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꿈 이룰 수 있어”
김석우 삼환운수(주) 대표
나는 대호지면 두산리 아늑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27년간 당진에서 지내다 보따리 하나 메고 인천으로 올라왔다. 그 해 3월, 원목을 나르다 큰 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에 서기도 했다. 1년의 병원생활로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할 수 있다’는 각오 끝에 삼환운수와 삼환교통을 설립하고 인천시 남동구의회 의장까지 역임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노력하면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하고 싶다.
#1
첫 번째 사진은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 쬐는 여름날 찍은 사진이다. 이 날은 아내를 부모님께 소개시켜 드리던 날이었는데, 아내를 집에 데려가니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셨다. 하지만 장인, 장모님께서는 결혼을 반대하셨다. 그래서 나는 “겉모습만 보지 말고 속을 헤아려 봐 달라”며 “아내를 금 방석에는 앉히지는 못해도 삼시세끼 굶지 않게 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15일 후 결혼 승낙을 받고 곧바로 식을 올렸다.
#2
두 번째 사진은 짐 나르는 일을 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화물차는 나의 첫 자동차로 운수사업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절에는 먹고 자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화물차로 시골의 배추나 무를 도시에 실어 날랐는데, 이 당시 배추 가격이 너무 저렴해 손실이 많았다. 그래서 사업을 접고 요식업을 알아보기도 했다.
#3
세 번째 사진은 인천공항이 개항할 때 공항 가는 리무진버스를 운행하던 시절에 리무진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당시 삼환운수, 삼환교통, 리무진버스 3개 사업을 병행했다. 운수사업은 어느 날 한 부부가 10m 정도 떨어져 택시에 합승하는 모습을 보고나서 시작하게 됐다. 그 때는 한 사람당 운행비용을 받아 1000원이면 갈 거리를 2000원을 주고 가야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운수사업을 시작했다.
#4
마지막 사진은 1년간 병원생활을 마치고 정처 없이 떠돌던 시기에 찍은 사진이다. 이 당시 퇴원해 갈 곳도 없고,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어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거면 죽기 살기로 일이라도 해보고 죽자’고 생각했다. 그 후 막일꾼으로 일을 하다 쓰러져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장사를 시작했다. 돈이 없어 빚져가며 시작했지만 금방 돈을 갚았다.
젊은 시절의 나와 같이 희망이 없다 생각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 듯이 일이라도 해봤으면 한다.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
>> 김석우 삼환운수(주) 대표는
1954년생 대호지면 두산리 출신
인천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시행정학 석사
인천광역시 남동구의회 4대 의장 역임
현 (주)삼환운수, (주)삼환교통, (주)삼환리무진 대표이사
현 재당진시민회 명예회장
현 재인충남도민회 부회장
박다솜 인턴기자 ektt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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