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라노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금메달 소식은 당연히 축하로 시작됐다. 그러나 한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내건 축하 현수막이 온라인으로 퍼지며 뜻밖의 논쟁이 붙었다. “자랑스럽다”라는 반응과 함께 “역시 돈이 있어야 하는 스포츠”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흔히 반복되는 표현, ‘부의 스포츠’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번 논쟁을 단순한 질투나 과장으로 넘기기에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 문제는 ‘돈’이라는 물질적 단어가 아니라 출발선의 조건이다.
스노보드는 분명 매력적인 스포츠다. 창의성과 균형감각, 도전정신이 결합한 현대적 종목이다. 그러나 동시에 겨울 종목 중에서도 비용 장벽이 높은 종목에 속한다. 장비만 갖추는 데 수백만 원이 들고, 리프트권과 강습비, 이동 거리, 시즌성까지 더하면 훈련 자체가 일상 속에서 반복되기 어렵다. 여름 스포츠처럼 학교 운동장에서 시작할 수도 없다. 시작하려면 공간과 시간, 그리고 비용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래서 논쟁의 핵심은 한 선수의 노력이나 성취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묻는 질문이다. 누가 시작할 수 있었는가. 스포츠에서 결과의 격차는 자연스럽다. 재능과 노력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발선의 격차는 사회가 만든다. 동계 종목은 특히 그렇다. 눈이 있는 지역, 이동 가능한 시간, 감당 가능한 비용이 있어야 반복 훈련이 가능하다. 이 세 가지가 맞춰질 때 비로소 ‘재능’이 발견된다. 즉 동계 스포츠는 재능 스포츠이기 이전에 접근성 스포츠다.
우리는 메달을 볼 때 늘 노력의 서사를 떠올린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노력은 시작할 기회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누군가에게는 훈련이고, 누군가에게는 여행이며, 누군가에게는 경험조차 없는 일이 된다. 이번 논쟁에서 느껴진 불편함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다. 성취를 부정하는 감정이 아니라 기회가 공평했느냐는 질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개인의 성공을 폄하하는 것은 잘못이다. 동시에 구조적 차이를 외면하는 것도 문제다. 스포츠는 개인의 영역이지만 스포츠 환경은 사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동계 스포츠 강국들은 이 문제를 오래전에 인식했다. 선수를 뽑기 전에 경험 인구를 늘렸다. 학교 체험 프로그램, 공공 장비 대여, 실내 훈련시설 공유를 통해 ‘선수 후보’가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그 결과 메달은 늘었고 논쟁은 줄었다. 메달이 공정해서가 아니라 기회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은 메달을 향한 평가가 아니라 시스템을 향한 질문으로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를 칭찬하는 동시에 다음 세대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스포츠의 가치는 결과에서 나오지 않는다. 반복 가능성에서 나온다.
한 명의 영웅은 감동을 만들지만, 많은 참여자는 문화를 만든다. 17살 최가온 선수가 보여준 부상과 좌절을 딛고 일어선 서사는 충분히 축하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메달의 색은 다양하지만, 출발선 온도는 아직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출발선을 넓히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