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차브민”
지난 2000년 귀농해 가곡리에 기차 한 량과 함께 ‘차브민’을 시작했다. ‘기차와 허브 그리고 민박’을 줄여 만든 이름 ‘차브민.’ 주변에서 성공적인 귀농을 했다고 평가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해야 했던 처음에는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1
첫 번째 사진은 지난 1997년 후쿠오카에 있는 도예가 마을을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가곡리에서 살다 1984년부터 외국생활을 했던 나는 1991년 아내(조연자)와 미국에서 결혼하고 다시 1992년 일본으로 건너왔다. 후쿠오카에서 아내와 함께 한국식당을 운영하다 2000년에 부모님의 건강 악화로 귀국을 하게 됐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는 가곡리에 정착했다. 그러나 농사일을 전혀 몰랐던 우리는 기차를 테마로 한 농촌체험마을을 시작하게 됐고 ‘차브민’을 마련했다.
#2
두 번째 사진은 황량한 황무지인데 차브민을 마련하기 전에 토지 평탄작업을 하던 모습이다. 기차 두 량을 이 위에 놓고 차브민을 운영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기반이 닦여 절대농지 해제와 함께 민박 건물을 짓고 허브농장도 더욱 확장하고 있다.
#3
세 번째 사진은 이제는 볼 수 없는 기차의 모습이다. ‘차브민’으로 시작한 기차는 이제 볼 수 없다. 민박 건물을 지으면서 기차를 없애야 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기차는 올해 없앴고 10여년을 함께 한 기차는 현대제철로 넘겨져 용광로로 들어가고 말았다. 최근 고민이 ‘기차를 없앴는데 ‘차브민’이라는 이름을 고집해야 하는 것인가‘이다. 기차를 기대하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며 안타깝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