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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지금의 모습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이길조 면천농협 조합장

2011년 10월 당진시대 게재

옛날 사진을 들춰보니 지나간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사진 속 모습들이 새롭다. 젊은 시절에는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큰 쌀장사를 했다. 옛날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완행열차에 쌀 1천가마를 실어 서울로 팔러 다녔던 생각이 난다. 이후 고향에서 조합장으로 일하면서 그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조합장도 CEO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 사진 1

#1

첫 번째 사진은 40여 년 전 약혼사진이다. 면천 송학리가 고향이었던 나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중 부모님 소개로 면천 자개리에 사는 아내를 만났다. 아들만 셋을 낳아 키우면서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날 만나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면 늘 고맙고 미안하다. 참, 이 사진은 면천에 있던 사진관에서 찍었는데 옛날 그 사진관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러고 보니 면천도 참 많이 변했다.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 사진 2

#2

두 번째 사진은 2007년 제88주년 나라사랑 민족사랑 3·1절 기념행사로 열린 장한 무궁화인상을 수상 후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농협 경제사업과 경영을 잘 했다고 받은 상이었는데 무척 뜻깊었다. 농협에서 일하면서 대통령상, 종합업적평가 도단위 1위 수상 등 그동안 많은 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모두 직원들과 조합원들의 도움과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 사진 3

#3

세 번째 사진은 전국 RPC(미곡종합처리장) 회장들과 함께 호주로 견학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충남RPC 회장을 맡았었다. 옆에 앉은 이가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다. 견학 후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 나갔었는데 그때 잡아 올린 게가 하도 커서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옆에 소주 팩이 보이는데 한국에서 사가지고 나갔다. 역시 해외에 나가봐도 우리술 만한 것이 없다(웃음).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 사진 4

#4

네 번째 사진은 1999년 10월25일 한라상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단국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인데 학생회장을 맡아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한라산에 올랐었다. 지금도 이 사진만 보면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8시간 반 걸렸는데 죽어도 두 번은 안 간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다.

정리 우현선 기자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