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유공자 유족에 대한 지원 전무해”
성대용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당진군지회장
6.25전쟁이 발발한 지도 벌써 60년이 넘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분단된 조국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전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일어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우리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6.25전쟁 당시 참전용사들은 다들 80살이 넘는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무공수훈자들이 받는 것은 훈장영예금 18만원이 전부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미망인이나 유자녀들은 이마저도 받지 못한다. 돈을 벌고자 전쟁터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된 예우가 이뤄져야 앞으로의 위기도 슬기롭게 넘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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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1990년 6월6일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가 당진에 처음 설립할 때 모습이다. 당시의 명칭은 ‘사단법인 대한무공수훈자회 당진군지회’였는데 1991년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증개정 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특수법인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로 바뀌며 보훈청의 공식 단체로 등록됐다. 처음 시작은 25인의 회원으로 구성됐으며 당시에는 보조금이 없어 1인당 5000원의 회비로 운영했다. 가운데 유일한 여성회원인 박인예 씨는 육군 소령 출신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바 있다. 뒷줄 오른쪽에서 2번째에 키 큰 사람이 나다.

#2
두 번째 사진은 1993년 4월11일 백문화 1~2대 당진지회장의 장례식 때 모습이다. 신평 매산리가 고향인 백 전 지회장은 육군 소령 출신이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장례문화를 간소화 함에 따라 예전에 비해 약식으로 치러졌다. 당시는 집에서 장례를 치뤘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죽은 이의 넋을 위로했다. 상복은 입은 사람 중 제일 왼쪽에 있는 큰 상주가 지금 서해중앙신협 이사장으로 있는 백미 씨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회원들은 좌측에서 거수경레를 하고 있다.

#3
세 번째 사진은 3~5대 당진지회장을 역임한 석창성 씨가 국립묘지가 안장될 때 찍은 사진이다. 2001년 9월21일 대전 현충원에 묻혔다. 좌측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나이고 가운데 있는 사람이 김응직 회원이다. 성구미포구 근처가 고향인데 지금은 서울에서 아들과 생활하고 있다. 바로 옆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은 상이군경회장 이었던 차규영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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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사진은 송산 성구미에서 환경정화 활동을 벌이던 때의 모습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버려진 쓰레기 양이 엄청났다. 용무치선착장에 갔을 때는 줍다줍다 다 못 줍고 돌아온 적도 있다. 당시 남산 등 다양한 장소에서 환경정화 활동을 벌였다. 현재는 청소하는 사람들이 고용되어 있고 회원들 나이도 많아 작년부터 환경정화 활동은 중지했다. 하지만 예전부터 해오던 전쟁 사진전과 태극기 달기운동은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