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이길조 면천농협 조합장
옛날 사진을 들춰보니 지나간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사진 속 모습들이 새롭다. 젊은 시절에는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큰 쌀장사를 했다. 옛날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완행열차에 쌀 1천가마를 실어 서울로 팔러 다녔던 생각이 난다. 이후 고향에서 조합장으로 일하면서 그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조합장도 CEO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1
첫 번째 사진은 40여 년 전 약혼사진이다. 면천 송학리가 고향이었던 나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중 부모님 소개로 면천 자개리에 사는 아내를 만났다. 아들만 셋을 낳아 키우면서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날 만나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면 늘 고맙고 미안하다. 참, 이 사진은 면천에 있던 사진관에서 찍었는데 옛날 그 사진관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러고 보니 면천도 참 많이 변했다.

#2
두 번째 사진은 2007년 제88주년 나라사랑 민족사랑 3·1절 기념행사로 열린 장한 무궁화인상을 수상 후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농협 경제사업과 경영을 잘 했다고 받은 상이었는데 무척 뜻깊었다. 농협에서 일하면서 대통령상, 종합업적평가 도단위 1위 수상 등 그동안 많은 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모두 직원들과 조합원들의 도움과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3
세 번째 사진은 전국 RPC(미곡종합처리장) 회장들과 함께 호주로 견학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충남RPC 회장을 맡았었다. 옆에 앉은 이가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다. 견학 후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 나갔었는데 그때 잡아 올린 게가 하도 커서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옆에 소주 팩이 보이는데 한국에서 사가지고 나갔다. 역시 해외에 나가봐도 우리술 만한 것이 없다(웃음).

#4
네 번째 사진은 1999년 10월25일 한라상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단국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인데 학생회장을 맡아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한라산에 올랐었다. 지금도 이 사진만 보면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8시간 반 걸렸는데 죽어도 두 번은 안 간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다.
정리 우현선 기자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