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날 구제해 준 고마운 아내와의 결혼식”
신창재 당진우리신협 이사장
당진에 와서 당진사람이 된 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1978년에 결혼해 1981년에 당진으로 이사를 왔다. 당진에 와서 오토바이 부품 대리점을 했는데 기독교인이었던 아내를 따라 처음 당진교회에 가게 됐다. 처음에는 아내의 권유도 있었고 지역 사람들도 사귈 겸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교회를 다니면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조금씩 신앙심이 생겨나 이제는 장로까지 되었다.

#1
첫 번째 사진은 나의 결혼식날 사진이다. 요즘에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전통혼례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진은 전통혼례의식 중 하나인 초례를 하던 날 풍경이다. 보통 ‘혼례를 치른다’는 것이 이 초례 과정을 말하는데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만나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것이다. 내 얼굴에 묻은 검댕은 이웃들이 잘 살라는 의미로 묻힌 것 같은데 이를 피하려고 비닐봉지를 뒤집어썼었다(두번째 사진). 그런데도 다 피하지 못하고 결국 새신랑인 내 얼굴이 거뭇거뭇해졌다. 그래도 마냥 좋았던 것 같다.(웃음)

#2
세 번째 사진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아내가 웃고 있는 이유는 나의 키 때문이다.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내 작은 키 때문에 돌을 가져다 놓고 올라가 찍었는데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웃고 있다. 아내에게 첫눈에 반한 나는 아내를 보려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프로포즈를 했는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시집오는 것을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러던 중에 박종범 목사님께서 나를 만나보고 ‘두말도 없이 결혼하라’고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 주신 덕분에 결혼에 성공했다. 없이 살았어도 행복했던 이유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위로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남자를 구제해 준 아내에게 늘 감사하다. 우리 옆에 있는 여자 아이가 바로 사랑하는 딸 효정(33)이다. 우리 부부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딸 옆에 서있는 남자아이는 효정이의 동네 친구다.

#3
네 번째 사진은 부모님 생전에 5형제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모두 8남매인데 내가 5형제 중 셋째다. 붕어빵처럼 닮은 얼굴도 그렇고 키도 모두 고만고만한 것이 영락없는 형제다. 어렸을 적에는 어려운 살림에 8남매를 키우느라 부모님이 고생하셨는데 지금은 모두 잘 자라 제몫을 하고 산다. 형제가 많으니 살면서도 힘이 되고 즐거운 일이 많다. 천안과 서울, 당진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은 매년 조부모님과 부모님 기제사 때마다 모인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