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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지금의 모습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고대 슬항2리 최경숙 씨

2012년 7월 당진시대 게재

세월이 많이 변했다. 바다가 논이며 도로가 되고 나룻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고생해 가며 도착했던 곳이 이제는 자동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생활이 편리해지고 빠른 일처리가 가능해졌지만 당시의 풍요롭고 살갑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어졌다.

“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 사진 1

#1

첫 번째 사진은 1975년도 남편(슬항2리 김장식 이장)과 약혼식을 올릴 때 사진이다. 함께 교회를 다니던 친구이자 육촌언니인 최경옥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얼굴 한 번 본적이 없다. 당시에는 도로 포장도 되지 않았던 시기였고 한 동네에 살면서도 지금처럼 쉽게 오고가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남녀가 자유롭게 교제하거나 친분을 쌓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 사진 2

#2

두 번째 사진은 현재 오도교 부근에서 가족들과 함께 야유회를 가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오도교 주변에 대부분 논이 자리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바닷물이 들어오던 때였다. 사진 속 뒤편으로 보이는 우측 작은 섬이 오도다. 슬항리에서 우두리를 가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고 오도로 넘어가 한참을 걸어야 했다.

오도를 주변으로 슬항리 방향 해안가에서는 망둥어 낚시질도 하고 꽃게도 잡고 굴도 땄다. 지금은 석문방조제가 막히면서 바닷물이 들어오던 지역은 모두 논으로 바뀌었고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 버렸다.

“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 사진 3

#3

세 번째 사진은 교회 중등부 학생들과 몽산포에서 2박3일간의 수련회 동안 찍은 사진이다. 남편은 중등부 교사로 활동할 때였기에 나도 함께 수련회에 참여해 학생들과 시간을 보냈다. 여학생들과 함께 30인분의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큰 솥에 밥도 하고 국도 끓였다. 사진 속에 보이는 취사용 석유화로는 당시에는 귀했던 제품이었지만 지금은 찾아 보기 힘든 골동품이 되어버렸다.

“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 사진 4

#4

네 번째 사진은 남편의 회갑을 맞아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남편과 함께 여행다운 여행을 가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농사일과 축사일 때문에 우리 부부 모두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혼 당시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결혼생활이 시작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시집살이에 갖가지 집안일 등을 하다보니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가 버렸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