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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신태운 고대면 개발위원회 위원장

고대면 · 2013년 12월 당진시대 게재

"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 사진 1

#1

첫 번째 사진들은 돌 때 사진과 누나(신화식)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나는 고대면에서 태어나 1970년도에 고산초등학교에 입학했다. 4학년 때 육상부를 했는데 4명의 선수 중 첫 번째 주자로 활동했다. 이때 고산초 육상부는 충남을 재패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호서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육상부 활동을 했는데 중학교 2학년때 육상부가 해체되면서 육상을 그만뒀다.

"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 사진 2

#2

두 번째 사진은 4-H회 당진연합회장을 지내며 찍은 사진이다. 4-H회에서 최연소 회장을 맡은 나는 충청남도연합회장을 거쳐 최연소 농어민 후계자 선발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젊은시절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참 많이도 걸었다.

"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 사진 3

#3

세 번째 사진은 백골부대 탐색대에서 근무했을 때다. 군생활을 마친 나는 고향에서 농사일에 전념하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평택군청에 임시직으로 들어가 정규직으로 진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 사진 4

#4

네번째 사진은 결혼식 때 제일예식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1층에 위치한 제일다방은 아직도 남아있다.

외숙모의 중매로 순성 중방리가 고향인 아내(송채춘)를 만나 결혼했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은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 동기고 어머니와 장모님은 동창이어서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결혼했다. 아마 중매에 어떤 내막이 있었던 것 같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