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쯤으로 기억된다.

그때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신윤복이라는 소년 가장이 동생들과 겪는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의 슬픈 이야기였다.

그것도 극장이 아닌 비디오를 통해 보았다.

비디오란 제품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으나 그 정도면 당시 우리

가정이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할 것이다.

어찌나 안타깝고 불쌍하고 가련하던지....울지 않으려 해도 눈물이 울컥 울컥 솟아났다. 주변이 모두 깜깜하니까 눈물이 나도 그리 창피할 노릇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옆 아이가 알세라 몰래 몰래 눈물 닦아가며 보았던 영화였다.

영화가 다 끝나고 불이 훤하게 켜지면서 우리들은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아이들은 "울었는지 안울었는지"하는걸로 사나이의 강한 의지를 확인하는 작업들을 했다.

"너 울었지? 에~이 바보!"

"아냐! 치사하게 그 정도 가지고 우냐?"

그리고 너희형편과는 대조되는 이야긴데 참 어이가 없네!

그렇다.당시 우리집안은 지금이 단군시대라 치고 다시 21세기

까지 이어져도 먹고 살수 있을만큼의 00한 집안이었지만 워낙

빈자의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사람들의 애환을 들으면 눈물이 절로나는것은 당연했다.

하여튼 그래서 그때 나도 그렇게 속으로 꺼이 꺼이 울었으면서도 안 운 척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그때 안 울었다고 뻐기는 놈들은 "진짜 울지 않는 놈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 놈들도 역시 똑같았을 텐데....그놈은 아마 지금까지도 내가 안울었다고 여기고 있을껄!

그런 사나이 교육 중 또 하나가 "남자는 통이 커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쪼잔하게 굴지말라"는 것이다. 이말은 남자들은 꼼꼼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일상사는 작은 것이니까 대충 대충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나이라면 대사를 논해야 한다는 거다. 이거 원 참! 그러니까 정치를 논하고 세계평화를 논하고...경제의 흐름에 대한 논쟁을 하며 지역시정이 무어가 잘못되었고 학교교육의 백년대계는 어떻고

하는지...

일상에서 겪는 잔잔한 느낌들, 소박한 이웃들과의 정감어린 나눔들에서 오는 감동들, 그리고 작은 배려를 주고받으면서 훈훈해 지는 마음들. 이런 것들을 그때 그때 표현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상사에선 무감동한 인간이 되라는 뜻이다. 그래도 안그런 척 이중적인 인간이 되라는 것과 진배없다. 이와 동일선상에서 작은 일에 괜히 삐쭉 빼쭉 하지말라는 거다.

왜냐면, 이런 것들은 남자들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들었으니까.

남자들은 그런 느낌들이 들더라도 표현해 내면 안되는 이유는 단지 남자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그게 떨어진다는 어마어마한 협박과 더불어 진짜 그렇게 되면 남자구실 끝인데?

내가 왜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느냐면(여자들처럼), 세상은 뒤집어 보는게 더 옳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시대는 남자다운 생각과 행동을 여자가 해보고, 여자다운 생각과 행동을 남자가 해봄으로써 서로의 애환을 몸소 경험해 봐야하지 않을까 해서이다.

모름지기 남성적이라는 것과 여성적이라는 것이란 없다. 남성들 중에도 여성스러움이 두드러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성들 안에도 남성스러움이 두드러진 사람이 있는게 자연의 이치이다.

인간의 오만이 남성적이니 여성적이니, 옹졸하니 어쩌니, 치사하게 쪼잖하니 어쩌니하며 스스로 자신들이 파놓은 덫에 걸려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허리를 깊숙히 숙여 가랭이 밑으로 보는 거꾸로 된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