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새만금방조제 공사의 계속 여부를 놓고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새만금 사업은 1987년 12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놓은 후 1991년 11월 착공해 현재까지 약 1조 4천여 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어 총 길이 33㎞ 중 지난 달 4공구의 물막이 공사가 끝난 현재 2.7㎞ 구간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 공사와 관련하여 환경단체 등에서 환경파괴 등의 이유를 들어 공사의 부당성을 제기해 왔고 종교인 등이 삼보일배를 통한 공사 중단 요구로 전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영국의 BBC방송은 새만금 문제를 특집방영까지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4년 시화호 방조제 완공 이후 1996년 7월의 시화호 오염사건을 계기로 새만금호 수질오염 논쟁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방조제가 완공되면 수질오염으로 농업용수로의 사용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환경부가 조사한 새만금사업 수질 모니터링에 의하면 동진강 유역의 총인농도는 1999년 0.193ppm에서 작년 0.217ppm으로 농업용수 기준치인 0.103ppm보다 두 배 이상 높았고 만경강 유역은 작년에 0.484ppm으로 기준치의 다섯 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상류에 최상의 정화기초시설을 갖춘다 해도 적정 농업용수의 총인농도 이하로 떨어뜨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한겨레 7·19·3면) 시화호 공사가 끝난 지 햇수로 10년째인 지금 현지 주민들은 생계터전을 잃고 빚과 신용불량의 늪에서 탄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갯벌은 우리 인체의 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내륙에서 방류되고 있는 오염원들을 분해하고 정화시키는가 하면 간척지보다 그 가치가 250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1997년 과학잡지 〈네이쳐〉에 실린 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여 1970년대 후반 이후 갯벌보호정책으로 돌아서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는 유럽 최대 갯벌인 ‘와덴해 갯벌’ 보호협정을 1978년에 맺고 간척사업을 중단했다고 독일 환경연방청의 ‘켈러만’ 생태계 연구팀장은 전하고 있다. 현재 와덴해 주변에서 어업으로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즘 석문 도비도 지역 갯벌에 바지락을 잡기 위해 평일 수백명, 휴일엔 1~2천명의 외지인들이 관광을 겸해 찾고 있다 한다. 매일같이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잡아내고 있는 바지락인데도 씨가 말랐다는 얘기는 들을 수 없으니 갯벌이야말로 화수분이 아닌가?
대호방조제와 석문방조제 축조 이후 석문은 1980년대 이전 부자면으로서의 면모는 간 곳없고 석문국가공단 예정지는 10여년째 황량하게 방치되어 있으며 석문면소재지는 이제 당진 12개 읍·면에서 가장 낙후된 폐가만이 즐비해 주민들의 말처럼 50~60년대의 피난민촌 같다는 자조섞인 한탄이 나오고 있다. 면소재지의 5반은 전성기의 약 90호에서 현재 50호로 가구수가 줄었다한다.
대호만과 석문방조제 축조 이전의 이곳은 어패류들의 산란장으로 꽃게, 숭어, 바지락, 낙지, 굴 등 갖가지 어패류등이 지천으로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었다는 것이 많은 면민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그 당시는 남한테 돈 꾸느니 갯벌에서 두서너 시간 어패류나 갯지렁이를 잡으면 됐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제방축조 반대를 못한 것이 너무나 어리석었다는 자각들을 하고 있다. 쌀경작지를 준다는 말에 당시는 별 반대를 안했지만 지금은 풍성했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많은 면민들은 공단 조성도 안된다면 차라리 석문방조제의 둑을 허물어 갯벌로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갯벌체험 등 관광객들이 밀려들어 석문의 경제활성화가 되리란 점에서 이겠지만 이것 또한 쉬운 일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정부 정책결정자들과 농업기반공사가 갯벌을 중요시하는 유럽과 일본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작은 것을 탐내다 큰 것을 잃는 우를 두 번 다시 범하지 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