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35년 공직생활의 애환과 감동"
우정식 전 당진군 부군수
35년간의 공직생활은 수많은 역사와 에피소드의 연속이었다. 교육청에서 일할 땐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학교가 휴교를 하여 일주일간 인생에 없던 유랑을 하기도 했고 극심한 가뭄으로 호미로 땅을 파서 모를 심었던 기억, 낮은 수매가로 추곡수매에 응하지 않는 농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주야로 농가를 방문했던 기억 등등.. 나에게 공직생활은 비록 춥고 배고팠지만 보람으로 산 세월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두 아들(희승, 희상)이 공직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여기에 내놓는 세 장의 사진엔 지난 공직생활의 애환과 감동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1
첫 번째 사진은 참으로 기막힌 사진이다. 1962년도 예천군청에 근무할 당시의 사진인데 7월 중순까지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아 모내기를 못하고 있다가 급기야 호미로 땅을 파서 모를 심는 장면이다. 삼남지방에 닥친 극심한 가뭄으로 전 공무원이 동원돼 대민지원에 나서야 했다. 모심기가 생존 그 자체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호미모’는 수리시설이 열악해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던 60년대 농촌의 절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농사법이었다. 갈라터진 도랑을 파내고 뚝방을 파서 한방울의 물이라도 취수해 모를 심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너무나 편하게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로 많이 편해졌다.
#2
두 번째 사진은 당진교육청으로 발령을 받은 지 얼마 안돼 소난지 분교장을 찾아서 기념촬영한 것이다. 소난지분교엔 1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대난지도에 학교가 있었으나 배가 없어 그곳으로 다니질 못해 소난지도에 따로 학교를 설립한 지 얼마 안됐을 때의 모습이다. 소난지분교 터는 지적도에도 없는 땅이어서 지번을 만들고 입적을 시켰던 일을 당시 내가 했다.
#3
세 번째 사진은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진이다. 91년도에 서산시부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천지시를 방문, 천지교회에 소장되어 있던 안견선생의 몽유도원도 원본을 감상하는 장면이다. 탁자 위에 펼쳐진 그림이 바로 몽유도원도다. 국보급 그림을 ‘친견’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산시장 직무대행을 역임하고 고향 당진에 와서 부군수로 공직을 마감한 나는 세인의 시각으로 보자면 관운이 없는 편에 속했다. 그러나 35년간의 공직생활 동안 소신껏 주민을 위해 일했기에 지난 세월을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부정을 바르게 하는 것 그것이 곧 행정이고 정치이다. 나는 그 원칙에 충실했고 그래서 두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남아있을 수 있으니 오직 그것에 만족할 뿐이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