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과 지역 예인선사 간의 불공정 거래 논란이 결국 법원에서 ‘위법’ 판정을 받았다.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는 지난달 28일 상록해운(주)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앞서 공정위는 상록해운이 수년간 현대제철 광탄선 예인사업의 배정권을 독점하면서 예선사들에 ‘수수료’를 부과하고, 신고한 업체에는 배선을 중단하는 보복행위를 했다고 판단해 과징금 3억 6100만 원과 시정명령을 부과한 바 있다. 이에 불복한 상록해운이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공정위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해나루항만은?
㈜해나루항만은 지난 2014년 당진항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가 지역민에게 파급될 수 있도록 하고자 시민들이 뜻을 모은 향토 예인선사 기업이다.
행정구역상 당진에 위치한 항만시설이 ‘평택항’으로만 불리자, 주민들은 당진항 지정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고, 어렵게 2004년 ‘평택·당진항’이라는 항명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항만 관련 사업은 계속해 평택항 중심으로 이뤄졌다. 대부분의 회사는 평택 등 타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어, 당진에 미치는 경제력 파급력이 미비했다. 이에 당진항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가 주민에게 미치도록 ㈜해나루항만이 설립됐다.
수수료 수취 등 폐단 발생
하지만 현실이 녹록하지 않았다. 현대제철의 대형 광탄선(철광석 등을 수송하는 선박) 사업을 하고자 했으나, 대리점인 상록해운이 예인사업의 배정권을 독점하고 여러 예인선사에 일을 나눠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오랫동안 형성돼 있어 향토 기업이어도 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 과정에서 상록해운은 예인선사로부터 ‘수수료’를 수취했고, 결국 해나루항만의 말처럼 “일을 많이 해도 수익을 낼 수 없는 현실”에 놓이게 된 것이다.
공정위도 법원도 “불공정행위 맞다”
이에 해나루항만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고, 실제로 상록해운이 2017년 5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예선업체 7곳에 7억7000만 원의 예선 수수료를 수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계약에 명시된 대리점 수수료와 별개로 정상적인 업계 관행에 어긋나는 자의적 수수료라고 공정위는 밝혔다. 따라서 3억 6000만 원의 과징금과 함께 시정명령 및 검찰 고발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상록해운은 불공정행위를 시정하는 것 대신, 이에 불복하고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에서도 결국 상록해운이 불공정행위를 한 것이 맞다며 이번에 판결을 내린 것이다.
판결로 불공정 행위 입증돼
법원은 판결에서 “상록해운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거래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제공했고,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수취했으며, 공정위 신고를 이유로 보복 조치를 취한 행위는 모두 위법하다”고 밝혔다. 이로써 상록해운은 과징금 납부와 시정명령 이행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기업의 과징금 문제를 넘어, 당진시민들이 주주로 참여해 설립한 향토기업 ㈜해나루항만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나루항만은 당진항의 경제적 효과가 지역민에게 돌아가도록 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4년 설립됐으나, 현 항만업계에서 벌어지는 대리점 독점 구조와 이후의 보복성 배제 조치로 수년째 운영난에 시달려왔다.
“현대제철의 책임 있는 역할 필요”
해나루항만은 불공정행위를 이어온 상록해운만이 아닌 현대제철의 책임 있게 나서야 이와 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판결로 현대제철의 공개입찰이 보류된 직후 향토기업이 배제되는 불이익을 겪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해나루항만 정덕영 대표는 “불공정한 거래로 인해 손익분기점을 겨우 맞추며 회사를 운영하는 상황”이라며 “이 구조가 지속된다면 새로운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불공정한 행위가 명확히 드러난 만큼, 현대제철이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거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