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아!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중략-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책에서 학습한 만해 한용운의 시의 일부이다. 기미독립선언 33인 중의 한 사람이 쓴 애국시라 하여 학생들에게 민족주의적 애국심을 각인시킬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국어책에 실었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국어시간에 배우는 시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중간고사 등의 시험과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대입예비고사에도 출제되었던 시로써 시구절에 “나의 님”에 밑줄을 긋고 여기에서 “나의 님”은 누구를 이야기하는 가를 묻는 문제가 4지 선다형으로 출제되었었다. 여기서 정답은 대개 “님“은 조국을 상징한다고 찍어야 한다.
35년간 직장을 다니다가 퇴직을 하고 재미 삼아 농사를 지으면서 쉬는 시간에 한용운의 「불교유신론」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님의 침묵“에 나오는 ”님“이 ”조국“이나 ”연인“,”절대자“만을 한용운이 상징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한용운의 불교유신론은 책의 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불교 교리의 혁신적 해석과 실천을 통해 비참한 생활에 빠진 민중의 삶을 구원하고자 하는 일종의 종교개혁을 주장한 내용이다. 불교를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대안을 찾아 불교 조직을 통해 생산활동을 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근대적 의식개혁을 조직적으로 할 수 있다는 구상과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한용운은 유년 시절까지 한학을 배워 한학에 정통한 가운데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한용운이 태어난 시기는 산업화에 일찍 성공한 서양의 제국주의 세력이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시기이었고 뒤늦게 눈을 뜬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근대적 개혁을 하고 욱일승천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한용운은 승려가 된 후 일본에 건너가 머무르면서 서양의 사상에 정통한 중국인 학자 양계초(링치차오)로부터 서양의 근대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우는 한편 일본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일본이라는 창’을 통해 서구화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고 서양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가를 공부하게 되면서 서구인들이 근대이성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종교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는 늦었지만 오랜 세월 속에 민중의 생활 속에 깊숙이 배어있는 불교라는 종교의 개혁을 통해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 강대한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고 읊은 것은 유년시절 이미 정통한 유교적 대동사회 이념이 공허한 것이었고 출가 후 깨달은 불교의 불국정토 이념이 약육강식의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허무한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었으며 니체식으로 말하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유행가 가사의 형식을 빌리면 “석가형! 세상이 왜이래”라고 되물으며 석가 형이 주장한 이념이 구현한 세상은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착취하고 국가가 외세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약육강식의 현실을 한탄’한 것으로 하루 빨리 서양의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여 근대화의 길로 나가야 된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 길은 불교라는 종교의 개혁을 통해 다시 말해 불교유신을 통해 현실을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한 부처’에게 말을 하게 하려는 계획을 설파하고 있다.
그러면서 “님의 침묵”의 종결부분에서 “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외치면서 불교유신을 통해 침묵만 지키던 님이 드디어 입을 다시 열어 불국정토의 부강한 나라를 만들자고 깃발을 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만해 한용운은 일본식 문명개화론을 모델로 삼아 근대개혁을 하자고 주장한 사람이 되어 소위 친일파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보니 한용운은 문명개화론자 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면 반민족 행위자인 친일파, 내지는 토착왜구가 된다. 아니면 독립투사를 모욕한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
한편,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국어책에 실어놓고 여기서 ‘님’이 조국, 애인, 절대자, 부처님 등으로 외우도록 하고 시험까지 출제하여 학생들을 평가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교육활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을 외면한 가장 비교육적인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을 세뇌시킴으로써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력을 가로막아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와 태도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민족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누군가에 의해 저질러진 일종의 음모, 내지는 폭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평생 교직생활을 하면서 교육활동이라는 이름 하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의 말처럼 ”존재물음을 망각 속에 묻어 버린“ 날들을 성찰하기도 한다. 또한 그렇게 배운 학생들이 시를 자유롭게 해석하여 여기서의 “님”이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하면 친일파나 토착왜구가 되는 것이다. 똑같은 시를 읽고 자유롭게 해석하여 나의 생각을 말하면 토착왜구, 반민족 행위자가 되고 교과서대로 해석하면 애국자, 독립투사, 민족 해방투쟁전사가 되는 것이다.
보통의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자유롭게 살기 위해 삶의 투쟁을 전개해왔고 자유를 억압하는 조건들을 해체해 온 것인데 민족이라는 이름만이 선이고 세계화의 길을 주장하면 토착왜구요, 친일파로 매도되는 현실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할 지도 모른다. 민족우선주의 교육이 얼마나 위험하고 편협하며 얼마나 인간의 자유로운 삶에 억압을 주는가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고 무의식 조건건반사적으로 민족해방전사와 친일파로 반응한다. 서양의 역사에서 전통적 봉건 사회가 해체되고 민족적 국가 건설이 인간을 삶의 굴레로 어떻게 작용했는지, 얼마나 많은 인간들의 생명의 희생을 강요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며 편협한 국가관과 민족만의 삶이 아닌 인간의 자유로운 삶의 위해 어떤 굴레를 먼저 없애야 할 지를 해방의 기념일을 맞이하여 생각해 볼 일이다.
>> 출향인 최종석 대표는
- 고대면 대촌리 출신
- 35년 교직생활 후 퇴직
- 현 당진에서 상록행정사 대표로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