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당진군농민회장
농협은 농민의 대변자인 본연의 위치에서
정부의 위험한 쌀정책에 저항해야 한다
벼가 누렇게 익은 논을 농민들이 갈아엎고, 추수한 쌀을 불태우며 쌀값보장 시위를 하는가 하면 정부는 쌀재고량이 늘어나 수매량과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그간의 쌀증산정책이 한계에 왔음을 사실상 시인하고 있다.
충남에서는 전농 충남도연맹이 지난 17일 대전역광장에서 “쌀값보장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저지를 위한 농민대회”를 열었으며 군내에서도 수십명의 농민이 이 집회에 참가하고 일부는 삭발투쟁에 들어갔다.
이 난은 쌀사태로 불릴만한 최근의 상황과 전망에 대해 농업관련 기관과 단체, 농민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장으로 마련되었다. 상호간에 원만한 의사소통과 이해가 바탕이 된 가운데 현재의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합의와 신뢰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이 코너를 마련한 취지다.
/편집자 주/
=정부의 쌀수급 안정대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너무 단기적이고 임기응변적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농민들이 신뢰하기 어렵다. 96년부터 휴경논 경작에까지 보조금을 주면서 증산하라고 하더니 하루아침에 증산을 포기하고 쌀을 시장원리에 맡기겠다니 그런 정부는 있으나마나 아닌가. 불과 한달 전 새만금 매립때 농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량농지 확보차원’이라며 강행했던 것도 바로 정부다.
=왜 삭발했는가?
-쌀은 민족의 혼이고 조상의 얼이다. 국방보다 더 중요한 건 식량안보다. 남의 나라에 주곡을 맡긴다는 것은 목숨을 맡기는 일이다. 한 작목이 무너져서 복귀하는 데에는 10년이 걸린다. 만일 어떤 나라가 식량을 무기화한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정부의 쌀정책은 근본적으로 이를 간과하고 있다. 농업의 환경생태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총각 때 나라를 지킨다는 각오로 머리를 깎았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비장한 각오로 삭발에 임했다.
=정부정책의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먼저 쌀가격에 있어서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이 짙다. 현재 쌀재고가 있긴 하지만 순수하게 국민들이 생산하고 남는 양은 유엔식량기구에서 권장하는 양에 못미친다. 정부재고 1,100만석 중 50%가 수입쌀 때문이다. 96년부터 지금까지 6년간 의무수입량으로 수입된 쌀만 48만8천톤이다. 주로 중국에서 수입되었으며 미국과 호주쌀도 수입되었다. 가공용으로 수입된 이 쌀은 식용으로 둔갑해 불법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정부가 이를 묵인하고 있다.
=정부가 쌀가격 하락을 일부러 조장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부의 계획은 2004년까지 쌀전면개방 요구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고 중국은 이미 한국과 일본을 겨냥해 일본최고의 미질을 자랑하는 자포니카종의 품종을 개량해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이 원할 경우 10만원에 공급해줄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정부정책에서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은 2004년까지 쌀 한가마에 11만원까지 내릴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2004년에 단번에 내리면 국민여론이 비등할 테니까 올해부터 점차적으로 가격을 낮추어 가려는 것이다. 올해부터 1만원씩만 내려도 4년후면 11만원까지 내려간다. 결국 정부는 국제쌀가격에 근접하도록 쌀가격을 조정하고 그때 가서 직접 지불제로 보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만 보더라도 직접보상액은 터무니없이 낮다.
=농민들의 요구를 압축해서 말해달라.
-첫째, 정부가 직접 수매에 나서야 한다. 설령 이 일을 농협에 넘긴다 해도 정부와 동일한 가격으로 하고 차액에 대해서는 정부가 농협에 보상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농협에게 ‘시가수매하라’고 한 방침은 철회되어야 한다. 둘째, 1,100만석의 재고미 처리방안을 빨리 강구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정부의 재고와 민간유통업자의 재고를 빨리 회수해서 북한에 제공하든가 재고미를 방출하지 말고 격리보관해야 한다. 정부는 회계상 쌀을 일반회계가 아니라 특별회계로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쌀을 팔아야 쌀을 살 수 있다는 논리다. 쌀소비처는 없는데 이렇게 쌀을 수시로 방출하고 있기 때문에 쌀값하락을 부추기는 것은 다름아닌 정부다.
=농업협동조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던데…
-사실 농협조합장들에게 실망하고 있다. 협동조합이란 생산자단체의 대변자이다. 그런데 농협조합장들이 오히려 정부정책에 부화뇌동해서 되도록 싼 값에 쌀을 사려 하고 있다. 어떻게든 생산자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조합의 원리 아닌가.
정부가 직접수매의 책임을 농협에 떠넘긴 것도 문제고 농협조합장의 어려움도 크리라고 생각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조합은 농민의 입장에서 정부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협동조합이 농민의 편에 서있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다. 원리적으로 생각해보라. 협동조합의 주인은 농민이다. 자신들 입으로도 그렇게 말하면서 지금 주인대접을 하고 있는가. 조합이 농민을 위한 조직이라면 농민이 이렇게 어려울 때 최소한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다. 농민들이 이 지경인데도 자신들은 챙길 것 다 챙기고 있다. 일예로 조합마다 ‘체력단련, 복리후생비’로 1억여원씩, 전체 조합에서 10억 이상이 소요되고 있다.
=그렇다면 농협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기를 바라는가?
-농협은 본연의 임무와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정부의 잘못된 쌀정책은 농민과 협동조합이 모두 단결하면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농민 각자는 힘없는 사람들이다. 그 조직체가 바로 조합이어야 한다. 그런데 조합은 지금 농민의 편에서 이문제를 보고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조합자신만 손해를 입지 않으려고 농민과 농업의 미래를 외면하고 있다. 이런 조직이기주의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결국 문제는 협동조합의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