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호 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노무현 정부들어 민중들의 시위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분신자살이 잇따르고, 한동안 사라졌던 화염병이 등장하고, 고속도로가 점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과격시위를 통해 얻는 것은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노동자와 농민들의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시위란 말 그대로 하나의 표현 행위이다. 그런데 왜 민중들은 격렬한 시위를 벌일까? 그들은 왜 평화롭게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알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그렇게 간절히 표현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벼랑 끝에 몰린 농민과 노동자들의 하소연이자 절규이다.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들의 하소연과 절규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 언론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무슨 소린가? 신문방송이 그렇게 많은데?
대부분의 언론에게 노동자와 농민의 삶은 관심 밖이다. 그렇지 않고는 언론기업으로서 이윤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 모두 주된 수입원은 광고이다. 광고주들은 가난하고 고달픈 민중의 현실이 신문지면이나 방송화면에 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세상일이 다 잘 돌아가고, 모든 게 넉넉해서,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이 유포되길 원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광고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많이 사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류 언론은 도시거주 중산층 이상의, 먹고 살만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광고주들이 원하는 시청자와 독자들이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그런 사람들이다.
한국의 언론인들은 지방농촌의 현실이나 공장근로자의 삶을 체험할 기회도 없고, 관심가질 기회도 없다. 그냥 잠깐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나마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언론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충격적인 행동을 벌일 때이다. 농민들 수십명이 상경해서 평화적으로 호소하면 언론에 나가지 않는다. 보도자료를 보내고 기자회견을 해도 언론은 관심이 없다.
뉴스가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에 수만명이 모이고, 길을 막고 화염병을 던져야 잠깐이나마 듣는 시늉이라도 한다. 이미 민중들은 언론이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핵폐기장 반대 시위를 벌여온 전북 부안의 주민들은 언론에 대해서 취재거부를 해왔다.
그러나 지난 11월19일 시위에는 취재를 허락했다. 대신 취재기자들에게 "경찰이 우리를 어떻게 진압하는지 똑똑히 알려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민중들은 언론에 대해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나마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이 그들의 절규를 계속 외면한다면 민중들의 분노는 노무현 정부 뿐만아니라 언론에게로도 향할 것이다. 언론치고 공정한 언론이라고 내세우지 않는 언론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 중립을 지키는 것이 공정한 보도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한 보도란 약자의 편을 드는 편파적 보도를 말한다.
공익을 위해서 정의의 편에 서는 언론이 진정 공정한 언론인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공정한 언론을 찾아보기 무척 어렵다. 이땅에 평화적 시위가 정착되려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고통에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관점에서 사실과 주장을 전달해야 한다. 언론이 공정해지면 민중의 시위는 자연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