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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가 내 삶의 큰 기둥이었다”
지금의 모습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자연보호가 내 삶의 큰 기둥이었다”

[강홍준 자연보호 당진군협의회장]

고대면 항곡리 · 2011년 6월 당진시대 게재

고대면 항곡리 출신인 내가 당진읍 중앙리에 자리잡은 지 4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29살에 결혼하고 아내(최철희, 62)와 3남매를 두었다. 이젠 옛사진을 봐도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생각은 든다.

“자연보호가 내 삶의 큰 기둥이었다” — 사진 1

#1

첫 번째 사진은 제26회 당진군민체육대회에서 당진읍이 우승을 할 때 찍은 사진. 왼쪽에서 북을 들고 있는 사람이 나다. 내 옆이 장준섭 당시 당진읍장이다. 장준섭씨 모습도 참 젊다.(웃음).

“자연보호가 내 삶의 큰 기둥이었다” — 사진 2

#2

두 번째 사진은 1988년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사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그대로 있어 소개를 하고 싶다. 맨 왼쪽에서 맥주 마시는 젊은이가 나. 그 옆의 친구들은 분명 내 친구들이 맞는 것 같은데 얼굴을 알아보기가 어렵다. 눈이 어두워져서 그런가.

“자연보호가 내 삶의 큰 기둥이었다” — 사진 3

#3

세 번째 사진은 아내와의 결혼식 사진이다. 나와 6살 차이인 아내와는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당시에는 어른들이 원하는대로 결혼해 아이들 낳고 잘 살았다. 내가 29살에 결혼했으니 남들보다는 좀 늦은 결혼이 아니었을까.

“자연보호가 내 삶의 큰 기둥이었다” — 사진 4

#4

네 번째 사진은 지난해 아미산에서 자연보호 협의회 활동 당시 찍은 사진이다. 내가 자연보호 당진군협의회장을 맡은 지가 5년째인데 나는 32년 전 협의회가 출범할 당시부터 활동해왔다. 회원부터 총무, 사무국장을 두루 맡아왔다. 자연보호 협의회는 1978년 故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을 다니면서 환경파괴가 심각한 것을 보고 선포한 환경선언으로 조직된 단체다.

나는 깨끗한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해 자연보호 협의회 활동에 지금까지 매진해왔다. 개발만큼 중요한 것이 환경보존이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