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봄이다. 삼라만상이 꿈틀꿈틀 나의 마음도 덩달아 분주하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듯 밭고랑의 푸른 싹들이 앞 다투어 새 모습으로 인사 하니 더 없이 싱그럽다.
오늘은 문득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에 지난날을 되돌아 보았다. 언제나 당당하시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셨던 모습에서 강한 삶의 의지도 느꼈건만 돌아가실 무렵의 무기력해지신 모습은 모든 어머님들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작은 포목점으로 집안 생계를 꾸리시느라 하루 종일 재봉틀과 씨름하셨다.
어느 해 가을 날 이었다. 추석대목을 맞아 서울로 물건을 하러 가셨던 어머님이 다급하신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는데 신례원에서 버스를 갈아타시려고 내렸는데 물건 보따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통곡을 하시며 어쩔 줄 몰라 하시기에 어떻게든 찾아볼테니 안심하시고 집으로 오시도록 말씀드렸다. 급한 대로 버스 노선별로 예산, 홍성, 대천, 장항 등의 터미널로 연락을 취해놨다. 얼마 후 넋이 나간 듯한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대성통곡을 하시더니 물 한모금도 드시지 못한 채 몸져누우셨다.
사태의 심각함에 자식된 도리로 내가 찾아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어머님께 꼭 찾아 올테니 걱정 마시라며 집을 나섰다. 아무 생각 없이 서울행 막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앞이 캄캄했지만 어떤 노력이든 해봐야 어머님의 서운함을 덜어드려야겠기에 용산역에 도착한 후 충남교통과 한양여객 사무실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부장쯤 되시는 분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버스가 지방에서 올라오는 대로 확인해 볼테니 잠시 기다리라 하셨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모든 차들이 들어왔는데도 어머님의 보따리는 없었다. 다행히 내일 아침에 지방에서 정차하고 올라오는 차가 있다기에 다시 들르기로 하고 큰시누이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사무실로 향했다. 어제에 이어 지방에서 올라오는 버스를 확인한 결과 마지막 차에서 어머님의 보따리가 발견되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단숨에 사무실에서 뛰어 내려와 보따리를 찾은 후 어머님께 전화드렸더니 정말이냐시며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는 것이다.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찾으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는데 하늘의 도우심으로 어머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 합덕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도와주신 분께 다시금 감사를 드렸다.
어머님이 보따리를 그토록 소중히 생각하신 것은 그 만큼 가족을 사랑하셨기에, 그 만큼 가족의 생계를 이어준 소중한 것이었기에 당연하신 모습으로 두고두고 기억하련다.
고생을 낙으로 사셨을 부모님의 그 깊으신 은혜가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제야 몸으로 절절히 느껴진다. 어머님의 당당하셨던 옛 모습은 다시 뵐 수 없지만 그 정신만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꼭 심어줄 것이다.
내일은 바쁜 일 다 미루고 산소에 가서 그동안의 평안함에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