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당진군지부 박 명 숙 과장

“아는 사람도 한 명 없고, 와 본 적도 한번 없는 이 곳으로 발령이 났을 땐 눈물이 나더군요.”

박명숙 과장(39)은 올 2월 13일 농협중앙회 당진군지부에 최초의 여성과장으로 전근왔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 곳으로 발령을 받고 나서 박과장은 막막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농협에 입사한 박 과장은 첫 근무지를 제외하고는 계속 대전에서 근무했다. 96년도에 승진고시를 한번에 합격하고 나서, 발령이 나지 않아 무려 7년 동안을 과장대우로 근무하던 그녀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발령이 났지만 낯선 곳에서 근무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출근했을 때, 총무과장이 격려의 말 한마디를 건냈다.

“당진은 울면서 왔다가 울면서 가는 곳이지요. 좀 지나면 좋아질거예요.”

처음에 이 곳으로 발령을 온 사람들은 대부분 박과장처럼 속상해 하지만 근무하다보면 울면서 헤어질 만큼 떠나기 싫은 곳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당진에 온 지 6개월 쯤 된 지금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 모두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19년 동안 6군데의 농협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박과장은 농협에서 안해본 일이 없다. 어떤 일을 하든 박과장이 일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다. 재미있는 일, 재미 없는 일, 어려운 일, 쉬운 일 모두 즐긴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웬만한 일이 아니면 정말로 일이 즐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박 과장이 처음부터 농협 일을 즐겁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입사 1년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들어간 농협, 처음 접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농협 업무에 적응하기 힘들어 그만두려고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차차 일이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일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 낙천적인 성격의 박 과장은, 그 후로 어려운 일이 생겨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 이 일은 그녀에게 “하면 할수록 매력있는 직업”이 되었다.

박과장은 자주 객장에 나가서 고객들을 대한다. 그러다보니 고객들과 있었던 잊지못할 일들도 많이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유학 간 자식들에게 돈을 부치러 온 사람들, 특히 IMF가 터지고 난 뒤에는 자식의 신용카드 빚을 갚으려고 시골집을 팔아서 돈을 갚으러 온 부모도 있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남의 일같지 않고 가슴이 아팠다.

박 과장이 당진에 와서 만난 사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냉이를 캐서 식당에 팔아 생활하는 할머니였다. 통장을 잃어버리면 돈이 모두 없어지는 줄 알고 있던 할머니는 농협에 와서 하소연을 했다. 통장을 잃어버려 가진 돈이라고는 오늘 냉이를 판 돈 2천원 뿐이라는 것이다. 박 과장은 할머니에게 통장을 재발급해 주고 남아있던 사은품 비누세트를 드렸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돌아간 할머니, 얼마 전 할머니는 까만 비닐봉투에 콩을 싸 왔다. 박 과장은 시골 할머니의 따뜻한 인정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웬지 씁쓸했다. 할머니의 통장에는 전재산 몇 십만원이 들어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당진에 와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노인문제가 심각한 수준까지 와 있다는 것이었다. 장날이 되면 농협 안은 노인정이 되어버린다. 빈곤하게 살고 있는 고령인구가 너무 많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박명숙 과장은 말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병원을 개원하려는 고객이 상담을 요청해 온 적이 있었다. 성심껏 이야기를 해 준 박 과장에게 그 손님은 통장을 맡겨놓겠다고 할 정도로 고마워했다. 그리고 발령이 나서 다른 지점으로 갔을 때도 그 손님은 자신을 찾아와서 상담을 했다. 그 후로 몇번 지점을 옮겼는데 어느 날, 캐나다에서 전화가 왔다. 그 고객이 캐나다로 이민을 간 후에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수소문을 해 박 과장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안부도 묻고 혹시 캐나다에 오면 연락하라며 6~7년이 지났는데도 자신을 기억해 준다는 것이 한없이 고맙고 일에 대한 보람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녀의 똑부러지는 업무처리 능력처럼 꿈 또한 야무지다. 그녀의 꿈은 전 직원이 여성으로 구성된 농협의 레이디 지점장이 되는 것이다. 농협에는 아직 이런 곳이 없다고 한다.

가족들이 이해해주고 도와줘서 그동안 부담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그녀는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 주위에서 밝게 산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직원 스스로 만족해야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는 박명숙 과장의 표정은 오늘도 밝다.

이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