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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고대면 · 2019년 1월 당진시대 게재

고대면 진관리에서 태어난 나는 젊었을 때 직장생활을 하면서 농사도 지었다. 그러다 26세 초반 월남전에 참전했다. 참 치열했다. 눈 앞 1m 전방에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다행히 땅에 엎드려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래도 어깨와 등, 팔에 포탄 파편을 맞아 정신을 잃었다. 당시 헬리콥터로 이송했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그 후 한 달 간은 귀가 아예 들리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지금도 귀가 잘 안들린다. 젊었던 그 때는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전쟁터를 뛰어다녔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죽음이 겁나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 사진 1

#1

이 사진들은 현 월남참전자회 당진시지회인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의 주년 행사 및 강연회 때 촬영한 사진이다. 옆에 있는 사람은 이철환 전 당진시장과 윤수일 전 당진시의회 의장이다. 그때 유공회원들과 함께 전국에서 열리는 국가안보결의대회에 참석하곤 했다. 재임 당시 베트남으로 전적지 순례를 다녀온 적도 있다. 베트남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전쟁 당시 베트남 땅굴에 살던 한 간호장교를 붙잡았다. 얼굴이 새하얗고 몸이 매우 왜소했다. 그를 헤치라며 칼을 손에 쥐어줬는데 나는 명령대로 하지 못했다. 내 뒷사람도 그 뒷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토록 참혹한 전쟁은 베트남에게도 우리에게도 모두 슬픈 과거다. 한편 순례 당시 한 베트남 사람이 어눌하게 한국말을 하며 우리에게 고맙다고 했다. 한국군이었던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 모습에 고맙고 미안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 사진 2

#2

나는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27세에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중매로 아내 김유환 씨를 만났다. 큰 딸 장엽이와 두 아들(강동·목동)을 낳고 키웠다. 하지만 아들 강동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돈을 벌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떠날 때 어린 아이들과 아내만 두고 가려니 마음이 아팠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도 매일을 눈물로 지새웠다. 그래도 그 때 아내가 아이들 사진을 보내줘 많은 힘이 됐다. 나도 내 얼굴 사진을 가족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 사진은 그때 아내가 보내 준 두 아들의 모습이다. 내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혹여 내가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돼 내 손부터 봤다고 한다. 다행히도 무사히 한국에 왔고 그 후에 가족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다. 한편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 아들 운동회에 갔다. 나는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아빠와 함께 달리기 하는 시간이여서 아들이 애타게 날 찾았는데 가지 못했다. 하루 종일 퉁퉁 불어 삐쳐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2-1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강동이가 그 주인공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 사진 3

#3

우리 손자와 손녀들 사진이다. 딸과 아들들은 매우 착하게 잘 커줬다. 자녀 모두 고대초와 고대중을 졸업했다. 딸은 당진여고를, 아들은 각각 대전 둔산고와 호서고를 다녔다. 지금은 모두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이 손자들을 데리고 집에 올 때마다 반갑고 좋다.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 사진 4

#4

아들 강동이가 대학시절 공부하던 건축 설계도다. 아들은 건축학도인데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지금은 찾지 않을 자료지만 혹시나 나중에 볼까 싶어 차곡차곡 정리해뒀다. 우리집 가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딸과 아들들이 잘 커줘서 고맙다.

앨범에서 더 꺼낸 사진들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 사진 1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 사진 2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 사진 3
베트남 전쟁에서 사우디 근무까지 — 사진 4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