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형

당진중 대호지분교 교사

언제부턴가 유치원 영어교육 열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유명 유치원은 몇 개월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서울 강남에서는 외국인을 가정부로 고용하여 영어를 가르치게 한다고도 합니다. 온 나라가 영어 때문에 난리랍니다.

문제의 발단은 초등 영어교육의 시작입니다. 초등학교에서 4년 동안 영어교육을 받은 첫 세대들이 지금 중학교 2학년입니다. 일찍 시작해야 효과가 있다는 조기 영어 교육 시작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습니까?

일찍 영어를 포기하는 학생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를 두 배 이상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영어공부에 대한 흥미를 상실한 풀죽은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수업시간에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시려옵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조기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외쳤던 사람들은 지금 중학교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책임지지 않습니다. 국가 정책이란 이름으로 강요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굴절된 삶에 대해 가슴아파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지난 2월14일 교육인적자원부의 ‘자립형 사립고 확대방안’과 3월6일 ‘농어촌 소재 고교 등 자율학교 확대 방안’ 발표는 평준화 해체를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30여년 동안 왜곡된 학벌중심 사회문제를 그나마 완화시키고 전인교육이라는 공교육의 목표 설정을 가능하게 했던 평준화 정책은 한 줌 기득권 세력들의 공세에 그 생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준화 이전, 우리 교육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초등학교부터 입시가 시작되어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과외는 기본이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중·고등학교부터 학맥, 인맥이 형성되고 이는 대학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사회는 골품제도를 연상케하는 철저한 계층을 형성하였습니다.

한번 낙오자는 영원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정 학교 출신인 소수의 승리자를 위해 대다수는 패배자의 위치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은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비평준화 지역에서 확인하면서도, 비평준화 지역 학부모들이 평준화 실시를 요구하는 교육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도, 다시 비평준화 시절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학생들의 삶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아름답고 풋풋해야 할 젊은 시절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입시교육에 의해 멍들어 가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행복을 현실로 만드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맹목적으로 살아가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족하다고 국가는 수준별 교육과정을 통해 초등학교부터 학생들을 경쟁의 장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자립형 사립고 입시로 인해 중학교 시절 역시 처절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학 서열화의 철옹성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답니다. 소수의 재능있는 인재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한 것인가요? 한 인간의 삶의 무게가 학습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요?

모든 사람들의 삶의 무게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사들은 이러한 가치를 지켜주는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은가요? 봄꽃처럼 활짝 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찾아 주어야 하지 않은가요? 찢겨진 아이들의 삶을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