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된 평화를 위한 작은 발걸음, 노래하는 윤광호 목사
또하나의 사랑의 본능
눈이 내리는 날을 유독 슬퍼하는 아이가 있었다. 눈이 크던 그 아이, 손바닥 위에 떨어져 스르르 녹는 눈을 그 큰 눈에 눈물을 달고 바라보곤 했다. “왜 그러니?” 그 아이는 눈이 녹아서 눈물이 돼 버려요, 그랬다. 그 아이는 눈에서 생명의 기류를 읽었던 것이다. 또 나무를 사랑하는 친구가 있었다. 추운 날, 목도리를 칭칭 둘러메고 어느 명소엔가를 함께 갔는데 산 속을 거닐던 그 친구, 붉게 죽어 가는 소나무에 손을 대고 한참을 서 있었다. “내 온기를 나눠주면 다시 살아날까 싶어서...” 멋쩍었는지 어깨를 쭈뼛대며 돌아선 그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한 말이었다. 그리고 다운증후군에 걸린 서른 즈음의 여자를 알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사람만 보면 못생긴 이를 있는 대로 드러내며 활짝 웃곤 했다. 아니 그 모습은 ‘활짝’이라기 보다 ‘벌렁’이라고 해야 맞겠다. 벌렁 웃는 그 모습은 아름답다기보다 밉살스러웠기에 그녀의 웃음을 받는 사람들은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는데도 그녀는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웃음을 던졌다. 그만 좀 웃으라는 핀잔에 그녀가 하는 말이 “웃지 않을 수가 없잖아”였다. 그 벌렁거리는 웃음 속엔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순수함이 넘실거렸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아, 슬퍼마오. 하늘이 그대 것이니. 그대 지금 흘리는 그 눈물이 맑은 웃음 피울 것이요. 추운 겨울 지나가고 따사한 봄 햇살에 지친 영혼 들꽃처럼 피어나듯. 의에 주린 사람아 슬퍼마오. 하늘이 그대 것이니. 그대 겪는 고통과 그 아픔도 위로를 받을 것이요.」
윤광호 목사와 헤어진 후 그가 건네준 그의 음반을 차 안에서 들었다. 위의 노랫말은 신약성서를 개사해 만든 ‘그날에’라는 그의 곡이다. 그는 “지루해도 들어봐요”했지만 요즘 FM은 그의 노래에 밀려 통 켜지질 않는다. 그의 얼굴에서, 그의 말에서, 그의 노래에서 눈이 큰 아이와 나무를 사랑했던 친구와 웃음을 던지던 서른 즈음의 여자에게서 느껴졌던 사랑의 본능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교회를 위한 아름다운 시작
신을 섬기고 사는 노래하는 윤광호 목사의 얘기는 이렇게 풀어야겠다. 그의 나이는 마흔하고도 일곱이다. 흰머리가 비죽이 솟아나는 부담스러운 나이가 아닐 수 없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두려움이 먼저 앞서는 나이이고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누구나 갖고 있는 비겁함이 점점 굳어질 때다. 그러나 그는 올 봄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당진에 내려와 ‘당나루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있다. 당나루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로 서울 강남교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충남노회 개척선교위원회의 지원으로 당진읍에 개척된 지역교회다. 당나루 교회는 당진읍 읍내리 당진시네마 뒤 청수장 맞은 편 건물 3층에 자리잡고 있다. 마흔 일곱이라는 나이에 그렇게 거침없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가장 궁금했다.
“정말 제대로 된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고 싶었죠. 그것이 바로 아예 새롭게 시작한 이유입니다. 어차피 목사의 마지막 보루는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도 공동체를 바탕으로 발전해야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함께 모여서 조화를 이루는 삶, 그래서 서로에 대한 생각과 배려가 자연히 생성되는 더불어 사는 삶이 바로 평화의 수단 아니겠습니까. 지역에 평화의 씨앗을 심기 위해 지역사회와 함께 숨쉬는 열린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회복되어야 할 가치를 향해
무엇이든 하나라도 내줄 것 같은 인상에 걸맞지 않게 그의 삶은 억세고 험난했다. 청년시절 한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그는 사회운동에 참여해 ‘그래선 안 된다’, ‘그럴 순 없다’는 신앙양심을 부르짖었다. 사회의 부정부패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폭거, 그리고 서민들의 설움을 흘려보내기엔 그의 신앙과 믿음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신앙은 그에게 옳은 것과 선한 것, 나쁜 것과 그른 것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주었고 그는 ‘신앙양심’에 입각해 부끄럼 없는 곳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졸업 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신학대에서 신학을 전공하며 오르간에 대해 공부했다. 경비와 철근공장에서 잡부로 일하면서 학비를 충당했던 힘든 시기였다. 그렇게 4년을 보내고 그는 신학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으나 입학하는 과정에서 장학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올해 봄 당진에서 ‘당나루 교회’를 연 것이다. 얼핏 그의 지난 삶을 떠돈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떠돎’이 아니라 ‘지향’이었다.
일본과 독일과 당진. 세 꼭지점을 이으면 참으로 넓은 삼각형이다. 그 삼각형 안에서 지나온 그의 삶의 성패여부를 알 수는 없으나 다만 이것만은 넘겨짚을 수 있을 듯하다. 더 나은 삶, 회복되어야 할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음을.
‘문화를 꽃피우는 작은 씨앗이 되길
당나루 교회를 열림과 참여와 즐김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교회로 만드는 것이 윤광호 목사의 바람이다. 그는 당나루교회가 주민들이 거리낌없이 찾아 문화와 지역의 미래와 주민의 삶을 이야기하는 여느 카페 같은 편안한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예전에는 ‘구호’가 삶을 개선시키고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하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그 힘을 문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문화가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지역사람들이 사는 모습들의 응집과 표출이 바로 문화죠.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쇼나 이벤트가 문화는 아닙니다. 그런 것은 상업주의와 자본주의에 물들어있는 허상일 뿐이죠. 상품과 문화는 엄연히 다른 것 아닙니까. 삶의 터전 위에서 그 지역사람들이 꽃피우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문화죠. 당나루교회가 당진의 올바른 문화를 꽃피우는 데에 작은 씨앗이 됐으면 하네요.”
그가 공동체를 평화의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공동체를 통해 일구는 문화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로 퍼져 궁극적으로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나루교회의 홈페이지(http://dangnaru.org)엔 신앙공동체, 지역공동체, 문화공동체, 나눔공동체 등의 큰 테두리가 있는데 그 공동체들은 다시 학생모임, 차 함께 타기, 일본어 강좌, 노래모임, 나눔장터, 세미 클래식 키타 모임 등 작은 모임들로 이뤄져 있다. 비록 아직 활성화되진 않았으나 그는 ‘처음’의 중요함을 말한다. 그에겐 지금 하나하나 놓치지 말고 끈기 있게 해나가면 3년 후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이 꽃이 되고 들판이 되고 숲이 되어 지역을 살찌우리라는 믿음이 있다.
참된 평화를 위해
그는 ‘노래하는 목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미 1집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는 한누리’에 이어 지난 1998년엔 2집 ‘윤광호노래모음’을 냈고 올 봄엔 ‘참된 평화’란 이름으로 3집을 발표했다. 세인들에게 알려지거나 그의 음반이 저잣거리에 진열되진 않았지만 그에겐 그리고 그를 아는 지인들에겐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음반이다. 음반 판매금의 거의 대부분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돌아간 점을 감안하면 조촐하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청년시절엔 제2회 MBC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즐거운 추억거리도 갖고 있으며 ‘샘이 기픈 물’이란 프로그램의 무대에서 일반 대중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노래로 일구는 공동체문화(http://yuny1.org)'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 가면 그의 노래에 대한 열정과 소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그의 노래들이 참된 평화를 일구어내는 파문이 되길 소망한다. 그가 마흔 일곱의 나이에 당진에 내려와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까닭도 궁극적으로는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순탄하지만은 않을 그의 행로가, 그 시작이 넓고 넓어져 꽃을 피울지 기대된다. 아니, 아름다운 교회를 위한 그의 작은 발걸음은 이미 아름답다. 선한 시작은 언제나 꽃의 숨결처럼 그 자체로 충분히 고우니까.
이희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