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새섬에 사는 이상억(52세)씨는 요즘 거의 하루종일 도비도 선착장에 나와 우럭, 놀래미, 도다리 등등 싱싱한 횟감을 팔고 있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 갯내음이 물씬 풍겨나는 그는 바다낚시꾼들을 상대로 모터보트를 운행해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이젠 고기를 잡는 일에만 그치지 않고 이를 직접 내다 팔고 좀 거창하지만 레져산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 전천후 직업인이 된 것이다. 이는 모두 그의 유일한 생계터전인 바다가 변했기 때문이다.
“벌써 22년이 됐네요. 처음 섬에 들어왔을 땐 어떻게 살까 막막했는데...”
대호방조제가 생겨 육지가 된 도비도에서 뱃길로 1km도 채 안되는 곳에 위치한 대조도, 물새떼가 많이 날아들어 새섬이라고도 하고, 난지도와 삼길포 사이에 있는 섬이라해서 사이섬-->새섬이라는 이곳에 이상억(52세)씨는 꼭 서른살 나던 해 부인 정세옥씨와 단둘이 들어왔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젊은 혈기에 무엇이든 못하랴’는 생각뿐이었다. 이씨의 용기는 가상했지만 처음 섬에 들어왔을 땐 그야말로 막막함 그 자체였다. 생존은 곧 치열한 싸움이고 현실이었던 것이다.
“새섬에 왔을 때 딱 한가구가 살고 있었죠. 그래도 식구수는 일곱이나 됐답니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밀가루조차 넉넉하지 않아 두집이 간신이 나눠먹었죠.”
처음 이씨의 생업은 맨손어업이었다. 굴과 바지락을 채취해 삼길포로 팔러 다녔는데 조각배를 타고 노를 저어 아침에 출발하면 점심때가 돼서야 삼길포에 닿을 수 있었다. 대호방조제가 생기기전 큰새섬과 가장 가까운 육지는 바로 삼길포였던 것이다.
그렇게 몇년을 고생했을까? 그가 요행히 김양식에 손을 대면서 형편이 피기 시작했을 때에는 큰새섬의 식구도 모두 다섯가구로 늘어나 있었다. 이젠 제법 살만한 곳이 되었구나 싶었는데 때아닌 시련이 그에게 닥쳐왔다.
바로 장고항 간첩사건으로 정부에서 일명 취약지구인 섬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육지로 옮겨 살게 한 것이다. 가구당 이주비용으로 4백만원 주어졌다. 전세값도 안돼 암담했는데 대호방조제가 생기면서 김보상을 받게돼 이씨는 간신히 석문에 집 한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곧바로 섬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바다를 등지고 살아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비도에 선착장이 건설되면서 육지를 맘대로 드나들게 되었고 이씨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장사꾼으로 변신했다.
사람들이 회맛을 알게 된 것이 그에겐 무척 다행한 일이었다. 잠시라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로 일욕심이 많다는 이상억씨. 그런 부지런함이 있었기에 이씨는 모진 바다와 20여년을 함께 하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넉넉한 품으로 받아주었던 큰새섬에는 지금 이씨부부를 비롯해 모두 7명이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