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매일 아침 , 53 년 차 부부 김홍제 (82) 씨는 이발소에서 아내 윤선재 할머니의 머리를 정성껏 손질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 치매를 앓는 아내를 위해 , 김 씨는 오직 아내만을 위한 특별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 이발소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 그들의 삶과 사랑이 깃든 특별한 장소다 . 김 씨의 헌신과 사랑으로 창리마을 전체가 응원을 보내고 있다 .

홍제이용원 전경(당진시 우강면 창리 348-26에 위치)
홍제이용원 전경(당진시 우강면 창리 348-26에 위치)

“ 많이 아프고 , 많이 미안했어요 ”

우강면 창리에 위치한 작은 이발소 ‘ 홍제 이용원 ’. 홍제이용원의 대표 김홍제 씨가 손수 가위를 들어 , 아내 윤선재 (78) 씨의 머리를 정성껏 빗어 넘기고 , 세안을 시켜주며 로션까지 발라준다 .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의 눈빛은 여전히 맑지만 , 기억은 마치 백지처럼 텅 비었다 .

김 씨는 “ 젊었을 때 아내는 예쁘고 당찼다 ” 며 “3 년을 쫓아다니다 결혼까지 했는데 , 젊은 시절 가난으로 인해 아내가 친정에서 쌀을 빌려와야만 했다 ” 고 말했다 . 그는 “ 적은 쌀에 나만 밥 해주고 , 본인은 굶고 누웠던 날이 많았다 ” 며 “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 정말 미안하다 ” 며 눈시울을 붉혔다 .

이용사 김홍제 씨가 아내 윤선재 씨의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해주고, 요양보호사 임옥순 씨가 보조 역할을 해주고 있는 모습
이용사 김홍제 씨가 아내 윤선재 씨의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해주고, 요양보호사 임옥순 씨가 보조 역할을 해주고 있는 모습

“ 첫사랑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 영원히 ”

결혼 후 , 두 사람은 어려운 시절을 함께 이겨내며 세 자녀를 키웠다 . 김 씨는 “ 내가 성격이 불같아서 미안한 일이 많았다 ” 며 “ 하지만 아내는 묵묵히 나를 따랐다 ” 고 말했다 . 이어 “ 이발소를 열었을 때도 옆에서 함께 일하며 나를 도왔고 , 나중에는 건강원까지 운영했다 ” 고 회상했다 . 하지만 8 년 전 , 아내가 치매 증상를 보이기 시작했다 . 당시 병원을 찾았을 때 , 건강원을 운영하면서 발생한 가스 중독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 그때부터 김 씨는 더욱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게 됐다고 .

‘ 고등 이용원 ’ 에서 ‘ 홍제 이용원 ’ 으로

김 씨는 “ 아내를 돌보는 것이 내 마지막 소명 ” 이라 여긴다 . 그래서 65 년간 운영하던 합덕의 고등 이용원을 아들에게 넘기고 , 우강에 아내만을 위한 홍제 이용원을 새롭게 차렸다 .

그는 “ 애들까지도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라고 했지만 ,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 며 “ 내가 아내를 끝까지 내가 돌봐야 한다 ” 고 말했다 . 김 씨의 이런 사랑과 헌신은 마을 주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 홍제이용원이 자리한 우강면 창리의 문수일 이장은 “ 이 부부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고 전했다 .

방에 누워 대소변도 못 가릴 정도의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 윤선재 씨의 병구환을 하는 남편 김홍제 씨의 모습
방에 누워 대소변도 못 가릴 정도의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 윤선재 씨의 병구환을 하는 남편 김홍제 씨의 모습

끝없는 사랑 , 아내는 내 삶의 이유

아내를 돌보는 일이 고되지 않냐는 질문에 김 씨는 “ 힘들다 ” 는 말을 했다 . 이어 “ 아내가 가끔 나를 때리기도 한다 ” 며 “ 하지만 나는 끝까지 아내를 돌볼 것 ” 이라고 말했다 . 그의 손에는 돌봄의 흔적인 상처와 멍이 선명했지만 , 그는 “ 아내가 내 곁에 있는 한 나는 아내가 기억하지 못해도 , 나는 우리 둘의 기억을 내가 알고 , 빛바랜 옛 사진도 있고 , 나라도 꼭 붙들고 지키고 싶다 ” 고 덧붙였다 .

김 씨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아내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 그래서 그는 아내를 데리고 맛있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여주고 , 언제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내를 돌보고 있다 . 김 씨의 홍제이발소는 손님이 많지 않지만 , 대신 아내의 추억이 깃든 사랑의 공간으로 자리했다 .

“ 내가 젊었을 때는 한참 바빴고 외부 활동도 많았죠 . 당진시이용지부장을 23 년을 했고 , 어려운 분들이나 거동이 힘든 분들한테도 찾아가서 이용 봉사를 많이 했어요 . 그러다 보니까 그걸 기억하고 찾아와 인사하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 특히 그 자녀들이 한 번씩 찾아와 아무개 자녀라고 인사를 해주면 고맙더라고요 . 그런 추억으로 사는 거죠 . 시름을 잊고 웃다 보면 잠시 행복한 거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