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이지리드(Easy-Read) 판결문’을 선보였다. 이는 어려운 법률 용어와 긴 문장으로 작성되던 기존 판결문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과 AI 그림으로 풀어쓴 판결문이다. 지난 6월 지적장애를 가진 원고가 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20여 쪽에 이르는 기존 판결문과 함께, “원고가 이겼습니다”, “구청의 결정은 취소합니다”, “이제 구청은 장애인을 위한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와 같은 일상적인 표현을 사용해 4쪽 분량의 ‘이해하기 쉬운 판결문’을 법률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별도로 제공한 것이다.

이 같은 시도는 장애를 개인의 결함이나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환경적 관점에 기반하여 지적장애인의 사법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법 지원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관점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이자 치료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가 만들어낸 장벽과 환경적 제약 속에서 장애가 발생하거나 심화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즉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계단만 있는 건물이 문제일 수 있고, 청각장애인이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자막이나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환경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 활동에 쉽게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 역시 이해와 적절한 지원이 부족한 환경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아직도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이 남아 있다. 얼마 전 A항공사는 장애인 단체가 비행기를 탑승하는 과정에서 피부 가려움증 때문에 일시적인 불안 반응을 보인 발달장애인에게 “탑승한 후 이륙 전에 도전 행동이 있으면 비행기에서 내리거나, 이륙 후에는 회항할 수 있다”며 이를 수용한다는 서약서 작성을 요구해서 논란이 됐다. 장애인 단체들은 “이미 안정을 찾고 정상적으로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승객에게 장애 특성과 관련된 행동을 이유로 별도의 서약서를 요구하고 탑승 거부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장애인을 동등한 승객이 아닌 잠재적 위험인물로 간주한 행위”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논란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장애를 개인의 특성이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행동을 이해하고 적절히 지원하기보다는 통제하거나 배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요구보다, 사회가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우선시 되었으면 한다.

2025년 기준 전국 등록장애인은 262.8만 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장애인이 56.9%, 50~64세가 24.3%로, 50세 이상이 전체 등록장애인의 81.2%를 차지한다.

또한 2023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 발생 원인은 질환이 58.2%, 사고가 29.9%로,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경우가 88.1%에 이른다.

이처럼 장애는 선천적인 경우보다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비율이 높다. 더욱이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노화와 질환으로 장애를 갖게 되는 고령층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제 장애는 누군가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주할 수 있는 삶의 한 모습이자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

흔히 ‘복지국가의 수준은 가장 취약한 시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장애인, 노인, 아동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보장하는 제도와 기반이 잘 갖춰질수록 사회통합의 수준도 높아진다.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고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사회가 곧 선진사회일 것이다. 이제는 한 사회의 발전을 경제 규모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사회통합의 수준으로 가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다. 장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는 장애인에게만 편리한 사회가 아니며,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특성에 맞는 지원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이지리드 판결문’처럼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춘 작은 변화들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선진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