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시가 석문간척지를 미래 수산식품산업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추진해 온 충남 수산식품산업 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 예타 대상사업 선정 이후 사업계획 보완과 관계부처 협의를 이어왔지만 최종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사업 추진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다만 이번 결과는 민선9기에서 새롭게 추진한 사업의 결과가 아니라 민선8기에서 기획과 예타 대상사업 선정, 사업계획 보완까지 진행된 사업의 최종 심사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진시는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보다는 해양수산부와 함께 예타 재도전 또는 사업 규모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사업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생산부터 가공·유통까지…미래 수산산업 육성 전략
충남 수산식품산업 클러스터는 충남도와 당진시가 석문간척지를 미래 수산식품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 추진한 국가사업이다.
그동안 국내 수산업은 생산 중심 산업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양식이나 어획을 통해 생산된 수산물이 대부분 원물 형태로 유통되면서 부가가치가 낮았고 가공과 연구개발, 물류 산업은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으로 분산되는 구조였다.
충남도와 당진시는 이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석문간척지를 생산과 가공, 저장, 물류, 연구개발을 모두 아우르는 수산식품 산업 거점으로 육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사업 대상지는 석문간척지 약 9.2ha 규모다. 이곳에는 스마트 가공처리센터와 상생형 저장물류센터, 블루푸드 혁신센터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스마트 가공처리센터는 새우와 연어 등 수산물을 세척·가공·포장하는 시설이며 저장물류센터는 저온 저장과 물류 기능을 담당한다. 블루푸드 혁신센터는 기업 지원과 연구개발, 창업 지원 등을 맡아 수산식품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도록 계획됐다.
사업이 완료되면 생산된 수산물을 지역에서 가공하고 저장한 뒤 전국으로 유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됐다.
LNG 냉열 활용…전국 첫 수산식품 산업모델 기대
충남 수산식품산업 클러스터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당진 LNG 생산기지의 냉열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액화천연가스(LNG)는 영하 162도의 초저온 상태로 저장된다. 이를 도시가스 등으로 공급하기 위해 기체로 바꾸는 과정에서 막대한 냉열이 발생하는데 대부분은 버려지고 있다.
당진시는 이 냉열을 수산물 저장시설과 가공시설에 활용하면 일반 냉동시설보다 에너지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충남도는 사업이 완료되면 연간 약 8억3000만 원의 에너지 비용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기대했다.
또 LNG 냉열과 연계한 스마트 양식단지도 함께 추진됐다. 스마트 양식단지는 ICT와 인공지능(AI), 순환여과식(RAS) 등을 활용해 새우와 연어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시설이다.
기존 양식업보다 물 사용량을 줄이고 수질을 자동 관리할 수 있어 친환경 양식이 가능하며, 생산된 수산물은 클러스터 내 가공시설과 저장시설로 바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당진시는 이를 통해 생산부터 가공, 물류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수산식품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었다.
민선8기 핵심 전략사업…예타 대상 선정까지 이어져
이 사업은 민선8기 당시 미래 신산업 육성을 위한 핵심 전략사업 가운데 하나로 추진됐다.
충남도와 당진시는 사업계획을 마련한 뒤 정부에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했고 2024년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예타 대상사업으로 선정됐다.
예타 대상사업 선정은 정부가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본격적인 경제성과 정책성 검토에 착수한다는 의미다.
이후 당진시와 충남도는 사업계획을 보완하고 경제성 자료와 정책성 자료를 추가 제출하는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이어왔다.
그러나 약 2년에 걸친 검토 끝에 최근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최종 탈락하면서 당초 계획했던 일정대로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렵게 됐다.
특히 이번 결과는 민선9기에서 새롭게 추진한 사업의 성패라기보다 민선8기부터 이어져 온 국가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절차가 마무리된 결과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30년 장기 투자사업…예타 평가방식과 간극”
당진시는 이번 예타 탈락의 배경으로 사업의 특성과 예비타당성조사 평가방식의 차이를 꼽고 있다.
당진시 항만수산과 관계자는 “수산식품산업 클러스터는 단기간에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이 아니라 30년 이상을 내다보고 지역 산업 기반을 만드는 미래 투자사업”이라며 “예비타당성조사는 일정 기간 안에서 비용 대비 편익(B/C)을 중심으로 경제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사업의 장기적인 효과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비타당성조사는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의 경제성과 정책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제도다. 사업 추진에 따른 편익과 비용을 비교하는 경제성 분석을 비롯해 정책적 필요성과 지역균형발전 등을 함께 평가한다.
당진시는 수산식품산업 클러스터가 단순한 시설 건립사업이 아니라 미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기반사업인 만큼 단기간 경제성으로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지역균형발전 평가다.
이에 관계자는 “당진은 수도권과 인접한 산업도시로 기획재정부의 지역균형발전 평가에서는 낙후지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지역균형발전 항목에서도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사업의 필요성 자체가 부족했다기보다 장기 산업 육성사업의 특성과 예타 평가 기준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 당진시의 분석이다.
사업 포기 아닌 방향 전환…해수부와 후속 논의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사업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니다.
당진시는 현재 해양수산부와 후속 추진 방안을 협의하고 있으며 크게 두 가지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첫 번째는 사업계획을 보완해 예비타당성조사에 다시 도전하는 방안이다.
경제성 보완과 사업 구조 조정을 통해 정부를 다시 설득하는 것으로, 당진시는 해양수산부와 재도전 가능성을 놓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는 사업 규모를 조정하는 방안이다. 총사업비를 500억원 미만으로 조정해 예타 절차를 거치지 않는 방식으로 핵심 시설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사업 규모는 축소될 수 있지만, 사업 자체를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대안으로 해석된다.
이에 기호연 당진시 항만수산과장은 “현재 해양수산부와 예타 재도전과 사업 규모 조정 등 여러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며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추진 방향을 찾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석문간척지 미래 전략은 계속된다
충남 수산식품산업 클러스터는 단순히 양식장을 조성하는 사업이 아니다.
석문간척지를 기존 농업 중심 공간에서 스마트 수산식품산업과 식품가공, 연구개발, 물류가 결합된 미래 산업 거점으로 전환하려는 장기 전략의 핵심 사업이다.
특히 당진 LNG 생산기지의 냉열을 활용하는 전국 최초 수준의 산업모델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인정받아 왔으며, 스마트 양식단지와 연계해 생산부터 가공·유통까지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다.
예타 탈락으로 당초 일정에는 차질이 생겼지만, 당진시는 사업의 필요성과 미래 성장 가능성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향후 해양수산부와의 협의 결과에 따라 예타 재도전 여부 또는 사업 규모 조정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하나의 국책사업 추진 여부를 넘어 석문간척지를 미래 수산식품산업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당진시의 중장기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