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집자주 ■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주관하고 노동부가 주최한 제19회 전국장애인 기능경기대회가 지난 9월10일부터 2박3일간 일산직업전문학교에서 열렸다.
전국의 장애인들이 참여해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펼친 이번 대회에서 이용호(신평면 금천리, 정우인쇄소 대표)씨가 전기기기 부문 금상을, 김낙찬(당진읍 채운리, 대우광고사 대표)·서영동(합덕읍 운산리)씨가 각각 광고미술 부문과 귀금속공예 부문 장려상을 수상했다. 더욱이 이용호씨는 19년만에 충남도에서 첫번째로 금메달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번 전국장애인 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한 수상자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IMF 딛고 인쇄소 경영으로 새로운 사업모색
“장애인들, 좌절에서 벗어나 도전으로 나아가길”
그의 장애는 생동감 있는 삶의 길잡이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이용호씨는 왼쪽다리가 불편한 3급 장애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그의 불편한 왼쪽다리는 그의 삶에 있어서 걸림돌이 아니다. 그 왜소하고 마른 다리는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세상의 굴레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그곳으로 나아가는 또 다른 특별한 다리다. 수해를 당한 주민들이 수마가 끊어놓은 다리를 잇듯이, 오래된 고목이 까마득한 협곡과 협곡을 연결하는 다리로 쓰이는 것처럼 그의 결함은 신이 그에게만 내려준 힘으로 생동감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길잡이다.
이번 제19회 전국장애인 기능경기대회 전기기기 부문 금상을 수상한 것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는 지난해와 올해 충남도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며 더 나아가 전국대회에 출전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전기기기에 대해 별다른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그였지만 그의 도전정신이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도전해서 안 된다는 생각은 한번도 가져보질 않았습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뭔가에 도전할 때 내가 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들죠.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실의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아야죠. 일이 뜻대로 안 되면 잠을 안 자는 그런 성격입니다, 저는.”
성공과 실패, 그리고 다시 도전
신평면 금천리에서 정우인쇄소를 경영하고 있는 그는 전국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10일 동안 천안공고에서 야간수업을 받았다. 밤길을 달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였지만 그의 도전과 노력은 당당한 금메달로 돌아왔다. 금메달 수상소식이 알려지자 칠순을 앞두고 있는 그의 노부모들은 “전국에서 1등이란 게 얼마나 하기 힘든 일이냐. 그렇게 힘든 걸 해냈구나, 해냈어”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그의 도전정신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평고를 졸업한 그는 3돈 짜리 반지를 팔아 어머니가 쥐어주는 돈을 들고 전기 관련 일을 배우기 위해 혈혈단신 부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4개월 후 고향에 돌아와 3평 짜리 금성모타펌프대리점을 개점하고 사업을 시작했으며 1983년도엔 부인 전명자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사업은 점점 커져서 가게의 평수를 넓혀갔고 LG가전제품 대리점을 개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합덕에도 분점을 내 사업영역을 점점 확대해나가던 그에게 IMF라는 난관이 찾아왔다.
“전쟁보다도 더한 시기였습니다. 근 1년을 방황하며 보내야했죠. 더군다나 빚보증을 잘못 서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한참 어려웠을 때, 뭔가를 한번 이뤄보자,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사업전망이 밝은 인쇄소를 개점했습니다. 전과는 전혀 다른 업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1년 내내 컴퓨터와 씨름하며 인쇄업에 관련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익혔죠.”
하나됨을 위한 그의 조용한 목소리
그는 IMF가 덮쳤던 5년 전부터 신평면 망객정에 나가 궁도로 심신을 다스리고 있다. 그간 도·전국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2단으로 사범을 맡고 있다. 이것 역시 그의 도전정신이 쏘아 올린 하나의 성과인 것이다.
그는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 대칭적인 구분은 육체가 온전한 사람들이 그어놓은 선일지도 모른다. 겉모습만 보고 지레 판단하는 일은 이제 그만 지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충남지체장애인협회당진지회 총무를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조용히 말한다. 장애인의 한계를 미리 긋지 말라고, 장애인도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본다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장애인 편익시설도 한층 확충될 것이라고, 장애인 스스로가 좌절의 늪에서 벗어나 도전을 향해 나아가라고.
광고미술부문 장려상 수상자 김 낙 찬 씨
“장애인들이 바로 아름다운 천사입니다”
10m이상 못 걷는 2급 장애 딛고 도전
대우광고사(당진읍 채운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낙찬씨는 후천적인 2급 장애인이다. 5년전 갑자기 찾아든 ‘퇴행성 무혈 괴사’라는 생소한 질병에 걸린 후 김씨는 10m이상 걷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다리 관절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고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그에게 10m의 벗어날 수 없는 한계는 치명적인 결함일 수밖에 없었다.
장애를 입은 그는 자신과의 도전이라 생각하고 지난 6월 공주에서 열렸던 충남장애인기능경기대회 광고미술 부문에 처음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수상했다. 자연히 제19회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도 출전했으며 장려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아쉬운 성적이었다고 회상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그만한 성적을 거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값진 상이다.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라는 그의 병. 장애인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그는 한동안 장애인들과 접하지 않았다. 우선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으며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보이지 않는 벽으로 그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장애인들과 접하면서부터 그들이 바로 지상에 있는 천사들임을 알았습니다. 장애인들의 마음과 생각은 비장애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넓었습니다. 저에겐 10m의 한계가 주어졌지만 그보다 값진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됐습니다.”
당진상고에서 상업미술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바로 광고업계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20여년간 줄곧 광고인으로 살아왔다. 1996년과 2000년에는 당진광고협회 지회장을 역임해 당진광고업계의 발전에 힘을 쏟기도 했다.
귀금속공예부문 장려상 수상자 서 영 동 씨
“장애인 대 비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로도 활약
23살의 건장한 청년, 서영동(합덕읍 운산리)씨는 목발로 걸어야만 하는 2급 지체장애인이다. 그에게 뒤틀리지 않은 튼튼하고 아름다운 두 다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7살 때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기 전만 해도 그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은 꿈에 부푼 청소년이었다.
치료비가 없어 아물지 않은 상처 그대로 퇴원한 서씨는 몇 개월간 집안에서 혼자 지냈다. 그에게 밝고 아름다웠던 세상은 장애물과 불가능, 소외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시금 세상을 열어준 건 그의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이었다. 친구들은 나가기 싫다는 그를 억지로 데리고 나가 자신감과 의지력을 키워주었다.
그는 홀로서기 위해 대전직업전문학교 귀금속공예과에 입학했고 지난해에는 충남장애인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또한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휠체어 농구를 시작했고 그의 건장한 체격과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이 용인대 특수체육학과 교수의 눈에 띄어 지난해부터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로도 활약중이다. 일본에서 열렸던 세계 휠체어농구 대회인 골드컵 대회에 참가하느라 제19회 전국장애인 기능경기대회에 대한 준비기간은 이틀이 전부였으나 몇 달 동안을 준비한 참가자들을 제치고 귀금속공예 부문 장려상을 수상했다.
장애를 뛰어넘어 더 큰 세상을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을 더 이상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며 “장애인 대 비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장애인도 이 사회의 한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희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