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1월 30일 창간호를 발간한 이래 만 10년 동안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당진시대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온 역사의 생생한 흔적들을 선정해 10대 뉴스에 담았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한 10년, 당진시대 10대 뉴스

중부권 특정폐기물처리장 주민 힘으로 막아내

1993년 11월 석문면과 송산면이 후보지로 거론되면서 촉발된 중부권 특정폐기물처리장 반대투쟁. 1994년 4월 30일 3천여명의 군민들이 집결해 사상 초유의 군민결의대회를 열어 격렬한 반대 시위를 전개했으며 결국 이날 대회를 분수령으로 환경처가 같은 해 5월10일 사업계획을 철회해 투쟁이 마무리됐다.

중부권 특정폐기물처리장 반대투쟁은 당진군의 현대사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사건이었다. 이 투쟁을 통해 주민들은 중앙정부의 권위에 대한 체념에서 벗어나 능동성과 자신감을 얻게 됐을 뿐 아니라 환경의식이 비약적으로 고양되는 계기가 됐다.

높아진 환경의식, 유공입주 반대 투쟁

1995년 말부터 산발적으로 시작된 석유화학단지(유공) 입주 반대투쟁. 1996년 5월 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1997년 7월22일 3천여 명이 집결한 군민대회로 최고조에 달했으며 결국 이듬해 8월 (주)SK가 석문공단 입주를 포기함에 따라 마무리됐다.

유공 입주 반대투쟁은 공해로부터 지역을 지키겠다는 군민들의 순수한 의지를 모아 대기업과 권력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3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중단없이 진행됐으며 군민들의 환경의식을 한차원 높인 계기로 평가되고 있다.

사상 최악의 폭우, 당진읍 침수

1998년 8월8일과 9일 이틀 사이에 쏟아진 349㎜라는 기록적인 폭우로 당진천 제방이 넘쳐 당진읍 시가지가 물에 잠기고 산사태 등으로 7명이 사망하는 등 개군 이래 최대의 물난리를 겪었다.

당시 당진군이 집계한 피해액은 모두 932억원. 막대한 인명·재산피해를 몰고 온 사상 최악의 폭우는 한보부도에 이은 IMF 한파로 가뜩이나 얼어붙은 지역경제를 더욱 침체의 늪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지역경제 뒤흔들었던 한보 부도

국가경제 전체를 뒤흔들었던 1997년 1월의 한보철강 부도사태는 우리지역 당진에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일주일 사이에 피해액이 960억원에 육박하는 등 한보 부도의 여파는 협력업체를 넘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부도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한보철강은 올해 2월12일 AK캐피탈과 본계약을 체결했으나 인수자로 선정됐던 AK캐피탈이 최종 납부시한까지 인수대금을 납부하지 못해 결국 매각이 무산 됐다.

야누스의 얼굴, 서해대교 개통

2000년 11월 10일 서해대교가 7년 간의 공사를 마치고 개통됐다. 서해대교는 평택시 포승면과 송악면 복운리를 잇는 7천310m 길이의 바닷길로 63빌딩 높이의 주탑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행정, 교육, 환경 등 모든 면에서 대도시와의 경쟁을 요구하는 서해대교의 개통은 관광객 유입과 교통정체의 해소, 물류비 절감이라는 효과를 가져온 반면 인구 유출과 상권 이탈 등의 부작용을 불러오기도 했다.

끝맺지 못한 당진항 지정

2000년 9월 범군민추진위원회의 결성을 계기로 본격화된 당진항 지정 운동은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의제로 떠오르면서 5만여 군민들이 참여한 서명운동과 2001년 12월, 지난해 11월의 두번에 걸친 대규모 상경 시위 등 범군민운동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당진항 지정은 4년간의 끈질긴 범 군민운동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7일 당진군이 평택·당진항 통합명칭을 수용하는 대신 해상도계 관련 소송을 취하해달라는 해양수산부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파란을 일으킨 낙천·낙선운동

현직의 자민련 김현욱 의원이 2000년 1월 발표된 낙천낙선 대상에 포함되면서 불붙기 시작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 선거 결과 다소 약세로 평가되던 현 송영진 의원이 2천9백여 표 차이로 당선됐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지역주의의 벽을 허물고 당 사무총장과 4선의 경력을 자랑하는 현역 의원을 낙선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대안의 부재 등의 문제도 지적됐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 개막, 민선군수 선출

1991년에 부활된 지방의회에 이어 1995년 6월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김낙성 후보가 첫 민선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되면서 실질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맞게 됐다. 30여년 만에 부활된 지방자치제도는 민주주의와 자치의식을 향상시키고 자치단체의 행정서비스를 한단계 발전시키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반면 민선단체장이 지역의 발전을 위한 창의적 기획과 과감한 사업추진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 선거를 의식한 경조사 챙기기와 잦은 민간단체 행사 참석 등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제기됐다.

지역의 유일한 대학, 신성대학 개교

지역발전의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지역 최초의 전문대학 신성전문대학이 1995년 3월 2일 9개과 720명의 신입생으로 첫 문을 열었다.

정미면 덕마리에 위치한 신성대학은 1994년 5월 기공식에 이어 같은 해 12월 ‘신성전문대학’으로 대학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그동안 6천83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현재 10계열 13개과에서 4천88명의 학생들이 미래의 꿈을 키우고 있다.

터미널 이전과 반발

종합버스터미널이 당진읍 읍내리 구 터미널에서의 30년 역사를 마감하고 올해 9월8일 당진읍 수청리 원당택지개발지구로 이전 개장했다.

이전 부지를 원당지구로 최종 결정한 이후 상권이탈을 우려한 당진읍 기존 시가지 시장주민들의 반발로 상당한 진통을 겪었던 버스터미널 이전 사업은 실시설계 과정에서 1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낭비되기도 했으며 이전 이후 연계 교통수단 부족 등 많은 문제들이 지적됐다.

1. 정미 수당리 사설공원묘지 반대투쟁

면 단위의 집단시위로는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될 1995년 정미면 수당리 사설공원묘지 반대투쟁. 70㏊의 방대한 논에 모내기를 거부하는 사상 초유의 영농거부로 맞선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사업계획이 철회됐다.

2. 왜목마을 해돋이 명소로 부상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서해안 유일의 해돋이 장소인 석문면 교로리 왜목마을. 2000년 새해 첫날 10만명의 인파가 몰려드는 등 전국적인 해돋이 명소로 급부상했다.

3. 전국 최초 주민감사청구 ‘일품가든’ 사건

도시계획도로 부지에 건축허가를 내줘 수억원의 국고를 보상금으로 낭비하게 만든 ‘일품가든’ 사건. 2000년 당진참여연대가 군민 686명의 서명을 받아 전국 최초로 주민감사를 청구해 전국의 이목이 집중됐다.

4. 당진화력 대형화 주민 마찰

2001년 7월 “12호기까지 건설하는 것도 기정사실로 보면 된다”는 당진화력 관계자의 발언이 지역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올해도 7·8호기 건축허가 신청으로 화력발전소 집중화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5. 참여연대 공직자 판공비 공개 추진

당진참여연대가 1999년 10월 ‘주머니 속 쌈지돈’으로 일컬어지는 군수, 군의회 의장 등 당진군 주요공직자의 판공비 사용내역에 대한 행정정보공개를 요구해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6. 합덕대건신협 파산, 남부권 경제 침체

농업 위기로 인한 남부권 경제의 침체가 지역의 주요한 현안이 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합덕대건신협의 파산은 남부권 침체를 가속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