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월드컵은 대한민국이라는 동양의 작은 나라를 지구촌 곳곳에 새롭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월드컵 취재를 위해 외국 기자들은 IMF 경제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발전한 IT산업과 휴대폰 기술 등을 소개하면서 그 배경으로 우리 국민의 근면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근면성은 60년대 이후 빈곤을 퇴치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보자는 국가 지도자와 국민들간의 컨센서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물질적 혜택은 굴뚝산업이 이룩한 고속성장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탄생한 것이지 황무지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정치권은 무슨 대선파일에 발목이 잡혀 이전투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민생은 안중에도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당이 국정을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신·구주류로 나뉘어서 서로 갈라서자고 난리를 치고 있다.
사회적 기본 질서 상실의 시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외국인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했던 근면성은 선배들의 퇴장과 함께 고루한 말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기대하지 않아도 지도자의 잦은 말 바꾸기와 사회적 질서 보다 집단의 힘에 의존하는 것도 큰 문제다. 최근의 화물연대 파업이 그렇고,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가 그렇다. 일부에서는 여름 노사분규를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리 합의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 다툼도 궁극에는 사회적 질서의 바탕위에서 公利라는 자연법적인 해답이 있음에도 극을 향해 가고 있다.
결국 사회를 유지하는 이러한 원리들이 거부되고 있는 것은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다. 미끄럼틀은 올라간 순서대로 내려온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높은 곳에서도 사고 없이 놀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관계는 협력과 협동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긴장과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다만, 긴장과 경쟁이 상생의 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을 감싸는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양보와 겸손이 전제되어야 한다.
칭찬과 격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신뢰는 유리구슬과 같아서 모으기는 어려워도 작은 충격에도 흩어지기 쉽다고 한다. 신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칭찬과 격려만큼 좋은 약이 없다고 한다. 잘한 것은 칭찬해주고 설령 잘못이 있어도 격려를 해주자. 儒敎에서는 三多라 하여 칭찬, 격려, 대화를 많이 하되 언행을 항상 조심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아량과 포용을 베푸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 뒤서는 듯, 늦은 듯, 분수에 맞게 살자. 공자께서는 正名이라고 하여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고 강조하셨다. 그만큼 자기 본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분수를 잘 아는 사람은 무리한 일을 하지 않아서 항상 떳떳하고 단아한 기품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시끄러운 반면 분수를 아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질서가 있고 평화로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의 분수를 깨우치길 기대해 본다. 오늘의 이익을 위해 갈팡질팡하기 보다 자신의 설자리와 할 일의 몫을 가리면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