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값 묶으라는 중앙회의 압력 - 긴급지시 1호 문건의 내용
시위 열흘만에 다시 농성으로
“농민들 마음이 참담합니다. 농민이 믿을 수 있는 곳이 농협 뿐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협동조합이 개혁의 대상이 되더니 이번에는 중앙회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농민들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중앙회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농민회와 경영인회가 항의차 여기에 오게 됐습니다.”
지난 9일, 농민들이 농협군지부장실을 찾아가 항의하는 자리에서 농업경영인 김충완 회장이 한 말이다.
이날 지부장실에는 당진군농민회와 농업경영인회 회원 등 농민 30여명이 찾아들었다. 이들은 지난 5일 농협중앙회가 회원농협에 발송한 긴급지시 1호 문건과 관련, 지시내용의 반농민성에 대해 성토하였다.
시위등으로 가격 높이면 책임묻겠다?
한쪽짜리 분량의 이 긴급지시는 ‘최근 일부지역에서 농민단체 시위 및 농성 등에 의하여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벼매입이 되고 있는 사례’를 지적하며 “시가가 아닌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결정하여 조합의 손실을 발생시킬 경우 의결에 참여한 임원진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음”과 “이런 가격 결정을 한 조합에 대해 중앙회 지원시 감안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 지도사항으로 “이미 비정상적인 가격을 정한 조합에 대해서도 결정사항을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농민들이 이 문건을 가지고 이날 군지부를 항의방문한 이유는 농협중앙회가 농민의 생존권이 걸린 쌀값 문제에 대해 너무 단호하게 정부의 입장에 서있기 때문이다.
농협 망하는 건 걱정되고 농민 망하는 건 걱정안되나
농민회 이종현 회장은 “벼값문제에 대해 이런 지시를 할 정도라면 그런 중앙회가 농민이익 대행기관인지 판단이 안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병남 지부장이 “중앙회는 회원조합을 지도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지도차원에서 발송한 문건”이라며 “조합이 벼값 때문에 부실화됐을 때 다른 사업과 조합원에게도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이종현 회장은 “농협이 망하는 건 걱정이 되고 농민이 망하는 건 걱정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중앙회 지도는 농민 죽이는 지도
화제는 이내 협동조합 이야기로 옮아갔다. 김충완씨는 “중앙회의 회원조합 지도라는 것이 어떻게 직원과 조직의 살 길에만 치중돼 있느냐”고 항변했다. “농촌이 이렇게 어렵고 농민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농협직원에 대한 교육이나 긴축은 이루어지지 않고 농민들이 살아보겠다고 하는데 그것만 막고 나서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농협이 농민 죽이는 지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농협에 책임 떠넘긴 무책임한 정부
정부정책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결국 400만석 수매안은 정부안인데 그일을 농협중앙회에 떠넘기고 중앙회는 다시 회원조합에 떠넘겨 조합들도 어려운 사정에 있는 줄 안다.” 농민회 허충회씨의 말이다. 허씨는 이어서 “농협군지부는 회원조합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방안을 세워야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병남 지부장은 “벼값은 회원조합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면서도 문제의 문건에 대해서는 “지도는 중앙회에서 할 수 있다”고 상반된 대답을 해 농민들이 한때 흥분하기도 했다.
또 김지부장은 “문건은 군지부에서 발송한 것이 아니라 중앙회에서 직접 하달한 것이며 우리는 회원조합에 아무런 압력이나 발언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한 뒤 “군지부가 중앙회 지도지침에 대해 어떤 반대를 할 수 있느냐”고 말해 농민들로부터 ‘군지부무용론’까지 강하게 제기됐다.
시가에 맞추라니, 시가는 누가 떨어뜨렸나
우강에 사는 농민 이광영씨는 “벼값이 최소한 농민들이 영농의욕을 상실하지 않을 만큼은 책정돼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또 “시가라는 것이 도정업자들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농협에서 먼저 결정하고 나면 일반 도정업자들이 그에 맞춰 형성하는 것인데 농협이 가격결정을 미룸으로써 시가를 떨어뜨려 놓고 그 시가에 맞춰 사들이겠다는 것은 농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씨는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노력은 하지못할 망정 가격을 올려서 받으면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협박을 한다는 것은 농민기관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재차 따졌다.
통계청과 언론의 풍년론은 계산된 속셈
풍년논란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송악면 월곡리에 사는 엄용석씨는 “매스컴에서 풍년이라고 떠들지만 막상 수확해본 결과 작년보다 17%가량은 수확량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지부장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자 합덕읍 정상영씨는 “지금의 통계발표를 믿는다는 것은, 하루를 살아도 농민들과 함께사는 지부장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했다.
농민들은 실제로 수확량이 대폭 줄었는데도 통계청 발표와 언론이 ‘풍년’이라고 계속 여론을 왜곡하는 것은 쌀수입 UR재협상을 앞두고 정부가 의도적으로 국내쌀값을 국제가격으로 떨어뜨리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긴급지시 압력 때문에 떨어진 벼값
이야기는 다시 긴급지시1호라는 문건으로 돌아갔다.
농민들이 실제로 분개한 것은 이 문건이 상당수의 회원조합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강의 허충회씨는 “우강과 합덕 등 몇 개 조합이 1,400원에 벼값을 결정해놓고도 갑자기 위협적인 문건이 내려오는 바람에 집행을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또 문건이 도착한 직후에 석문농협이 1,300원으로 가격을 결정함으로써 이미 농민들과 서명으로 약속한 사항을 깨뜨린 것도 그 문건의 영향이라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따라서 중앙회가 긴급지시를 철회했다는 사실이 담긴 제2의 공문을 회원조합에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군지부는 철회문건을 그 자리에서 회원조합에 팩스로 전송했다.
지시철회 통보안한 건 중앙회의 실체
바로 그 시간, 벼값결정을 위한 이사회를 막 소집했던 고대농협은 ‘중앙회의 긴급지시 철회 문건’을 받은 뒤 가격결정을 하게됐는데 결정된 가격이 석문농협과 큰 차이가 나는 1,370원이었다.
농민들은 “긴급지시 1호를 전국동시다발로 발송한 중앙회가 이것의 철회사실을 통보하는 데는 이처럼 늑장을 부린 것은 어떻게 해서든 벼를 싼값에 사려는 농협중앙회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여섯시간만의 합의서
이날 농민들은 지부장실에서 여섯시간을 농성한 끝에 두가지로 압축된 요구사항을 제출했고 김병남지부장은 이를 수용한다는 서명을 했다.
1. 읍면농협에 다음과 같은 지도공문을 발송할 것을 요구합니다
-중앙회에서 발송한 10. 5 긴급지시 1호의 발령에 대해 중앙회장이 농민대표들에 사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바 중앙회에 확인한 결과 부분적인 시인을 확인했고 추후 후속조치를 발표하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군지부는 회원조합의 매취가격에 대해 그 결정을 존중할 것이며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겠습니다
2. 농협중앙회 수매분(400만석)을 최대한 배정받도록 건의할 것과 특히 수매자금이 즉시 집행되도록 하여 농협RPC가 없는 관내 농민의 쌀값을 지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