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일기 "
·지은이 : 최영미
·출판사 : 창작과비평사
·가 격 : 9,000원
홍 현 경
당산초등학교 교사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은 런던에서 시작하여 유럽 10여개 도시의 미술관을 여행하면서 여행기 형식으로 쓴 그림이야기들을 엮은 책이다. 평생동안 그 어느 화가보다도 가장 많은 자화상을 그렸다는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인 이 책은 거기에 곁들여진 중세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미술을 감상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되어주리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접하면서 내가 미술대학 졸업반 무렵에 미술관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 아르바이트는 대전 엑스포 안에 설치된 전위적인 현대미술작품들을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이었다.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작품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재료는 무엇인지 작가의 의도가 도대체 뭔지... 하면서 작품을 분석하듯 설명을 요구하곤 했다.
외국관람객들은 밝은 표정으로 관람하는 것 같은데, 도무지 한국사람들은 공부하는 분위기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머릿속에 미술은 트로트 노래가사처럼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려운 장르인 것만 같았다. 노래를 못하는 음치들도 음악은 즐길 수 있는 반면 미술은 모르면 아예 멀리하고, 접하려 들지도 않는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물론 “미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더욱 소개하고 싶다. 작가의 섬세한 감성과 냉철한 지성으로 소개한 작품들 하나 하나가, 다 읽고 난 후에 미술관을 직접 찾아가고 싶도록 만들테니까 말이다.
지은이 최영미는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은 미술사학과를 전공한 미술학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미술사를 공부한 최영미가 아닌 그림 앞에 서서 즐겁게 빠져들어 작품들을 즐기는 천진난만한 최영미다.
커다란 캔버스에 파란색 물감으로 채워넣은 이브 끌랭의 그림을 보면서 그저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을 원없이 보았다” 고 하면서 그 파아란색의 느낌에 대해 “오래 들여다보면 눈이 부셔서 아파오는, 그런 빛이다, 그래서 붉은색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자극한다”고 쓰고 있다.
끌랭의 파란색과 최영미가 느낀 파란색은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작가가 그림을 벽에 건 순간부터 그 그림은 관람자의 눈을 통해 무수한 이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찾아 떠나는 여정도 솔솔찮은 재미가 있고 작가만의 감성이 솔직담백하게 들어 있어서 많은 공감을 준다.
음악을 감상하고 또는 음식의 맛을 느끼는 것처럼 미술을 즐기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은 마음판을 부드럽게 다져줄 즐겁고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