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전국의 안방을 따스한 감동으로 물들인 특별한 무대가 있었다. KBS 국악한마당 ‘전국민요자랑’에서 당진 출신의 국악 모녀가 함께 무대에 서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야금 연주자인 어머니 박혜정(44) 씨와 그의 딸 원당초등학교 3학년 김리원(10)양. 이날 무대에 올라 당진의 국악 모녀가 선보인 노래는 바로 ‘당진 아리랑’이었다. 판소리를 전공하는 김리원 양이 어머니가 직접 작사한 ‘당진 아리랑’을 부르는 청아한 목소리는 전국 방송을 통해 지역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진의 ‘당당 모녀’로 소개한 모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국악, 두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다
판소리는 한국인의 한(恨)의 정서를 담은 전통적인 소리로서 창자(唱者)의 한숨과 눈물, 기쁨과 슬픔이 북장단에 실려 한 편의 서사시로 완성된 장르다. 기교보다는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며, 한을 풀어내는 깊은 소리와 섬세한 감정선이 판소리의 매력이다.
특히 <춘향가> 한 곡을 완창하려면 최소 6시간 이상 무대에서 소리를 내야 하는 만큼 체력과 집중력도 요구된다. 이러한 판소리의 매력을 오롯이 담아낸 소녀가 있다. 소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장수논개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초등부 대상을 거머쥔 당진의 판소리 신동, 김리원 양이 그 주인공이다. 김리원 양의 어머니 박혜정 씨는 대구 출신으로 가야금을 전공한 국악인이다. 그는 십여 년 전 부모님이 계신 당진을 찾았고 이후 당진에서 활동하는 국악 실내악팀 ‘희희낙樂’의 대표로 활동해 왔다. 판소리를 사랑하는 딸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네 살, 소리에 눈뜨다
박혜정 씨는 딸에게 처음부터 국악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엄마를 보면서 국악을 접한 김리원 양이 네 살이 되던 해 엄마를 따라 노래하는 것을 듣고 남다른 재능을 발견했다.
박혜정 씨는 “희희낙락을 운영하면서 노래하는 이모, 악기하는 삼촌 모두 다 국악을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리원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국악이 일상이었다”며 “당시 당진은 판소리 불모지였기 때문에 남도소리 ‘서고제’를 배우기 위해 어린 딸을 데리고 판소리를 배우러 다녔었다”고 전했다.
이어 “처음엔 아이가 그냥 흥얼거리는 줄 알았는데 들어보니 ‘금강산타령’이란 노래를 불렀다”며 “성인이 부르기에 단어도 어려운 곡을 줄줄 외워서 부르는 걸 보고 가족들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김리원은 국악을 향한 흥미를 놓지 않았다. 다섯 살 때부터 엄마와 함께 전라도까지 다니며 판소리를 익혔고, 점점 실력을 키워갔다. 박 씨는 “처음에는 단순한 흥미였지만, 대회에 나가고 공연을 경험하면서 국악이 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판소리는 내 사랑, 소리꾼은 내 꿈”
박혜정 씨 곁에서 함께하며 국악을 접한 김리원 양은 8살이 되던 해, 광주에서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박지윤 이수자에게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인 판소리의 길에 들어섰다.
김리원 양은 “금요일마다 광주로 이동하는 것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이동시간에 연습하는 것이 좋다”라며 “판소리 선생님께 ‘우리 리원이 연습했네, 참 잘했어’라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최고 좋다”고 말했다. 덧붙이며 “소리 연습할 때 가성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속상해서 눈물이 날 때도 있다”고 전했다.
김리원 양은 판소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최연소의 나이로 숲쟁이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판소리 초등부 장원을 차지하고, 이후 ‘장수논개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전국 대회에서 춘향가 이별가 중 한 대목을 불러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아한 목소리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김리원 양은 “대회에 출전했을 때 참가자 중 제일 어렸다”며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수상할 것이라고)솔직히 기대도 못했는 데 일등 했을 때 너무 기뻤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판소리를 배우기 잘한 것 같고 박지윤 선생님을 가장 존경한다”며 “선생님처럼 멋진 소리꾼, 명창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엄마를 떠올리며 이별가를 불렀어요”
김리원 양은 춘향가는 6시간 완창을 해야 해서 아직 배우는 중이고, 지금은 이별대목 1시간 공연을 목표로 연습 중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서울에서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별가는 남녀간 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곡으로 어린 소녀가 부르기엔 쉽지 않다.
김리원 양은 “이별가를 노래할 때마다 엄마와의 이별을 상상한다”며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마음을 꾹 눌러 담고 불렀다”고 말했다. 이어 “이별가는 고음과 서글픈 정서를 담아야 하는데 고음을 올릴 때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며 “춘향가 이별 대목 중 ‘여보 도련님’을 부를 때가 가장 좋다”고 밝혔다.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펼쳐진 무대
김리원 양은 초등학생이지만 이미 당진의 국악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학교 졸업식에서 ‘사랑가’를 부르며 학우들과 선생님들에게 감동을 전했고, 국악한마당에서 ‘당진 아리랑’을 불러 고향의 정취를 전했다.
김리원 양은 “전국민요자랑 무대에서 떨리긴 했지만 엄마와 함께 선 무대여서 좋았다”며 “무대에서 관객이 추임새를 하고 박수를 치면 신이 난다”고 말했다. 덧붙이며 “학교에서도 수업중에 판소리나 국악 이야기가 나올 때 선생님이 내가 나온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셨을 때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러웠다”며 “또 학교에서 졸업식 때는 6학년 언니, 오빠들에게 ‘사랑가’와 ‘이별가’를 불러주는 무대도 가졌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판소리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고 박지윤 선생님처럼 6시간 춘향가를 완창하는 명창이 돼서 엄마와 함께 세계무대에 서고 싶다”고 덧붙였다.
국악을 함께하는 동반자
판소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모녀 관계를 넘어, 박혜정 씨와 김리원 양은 국악 친구이자 동료 같은 존재다. 김리원 양은 “엄마와 함께 공연을 하면 더 긴장도 되고 떨리지만, 동시에 엄청 든든하다”고 말했다.
박혜정 씨도 “가끔은 친구처럼, 때로는 멘탈코치 처럼 리원이를 대하려고 한다”며 “무대에서는 엄마가 아니라 한 명의 연주자로서 함께하고 싶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