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있어서 학교 상담실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학생들의 엉덩이를 두들겼을 반들반들한 몽둥이와 낡은 철제 의자,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는 그 누군가가 항상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소란스레 장난을 치다가도 상담실 앞에만 가면 발뒤꿈치를 들곤 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오른다.

신평중학교 상담실을 찾아갈 때도 왠지 조심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슴이 오므려지던 그 죄책감이라니...

그러나 신평중학교 상담실엔 학생들이 쉴새 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마치 상담실이 아닌 학생전용 휴게실 같은 느낌이었다. 소파에 편히 앉아 잡담을 하는 학생,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컵라면을 거리낌없이 끓여먹는 학생 등 그곳은 학생들의 쉼터임이 분명했다.

7년째 상담실을 단독으로 운영하고 있는 고형식 교사는 무서운 호랑이 선생으로 소문났지만 상담실에서는 학생들의 친구이며 형이 된다. 손금, 관상, 토정비결, 이름풀이 등으로 학생들의 호기심을 상담실로 유인하기도 한다. 상담실을 학생들의 휴게실과 놀이마당으로 꾸민 것도 상담실 그 특유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서다.

“상담실은 저의 공간이 아닌 학생들의 공간입니다. 학생들 스스로가 마음을 열어야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죠. 보시다시피 참 많은 녀석들이 찾아옵니다. 그만큼 녀석들의 많은 사연을 듣곤 하죠.” 여기엔 또 하나의 비밀스런 공간이 있다. 차마 찾아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사이버 상담실(JEJOOKO@hitel.net, kohyeong@hanmail.net, kohyeong@edunet4u.net)을 운영하고 있는 것.

이 비밀의 공간엔 성문제를 비롯해 친구에게도 말못할 수많은 사연들이 올라온다. 일례로 남자친구와 몇번 잠자리를 같이 했다던가, 더 심하게는 아이를 가진 학생이 사이버 상담실을 통해 면담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절친한 친구는 커녕 부모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그 학생들은 마지막 출구로 고형식 교사를 찾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누가 물어도, 심지어 같은 학교에서 부부교사로 있는 그의 아내가 물어도 철저하게 보장되는 비밀이 그 비결이다.

그는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 학생들을 찾아 나선다. 상담실의 작은 책장에 꽂혀있는 전교생의 이메일 주소. 그는 주기적으로 전교생들의 이메일에 상담실 안내와 더불어 친근한 인사말을 띄운다. 갑갑할 수밖에 없는 학교에서 상담실이 학생들의 쉼터가 된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저의 관심은 모범학생이 아닙니다. 모범학생은 이미 다른 교사들로부터 충분한 관심을 받고 있을 테니 저만이라도 소외된 학생들의 곁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행학생들이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는 결손가정이나 상담을 요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1회씩 3박4일간의 전국 역사 유적지답사를 실시한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의 문제를 듣고 함께 고민한다. 또한 명절에 떡국 함께 먹기, 교복구입 및 학용품 마련, 그의 이름이 적힌 모범학생 표창장 시상 등 끊임없이 그늘진 학생들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준다. 학생들에게 즐거운 학창시절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제자들이 30세가 되는 날 함께 파보기로 약속하고 ‘추억의 항아리’를 묻기도 한다.

그의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위한 뜨거운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는 의외로 “아직도 허물을 벗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1998년에 출판한 에세이집 「아직도 허물을 벗지 못한 선생님」, 그 표제처럼 그에겐 아직도 진정한 교사가 되기 위해 벗어버려야 할 허물이 많은 까닭이다. 제자들을 위해 허물을 벗는 교사, 그는 오늘도 순수한 맨 몸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