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지킴이 어찌 농민만의 몫인가?

우리선조들이 식량난을 겪었던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다. 겨울 삼동(석달)을 먹고나면 식량이 떨어져 5~6월에 수확하는 보리쌀 대기까지의 식량난은 그야말로 굶주림과 허기짐 뿐이었다. 3~4월 춘궁기에는 초근목피(草根木皮)가 식량 대용이 되었을 뿐 아니라 너무나 배고프고 힘이들어 가장 넘기 어려웠던 보리고개를 50대 이상은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엊그제같은 식량난의 고통을 녹색혁명이라 일컬을 만큼 획기적인 식량자급의 전기로 극복한 농민의 위업을 자랑할 여지도 없이 우르과이라운드로 농업과 농민을 무참히 짓밟아 젊은이는 농촌을 떠나고 아기울음소리 들은 지 오래다.

“돌아오는 농촌”, 귀농자 정착금 지급 등 반짝정책과 농촌구조 개선사업 수조억원 투여로 농업이 되사는가 싶더니 소득과 연결되지 못한 투자는 결국 고스란히 농민을 빚더미에 앉게 하고 재기할 용기마저 무참히 짓눌러 자살과 야반도주가 다반사가 되었다. 그러더니 또다시 WTO 뉴라운드 선포로 농민은 오도가도 못하고 실의와 좌절과 낙망에 빠져있다.

식(識)자들이 말하기를 식량은 안보차원에서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것이고 쌀농사가 주는 환경적 공익성은 가치 면에서 수조억원에 기여한다 등 농업 살리는 귀한 조언들을 귀가 아프도록 설명해도 귀담아 듣는 자가 없다. 농민이 제 살 길 찾는 호소로 여겨져 더 냉담한 것인가.

그러나 쌀을 지킴을 어찌 농민의 몫으로만 전가할 것인가? 공산품 수출을 위해 겪는 농민의 희생과 아픔을 알고 모든 국민과 함께 하는 고통이 된다면 농업을 지키는 농민은 생명산업인 농업을 국민의 먹거리를 지키는 사명으로 알고 어떤 고난과 어려움도 감내할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생명산업을 망각하고 농업을 경제이론에 맞춰 폄하하는 논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국가의 먼 장래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논리로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계도처에서 식량난으로 굶주려 피골이 상접한 채 수만의 인구가 죽어가는데 아니 가까운 우리 이북동포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어도 우리의 배부름으로 인해 이러한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가뭄과 홍수를 견딜 수 있는 전천후 농지라 할지라도 천재지변이나 재해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식량안정은 곧 국민생활 안정이다. 감원과 구조조정으로 실직자가 양산되고 농촌은 소득이 감소되고 전반적 사회의 안정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다행스럽게도 먹을 식량이 남아돈다는 자체는 농민이 당하는 고통 가운데에서 모든 국민이 즐거운 비명일 수밖에 없다. 농업이 죽어 나라가 잘 살 수만 있다면 아픔이 따를지라도 희생을 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감한 정책을 펴서 농업을 회생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농민은 정부의 지속되는 농업실정으로 정부를 믿고 따를 수도 없고 나름대로의 길을 갈 수도 없는 난감한 지경이다. 대통령의 신농업방침도 속빈강정처럼 농민의 유익과 무관했다. 더욱 11월26일 충북도청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제는 덮어놓고 농사짓고 정부가 덮어놓고 쌀값을 올려라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 나왔다. 이말에 농민은 더욱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농업 폐업이 사실상 선포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해 동안 농업의 사령탑인 장관이 세번씩이나 바뀌니 농업정책도 일관성이 없어 연초에는 휴경지없는 이앙을 독려하고, 금년 중반에는 농지확보를 위해 국민의 반대도 무릅쓰고 새만금 대단위 간척사업을 재개시키고, 연말쯤에는 농지조성으로 매립한 김포매립지 용도변경과 전국농지 부분별 휴경을 계획하니 어떤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르겠다.

농지전용문제로 재경부와 농림부가 아웅다웅 다툴 필요가 없다.

국가적 농업정책이 중농정책이면 재경부는 물러서야 할 것이고 폐농정책이면 농림부가 물러서야 할 것이다.

농업의 존폐에 대한 확실한 결단과 과감한 용단이 국운의 번성을 이루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