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는 자신을 “놀지 않는 주부”라고 표현했다.
노는 주부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녀가 말하는 ‘놀지 않음’은
단조롭고 그래서 익숙해진 일상으로의
안주가 아닌, 좀더 질 높은 삶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다
그녀를 특별하게 만드는 무기
최영자(41)씨는 평범한 주부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두 명의 10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십대 초반의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업주부를 ‘큰’ 타이틀로 갖고 있는, 여느 주부들과 마찬가지로 몸은 자꾸 불어가지만 악다구니로 다이어트에는 성공한 적이 없는 보통의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의 평범함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특별함이 숨어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평범하다든지, 아니면 특별해야지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라니? 짐짓 고개를 흔드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다. 평범하지만 특별함을 지닌 주부다.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려고 한다”는 그녀의 말에서 특별함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주부들은 열심히 살려고 하지 않는단 말인가. 물론 다른 주부들도 열심히 살아간다. 그녀의 ‘열심히 삶’이 보통의 여성들의 ‘열심히 삶’과 다른 점은 추구와 지향에 있다. 그 추구와 지향,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더 질 높은 삶을 ‘좇아서 구함’이 그녀를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아침마다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아줌마
“자기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그녀. 부족하다는 것은 채우고자 하는 욕구의 다른 말이다. 부족함에 대한 자각은 발전과 진보와 향상을 낳는 원동력이다. 부족함,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약점인 동시에 가장 큰 장점이다. 지난 1994년 당진화력에 근무하는 남편 유호준씨를 따라 당진에 터를 잡은 그녀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내디딘 첫발걸음은 배움이었다.
올해 그녀는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늦깎이 대학생이며 내년 3월의 졸업을 앞두고 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서 법학과를 지망했어요.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아침연속극 보면서 청소하고 책을 챙겨서 도서관으로 향하면 보통 아침 아홉 시가 되곤 했어요. 거의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했죠.”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녀는 내년에 단국대 대학원 사회복지전공에 입학해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 법학과에서 사회복지로 전공을 바꾼 이유는 종교와 사회활동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실생활에 가장 필요한 분야가 사회복지란 걸 느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 똑바로 하겠다”는 그녀는 2년 반 동안의 대학원 과정을 마치면 박사과정을 밟을 계획이다.
그녀는 자녀에 대한 교육에 있어서도 점수 1~2점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으면 학원에도 보내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많은 독서다. ‘점수를 위한 공부가 아닌, 하고자하는 일에 다가가기 위한 공부’, 이것이 그녀가 자녀들에게 이해시키고 가르치는 교육관이다.
부녀상담소 상담원으로
그녀의 이름 뒤에는 ‘상담원’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직함이 따라붙는다. 부녀상담소의 상담원 모집광고에 응해 교육을 받고 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
“상담을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걸 느껴요. 한동안은 상담을 요청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나 자신의 문제로 동일시해서 고민이 많았죠. 해결책과 비전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러나 ‘이것이 정답이다’라는 예단은 올바른 상담의 자세가 아니라는 걸 배웠어요. 출구를 찾는 여성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문제를 구조화하는 단계가 상담원의 역할이죠. 부녀상담소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세상일을 많이 알게 됐어요.”
그녀가 상담원으로 일하게 된 이유는 다른 여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를테면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동료의식이 그녀 자신에게로만 쏠렸던 힘을 다른 여성들에게로 선회하게 만들었을 터였다. 그녀가 법학과에서 사회복지학과로 전공을 바꾼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를 뽑는 일, 그건 남의 일이 아니예요”
그녀는 올바르고 깨끗한 지도자를 뽑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기실,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 ‘괜찮은 아줌마’라는 추천을 받고 전화를 넣어 지난 11월26일 그녀를 만난 곳도 급물살을 타고 있는 대선의 영향으로 한참 바빠지기 시작하고 있는 당진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이었다. ‘공명선거’ 포스터와 불법선거의 사진자료들이 진열된 사무실에서 만난 그녀는 수수한 옷차림 탓인지 흔히 눈에 띄는 ‘아줌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무언가 달랐다면 말끔한 인상이 좀 인상적이었을 뿐.
“법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선관위사무실에서 일하게 됐어요. 사회정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법을 깨끗한 지도자를 뽑는 데에 적용하고 싶었죠. 소위 주고받는 선거풍토는 이제 떠난 것 같아요.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이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주권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에 있는 분들, 예를 들면 이장이나 작은 모임의 회장 등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주권을 행사하고 올바른 선거를 위해 노력해야 해요. 지도자를 뽑는 일, 그건 남의 일이 아니니까요.”
2년 전부터 공명선거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는 요즘 선관위에 출근해서 올바른 대선이 치러지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놀지 않는 주부’
그녀의 사회참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지난 10월18일 맑고 쾌적한 지역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창립한 ‘맑고푸른당진21’ 61명의 위원 중 사회복지·여성·문화분과위원회의 총무를 맡고 있으며, 15명으로 구성된 ‘맑고푸른당진21’ 운영위원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또한 지난 10월 초에는 여성단체협의회 추천으로 당진군범죄예방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이렇듯 다양하고 폭넓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녀의 남편 유호준씨로부터 “군의원 나와도 되겠다”는 농을 들을 정도다.
지난 몇 년 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는 그녀는 자신을 “놀지 않는 주부”라고 표현했다. 노는 주부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녀가 말하는 ‘놀지 않음’은 단조롭고 그래서 익숙해진 일상으로의 안주가 아닌, 좀더 질 높은 삶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다. 항상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녀.
잘 벼린 부엌칼처럼 첨예하고 날카로운 ‘최선’에 자신의 삶을 위치시키는 그녀는 평범하지만 그 속에 특별함을 지닌 삶을 이뤄가고 있다.
이희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