여행 때 처음으로 사복을 입었다. 교복만을 입다가 사복을 입으니 사회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고시절
“힘 나게 하는 따뜻한 추억들”
세 번째 사진은 여수의 ‘안도’라는 섬에 친구들과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제일 왼쪽이 나다. 나는 여고시절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많이 놀았다. 자율학습시간에 선생님의 감독이 느슨해지면 친구들과 바닷가로 가서 바람을 쐬기도 하고, 빵집으로 놀러 다니기도 했다. 사진을 찾아보니 따뜻한 추억이 많이 느껴진다.
2013년 이야기
“드럼과 음악에 빠진 학창 시절”
네 번째 사진은 1992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가장 절친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김성경, 원국희의 모습이다. 모두 당진에서 살며 자주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우연찮게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두 같은 학교를 다녔고 어느덧 한 가정의 가장으로 충실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의 우정이 변치 않기를 기도한다.
2013년 이야기
“새로운 운명 찾아 나서”
네 번째 사진은 공주사대 학과 동기들과 동학사로 MT를 떠나 함께 찍은 사진이다.(사진 맨 왼쪽)
중·고등학교 때 두발규제가 심했던 시기라 대학에서 머리를 장발로 기르던 게 유행인 시절이었다. 나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장애를 앓기 전 대학에서 교사의 꿈을 키우던 꿈많은 청년 강종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김명회한국시낭송가협회 당진지회 지회장
"선생님의 칭찬 시낭송가의 길로 이끌어나는 어린시절"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이때 대표로 선배들에게 송사답사를 했다. 나는 초등학생때도 활발한 학생이었다. 예전의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인데 요즘도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동창들은 단번에 나를 기억해 낸다.
2014년 이야기
백태현한국미술협회당진시지부장
“미술실에서 몰래 먹던 라면 맛”
첫 번째 사진은 신평중학교 3학년 3반 친구들과 찍은 단체사진이다. 나는 제일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에 있다. 중학생 때부터 미술부에 들어가 그림을 취미로 시작했다. 그때는 미술을 하는 친구들이 반에 한 두명 정도 밖에 없었다. 내가 그린 그림으로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미술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던 것 같다.
14살 때
최성복서정리 이장
"설탕물 마시며 자란 어린 시절"
첫 번째 사진은 내가 14살 때 유곡초등학교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뒤에 어렴풋이 나온 건물이 초등학교인데 현재는 화단으로 바뀌었다. 나는 당시 키가 151cm로 초등학생 치고는 큰편이어서 배구선수로도 활동했다. 지금 자녀들(예림·예진·예찬) 모두 유곡초등학교를 졸업 또는 재학 중인 내 후배들이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이태용동일교회 안수집사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
첫 번째 사진은 안양고등학교 재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당진에서 다녔는데 고등학교는 경기도 안양으로 진학했다. 가운데 교련복을 입고 있는 것이 나다. 지금은 제식훈련이 사라졌지만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학교마다 제식훈련이 있었다. 교련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있었는데 교관선생님이 굉장히 엄해서 많이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결혼 전 처녀시절
최연례당진시 부녀회장
부자 중에 부자는 ‘자식부자’
첫 번째 사진은 결혼 전 처녀시절에 찍은 사진이다. 벌써 40년쯤 지난 것 같다. 나는 원래 서산 출신인데 송산면 가곡리로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 당시에는 아이 낳고 살림하며 살기에 바빠 타지생활이 낯설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 사진을 막내딸이 보더니 자기가 가져가고 싶다고 해 주기로 했다.
2014년 이야기
안홍섭송악e편한세상 아파트 관리소장
"주택관리사라는 자부심"
첫 번째 사진은 호서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찍은 사진이다. 나는 13회 졸업생으로 뒤에서 두번째 줄 왼쪽 두번째에 서 있다.
고대면이 고향인 나는 고대초등학교를 졸업해 호서중·고를 거쳐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많은 친구들이 타 지역으로 떠났지만 함께 고향에 남은 친구들과 즐겁게 인생을 보내고 있다.
당진의 경우 초·중·고 동창회를 비롯해 동문회 모임이 활성화 돼있어 매년 한 두번 쯤은 잊고 지냈던 친구들과의 만나 옛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18세 또는 19세 당시
김용열월드헬스클럽 대표
"헬스로 땀 흘리던 젊은 시절"
첫 번째 사진은 18세 또는 19세 당시에 찍은 증명사진으로 기억한다. 부산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장발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당시 두발단속이 심했다. 기차를 타고 천안역에서 내릴 때면 두발단속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녔던 기억이 난다. 역에서 두발단속을 할 정도였으니 평소 길거리를 다닐 때는 단속이 더 심했다. 멋을 위해 참 많은 고생(?)을 했다.
2014년 이야기
김용남상록묵향회 지도강사
“묵향·시향·차향 안에 살아요”
첫 번째 사진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 최고위과정 중 출품한 작품이 우수상을 받아 수여식에 참석한 사진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남동생들에게 천자문을 교육시키셨다. 여자라는 이유로 손녀들에게는 지도하지 않으셨지만 옆에서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다른 아이들보다 글을 잘 쓰고 붓을 잡는데 능숙하다는 칭찬을 듣다보니 서예가 자연스럽게 취미가 됐고 서예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됐다.
중학생 때
김명회한국시낭송가협회 당진지회 지회장
"선생님의 칭찬 시낭송가의 길로 이끌어나는 어린시절"
두 번째 사진은 중학생 때 속리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다. 송악중학교의 교복은 당시에 저렇게 생겼었다. 옆에 있는 친구(홍사순)는 그때 당시 절친한 친구였다.
2014년 이야기
22년만 다시 찾은 신혼여행지
두 번째 사진은 당진초등학교 재학 당시 6학년 때 아산만 방조제로 소풍갔던 사진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이 당시 방조제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선생님이 설명해 주지 않아서 결국 방조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기념사진만 찍었다. 방조제를 구경하는 내내 ‘이 넓은 바다를 왜 막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2014년 이야기
백태현한국미술협회당진시지부장
“미술실에서 몰래 먹던 라면 맛”
두 번째 사진은 신평고등학교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찍은 사진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진학을 목표로 미술을 공부했다. 이때는 방과 후에도 밤 10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고등학생 시절은 미술실에서 보낸 추억이 많다. 친구들과 밤새 미술실에서 놀다가 교장선생님께 걸려 혼난적도 있고, 가끔 이곳에서 몰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어린시절
최성복서정리 이장
"설탕물 마시며 자란 어린 시절"
두 번째 사진도 어린시절 누나(최성분), 형(최성광)과 함께 학교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검은 옷을 입은 아이가 바로 나다. 당시에는 카메라가 귀해서 사진 한장 남기기가 어려웠다. 이때 누나가 유곡초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어서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어 줬다.
2014년 이야기
이태용동일교회 안수집사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
두 번째 사진은 친구들과 인천자유공원으로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지역을 벗어나 인천으로 여행을 가서인지 나와 친구들은 옷차림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지금 보니 머리와 옷이 매우 촌스럽지만 당시엔 저게 유행이고 멋이었다. 요즘에는 딱 달라붙은 바지들을 많이 입는데 내가 어릴 적에는 나팔바지가 유행했다.
어린시절
최세묵전 송산노인대학 학장
“경찰이 되기엔 부족했던 5cm”
두 번째 사진은 송산초등학교 재학 당시 축구부원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다. 이때 이은관 지도교사와 김완기 교사가 많은 격려를 해줬던 기억이 난다. 당시 도 대회에 출전할 팀에 거론 될 만큼 실력있는 팀이었다. 어린시절 경찰을 꿈꿔서 레슬링, 유도, 씨름 등을 배웠다. 아쉽게도 경찰시험은 잘 봤지만 키 5㎝가 모자라 경찰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래도 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2014년 이야기
김종범나루문학회 회장
“40년 만에 졸업한 초등학교”
두 번째 사진은 공주고등학교를 다닐 때 당진향우회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 당진을 떠나 공주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이때 공주에 당진에서 온 학생들이 많아서 당진향우회가 있었다. 공주사대부고, 공주여고 등등 다양한 학교에 있는 당진학생들이 모여 서로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 향우회가 타지생활을 하는데 큰 버팀목이 됐다.
2014년 이야기
박용출합덕읍 창정리 전 이장
“아들, 딸 가릴 것 없어유~”
두 번째 사진은 합도초등학교를 다니던 막내딸이 졸업할 때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부인(이정영), 둘째딸(미순), 막내딸(혜순), 막내아들(철순) 첫째딸(경순)이다.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그럭저럭 학교를 보냈는데 4남매가 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학비를 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농사를 지어 학비를 마련하는데 한계가 있어 공사현장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추억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김명회한국시낭송가협회 당진지회 지회장
"선생님의 칭찬 시낭송가의 길로 이끌어나는 어린시절"
세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체육대회 가장행렬을 하다가 찍은 사진이다. 내 역할은 장모님이었다. 당시는 저 옷이 어머니 복장이었는데 요즘에 잠깐 저런 원피스가 유행했다고 한다. 패션은 돌고 도는 것 같다.
16살때쯤
백태현한국미술협회당진시지부장
“미술실에서 몰래 먹던 라면 맛”
세 번째 사진은 16살때쯤 당진미술학원 옥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20대 후반까지 중학생 때 얼굴과 비슷했던 편이어서 예전 사진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당시 당진미술학원은 채운동 이교다리쪽에 있었다. 예전에는 미술계 선후배 관계가 엄격해 미술학원을 다닐 때 선배들에게 많이 혼나곤 했다.
학창시절
최세묵전 송산노인대학 학장
“경찰이 되기엔 부족했던 5cm”
세 번째 사진은 예산농고 재학 당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해 예산을 인근지역으로 생각하지만 이때는 꽤 먼 곳이었다. 학창시절 활발한 성격이었던 탓인지 오랫 동안 못봤던 동창들도 나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한다. 학창시절을 알차게 보낸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2014년 이야기
김홍수정미면 수당리 부녀회장·정재능 이장 부부
“물난리에서 건진 소중한 사진”
세 번째 사진은 막내아들(광옥)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막내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왠지 모를 찡함도 느꼈다. 지금 막내아들은 정미면에 있는 자동차 공장에 취직해 일하고 있다. 걱정이라면 아직 장가를 안 간 것이지만, ‘언젠간 제 짝을 만나겠거니’하고 지내고 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빨리 장가를 갔으면 한다.
지난해
최영자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 당진지부 지부장
“가족이라는 따뜻한 이름”
세 번째 사진은 지난해 박사학위를 받으며 남편(유원상)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단국대학원 보건복지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시어머님과 친아버지의 상을 치러야 했고 한동안 부인병으로 고생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특히 막내 아들(원상)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겨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겹치다 보니 학위취득을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든든히 외조를 해준 남편 덕에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2014년 이야기
백태현한국미술협회당진시지부장
“미술실에서 몰래 먹던 라면 맛”
네 번째 사진은 홍익대 졸업사진이다. 부모님이 미술을 반대하셔서 대학은 내가 직접 학비를 벌어서 다녔다. 공사장에서 일한 돈으로 학비를 벌어 입학금을 마련했고 학기 중에는 낮에 수업 듣고, 밤에는 미술학원 강사를 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바쁜 일상이었지만 장학금을 탈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미술학원 강사를 하면서 학생이었던 지금의 아내(이귀영)를 만났다. 미술은 나를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화시켰고 넓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게 했다. 또한 사랑하는 아내까지 만나게 해 많은 것들을 가져다 줬다.
박초롱 기자 long910905@hanmail.net
초등학교 5학년 때
유정숙삼성생명보험주식회사 충남서부지역단 서해지점 팀장
“현자야 보고싶다”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절친한 친구 현자와 찍은 사진이다. 현자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이 다녔다. 현자는 아담하고 여성스러운 반면 나는 오빠가 두 명이나 있어서 털털하고 남성스러웠다. 지금 현자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너무 아쉽고 참 보고 싶은 친구다. 현자야 잘 지내고 있니?
17년 전
"며느리에게 직접 만든 감사패 전달"
첫 번째 사진은 17년 전 둘째 아들인 인정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 찍은 사진이다.
인정이는 한남대 미대를 졸업해 지금은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정이는 학원을 따로 다닌 적도 없는데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시골에서 자식 공부시키기가 어려웠는데 인정이는 스스로 공부하는 효자였다.
나와 아내는 2남1녀를 낳아 키웠다. 앞으로는 인석이와 인정, 미소가 모두 원하는 일을 이루는 것이 바람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이재상율곡어린이집 원장
"사진, 내 삶의 자취"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사진 중앙 박돈신, 우측 이재명)과 성구미 앞바다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제와 돌아보면 ‘우리 동네가 이렇게 많이 변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자연경관을 잃어 버렸다. 당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떠올릴 때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23살 때
이희양송산면 유곡리
“친구야, 저기 한 번 봐라”
두 번째 사진은 총각이었던 23살 때 친구들과 놀러간 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 당시에는 산을 너무나 좋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산행을 떠났다. 우리나라 명산은 다 찾아 다녔다. 옆에 있는 친구는 김영준(현 당진우체국 근무)으로 늘 밥 당번을 맡았다. 아마 이 사진은 친구보고 “저 멀리 풍경을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고3 시절
한만우LG컴퓨터/21세기 컴퓨터 대표
“부모님 설득해준 은사님 못 잊어”
두 번째 사진은 당진상고(현 당진정보고)에 다닐 때 찍은 사진이다. 졸업하기 전 고3시절에 친구들과 남산공원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친구들은 내 평생 친구다. 서울, 강원도, 제주도, 미국 등 타지에서 생활하지만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목사가 된 친구, 사업을 하는 친구 등 직업도 다양하다.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다보니 친구들의 부모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유정숙삼성생명보험주식회사 충남서부지역단 서해지점 팀장
“현자야 보고싶다”
두 번째 사진은 중학교 1학년 때 체육대회하면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맨 앞줄 왼쪽 끝에 앉아 계신 분이 담임선생님이다. 학원을 다닐 만한 여건이 안 됐던 시절, 음악선생님이셨던 담임선생님이 피아노를 가르쳐주셨다. 이 계기로 음악과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됐다.
중학교 졸업식
최명수전국이통장연합회 당진시지회장
"누나들 틈에서‘금이야 옥이야’"
두 번째 사진은 호서중학교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다. 학창시절 나의 꿈은 트럼펫 연주자였다. 학교에서 잠깐 트럼펫을 연주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악기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또 나는 이 시절 호서중학교 배구선수로도 활동했다. 지금은 다른 업종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때는 악기를 다루는 직업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 추억이 많아 5년 전쯤 호성중학교 총동창회 회장도 맡은 바 있다.
10년 전
김정환한화손해보험 신성대리점·서산지점 대표
“남는 것은 사진뿐”
두 번째 사진은 10년 전 삼봉감리교회 크로스웨이 성서대학 졸업생 33명이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서 찍은 단체 사진이다. 크로스웨이 성서대학에서 3년 수료 후 졸업생 전원이 당시 김성선 담임목사님의 인솔로 9박 10일 동안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성지순례를 통해 예수님께서 겪은 고난과 행하신 모든 일을 알고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 정상에서 감격의 예배를 드렸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중학교 3학년 때
유정숙삼성생명보험주식회사 충남서부지역단 서해지점 팀장
“현자야 보고싶다”
세 번째 사진은 음악도 미술도 참 잘 했던 친구 난영이와 찍은 사진이다. 사진은 중학교 3학년 때로 체육시간이 끝난 후 쉬는 시간에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아카시아 잎을 떼며 놀던 모습이다. 이 시절에는 마땅히 놀 것이 없었기에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2015년 이야기
오성학필 색소폰클럽 원장
"못말리는 색소폰 사랑"
세 번째 사진은 예산군 신양면에 위치한 신양초등학교 총동문회 체육대회 때 찍은 사진이다. 신양초등학교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다. 이날 총동문회 체육대회가 개최되면서 축하공연으로 내가 색소폰 연주를 했다. 숫기가 없었던 나는 색소폰을 통해 무대체질로 변했다. 사람이 환경에 따라 바뀐다는 말이 맞다. 나는 20대 때 기타와 건반 연주를 보고 건반을 취미로 배웠다. 이후 색소폰 붐이 일자 색소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없는 형편이었지만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색소폰을 배웠다. 이후 서울에서 야마하 대리점을 운영하는 고향 친구가 당진에 있는 문화예술학교에서 색소폰 강사를 모집한다고 알려줘 오디션을 보고 올해 3월부터 당진문화예술학교에서 색소폰 강사를 맡게 됐다. 당진은 아직 색소폰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기에 색소폰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10월
최명수전국이통장연합회 당진시지회장
"누나들 틈에서‘금이야 옥이야’"
다섯 번째 사진은 호서중 동창생들과 지난해 10월 산행에서 찍은 사진이다. 초·중·고 모임 중 중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이 가장 활발하다. 일 년에 두 번씩 산행이나 야유회를 가고 정기모임도 갖는다. 또 수시로 만나는 번개모임도 한다. 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 가 스트레스도 풀린다.
2015년 이야기
최연화한국전통국악교육원 충남지회 원장
"식지 않는 우리가락 사랑"
다섯 번째 사진은 중앙대학교 국악교육원에서 민요를 녹음 할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우리나라 민요 중에서 창부타령을 제일 좋아한다. 맥이 끊기지 않고 대대로 오늘날 까지 이어온 전통이라 좋다. 이 때는 우리나라 민요 중 하나인 해신곡과 아리랑을 녹음했다.
>> 최연화 원장은
·1956년생 대천 출신
·제1회 남양주 전국국악경연대회 명창부 민요부문 대상수상
·(사)한국사회문화예술진흥원 2014년도 우수지도자상수상
·경기소리 최고지도사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8기 졸업 예정
·現 (사)한국전통국악교육원 충남지회 원장
·위치 : 당진시 서부로 85-17(채운동) 당진주유소 옆 2층
·문의전화 : 010-3915-3559/041-355-5705
김남배 기자 kjkjoy@naver.com
둘째 딸 대학교 졸업식 날
이계영정미면 천의1리 경로당 노인회장
"마을 곳곳을 누비던 집배원"
첫 번째 사진은 둘째 딸 대학교 졸업식 날 찍은 기념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2남 2녀를 낳아 길렀다. 학사모를 쓰고 있는 아이가 둘째 딸인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어를 전공했다. 졸업식 날 딸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라는 말 한 마디 해주지 못했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아무 말 없이 졸업식을 축하해줬던 것 같다. 그래도 가슴으로는 굉장히 기특했다. 나는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한 적이 없다. 4남매가 스스로 잘 자라줬다. 사진 속 둘째 딸은 현재 50세로, 두 딸을 낳아 키우고 있다. 내 외손녀 두 명 모두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참 자랑스럽다.
2016년 이야기
한기창면천향교 전교
의동생 구형아, 보고싶다
첫 번째 사진은 충북대학교 농학과를 다니던 시절, 가장 친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배경이 학교였는지 마을이었는지는 자세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진 속 여자아이는 청주여고 다니던 조카이고 허문회, 김성회, 정구형, 정승구와 나는 충북대학교 농학과에서 공부를 꽤 한다던 5인조였다. 친한 만큼 서로의 부모님도 잘 알 정도였다. 아쉽게도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 지는 모른다. 졸업하고 서로 취업하니 연락이 자연스레 끊겼다. 무엇을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시절
구현회당진1동 읍내7통 노인회장
"빛바랜 흑백사진 속 추억"
첫 번째 사진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3학년 재학시절, 1년 후배들과 찍은 사진이다. 당시 나는 양호실 부장, 교열부장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특히 학생들의 옷차림새 등을 관리하는 선도부 활동도 했다. 이 사진은 그 때 함께 학생들을 선도했던 후배들과 찍은 사진이다. 60년이 지난 지금 후배들과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주영남전 고대면 장항1리 이장
의지를 불태우며 삭발
첫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절친했던 친구와 찍은 사진이다.
나는 고산초등학교, 당진중학교, 인천 송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할 상황이었으나 큰 누님의 권유로 당진중학교를 입학했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지역어르신이 고등학교도 다녀야 한다고 해서 인천에 있는 송도고등학교를 입학했다.
사진 속 이 친구는 송도고등학교를 다닐 때 만난 친구다. 이 친구의 이름은 이경순이다. 용인에 살고 있는 친구였는데, 나랑 참 자별한 사이였다. 하지만 현재 경순이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결혼하고서도 연락을 주고받곤 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타지에서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호서중학교 1학년 재학 당시
편영범고대면농촌지도자회장
"한껏 멋 내던 젊은 시절"
첫 번째 사진은 호서중학교 1학년 재학 당시 찍은 사진이다.
내 옆에 있는 친구는 정미면 봉생리 출신의 이부용이다. 부용이와 나는 단짝 친구였다. 하지만 지난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친구를 잃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사진은 학교에서 송산면 오섬으로 봄 소풍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어릴 적에는 오섬으로 소풍을 많이 다녔다. 옛날의 오섬은 바닷물도 들어오고 여객선도 다니는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옛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
2016년 이야기
김칠성순성면 성북2리 이장
나팔바지에 장발…”멋 좀 부렸지”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생 2학년 때 큰 누나와, 친하게 지냈던 이웃누나와 찍은 사진이다. 흰 저고리를 입고 있는 사람이 큰 누나다. 큰 누나는 나와 10년 정도 나이차이가 난다. 그리고 교복을 입은 누나는 친누나처럼 나를 챙겨주던 이웃누나다. 두 누나들은 엄마처럼 자상했다. 이웃누나는 서울로 이사간 후로 연락이 닿지 않아 아쉽다.
대학시절
한기창면천향교 전교
의동생 구형아, 보고싶다
두 번째 사진은 의동생인 정구형과 찍은 사진이다. 앉아있는 사람이 구형이다. 구형이는 나와 대학시절 함께 다니던 친구 중 한 명이다. 그가 1등, 내가 2등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가장 좋았다. 둘 다 대학생활 4년 동안 국비장학금을 받았다. 내가 구형이를 따라 잡으려고 숱하게 노력했으나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우린 선의의 라이벌이었지만 가장 친했다.
고등학교 시절
주영남전 고대면 장항1리 이장
의지를 불태우며 삭발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시절 삭발한 것을 기념해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경순이도 함께 삭발을 했다. 나머지 친구들은 얼굴은 기억나는데 갑자기 생각하려니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때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단체 삭발을 감행했다. 하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이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한 뒤 인천 세관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이지만, 사진을 보면 학창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다. 참 재밌는 추억이다.
학교 설립 60주년
김연곤 고대면 성산1리 노인회장·아내 강영자 씨
두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다.
나는 석문초등학교(전 석문국민학교) 24회 졸업생이다. 이 사진은 학교 설립 60주년을 맞이해 은사님을 비롯해 동창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은사님들 중에는 현재 92세이신 박동원 선생님이 아직 당진에서 살고 계신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는 일제시대였다. 그래서 당시 나는 성산리에 있는 강습소에 다녔고, 우리나라가 해방돼 1학년 여름, 석문국민학교에 편입했다. 일제시기 때라 동창들이 나보다 한참 선배였다. 가장 나이가 많은 동창은 나보다 5살이 많았다.
2016년 이야기
김칠성순성면 성북2리 이장
나팔바지에 장발…”멋 좀 부렸지”
두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산 운산가정공원으로 소풍가서 찍은 사진이다.
(왼쪽에서 두 번 째)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양장학원을 다니던 큰 누나가 만들어 준 옷이다. 해군복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생 때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마을 일을 보면서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강근묵고대면 당진포 2리
고참이 서리한 꿀맛 사과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고대면 당진포2리에서 태어난 토박이고, 대대손손 조상들도 고대면 당진포2리 출신이다. 고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당진엔 오솔길 밖에 없어 배를 타야만 인천에 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명의 여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양보했고, 나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것이 한이 됐는지, 나만 보면 그렇게 울곤 하셨다. 반면 어머니는 나중에 농사짓는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나를 토닥이셨는데, 살다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가끔 인천에서 열리는 동창회에 나가면 친구들은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부럽다고 한다.
대학교 졸업식
이웅배전도그리스도의교회 장로
이정례 전도그리스도의교회 권사 부부 "5년 연애 끝에 결혼 골인"
세 번째 사진은 아들 종수의 대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우리 부부는 1974년에 종수를 낳았다. 아내의 심한 입덧과 어려운 형편으로 임신 때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해, 종수는 영양실조 상태로 태어났다. 태어난 아이가 너무 약해 의사가 아이를 포기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죽은 줄 알았던 아이를 장모가 살렸다. 장모는 아기 울음 소리를 듣고 깨끗이 씻겨 따뜻하게 돌보았더니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살아났다고 말했다. 종수는 이렇게 죽었다 살아난 귀한 아들이다. 종수는 현재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했다. 건강하게 잘 자라줘 감사하고 더 바랄 것이 없다.
2016년 이야기
김칠성순성면 성북2리 이장
나팔바지에 장발…”멋 좀 부렸지”
세 번째 사진은 성북교회 주일학교 친구들과 선생님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주일마다 성북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당시 소풍 가서 친구들과 보물찾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난 이 사진 속의 친구들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남동생 대학교 졸업식
최연우대호지면 장정리
"아들들과 찍은 가족사진"
네 번째 사진은 내 동생들과 찍은 사진이다. 이때가 남동생 대학교 졸업식이라 참석했다가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공원에서 찍은 기념 사진이다. 나는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현재 내 동생들은 서울, 난지도등에 산다. 당진에 사는 동생도 있다. 이 사진에는 셋째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기에 빠져있어 아쉽다. 동생들과 나는 서로의 생일이면 다 같이 모여 여행을 가곤 한다. 동생들과 건강하게 오랫동안 잘 지내고 싶다.
>>최연우 씨는 ·1933년 정미면 대조리 출생 ·정미초 졸업 ·당진시우회 회원
2016년 이야기
김칠성순성면 성북2리 이장
나팔바지에 장발…”멋 좀 부렸지”
네 번째 사진은 학생증을 만들려고 찍었던 증명사진이다.
나는 지금은 없어진 설성중·고등학교(현 당진문화예술학교 위치)를 졸업했다. 난 공부를 하기 싫어하던 학생이었다. 농사짓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쟁기를 사려고 품삯을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이 돈을 도둑 맞으면서 어머니의 권유로 중·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됐다. 입학신청 마감기한도 얼마 남아있지 않을 때 급하게 입학신청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등교하면서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을 까서 먹기도 했고, 비가 내리면 수청동에 위치한 비닐하우스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교복 입었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중학생 시절
합덕읍 교동식당 채금남 대표
첫 번째 사진은 중학생 시절 동창들과 찍은 사진이다. 경기도 양주 광적중학교에 다닐 때 이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놀러갔을 때 였다. 학창시절 나는 문학소녀였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 책을 사서 읽을 형편이 못되서 학교 도서관이나 친구에게 책을 많이 빌려 읽었다.
2017년 이야기
최병부당진시행정동우회 감사
"잊지 못할 ‘당진’의 추억"
첫 번째 사진은 1969년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 명혜식과 찍은 사진이다. 혜식이와 나는 태안읍 출신으로 함께 학교를 다니진 않았지만, 같이 과외를 받으며 친해졌다. 현재 혜식이는 대전 둔산동에 위치한 새생명장로교회 담임목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도 매일 SNS로 안부를 묻고, 자주 만나는 친구다.
18세 때
장택순채운9통장
모래사장 무대 삼아 연극
첫 번째 사진은 18세 때 연극을 같이하던 친구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다.
사진 속 친구들은 행정리(현 행정동)에서 함께 연극을 하던 친구들이다. 연극을 마치고 친구들과 기념해 사진을 찍었다. 이 친구들 중 한 두명만이 현재 당진에서 살고 있고 나머지 친구들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행정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고운 모래사장이 있었다. 우리는 모래사장에 무대를 만들어 연극을 했다. 또한 우리는 추석이나 설 명절 때 정미면 모평리, 봉생리 등 친구들과 함께 연극을 하기도 했다.
내가 연극을 하게 된 계기는 사진 속 맨 왼쪽에 있는 이찰영 단장 때문이다. 이 단장이 감독을 맡았는데 행정리에서도 연극을 해보자고 제안해 시작하게 됐다. 기억에 남는 연극은 내가 악역을 맡았을 때인데, 주인공이었다. 당시 칭찬도 많이 받았고 관객 반응도 좋았다.
10대 후반
친구 많은 멋쟁이 소녀
첫 번째 사진은 10대 후반에 찍은 사진이다. 서울 고모댁에서 살았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도봉산·불암산으로 나들이를 자주 가곤 했다. 이 사진은 도봉산에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이다.
나는 어릴 적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올 정도로 길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자르고서는 양갈래로 묶고 다녔다. 옷도 맞춰 입는 등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친구들을 챙기는 것을 좋아해, 친구가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김기정송악읍 기지시리 이장
6.25 참전용사 자랑스러운 ‘아버지’
첫 번째 사진은 현충사로 수학여행 갔을 적에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담긴 유일한 사진이다. 사진 속 나는 기지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수학여행 간다고 어머니를 졸라 장에서 모자부터 신발까지 새로 사 입었다. 내 친구들도 수학여행 간다고 한껏 꾸몄던 것 같다. 이 사진은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유문식 선생님께서 찍어주신 사진이다. 나는 학창시절 전교부회장을 맡는 등 모범생이었다. 생활기록부를 보면 내게 적합한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적혀있더라.
중학교 2학년 때
최주묵고대면 슬항2리 전 이장
보고싶은 은사님
첫 번째 사진은 중학교 2학년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이다. 뒤에서 가운데가 나인데 나는 중학교 때 규율부 차장으로 활동했다. 규율부에서는 교복이나 머리카락 길이 등을 단속하고 교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바로잡아주는 일을 했다. 당시 부장은 키가 큰 친구였고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나는 차장을 맡았다.
앞에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바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던 故손종대 선생님이다. 손 선생님은 진심으로 제자들을 아끼고 사랑했다. 때문에 나와 친구들은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선생님을 자주 찾아뵀다. 이 사진은 그 때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초등학생 때
박시양송악읍선거위원장
아내와 함께 산 60년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이다.
세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나다. 나는 1939년 송악읍 금곡리 13번지에서 태어났다. 중흥리는 1945년 8월15일 해방 전에 이사하면서 정착했다. 그리고 9살에 송악초에 입학했다. 내가 늦게 입학하게 된 것은 아버지를 여의고 일제강점기, 해방을 거치면서 어수선할 때였기 때문이다. 당시엔 빨리 공부를 하게 되면 일본군에 끌려간다는 공포가 있었기에 늦어졌다.
나 어릴 적 졸업앨범은 지금 졸업앨범과 완전히 다르다. 과거에는 종이로 된 작은 흑백 앨범이었다. 졸업앨범을 보면 “이럴 때도 있었구나”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초등학생 때는 모범생이었다. 그래서 주번을 맡아서 하곤 했다.
10대 후반
강근식김계익 부부
“학생들 가르칠 때가 그리워”
첫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가 총각, 처녀 때 찍은 사진이다.
아내 말로는 결혼하기 전에 찍은 증명사진이라고 말한다. 아내는 10대 후반에 찍은 사진이다. 이때 아내는 얼굴 살이 통통하니 예뻤다.
2017년 이야기
친구 많은 멋쟁이 소녀
두 번째 사진은 서울의 불암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도 젊은 청년들이 돗자리와 먹을 것을 들고 소풍을 가곤 한다는데, 나 또한 그랬다. 친구들과 돗자리를 펴고 미리 싸온 과자와 과일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내 옆에 있는 친구는 이선희라는 친구인데, 나와 단짝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사진에 이 친구가 많이 나온다.
2017년 이야기
조주익대호지면 장정리 새마을지도자
장발에 나팔바지 “멋 좀 부렸지~”
두 번째 사진은 조금초등학교 43회 동창회 때 찍은 사진이다.
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이 중 현재 장정리에 살고 있는 친구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2명이 당진 시내에서 살고 있고, 다른 친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때는 집안일 돕느라 학교도 잘 못 나갔다. 당시엔 나 뿐만이 아니라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이야기
이병직고대노인대학 학장
“즐겁게 살며 베푸는 생활”
두 번째 사진은 당진중학교에서 외교생(타 지역에서 공부하다 피난 온 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사진 왼쪽에 있는 사람은 영어를 가르치던 유승호 선생님이다. 유 선생님의 별명은 양코였는데 서양인의 코처럼 크다고 해서 붙여졌다.
2017년 이야기
김응태우강면 창리
배움은 나의 즐거움
두 번째 사진은 2002년 경 합덕대건노인대학 졸업식 날 찍은 사진이다.
둘째 아들과 찍었다. 이때가 내게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여기서는 총학생회장도 여러 번 맡았다. 젊은 시절 나는 아버지를 도우면서 벼농사를 지었고, 이후엔 합덕읍 운산리에 위치한 신의균법무사사무소에서 사무원으로 10년 간 일했다.
21세 때
강근식김계익 부부
“학생들 가르칠 때가 그리워”
두 번째 사진은 석문중학교 학생들과 부여로 소풍가서 찍은 사진이다.
21세 때 2년 5개월 간 석문중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재직했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잘 가르친다는 이야기도 듣곤했다. 그러나 군 제대를 하고서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면 교사가 될 수 없다고 법이 바뀌면서 교사로 재직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면천에 위치한 영탑사에서 생활하면서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고시 준비 중에 2년제 이상의 대학을 수료한 자에게만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을 알고 결국 포기했다. 이후 1964년 31살의 나이에 당진군청에 입사했다.
2017년 이야기
합덕읍 교동식당 채금남 대표
세 번째 사진은 한국민속촌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는 한복을 입고 민속촌에 놀러갔다. 같이 놀러간 친구들은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어릴 적 나는 쑥스러움이 많고 얌전한 아이였는데, 친구들만 만나면 언제 쑥스러움이 있냐는 듯, 잘 놀았다.
20대 때
친구 많은 멋쟁이 소녀
세 번째 사진은 20대 때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가운데 서 있는 친구가 조경숙이고, 왼쪽은 김남숙이다. 이 친구들은 나와 초등학교 동창들인데, 놀러도 많이가고 지금도 매년 분기별로 서울에서 만난다. 우리는 만나면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항상 할 이야기가 많아 한 번 수다를 시작하면, 마지막 버스를 타고 당진에 올 정도다. 언제 만나도 즐거운 친구들이다.
40년 전 쯤
한백흥대한노인회 당진3동 회장
"건강하게 부지런히 살자!"
세 번째 사진은 학교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40년 전 쯤에 찍은 사진으로 추정되는데, 나는 당시 당진여고와 당진상고에서 상업반 직업과정을 맡아 가르쳤다. 현재는 은행장 및 조합장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잘 살고 있는 제자들이 많다. 그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 교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석문중학교 재직시절
이병직고대노인대학 학장
“즐겁게 살며 베푸는 생활”
세 번째 사진은 석문중학교 재직시절 때 사진이다. 당시 한 반에 60명~70명 정도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았다. 2인용 긴 책상에 앉아 책상 가운데 금을 그어놓고 선을 넘어 오지 말라며 장난을 치던 어린 제자들은 어느새 반듯한 사회인으로 자랐다. 제자들과는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다. 지난 스승의 날에 만났던 제자들은 사진 속 어리고 짓궂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나이 먹어간다는 생각에 심정이 복잡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김용대새마을지도자 합덕읍협의회장
지현아, 동진아! 보고싶다!
첫 번째 사진은 1979년 서야고등학교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다. 왼쪽이 나다.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친구가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명제영이고, 오른쪽에 있는 친구가 천안에 살고 있는 박종서다. 지금까지도 계속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학창시절 나는 꿈 많은 모범생이었다. 교복입은 학생들을 보면 내 학창시절이 생각나곤 한다.
송악고등학교 재학시절
용돈 모아 구입한 등교용 오토바이
첫 번째 사진은 송악고등학교 재학시절, 등교용 오토바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 시절에는 등하교 버스에 사람이 많아 친구들은 등교용으로 오토바이는 물론, 트랙터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16세 때 원동기 면허를 취득했다. 고등학생 시절 두 달 간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잠실역에 잠깐 주차해놨다가 잃어버렸다.
대학시절
김인상순성면 봉소2리 이장
인심 좋은 우리 동네 ‘봉소2리’
첫 번째 사진은 대학시절 찍은 사진이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인하대학교에서 토목을 전공했다. 이 사진은 인하대 본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고 우리는 함께 동인천으로 술 마시러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 속 친구들은 모두 인천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교 동기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하얀 자켓을 입은 사람이 나다. 맨 오른쪽에 있는 친구는 대전에서 지질학 박사로 활동하고 있고, 그 옆은 사진작가다. 그리고 내 옆 친구는 교육공무원이었다가, 지난해 퇴직했다. 그 옆에 친구(왼쪽에서 두번째)는 건축연구소장이다. 우리나라 목조구조에는 일인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맨 왼쪽에 있는 친구는 건설업에 종사하다, 현재는 서천으로 귀향했다.
나는 대학친구들과 자주 만난다. 얼마 전에도 대학교 졸업 40주년 행사가 있어서, 친구들을 만났다.
2018년 이야기
손범승호서중학교 교사
“호서중 원빈쌤…아이들과 함께 해 행복합니다”
나는 고대면 대촌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체육 교사 혹은 경찰이 되고 싶었다. 고대초와 당진중, 당진정보고를 졸업하고 대학교에서는 체육교육을 전공했다. 교사의 길을 걸으면서도 경찰의 꿈을 버리지 못해 군 장교에 도전하며 학군단(ROTC)에 지원했다. 1년 차에는 다시 신입생이 된 것처럼 긴장의 시기를 보냈다. 다음 해에는 명예위원장도 하면서 웃으며 학군단 생활을 했다. 그 때 진정한 대학생활을 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경기도 지역의 모 부대 수색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고등학생 시절
용돈 모아 구입한 등교용 오토바이
두 번째 사진은 송악중학교를 배경으로 고등학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친구들과는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며 동창회 때마다 만나기도 한다. 사는 곳이 달라 자주 볼 순 없지만, 언제 봐도 반가운 친구들이다. 방학 때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여행 다녔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노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았다. 학창시절 공부는 못했지만 성실한 학생이었다. 교과우수상은 못 받았어도 개근상은 받곤 했다. 이 자리를 빌려 친구들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느라 얼굴 보기 힘들지만 서로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크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15~16살 때
정행화송악읍 기지시리
20대, 꽃처럼 예뻤던 시절
두 번째 사진은 15~16살 때다. 사진의 배경은 집이다. 나는 집에선 말수도 없고 조용한 딸이었다. 하지만 밖에서는 잘 놀고 이야기도 잘했다. 그래서 주로 밖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사람을 좋아한 나는 직장을 다닐 때도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다 막차를 타고 귀가하곤 했다. 학창시절의 추억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고등학교 때부터 나를 잘 따르던 여자 후배에게 내가 성인이 되고 부산의 자갈치시장에서 밥을 사줬던 기억이다.
2018년 이야기
“개구쟁이 꼬마가 결혼을 하다니…”
두 번째 사진은 진호가 유치원을 졸업할 때 찍은 사진이다.
탑동초 병설유치원에 다녔던 진호는 장난꾸러기였다. 뛰어놀다가 무릎이 까지는 일도 많았다. 노는 걸 좋아했던 진호는 놀다가 가방도 자주 놓고 오곤 했다. 또 운동을 좋아해 장래희망도 축구선수였고, 축구를 하고 싶어서 학교 가는 날을 기다릴 정도였다.
21살 쯤
정행화송악읍 기지시리
20대, 꽃처럼 예뻤던 시절
세 번째 사진은 21살 쯤 부산에 위치한 용두산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병원에서 근무했다.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30분에 퇴근했다. 퇴근하면 동료들이랑 용두산 공원에서 놀곤 했다. 그렇게 놀다가 집에 오면 밤 12시였다. 직장에서 집까지 1시간이 걸렸는데도 노는 게 좋아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들어가곤 했다.
초등학생 시절
“개구쟁이 꼬마가 결혼을 하다니…”
세 번째 사진은 장애경 서양화가와 함께 작업실을 사용했을 때,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진호는 작업실에 가는 나를 곧잘 따라 나섰다. 초등학생 시절 진호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통지표에는 항상 밝고 활달하며, 교우관계가 좋다고 쓰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부보다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좋아했던 아들이다.
2018년 이야기
“내 딸 영일·영이·영삼”
가장 친한 친구(성낙천)의 모습이에요. 고등학교 동창인 이 친구와는 정말 절친했는데 혈액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이 친구 중매도 제가 해줬는데, 면천면 송학2리 살던 유창수라는 친구를 소개해 줬죠. 친구가 떠나기 전까지 부부의 집을 자주 왕래하며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있네요.
송악초등학교를 다닐 시절
용돈 모아 구입한 등교용 오토바이
네 번째 사진은 송악초등학교 교정에서 찍은 사진이다. 잘 보이지 않지만 뒷배경이 송악산이다. 이때 친구 서달원과 서로 같은 배경에서 사진을 찍어줬다. 현재 달원이는 현대제철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가 송악초등학교를 다닐 시절에는 한 반에 학생수가 56명 정도였고, 6반까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한 반에 38명으로 2반까지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 수가 감소하는 추세라 지역 내 학교가 통폐합되고 있는데, 모교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속상하다. 한편 큰 딸 서희(송악중3)와 막내 딸 서원(송악초6)이가 나의 모교를 다니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
중학교 1학년 정도
“개구쟁이 꼬마가 결혼을 하다니…”
네 번째 사진은 운산에 위치한 목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진호가 중학교 1학년 정도 됐을 때다. 어렸을 때보다 많이 의젓해진 모습이다. 중학생이 되자, 나와 대화도 안 하고 가족여행에도 잘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 사춘기를 거치며 ‘알아서 한다’는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2018년 이야기
손범승호서중학교 교사
“호서중 원빈쌤…아이들과 함께 해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학생들과 찍은 사진이다. 처음에 아이들하고 친해지기 위해서 인기 있는 배우 ‘원빈’을 내 별명으로 삼아 ‘손원빈’이라고 소개했다. 아이들도 잘 받아줘서 지금도 ‘원빈 쌤’이라 불리고 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 덕분에 살고, 행복하고, 기쁘다. 교사로 일하는 동안 도움이 되는, 학창시절의 행복한 추억을 남겨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손범승 교사는?
- 고대면 대촌리 출신
- 고대초, 당진중, 당진정보고 졸업
- 전 당진체육관장
- 현 호서중학교 체육교사
- 당진시탁구협회장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이한복공간목련아파트 관리소장
나의 은사님, 김영기 담임 선생님
나는 송악초와 송악중, 당진상고를 졸업했다. 첫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담임선생님(김영기)과 찍었던 사진이다. 나의 마지막 담임선생님인 그는 인자한 성품을 가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아직까지도 당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까이 계신 은사님을 찾아뵙지 못해서 마음 한 구석에 항상 죄송함이 남아 있다. 올해는 꼭 찾아뵙고 싶다.
2019년 이야기
카세트 들고 전국 다녔던 그 시절
예산농업전문대학 토목과를 함께 다니던 R.C.C 모임 친구들이다. R·C·C는 철근 콘크리트 클럽을 뜻한다. 교련 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이 나다. 당시 종아리까지 올려 신던 빨간 양말이 등산 양말이었다. 친구들과 배낭을 메고 카세트 하나 들고 다니며 전국의 명산을 돌아다녔다. 이 친구들과는 아직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2019년 이야기
김순섭전 석문노인대학장
젊은 날의 나
이 사진은 공주 사범대학에서 3학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사범대를 졸업하고 스물 한살부터 교단에 섰다. 그리고 우강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62세에 퇴임했다. 우강초에서 근무할 때 접목교육을 도입했다. 접목교육은 아이들의 특기적성을 살린 교육으로 지금의 맞춤형 수업과 같다.
또 당시 외부로부터 학교운영의 예산 지원을 많이 받아왔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동백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민훈장은 집안의 자랑으로 대대손손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또한 우강면 주민들로부터도 공로를 인정 받아 소들공원에 설치된 공로비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다.
중학교 다닐 때
태어나서 처음 찍은 가족사진
이 사진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 나는 신평중학교 2회 졸업생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신평중은 인가받지 못한 시설이었다. 시설이 열악해 바닥에 포대자루를 깔고 수업을 들었다. 그 시기에 같은 동네에 살던 친척이 결혼했다. 결혼사진을 촬영하러 온 사진기사가 우리 가족사진도 함께 찍어줬다. 당시에는 사진기가 매우 귀했다. 이날 부모님이 가족사진을 찍는다고 가족을 불러 모았는데, 아무것도 몰라 어벙한 모습으로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이 사진 덕분에 부모님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의미 있다. 그리고 사진기가 귀한 시절에 사진을 남겼다는 뿌듯함도 있다. 한편 이 사진을 찍은 뒤, 내 아래로 3명의 동생이 더 태어났다.
고등학생 당시
원종돈용인대학교 당진시동문회장
유도를 시작한 이유
이 사진은 고등학생 당시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석문중에서 육상부로 활동할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했다. 어린 시절 나는 조용하고 놀 줄도 모르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갔는데 그때 무대에 올라 기타 치고 춤 추는 친구들을 보면서 제대로 놀지 못하고 공부했던 게 후회도 됐다. 만약 저 사진 속 시절로 돌아간다면 여러 가지를 배우며 놀아보고 싶다.
대학교를 다닐 때
권영산한국화가
생일마다 선물한 인물화 대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는 의정부 교도소에서 근무하셨다. 관사에 살면서 함께 지냈던 관사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방학에 미술을 가르쳐 줬다. 그러나 나는 미술이 아닌 피아노를 공부하고 싶었다. 음악을 좋아해 계원예고를 입학하고 싶었지만 시험에 떨어졌다. 미술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내가 미술을 하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버지 생일마다 인물화를 그려 선물했는데, 늘 칭찬해 주셨고 일기장에 꼭 붙여 놓으시곤 했다.
2019년 이야기
“선생님이 제 선생님이어서 행복했어요”
1980년 2월, 호서중학교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엔 꽃다발이 아니라 꽃목걸이를 졸업생들에게 줬는데, 담임선생님들께 꽃목걸이를 걸어드리고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 내 옆에 서 있는 학생이 오랜 친구인 김창규(당진시 읍면동지속가능보장협의체 회장)다. 송산면 매곡리 같은 동네에서 자란 창규와는 초등학교도 함께 다니고, 호서중·고까지 통학도 같이했다.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당시에는 군사문화가 학교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창규는 학교 연대장(현재 총학생회장)을 했고 나는 중대장을 맡았다. 창규는 리더십이 있었고, 나는 꽤 조용하고 얌전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2019년 이야기
김무기국방전우신문 충남지사 회장
63명 중 6명만 고교 진학
1956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모습이다. 나는 홍성군 홍북면 출신으로 홍북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세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 학생이 나다. 당시 학급 친구들이 63명이었는데, 중학교는 단 12명만 재학했다. 당시 낙제제도가 있어 중도에 탈락을 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학업을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아 고등학교까지 진학한 학생은 불과 6명뿐이었다. 지금은 사진 속 많은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2019년 이야기
김무기국방전우신문 충남지사 회장
‘핵무기’, ‘수사반장’이었던 그때
서울에 있는 송곡고에서 재직할 때 모습이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인데, 제자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해서 남겨진 사진이다. 나는 당시 별명이 ‘핵무기’ 혹은 ‘수사반장’이었다. 종종 아이들을 따끔하게 혼낼 때가 있었고, 종종 주변에서 나를 보고 “폭발력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던 중 군사 교육 당시 ‘핵무기’가 수업에 나오면서 내 별명이 됐다.
대학 다닐 때
대학 다닐 때 친한 학과 친구들과 RNTC 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다.
우리는 과학교육과 출신으로 성향도 비슷하고 무척 친해 ‘4인방’으로 불렸다. 3학년 때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갔는데, 친구들과 함께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을 봤다. 자욱하게 안개가 꼈다가, 날이 갰다가, 변화무쌍한 한라산의 날씨를 처음 경험했다. 친구들은 부여·홍성·보령·당진 등 고향이 다 다르고, 각자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는 지역도 다르지만 모두 교육자로 일하면서 지금까지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다.
2019년 이야기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아들 강동이가 대학시절 공부하던 건축 설계도다. 아들은 건축학도인데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지금은 찾지 않을 자료지만 혹시나 나중에 볼까 싶어 차곡차곡 정리해뒀다. 우리집 가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딸과 아들들이 잘 커줘서 고맙다.
2019년 이야기
갈 곳 잃은 해나루시민학교
문해교육을 하면서 뿌듯한 일도 많았다. 한글을 안 덕에 취업하고, 자녀들을 박사까지 만들 수 있었다며 나를 교수님이라 부르며 감사하단 사람도 있었고, 30년 전 내가 글을 가르치는 것을 알았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지금에서야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연필 쥐는 것부터 시작해 몸동작으로 글자를 보여주며 가르치고, 쉽게 외우도록 노래를 변형하기도 했다. 한편 구 군청사가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다. 철거된다면 140여 명의 학생들의 갈 곳이 사라진다. 요즘 이 걱정에 잠도 안 오고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 학생들도 다 당진시민이고 지금의 당진을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들이다. 당진시가 우리의 소리를 들어줬으면 한다. 부디 해나루시민학교 일이 잘 해결돼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하길 바란다.
2019년 이야기
김무기국방전우신문 충남지사 회장
뒤늦은 신학 공부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신학 공부는 늦게 했다. 신학대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고려대 경제과에 입학했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다. 송곡고에서 재학할 무렵 이유 없이 살이 칼에 베인 듯이 아팠다. 여러 병원을 가도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가족들과 기도원을 다녀오고 나서는 말끔히 치유됐다. 그 후 결단을 내려 36세에 신학대를 거쳐 대학원까지 수료했다. 이 사진은 대학원을 수료하며 찍은 사진이다.
현재 당진외국인교회에서 목사로 신앙활동을 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신앙활동을 도와 선교사를 양성해 자국에 돌아가 복음을 양성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 김무기 국방전우신문 충남지사 회장은?
1944년 홍성군 홍북면 출생
홍북초, 홍성중, 홍성고 졸업
고려대 경제과, 협성신학대학, 감리교신학대학원 수료
송곡고 재직
현 당진외국인교회 목사
2020년 이야기
김종일삼꽃색소폰선교단장
“남산에서 고고댄스 추던 시절”
이 사진은 당진상업고등학교(현 당진정보고) 졸업사진을 찍던 날 남산에서 친구들과 춤추던 모습이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검은색 목티를 입은 사람이 나다. 당시 유행을 따라 교복 바지가 모두 나팔바지다. 이 사진은 졸업 앨범에도 올랐는데 사진 제목이 ‘휴식시간에 열을 올리는 GO GO 부대’다. 당시 고고춤이 유행이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첫 번째 추억사진
조금초등학교 6학년 때 대호지면 사성리 바닷가로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이다. 50년이 넘었으니 갖고 있는 사진 중 가장 오래된 사진일 것이다. 당시 조선동 담임선생님(가운데)과 같은 반 친구인 (왼쪽부터)이동섭·정종명·손일표와 함께 찍었다. 나는 가장 오른쪽에 있다. 친구들이 사진 찍는 걸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재밌다.
2020년 이야기
김귀자노년학 박사
나를 예뻐했던 은사님
이화여대 법과대학 이태영 학과장(사진 중앙)의 생일을 맞아 함께 찍은 사진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으로도 활동하던 은사님은 평소에 나(사진 뒷줄, 좌측 두 번째)를 예쁘게 봐주셨고 졸업 후 함께 일하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법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는 1학년을 마치고 휴학했고 이후에도 은사님의 권유를 몇 차례 거절해야만 했다. 결국 후배인 곽배희(사진 뒷줄, 우측 첫 번째)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으로, 동기인 차명희(사진 앞줄, 좌측 첫 번째)가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고등학생 시절
면천고등학생 시절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왼쪽 위에 있는 학생이다. 친구들과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데 모두 다른 지역으로 떠나 있어 면천을 지키는 건 나뿐이다. 나와 친구들은 면천고 4회 졸업생이다. 지금은 면천고의 존재를 아는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오래 전에 폐교됐다. 학창시절을 모두 면천에서 보낸 나로서는 매우 아쉽다.
어린 시절
박성두 송산면 명산리
그립고 보고 싶은 친구
동네 친구(이규풍)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린 시절을 함께 커온 이 친구는 당진시네마 옆에서 부산양복점을 15년 정도 운영하다 미국으로 떠났다. 가끔 한 번씩 귀국할 때면 꼭 찾아와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하는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친구다.
2020년 이야기
김귀자노년학 박사
이화여대 졸업하던 날
이화여대 졸업사진이다. 나는(맨 왼쪽) 왜 이렇게 변덕이 심했는지 모른다. 제주대학교 국문학과 2학년을 마치고 다시 휴학하고 이화여대 법과대학에 3학년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이대를 졸업했고 의대를 다니던 언니(김성자)와 함께 졸업을 맞았다.
어렸을 때
<다섯 번째 추억사진-원복희>
어렸을 때 다녔던 석문면 삼화리 찬동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했던 청년들이 ‘하니목’으로 놀러갔을 때의 모습이다. 현재 석문면 교로리 당진화력발전소 일대를 ‘하니목’이라고 불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김낙출순성면 옥호2리 이장
“누에 먹고 쑥쑥 자란 키”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주산을 배우고 있는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다. 나는 순성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에는 1반부터 3반까지 한 반에 57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다. 현재 순성초등학교 전체 학생 수는 100명이라고 들었다. 졸업생으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중학교 입학할 때
박권옥대한노인회 우강면분회장
단체여행 다니던 그 시절 그리워
첫 번째 사진은 1956년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우강면 내경1리 토박이로 지금은 폐교된 내경초와, 합덕중을 졸업했다. 가정형편상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농사를 지었다. 이 사진은 중학교 1학년 때 입학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합덕 시내에 위치한 형제사진관에서 촬영했다. 형제사진관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학창시절에 나는 말썽꾸러기였다. 장난기가 참 많았다.
고등학생 때
천의초에 자리한 나무 미끄럼틀
첫 번째 사진은 1965년경 고등학생 때 천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은 날은 천의초 후배들의 운동회가 있었던 날이었다. 동창회에서 선배들도 나오라고 해서 참석했고, 친구들과 나무로 만든 미끄럼틀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미끄럼틀은 내가 초등학생 1학년 때도 있었다. 어릴 적 서로 미끄럼틀을 먼저 타겠다고 친구들과 다퉜던 기억도 난다. 미끄럼틀을 하도 타서 바지가 모두 닳기도 했다.
청주상고 3학년
뚜렷한 이목구비에 인기 많던 소년
첫 번째 사진은 청주상고 3학년(19세)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키가 가장 컸다. 줄을 서면 늘 맨 뒤에 섰을 정도다. 174cm였는데 그때는 키가 큰 쪽에 속해 인기도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신탄진에 위치한 남한제지 서무과에 입사했다. 이후 한솔제지에 스카웃 돼서 경기도 오산에서 거주했다.
2021년 이야기
황규찬당진3동주민자치 회장
함께 하는 즐거움 ‘여행의 이유’
첫 번째 사진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둘째 누나와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누나와 3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당시 홍성에서는 초롱산으로 소풍을 많이 가곤 했다. 현재 둘째 누나는 수원에 살고 있으며 올해 환갑을 맞았다.
2021년 이야기
“교복 입은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첫 번째 사진은 남편(김만석)이 당진농업고등학교를 다녔을 적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남편은 대덕리 출신으로 당진초, 당진중, 당진농고를 다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주중학교에 입학했는데, 2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당진중학교로 편입하게 됐다. 당진농고 동창들과 지금도 종종 만나는데,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사진 속 친구들도 모두 떠났다.
당진상고를 다닐 적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당진상고를 다닐 적 에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와 찍은 사진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 속 친구(왼쪽)는 고등학생 때 가장 친했던 친구로 현재 대전에 살고 있다. 친구와는 연락이 끊겼다가 최근에야 연락이 닿았다.
당진상고를 졸업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은행에 취직했다. 나 역시 은행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지만, 다른 진로를 찾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계속해서 은행을다녔던 친구들이 어느덧 정년퇴임을 했다.
2021년 이야기
북경에서 만난 태극기에 가슴 벅차
두 번째 사진은 건국대학교 대학원 최고지도자과정 수료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학사모를 썼을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힘들게 얻은 수료장이라 더욱 뜻깊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김낙출순성면 옥호2리 이장
“누에 먹고 쑥쑥 자란 키”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희정 담임선생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같이 찍은 친구들은 나이 들어서도 자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모이지 못한지 오래 됐다. 사진 속에 가장 키가 큰 학생(왼쪽에서 2번째)이 바로 나다. 지금의 나는 키가 180cm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키가 크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는 60명 중에 딱 중간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키가 17.5cm나 자랐다. 합덕농고 잠업과에 진학하면서 고단백식품으로 알려진 누에를 많이 먹어 키가 많이 자란 것이 아닌가 싶다.
호서중학교 밴드부로 활동했을 때
김병길당진원시가지 상가번영회장
음악에 푹 빠졌던 학창시절
두 번째 사진은 호서중학교 밴드부로 활동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호서중학교에 입학해 밴드부 활동을 했다. 밴드부에서는 북을 연주했다. 사진 속 밴드부 친구들 중에서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현재 당진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홍재희, 임종욱, 이선영, 박승섭, 김태동 등이다.
18살
“교복 입은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두 번째 사진은 내(정영희)가 당진양재학원에 다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양재학원은 읍내동 안신타워 자리에 있었다. 송악읍 부곡1리 출신의 나는 송악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할아버지의 반대로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결국 글방을 다니다 18살부터 당진양재학원에서 재단 공부를 했다. 나는 “또래 친구들이 교복 입은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며 “양재학원에 다니면서 교복을 입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식날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대학 졸업식날 찍은 사진이다. 나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동 남보건대학 방사선과를 졸업했다. 서울에 한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10여 년 간 근무하기도 하고 병원 원무과장으로도 7년간 일했다.
1990년에 귀향해 당진의 병원에서도 근무한 바 있다. 의료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일하면서 노인들을 자주 만났다. 당진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목욕봉사를 10년 간 해왔고 교회 내 노인 대학에서도 13년 동안 주방 보조 등 각 종 봉사에 참여했다. 사각지대에 놓여 도움을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때는 마음이 아팠다.
봉사를 하다 보니 기회가돼 2014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됐다. 이후 2018년부터는 당진감리교회에서 운영한 당진재가장기요양센터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요양센터를 운영하는 일은 내 삶의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대 후반
김낙출순성면 옥호2리 이장
“누에 먹고 쑥쑥 자란 키”
세 번째 사진은 1983~1984년경 친구들과 설악산에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산과 여행을 좋아한다. 20대 후반 회사 산하의 산악회에 가입해 동료들과 산을 타기 시작했다. 현재 서야중총동문회 산악회장이기도 하다. 산이 좋은 이유는 내 마음을 비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김병길당진원시가지 상가번영회장
음악에 푹 빠졌던 학창시절
세 번째 사진은 통기타를 들고 호서고등학교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밴드부 활동을 했다. 나는 북 이외에도 기타, 트롬본 등의 악기들도 조금씩은 다룰 줄 알았다. 당진극장을 운영하면서 연예인쇼 단장을 맡았던 아버지와 문화방송국 ‘밤하늘의 트럼펫’의 연주자였던 당숙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30대까지도 음악활동을 이어나갔다. 청년 때는 대학을 그만두고 가요무대에서 보컬 생활도 했다.
2021년 이야기
황규찬당진3동주민자치 회장
함께 하는 즐거움 ‘여행의 이유’
세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경주 토함산으로 수학여행 갔을 때 친구들과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누나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올라가 생활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연락이 닿는 고향 친구들이 거의 없다. 직장 때문에 당진을 찾게 되면서 사회에서 만난 당진 친구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연락을 하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대부분이 당진 친구들이다.
23살 때
유광자순성면 중방2리
멋쟁이 아가씨’ 찬란했던 나의 20대
세 번째 사진은 23살 때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친구(송정순, 이정희, 서애자)들은 미국과 서울 등에 살고 있어 만나긴 어렵다. 그러나 자주 연락하며 자별하게 지내고 있다.
대학 시절
황규찬당진3동주민자치 회장
함께 하는 즐거움 ‘여행의 이유’
네 번째 사진은 대학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대학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닌데, 그 시절에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시절이 가장 즐거웠던 때이기도 하다. 취업 부담은 있었지만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놀던 때가 그립다.
2021년 이야기
황규찬당진3동주민자치 회장
함께 하는 즐거움 ‘여행의 이유’
마지막 사진은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 생활을 할 때 찍은 사진이다. 서울에 위치한 산에서 찍은 사진일텐데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나는 현재 힐링산악회장을 맡고 있다. 김태동 전 회장의 권유로 산을 타게 되면서 산악회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여행도 좋아해 여행을 사랑하는 모임(여사모)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다. 여행은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여사모를 만들게 됐다.
18살쯤
하상우·이환숙고대면 진관리 부부
운동하며 보내는 즐거운 노년
첫 번째 사진은 내가 18살쯤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지금의 수치과가 있는 자리에 허름한 사진관이 있었는데 친구들과 추억을 남기고자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옛날에는 사진관에서 모자 등 소품을 빌려줬다. 해군 모자를 쓴 친구가 하운식이고 지금은 인천 주안동에 살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친구가 월미도에 사는 김진환이다. 이 친구 집과 가까워서 집안 사정을 훤히 알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아내가 고산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한대우·최기자 부부 (면천면 죽동2리)
두 번째 사진은 아내가 고산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찍은 사진이다.
고대면 옥현리 출신의 아내는 고산초등학교를 다녔다. 위에서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아내다. 당시 여자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했을 때였는데, 아내는 학교를 가지 않겠다던 친구 대신 학교에 입학했다. 일하느라 학교에는 자주 가지 못했지만 어린 마음에 공부하고 싶어 열심히 다녔단다.
아내는 지난 11일 이름을 개명했다. 원래 이름이 ‘최기자’인데 출생신고를 하면서 아내 이름을 ‘최지자’로 등록하는 바람에 평생 최지자로 살아야 했다. 80년만에 원래 이름으로 개명했다.
19살 때쯤
9년 간 지고지순한 연애 끝에 결혼
두 번째 사진 은 내가 19살 때쯤 찍힌 사진이다. 난 놀기를 좋아했던 소녀였다. 10대 때는 동네 언니들 따라 면천면 율사리에 있었던 배꼽솔나무에 가서 놀고, 가설극장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동네 처녀·총각들이 모여 손수건 돌리기를 하며 노래도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장면의 테마와 연도는 기사 글을 읽어 자동으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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