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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땐 열흘 밤낮 머리 깍아”
지금의 모습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명절 땐 열흘 밤낮 머리 깍아”

장용희 대호지 적서리

정미면 · 2012년 1월 당진시대 게재

나는 정미면 천의리에서 태어나 줄곧 당진에서 생활했다. 학교 졸업 후 20년 넘게 이발관을 운영했다. 정미에서 처음 일을 시작해 군대를 다녀온 후 당진(고려이용원)과 합덕(아리랑이용원)에서도 이발관을 운영하다 지금 살고 있는 대호지에서도 마을이용원을 운영했었다. 대호지에 간척지가 조성된 이후 시작한 농사 일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명절 땐 열흘 밤낮 머리 깍아” — 사진 1

#1

첫 번째 사진은 15살 때 우리 마을에 있던 천의사진관에서 졸업을 기념해 찍은 사진이다. 남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14살인데 나는 9살에 학교에 입학해 졸업이 1년 늦었다. 사진에서처럼 당시 사진관에는 그림을 그려 배경으로 사용했다. 사진 속 조그맣던 아이가 지금은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명절 땐 열흘 밤낮 머리 깍아” — 사진 2

#2

두 번째 사진은 21살 때 처음 일을 시작한 정미이발관 앞에서 친구(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18살 때부터 이발관 일을 시작했는데 동네에 한 사장님께 일을 배워 20년 가까이 이발관을 운영했다. 당시에는 머리를 깍고 나면 서비스로 막걸리를 대접했는데 지금은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 옛날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열흘 전부터 밤낮으로 머리를 잘라야 했다. 형편상 평소에 머리를 깍지 못해 명절 때 손님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1978년에 대호지면 적서리로 이사와서는 새마을지도자를 맡으며 대호지 12개 마을을 다니며 이용 봉사활동을 펼쳤다.

“명절 땐 열흘 밤낮 머리 깍아” — 사진 3

#3

세 번째 사진은 베트남전쟁에 파병 나갔을 때 당시 소대원들과 찍은 사진이다. 맨 앞 줄에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 나다. 십자성부대에 배정받아 1969년 8월부터 1970년 7월까지 1년 동안 베트남에서 생활했다. 전쟁은 베트남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국민들의 삶은 어려웠다. 우리도 휴전 상태인 만큼 안보를 튼튼하게 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명절 땐 열흘 밤낮 머리 깍아” — 사진 4

#4

네 번째 사진은 베트남 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전우회 모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내 생일을 맞아 전우들을 초청해 설악가든에서 모임을 가졌다. 참전 전우회 모임은 전역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꾸준히 모임을 가질 정도로 결속이 뛰어나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