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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지금의 모습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송악읍 가교1리 서정길 씨

송악읍 가교1리 · 2015년 6월 당진시대 게재

나는 송악읍 가교1리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농사일을 배우며 자랐다. 성인이 되고 서울에서 8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다. 그리곤 다시 당진으로 내려와 지금까지 농사일을 하고 있다. 올해로 79세지만 농사일은 즐겁다.

오랜만에 서랍 속에 묵혀있던 앨범을 꺼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처제 결혼사진, 동네 사람 사진 등 다양한 사진들이 있었다. 양이 엄청나다. 사진을 보면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참 재미있었던 일이 많았다.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 사진 1

#1

첫 번째 사진은 나와 내 아내 홍종길 여사, 큰 아들 천석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내가 강원도 금화군에서 군 생활했을 당시 모습이다. 내 아내는 나와 같은 송악읍 가교리 출신이다. 아내는 가교리에서도 착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우리는 21살에 결혼했다. 결혼한지 일 년이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입대하게 됐다.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하다가 아내만 두고 떠나야 해서 미안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 편지로 큰 아들 천석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굉장히 감격했고 아내에게 고마웠다. 시간이 지나고 편지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정말로 행복했다.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 사진 2

#2

두 번째 사진은 서울 남산공원에서 아내와 데이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나는 서울 개봉동에 위치한 한일공업이라는 면도날 제조회사에서 일했다. 아내와 간만에 단둘이 데이트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이후 우리 가족은 8년 만에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나는 14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 보냈다. 농사일도 마을 어르신들에게 배웠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후로 난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을 자식들에게 보내주고 있다. 내가 보낸 것들을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 자식들을 보면 행복하다.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 사진 3

#3

세 번째 사진은 1989년, 내 나이 53세 때 기지시초등학교 제9회 동문회에서 부부동반으로 4박5일 제주도 여행가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지금도 동네 친구들과 자주 만나곤 한다. 특히 우리 집 근처에 이계홍이라는 친구가 사는데 자주 만나 시간을 보낸다.

제9회 동문회에는 현재 11명 정도의 동창만 남아있다. 만나면 함께 식사하고 어렸을 적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많은 친구들이 먼저 떠났기에 안타깝다. 친구들과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 사진 4

#4

네 번째 사진은 아내와 친손주들과 찍은 사진이다. 케익을 자르고 있는 아이가 손녀 현미다. 옆에 앉아있는 아이는 손자 태원이다. 이 두 손주는 큰 아들 천석이의 자녀들이다. 이날은 현미의 생일을 기념해 사진을 찍었다. 현미는 미국으로 유학 가서 5년 만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경기도 안양시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다. 태원이는 큰 아들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 사진 5

#5

다섯 번째 사진은 나와 아내의 고희연 잔치 때 찍은 사진이다. 벌써 9년 전 사진이다. 나와 아내는 4형제를 낳았다.

아들과 며느리들이 아내와 나의 고희연 잔치를 준비해줬다. 이때를 기념해 영상을 제작해 비디오로도 갖고 있다. 나는 자식 복이 많은 것 같다. 특히 며느리 복이 많다. 큰 며느리는 항상 나와 내 아내를 1순위로 생각한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달려온다. 낳아준 부모처럼부 우릴 챙기고 제발 건강하게 오래 살아 달라고 말하는 큰 며느리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앨범에서 더 꺼낸 사진들

"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 사진 1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송악읍 가교1리 서정길 씨"군대에서 들은 득남 소식" —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 당진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