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형태의 가난한 사람들 역사 속에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해왔고 시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국사회만 보더라도 6.25 이후까지 대부분의 국민이 절대빈곤 상태에서 비참하게 살았고 공업화과정에서 농촌을 떠난 노동자 무리가 대도시 변두리에 살았다.(필자의 선조들은 당시 훌륭한 의사집안이어서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살았는지도 모르나 사회전반에서는 빈곤층이 압도적으로 많던시절이었다) 급속한 경제성장 후 현재 한국사회에는 50%가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실업자 그리고 외국인노동자 등이 신빈곤층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이제는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종교 및 사회단체. 사회주의 사회가 몰락하면서 온 세상이 보수화되는 듯한 분위기가 한국사회를 사로잡는 듯 하였고 사회도 그 분위기에 편승하는 가운데서도 국민들은 반향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가진 대통령들을 뽑았고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제3당이 되었다.
사회는 빨리 변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많은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정치를 통해서 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던 종교계와 사회단체가 이제는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외
조부님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실했다는 말을 어머님과 주변사람들에게 들은적이 있다.
일찍이 밀가루 등 구제품을 제공하기도 하였고, 해방전후에는 가난한 농민,빈민을 위해서 활동했다. 아무것도 없던 나라에서 의사회를 통해 사회보다 앞서 가면서 모습을 보여왔었다. 부강한 조국을 위해서는 기독청년회를 통해서 선구적 역할을 다했으며, 빈민 문제에 대해서도 발빠르게 대처했다. 그런데 지금 심각한 상태로 치닫고 있는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과거 들어보지 못한 신빈곤층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과거에는 가난하지만 해맑은 젊은 노동자들이 시골에서 올라와서 집단으로 도시 변두리에 자리잡고 희망을 갖고살았지만 지금은 곳곳에 흩어져서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거나 아예 목숨을 끊는 일이 많아졌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 일원은 다시 새롭고 과감하게 다가가야 한다. 과거 무슨 물건처럼 뒷방에 숨겨두고 살았던 장애자들도 이제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사회단체 및 종교계는 지금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다가가고 있는가? 우리는 더 큰 도전으로 다가오는 현대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실하게 응답하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한다. 혹시 부자 교회 앞에서 나자로는 들어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가난의 문제는 인류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개인이나 종교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가난한 이들에게 접근하는 기본 정신과 사회의 자세가 모두 같아서도 안 된다. 사회는 사회대로 사회단체 종교계는 자신의 고유한 방향을 잡아야 할 일을 찾고 서민들에게 모든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며 믿음으로 만나도록하는 것이 중요하면 우리 정부 또한 기본 전통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임을 상기하고 쉽지 않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기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기업이나 축적된 자본을 가진 이들이 기초생활보장제를 사회주의적인 보장제라고 선동하려는 경향 즉,기초사회보장 제도의 개혁 요구를 없는 자들의 넋두리쯤으로 여겨서는 안될 일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 및 생존권 보장없는 사회는 밀림의 정글 법칙과도 같은 것이며 스스로 비문명사회의 비인간화를 비추기데 공조하는 일이 될 것이다.




