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길이 열리고, 그 길이 또 하나의 소중한 꿈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연극 무대에도 섰고, 간호사로도 일했고, 지금은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 직업의 변화를 겪으며 깨달은 건,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 해볼 수 있었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돈을 잘 버는 것도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 그리고 내가 어떤 직업을 갖든 그 일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과연 내가 세운 계획과 예상대로만 흘러갈까. 하나의 길을 꿈꾼다고 해서 반드시 그 길로만 걸어가야 하는 걸까.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만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길이 또 다른 꿈이 돼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우강면 내경1리에서 태어난 박옥진 씨 역시 그러했다. 내경초등학교와 서야중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고, 29세에는 영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45세에는 다시 간호학과에 도전했고, 이후 정치에 입문해 영국 올드몰든 지역구 의원을 거쳐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한인 부시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그는 삶의 매 순간, 작은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고 도전을 이어오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지난 8일, 모교인 서야중·고등학교를 찾아 후배들에게 그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를 꿈꾸던 소녀
활발하고 공부도 잘하던 소녀 박옥진 씨는 어린 시절 TV를 보며 넓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국제정치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외교관을 꿈꿨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정치외교학과 대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그가 대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박옥진 씨는 학생운동에 참여하느라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고, 졸업은 늦어졌다. 그가 4년 6개월 만에 학부를 마칠 즈음 상황이 안정되면서, 대학 시절 하지 못한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이후 석사 과정을 밟으며 희극에 대한 관심이 연극으로 이어졌고, “연극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으로 29세에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언어 극복과 연극 프로덕션 세워
그가 영국에서 마주한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홈스테이 생활을 했는데, 저녁 식사 자리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어보는 말조차 대답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아예 집에 늦게 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주인아주머니가 “괜찮다, 말을 많이 해봐야 한다”며 박옥진 씨를 격려했고, 그는 용기를 내 적극적으로 영어를 배우려 노력했다. 주말마다 아주머니가 마켓에서 속옷을 판매할 때 따라다니며 직접 체험하며 언어를 익히기도 했다.
이후 박옥진 씨는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예술행정·문화정책 석사 과정을 마쳤으나, 낯선 외국에서 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는 직접 ‘JP프로덕션’을 세워 연극 <할아버지와 호주머니>를 한국과 영국 무대에 올리며 활동을 이어갔다.
45세, 간호사의 길로
연극 활동을 이어가던 중, 그는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에 집중해야 했다.
낯선 땅에서 도움의 손길이 부족했던 그는 결국 프로덕션을 정리하고,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의자에 앉지 못해 벨트로 묶여야 하고, 스스로 먹지 못해 튜브로 음식을 공급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머리에 문제가 생기면 인간에게 어떤 어려움이 오는 걸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고민은 결국 그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45세의 나이에 킹스턴대학교 간호학과에 진학한 것이다. 이후 박옥진 씨는 정신과 병동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근무했다.

영국 지방자치단체 최초 한인 부시장
간호사로 일하던 박옥진 씨는 왜 정치에 입문하게 됐을까.
어린 시절 TV 앞에서 외교관을 꿈꾸던 그는, 학생운동을 하며 정의와 공정함에 대해 고민했고, 정신과 간호사로 일하며 인간을 더 깊이 이해했다. 또 자신이 살던 지역 인근 뉴몰든은 20%가 한인으로 구성된 ‘한인타운’이었다. 언어 장벽으로 교육·복지·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힘든 한인들의 현실도 한몫했다.
이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한 박옥진 씨는 정치에 입문해 2022년 지방선거에서 킹스턴 지역 올드몰든 구의원으로 당선됐다. 이어 2024년 5월, 킹스턴 시의회가 연례회의를 통해 그를 부시장으로 선임하면서 영국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한인 부시장이 탄생했다.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장”
1년에 한 번 가족이 있는 당진을 찾는 박옥진 씨는 이번 기회에 모교인 서야중학교를 방문했다. 당시 담임이었던 김광자 선생님을 모시고 진로 특강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감격스러움을 전했으며, 이를 마련해준 교장 선생님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편 박옥진 씨는 내년 5월까지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하며 재출마를 준비 중이고, 더 나아가 시장출마도 계획하고 있다.
“시장이 된다는 건 지역 주민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 정부가 함께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함께 원하는 지역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특히 정신 건강 관련 자선단체를 선정해 기금을 모으고 지원할 계획이며, 임기 동안 킹스턴 지역 정부와 한인 공동체가 더욱 긴밀히 협력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박옥진 씨는
-1967년 우강면 내경1리 출생
-내경초등학교ㆍ서야중학교ㆍ대전성모여고 졸업
-1990년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9년 골드스미스 대학 예술행정·문화정책 석사 졸업
-2014년 킹스턴대학교 정신과 간호학과 졸업
-2022년 영국 자유민주당 소속 킹스턴 지역 올드몰든 구의원 당선
-2024년 5월~2025년 5월 킹스턴 지역 부시장
-현 킹스턴 지역 올드몰든 구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