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 추억의 앨범

테마 일터와 생업「당진 사람들의 일터」 테마 책 →

사진쇽으로 추억속로 - 여름성경학교의 추억, 김중회성촌교회 담임목사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사진쇽으로 추억속로 - 여름성경학교의 추억, 김중회성촌교회 담임목사

신평면 한정리 · 2006년 3월 당진시대 게재

목회자의 길을 걸어 온 30여년의 세월 중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교인들과 함께 새 성전을 짓겠다는 다짐을 하고 서른 평도 안되는, 겨울엔 무지 춥고 여름엔 무지 더웠던 그 곳, 한정교회(신평면 한정리, 은수교회의 전신)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한정교회의 터는 교회소유가 아닌 사유지여서 교회를 새로 지어 이사를 가야할 상황이었다. 새 성전을 지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인들은 헌금도 열심히 했고 남의 땅을 얻어 공동경작을 하기도 했다. 비록 소득은 얼마 안됐지만 소득보다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교인들이 똘똘 뭉쳤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더욱  소중한 기억이다.

#1

첫 번째 사진은 바로 그 시절 한정교회의 여름성경학교 장면이다. 선풍기 한대 없었던 예배당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 정겹다. 지금은 모두 30대 중반의 가장이 되어있을 것이다. 설교를 하는 사람은 아내(이은진)이다. 교인들은 흔히 사모라고 부르는데 목회활동에 있어 50%는 사모의 몫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할이 크다. 여름성경학교는 방학을 맞은 농촌 아이들에게 유일한 문화학교였다. 평소 교회에 다니지 않던 아이들도 이 때는 교회에 모여들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여름성경학교에서는 재미있는 동화도 들려주고 자장면도 만들어주고 선물도 주었기 때문이다.

#2

두 번째 사진은 역시 한정교회의 성탄절 전야제 장면이다. 1989년도 사진이다. 내 옆에 걸려 있는 악보가 괴도라는 것인데 찬송가 책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그 당시에는 큰 종이에 이처럼 악보와 가사를 써서 대용하곤 했다.

#3

세 번째 사진은 1991년 드디어 신평면 부수리에 새 성전(은수교회)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기공식을 하는 장면이다. 이날은 나를 비롯한 한정교회 가족들 모두에게 마치 새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진수식을 하는 것처럼 흥분되고 기쁜 날이었다. 새로지은 은수교회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교회였다. 바닥에 난방시설을 깔고 심야전기를 놓았다. 약간의 빚을 지게 되었지만 교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전을 지으면 더욱 번창하리라 기대했으나 농촌의 교회는 농촌경제의 쇠퇴와 같은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점차 교인이 줄어들고 남아있는 교인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은수교회에서 꼬박 19년을 봉직한 나는 더 이상 교인들을 인도할 양분이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해 교회를 떠났다.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양심상 허락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농촌교회는 어렵다. 반면 도회지의 큰 교회들은 대량주의에 빠져 교인쟁탈전까지 벌이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볼때마다 나는 한정교회의 그때가 몹시 그립다. 비록 가난하고 작았지만 따뜻한 인간미가 예배당 안에 가득했던 그때가...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사진쇽으로 추억속로 - 여름성경학교의 추억, 김중회성촌교회 담임목사 —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 당진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