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이전의 작품보다 매우 잘 짜여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상을 받을만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독자들이 느끼는 환상적인 분위기와 흥미있는 줄거리, 그리고 만화 작가들이 주로 보는 세밀하고 다양한 구도와 시점, 장면 설정, 미장센, 플롯 면에서 매우 탁월하다. 이러한 점들을 보더라도 다시 한번 보아야 할 것은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일본인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치히로(荻野千尋)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이사한 집에 가던 도중에 길을 잃게 된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는 성문에 도착하게 되고 터널을 통과하기로 한다. 치히로는 전혀 가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가 이끌어 가게 된다. 치히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치히로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공포에 떨면서 앞장선 아버지를 따라서 굴을 통과하게 된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진입이다. 굴을 통과해서 뒤돌아보고서야 그것이 일본전통의 낡은 성문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단지 낡은 테마파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재현된 전통의 상징임을 말해 준다. 치히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음식냄새 이끌려 깊숙하게 들어간다. 먹음직스런 음식이 잔뜩 쌓여 있는 그곳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적막하다.
치히로는 그러한 분위기에 공포감을 떨치지 못하고 돌아가고자 졸라댄다. 그럼에도 부모는 주인이 없는 음식을 우선 먹고 본다. 여기에서 푸짐한 음식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자극하고 부모는 여기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결국 돼지가 된다. 돼지는 가장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상징성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한 여건을 제공하는 이들의 포로가 되고 결국 그러한 여건의 제공자의 식탁에 오르게 된다. 치히로의 부모는 언제 도살될 지 모르는 마녀의 돼지가 되는 것이다.
치히로는 그러한 욕구에 빠져들게 하는 기제, 즉,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 자율성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하쿠(ハク)는 이를 맨 처음 알게 해주는 존재이며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를 찾아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현재 일본자본주의 사회가 자신들의 정체성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서구에서 건너온 마녀 같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맨 처음 치히로가 맡은 일은 썩음의 신이라고 불린 모든 이들이 피한 강의 신을 씻기는 일이었다. 치히로는 그 썩음이 진동하는 강의 신을 씻긴다.
강의 신은 그러한 치히로의 행동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신비한 물질을 치히로에게 남긴다.
치히로가 강의 신으로부터 받은 신비한 물질는 하쿠에게 먹인다. 그리고 목욕여관 주변은 어느새 바다가 된다. 자본주의의 철옹성인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단절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아니 일본의 현실은 누구일까, 치히로는 공포스런 공간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하쿠는 마녀에게서 언젠가 벗어나겠다고 말한다. 항상 언젠가는 이라는 가능성은 희망이기도 하지만 한없는 현재의 연장일 수도 있다. 하쿠는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우리는 마법에 빠져 끊임없이 무엇인가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빠져들어 인간본성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하야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게 아닐까. 이를 통해 정체성을 회복하고 마녀 지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을 반영한 것일까. 꿈보다 해몽이다.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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