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미면 사관리를 지나가는 송전선로의 모습
현재 정미면 사관리를 지나가는 송전선로의 모습

<편집자주> 당진은 대한민국 대표 에너지 생산 도시이자 국가 전력망의 핵심 거점이다. 그러나 발전소와 송전선로, 각종 기반 시설 부담은 지역이 떠안고 정작 혜택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으로 송전망 확대가 본격화 되면서 당진은 또다시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이에 당진시대는 이번 기획을 통해 당진을 둘러싼 송전선로 계획의 실체와 지역사회 영향, 대안은 무엇인지 차례로 짚어본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과 충남을 관통하는 신규 송전선로 계획이 알려지면서 당진 지역사회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특히 청양~고덕 송전선로 계획 과정에서 당진 남부권 6개 읍면이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지역에서는 “또다시 당진이 수도권 전력 공급 통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진환경운동연합과 충남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당진은 전국 최대 규모 석탄화력발전소 밀집지역이자 수도권 전력 공급을 위한 핵심 송전망 지역이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초고압 송전선로가 집중되면서 지역 곳곳에 철탑과 변전소가 들어섰고, 주민들은 수십 년째 생활 불편과 재산권 침해 등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정미면 사관리와 우강면 소들섬 일대는 과거 송전선로 건설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지역으로 꼽힌다. 주민들은 “전기는 수도권이 쓰는데 피해는 지역이 떠안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미면에만 철탑 100개 넘어”

정미면 사관리에는 신당진변전소와 765kV(76만5000볼트) 초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간다. 주민들은 마을 주변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철탑을 수십 년째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이원석 정미면 사관리 이장은 “정미면에만 철탑이 100개가 넘는 것으로 안다”며 “당진 전체 철탑이 526개 정도라고 하는데 상당수가 정미권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당진변전소가 있다 보니 전력이 혈관처럼 이곳을 거쳐 지나간다”며 “당진화력에서 생산된 전기가 신서산변전소와 온양 방향을 거쳐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에는 국가사업이라고 하니 주민들이 버틸 힘도 없었다”며 “지역 희생으로 나라가 발전한 것은 맞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지금 새로 추진되는 송전선로는 지중화도 하고 각종 인센티브도 이야기되는데, 기존에 이미 희생해 온 지역은 사실상 방치돼 있다”며 “그게 주민들 입장에서는 가장 허탈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 변전소 : 전압을 높이거나 낮춰 전기를 보내는 시설

※ 765kV : 초고압 장거리 송전에 사용되는 송전선로

※ 345kV : 지역 간 전력 공급에 사용하는 초고압 송전선로

※ 지중화 : 송전선로를 지하에 매설하는 방식

“암 발생 많았다고 느끼지만 입증은 못 해”

주민들이 가장 크게 호소하는 부분은 건강 불안이다. 다만 현재까지 송전선로와 건강 피해 간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원석 이장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철탑이 들어선 이후 노선 주변에서 유독 먼저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다고 느끼고 있다”며 “암 발생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위험한지 아닌지 알고라도 살고 싶었던 것”이라며 “충남도 차원의 역학조사를 추진하려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주민들은 충남도와 함께 역학조사를 추진하며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 등을 통해 조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최종적으로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종준 충남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도 “지역 주민들의 건강 피해 호소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며 “하지만 장기간 역학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 피해는 단기간에 입증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속적인 건강영향 조사와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다”며 “지금이라도 체계적인 건강역학조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 역시 “위험하지 않다면 그렇다고 명확히 알려주고 위험성이 있다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가장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 역학조사 : 특정 질병 발생 원인을 장기간 조사·분석하는 연구 방식

이원석 사관리 이장
이원석 사관리 이장

“재산권 피해는 현실”

송전선로가 지나가며 주민들이 체감하는 가장 현실적인 피해는 재산권 문제다.

이원석 이장은 “철탑이 지나가면 결국 땅값이 떨어지고 활용 제한도 생긴다”며 “평생 농사지은 땅인데 가치가 낮아지는 걸 보면 허탈하다”고 말했다. 이어 “송전선로 밑으로는 집이나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도 거의 없고, 담보 가치도 낮아진다”며 “농민들에게는 삶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송주법(송변전설비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주민들은 실질적인 보상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종준 사무처장은 “실제 주민들이 느끼는 피해 범위에 비해 보상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라며 “송전선로 아래 토지의 가치 하락과 지역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송전선로가 지나간 뒤 남는 것은 결국 공동체 갈등과 주민 스트레스”라며 “찬성과 반대로 마을이 갈라지고 주민들끼리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 송주법 : 송전선로·변전소 주변 주민 지원을 위한 법률

“전기는 수도권이 쓰는데…”

이번 연재 과정에서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공통적으로 꺼낸 질문은 하나였다. “왜 피해는 지역이 떠안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원석 이장은 “반도체 산업단지가 당진에 있었다면 굳이 이렇게 먼 거리까지 송전선로를 만들 필요가 있었겠느냐”며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 일부라도 지역에 왔다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진은 발전소도 있고 변전소도 있고 송전선로도 있는데 정작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은 수도권에 있다”며 “희생만 있고 지역 발전은 체감하기 어렵다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황성렬 충남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는 “당진은 발전소도 있고 송전선로도 집중된 지역”이라며 “국가 전력망을 위해 희생해 왔지만 지역이 체감하는 상생은 부족했다”고 말했다.

또한 유종준 사무처장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역과 산업단지를 연계하는 분산에너지 체계가 필요하다”며 “수도권 집중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송전선로만 계속 늘리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고속도로인가, 에너지 식민지인가”

주민들은 이제라도 정부와 한전이 기존 송전선로 지역 주민들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원석 이장은 “신설 노선만 지중화를 논의할 것이 아니라 기존 노선도 일정 구간은 지중화를 해야 한다”며 “수십 년간 희생한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위안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영향 조사도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시작해야 한다”며 “위험 여부를 떠나 주민들이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 자체를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유종준 사무처장 역시 “송전선로 문제는 단순히 전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라며 “지금이라도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성렬 상임대표는 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에 대한 표현에 대해서도 의문이라 말했다. 황 태표는 “과연 이것이 국가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길인지, 아니면 지방의 희생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에너지 식민지 구조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