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와 학생 위해
황혼의 성숙한 열정 태우는 노교사
“학생들은 교사들에게로,
교사들은 학생들에게로”
학생들 미래 살찌우는
옥토 되길 바라며 다시 분필 잡아
거센 비바람이 아니어도, 꽃대를 꺾는 얄궂은 손이 아니어도, 기어코 꽃잎은 진다. 한때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허공의 한 자리를 기꺼이 저버린다. 그 한때의 화려함에 취한 세인들은 꽃잎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슬퍼하지만, 그 진 자리에 다시 꽃잎이 나고 열매가 맺힌다. 낙화, 그것은 추락이 아니라 아름다운 시작의 다른 이름이다.
지난해 3월1일부로 낙화처럼 교장직을 저버리고 평교사로 내려와 다시금 학생들 앞에서 수학을 가르친 지 1년, 교단에서 정년의 말미를 꽃피우고 있는 호서고등학교 홍선기 교사를 만났다.
한 줌의 재로 전소하기 위해
1970년 2월부터 줄곧 교단에 선 그의 나이는 올해로 쉰 여덟이다. 이제는 교단에서 한발 물러서 삶을 관조할 때도 되었건만 그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뜨겁다. 그 열정이 그를 교장직에서 물러나 다시 학생들 앞에 서게 했다. 교감 6년, 교장 4년 동안 학교에서 가장 윗자리를 지켜온 그. 10년이란 세월을 단칼로 자르듯 뒤로하고 교단으로 회귀하게끔 했던 용기는 무엇이었을까?
“욕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호서고의 초창기부터 줄곧 함께하신 선생님이 두분 계신데, 나보다 연배가 높을 뿐만 아니라 경륜과 덕망도 겸비하신 분들이죠. 우리 학교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내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순 없었어요. 그리고 다시 학생들 앞에 섰죠. 평교사로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제자를 길러내는 기쁨과 보람, 요즘은 그게 저의 낙입니다.”
호서고등학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첫수업에 들어갔을 때부터 정말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했다는 그. 그런 까닭에 그의 제자가 부모가 되고 그 부모의 자식이 또 그의 제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에게 “니 어미도 가르치고 아비도 가르치고 너도 가르친다”며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그 세월 동안 그는 젊음을 다 바쳤고 그가 품고 있는 열정을 있는 대로 쏟아 부었다.
그런 연유로 그는 교장을 끝으로 학교와 학생들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교육이라는 아궁이 속에서 비록 한줌의 재가 된다 해도 하나의 장작으로 전소해버리는 것이 그가 품은 황혼의 아름다운 꿈일 터였다.
‘수업이 생명이다’라는 말의 본 뜻은?
“교사는 뭐니뭐니 해도 수업이 생명입니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에게는 학생들이 군소리를 못합니다. 수업을 잘하고 못하느냐에 따라 교사로서의 보람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고, 더 나아가 수업이 아닌 생활지도나 기타 방면의 지도에도 학생들이 잘 따라옵니다. 수업을 통해 사제간의 신뢰가 쌓이고 좀더 넓히면 학교와 학생과 학부모들간의 믿음이 생깁니다. 그 믿음이 학생들을 곧은 교육적 환경으로 인도해줍니다. ‘수업이 생명이다’라는 말의 본 뜻은 거기에 있는 것이죠.”
그에겐 아직까지 수업만큼은 다른 교사에게 안 진다는 자부심이 있다. 10년의 공백기간을 메우기 위해 부단히 교재를 연구하기도 했다. 지난해에 1학년 여학생들을 가르쳤고 2학년 학생들의 요청에 의해 1교시가 시작되기 전 1학년 과정의 수학을 정리해주기도 했다.
“교장까지 했으니 이제 더 이상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배우길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학생들에게 지면 당장 몸은 피곤해져도 그 속에 교사로서의 행복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다시 1학년 여학생들의 수학수업을 맡은 그는 학생들에게 자꾸 지기를 희망한다. 학생들의 미래를 살찌우는 진정한 옥토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생각의 키를 돌려주는 알맹이
“꿈과 낭만을 갖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며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커가는 것이 교사와 학생의 동일한 최고의 목표입니다.”
그는 교사와 학생의 최고의 목표는 똑같다고 말한다. 짜여진 정답 같지만 그의 말은 너무 당연하기에 우리가 소홀히 하고 잊어버렸던 어떤 알맹이를 떠오르게 한다. 그 알맹이가 교육과 교사에 대한 생각의 키를 빛으로 돌려준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의 근본엔 학생들에 대한 따뜻한 가슴과 사랑이 넘실거려야 한다는 그. 설령 학생들이 안 따라오더라도 교사의 사랑은 항상 한결같아야 한다는 그. 그의 방인 원로교사실을 청소하는 여학생의 타박에 못 이겨 요즘 몇 십 년 동안 피워온 담배를 끊은 그는 오늘도 천상 그의 자리일 수밖에 없는 교단에 오른다.
이희철 기자 hclee@dj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