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박명심 학생은 63세다. 지난 6월, 그는자신의 인생을 담은 자작시로 당진시청소년문학상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 「60대 중학생」은 초등학교 졸업 후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섰다가, 60대가 돼 다시 교복을 입기까지의 긴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15살, 서울 봉제 공장으로 떠나

전라남도 진도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박명심 학생은 어린 시절부터 책임감이 컸다. 언니와 동생이 잦은 병치레를 하던 탓에 맏이 역할을 도맡았고,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 후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집을 일으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막내 이모를 따라 올라가 봉제 공장에 들어가 기술을 배웠어요.”

그는 15살의 나이에 용산에 있는 공장 기숙사에서 재봉틀 앞에 앉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며 월급 대부분을 집에 보냈다.

“기숙사는 난방도 안 됐고, 연탄난로 하나에 의지했어요. 함께 일하던 동료 중엔 가스 사고로 생을 달리한 사람도 있었죠.”

그는 그 시절을 돌아보며 “그 시간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견뎌 단단해진 마음

박명심 학생은 23살에 서울에서 지금의 남편 이상식 씨(67)를 만나 결혼했다. 이듬해 첫 아이를 낳았고, 26살에는 둘째를 품에 안았다. 남편이 지방을 돌며 운송 일을 하는 사이, 그는 혼자 두 아들을 키워야했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아야 했고, 말 그대로 ‘고추같이 매운 시집살이’였다.

“애들 학원비라도 벌겠다고 악착같이 살았어요. ‘그만두고 싶다’라는 마음을 수도 없이 접었죠.”

그렇게 그는 4년 전까지 재봉 일을 하며, 30년 넘게 직장생활과 양육, 그리고 맏며느리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왔다.

긴 시간을 견딘 박명심 학생은 “그렇게 힘든 환경을 버텼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이 정도쯤이야’ 하고 넘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시 입은 교복, 새로 꾸게 된 꿈

박명심 학생은 4년 전, 먼저 당진에 내려와 있던 남편을 따라 이곳에 정착했다. 하지만 막상 내려오고 나니 마음 한쪽이 허전했다.

“아이들은 다 커서 결혼했고, 손주도 넷이나 있는데 하루하루가 허전하더라고요. 당진에 내려오니 할 일도 사라졌고요. 그때, 평생 한으로 남아 있던 공부를 다시 해볼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들의 도움을 받아 면천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공부가 될지, 어린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지만, 지난해 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해 올해 2학년이 됐다.

같은 반 학생들은 그를 “이모님”이라 부르고, 그는 아이들을 “친구”라 부른다. 박명심 학생은 “모두 토끼띠 동갑내기지만, 무려 네 바퀴 차이가 나는 친구들”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포기 대신 초심으로

“한 달도 다니지 못할 거다”라는 시선도 있었다. 실제로 이전에도 늦은 나이에 입학했던 사례가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한 경우가 있

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명심 학생은 오히려 “오기로 버텼다”고 말했다.

기억력도,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학교생활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고, 1학년을 마치고는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단다. 그러다 문득 ‘내가 얼마나 학교에 가고 싶어 했던가’라는 초심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선생님들도 저한테 정말 잘해주시고, 최근에 전학 온 같은 반 이다빈 학생도 저에게 큰 의지가 됐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60년의 인생, 한 편의 시에 담아

청소년문학상 공모는 국어 교사의 수업 시간 소개로 알게 됐다. 교사의 권유로 작품을 써보기로 했고, 자연스레 떠오른 주제는 자신의 인생이었다.

박명심 학생은 시를 쓰며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단다. 15살 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울었던 기억도 떠올랐다고.

“그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를 보며 ‘내 인생이 슬프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완성된 시 「60대 중학생」으로 올해 청소년문학상 특별상을 받았다.

“평생 살면서 상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이번이 처음이었고, 얼떨떨했어요. 내가 상을 받아도 되나 싶더라고요.”

“60대가 아니라, 다시 15살이 된 기분”

“어렸을 때는 하도 가난하게 살아서 꿈이란 게 없었어요. 부모님 덜 힘들게 해드리는 게 전부였죠.”

박명심 학생에게 꿈은 오랫동안 사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루하루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야 했고, 자식을 키우고 시부모를 모시며 맏며느리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음 같아선 대학까지 가고 싶어요. 이건 그냥 꿈이나 꿔야겠죠.”

겸손한 듯 내뱉은 이 말속엔, 지금이라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감사함과 그 꿈을 이루고 싶은 간절함이 함께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매일 아침, 가방을 메고 학교에 오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말하며 늦은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전했다.

“늦게 공부를 한다고 중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시작하기 전에 고민도많고 용기도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벌써 2학년 1학기가 다 가네요. 혹시 저같은 분이 있다면,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용기를 내세요.”

>>박명심 학생은

-1963년 전남 진도군 출생

-길은공립국민학교 졸업

-면천중학교 2학년 재학중

-제16회 당진시 청소년문학상 특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